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소설, 골 때린다.

SF 소설의 거장이라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첫 미스터리는 기상천외한 놀라운 트릭이나 반전 대신, 전대미문의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어떤 트릭과 반전으로 독자를 속일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있을 미스터리 작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호형사'라는 신의 한 수로 미스터리 지도에 작지만 독특한 발자국을 남겼을 것이다. 1978년의 출간 시기가 무색하게 2005년에는 일본 드라마 <부호형사>가 제작되었으며, 그 드라마 역시 상당한 인기를 끈 뒤 <부호형사 디럭스>로 후속편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일본 드라마의 팬이라면 한 번쯤 챙겨봤을 법도 하지만, 나는 그다지 잘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니 넘어가자. 그냥 바로! 소설 속 <부호형사>를 만났다.

 

골 때리는 소설이다 어쩌고 저쩌고 하고 제목 <부호형사>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듯 형사는 형사인데 상당히 부유한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과거 한 악랄함을 내비치며 이리저리 돈을 긁어 모았을 간베 기쿠에몬의 아들 간베 다이스케는 캐딜락을 타고 출퇴근 하고, 평소 커피 값에 대한 개념은 일반인과 같지만 천만, 억대의 금액의 돈을 논하기 시작하면 금전 감각이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형사'다.

거기에 더해 앨프리드 히치콕, 글렌 포드, 험프리 보거트, 앨프리드 E. 뉴먼을 닮은 개성 넘치는 경부님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대부호이기에 가능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7년에 걸쳐 4명으로 좁혀놓은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하여금 '돈을 쓰게' 하기 위해 간베 다이스케는 개인의 재력을 이용해 미끼를 던지고, 도저히 풀 수 없었던 밀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용의자를 또 다시 사건 전과 유사한 궁지로 몰아넣어 또 다시 트릭을 이용하게 만든다거나, 유괴 사건의 몸값이 쉽사리 준비되지 않자 유괴당한 어린이의 안전을 염려해 몸값을 선뜻 내고 사건 해결을 위해 대중 속에서 돈을 마구 뿌린다던지, 야쿠자들의 회합 예정 소식을 듣고 주민들의 안전을 고려한 경비 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 야쿠자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그들을 모을 호텔을 제외한 나머지 여관에 예약을 해 버린다거나.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에는 그저 한 번 웃어줄 뿐이다.ㅋㅋ

 

 

썩 놀라운 반전은 아니더라도 미스터리로서의 모양새를 확실히 갖추고 있는 <부호형사>에서는 쓰쓰이 야스타카 특유의 유머를 엿볼 수 있다.

부호형사 간베 다이스케 뿐만 아니라 사건만 해결되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등장하는 서장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라거나 앞서 이야기했듯 다양한 캐릭터를 본뜬 것 같은 형사들. 그래도 역시 압권은 언제나 사건 해결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다이스케에게 '너는 하느님이 내게 보내신 천사'라는 둥 '돈은 얼마든지 쓰렴. 그게 내 잘못을 씻어줄 수 있다면'이라는 말로 시작해 결국은 발작을 일으키고 마는 실은 최강의 악당 기쿠에몬의 만담 같은 대화와 갑작스럽게 미스터리에 대한 압박이 있었던 듯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등장인물의 대화다.

그런 장면 하나하나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온다.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기막힌 설정, 가벼운 문체로 전개되는 이야기로 너무 가볍기만 하고, 미스터리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트릭이나 사건은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오산이다. 굉장히 훌륭한 트릭이나 반전은 아니더라도, 쓰쓰이 야스타카는 미스터리의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용의자 속에서 범인을 끄집어낸다거나 밀실 트릭, 유괴, 미스디렉션 등 본격 미스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교를 고스란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보통의 형사나 탐정이 회색 뇌세포를 이용해 수수께끼를 푸는 대신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그 수수께끼 풀이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것이 캐릭터와 함께 이 소설에서만 엿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나 할까.

 

이처럼 쓰쓰이 야스타카는 쩐으로 회색 뇌세포에 도전했다. 유쾌하고 재기 넘치는 소설이다.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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