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동물들은 태어난 뒤 얼마 있지 않아 가족의 품을 떠나지만, 인간은 꽤 오랜 시간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렇기에 자식들에게 부모님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 등은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럼에도 사춘기가 찾아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면서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특히 그놈의 '간섭'이라는 녀석 때문인데, 더 이상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딜 가는지 등의 일거수 일투족을 부모님에게 간섭을 받지 않기를 원하고, 또 자기만의 비밀을 하나 둘 가지고 그것을 숨기고. 하지만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그래도 내 아들이 어디선가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춘기 시절 자기 혼자만 알고 싶은 비밀을 품고 있는 자녀들의 속이 부모님은 궁금하지 않았을까?

방 청소를 하다 문득 딸의 일기장을 펼쳐본다거나,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는 아들을 묘한 눈길로 바라본다거나(실은 이건 내 목격담이다. 고모가 우리 집에 놀러오셨을 때 사촌 오빠가 그러더라고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ㅋㅋ). 뭐 우리 어릴 때도 그랬는데, 얘들도 매한가지겠구나, 하고 자라고 있는 자녀들을 흐뭇하게 생각하며 모른척 하고 넘어가는 일도, 좀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일거수 일투족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생겨날 것다. 요즘은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문자 메시지함에 비밀번호를 걸어둔다.ㅎㅎ

 

언젠가는 품에서 벗어나겠지만, 그래도 품에 있는 동안에는 안전한 울타리 속에 꽉 잡아두고 싶은 부모님. 부모님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리고 싶지는 않은 아들.

나중에, 혼자 날아갈 수 있을 때 까지는 울타리 속에 계속 붙잡아 두는 게 좋을까?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그 밖을 조금씩 내다보게 해 주는 게 좋을까?

 

 

장기이식 전문의와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법조인인 마이크와 티아는 아들 애덤과 딸 질을 둔, 미국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중산층 가정이다. 부부에게는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애덤이다. 그는 최근 절친한 친구였던 스펜서의 죽음 이후 자신의 행동을 철저히 숨긴 채 부모님과의 대화마저 급속히 줄어들었는데, 혹여나 애덤이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까, 친구들과 주고받는 인스턴트 메시지에는 마약 파티에 가자는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부부는 끝내 애덤의 컴퓨터에 몰래 사용 내역을 저장해 부모에게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애덤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아들을 믿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내비치는 마이크와는 달리, 티아는 이 프로그램의 사용에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며 아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마이크의 오랜 친구인 모의 의견마저 티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들은 애덤의 행동을 몰래 감시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의 DJ라는 친구로부터의 메시지를 알게 된 마이크는 애덤이 그를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들과의 약속을 잡기까지 하지만, 애덤은 아랑곳않고 사라져 버린다.

 

아들을 찾아나선 마이크의 행보와 함께 내니라는 남자의 살인 행각이 함께 등장하면서 온갖 퍼즐 조각을 흩어놓는다. 과연 그 퍼즐들을 이어붙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크게는 한 살인범의 살인 행각과 애덤을 찾아나선 아버지의 모습이 큰 줄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밖에도 마이크와 티아 부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이웃들의 모습도 단편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그 모든 퍼즐조각을 하나로 맞추어낸다. 할런 코벤은 그 과정을 상당히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와 함께 긴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스릴러라는 형태로 읽어나가기에는 조금 아쉽다. 스릴러로서의 이 <아들의 방>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영미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성격적인 결함이 있는 살인마의 살인 행각과 그의 행적을 뒤쫓는 경찰, 전혀 상관 없어 보이던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결론적으로는 이러이러한 연관이 있더라는 식으로 임팩트를 안겨주려는 결말 등의 구조에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과정도 결코 재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금 전형적인 반복에 조금 질린 독자라면 그 대신 '아들의 방'을 소재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할런 코벤은 이 소설을 구상하면서 스스로에게도 상당히 질문을 많이 던진 듯하다.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흔히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애덤과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그려내는 것에 차용하고 있는데,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그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샌가 자신의 부모님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놀란다거나, 자녀들의 사생활과 부모의 보호의 그 미묘한 경계를 어떻게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 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당히 전형적인 마이크의 가족 이외에도, 희귀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라거나 이혼한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는 가족 등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려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가족 소설이라 함은 가족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면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 위기가 그저 가족 구성원들간의 갈등으로 그려질 수도 있지만, 할런 코벤은 거기에 살인 사건을 등장시키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뭐, 할런 코벤이 스릴러 작가니까 그런거지만..;;

 

어쨌든 그렇게 다양한 모습과 함께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아들의 방>. 그러나 여전히 그 답은 잘 모르겠다.

아들을 새장에 가둔 채 보호만 하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나름대로의 판단력을 갖추었다 생각하고 어느 정도 행동을 존중해 주는 것이 좋을까?

할런 코벤은, 가만히 지켜보며 놓아두기에는 너무 가혹한 상황을 애덤에게 닥치도록 해놓고는 위험하니 그래도 울타리 속에서 꽉 붙잡으라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당연하다. 소설에서나 벌어질 법한 사건에 휘말린 아들을 내버려 둘 부모가 어디 있을까. 스릴러 작가로서의 할런 코벤의 선택은 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설의 원제는 <Hold Tight>가 되었을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