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



떠나는 것들은 커브를 그린다

보내는 것들도 커브를 그린다

사라질 때까지 돌아다보며 간다

그 사이가 길이다



얼어붙은 하얀 해의 한가운데로 날아갈 이유는

없겠지만,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까지

그 빛나는 사이로 가기 위해

벼랑에서 몸을 던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가운데는 텅 비어

중력에 굴복한다



詩. 김수영

------------------------------------------------------------------------------------------------

땅에 발을 딱 붙인 채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중력에서 벗어 날 수는 없지만 날개달린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학로로 달려갈 예정임..

오맛~

벌써부터 발이 파다닥 거리고 있다..-_-;;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하 2006-04-2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력을 느끼면 힘겹게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해요...ㅠㅜ 오랜만에 글 올리지나 '방가방가'이런 감정이 들어요...^^;

클레어 2006-04-2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가방가~ ^^)/
날씨가 참 좋네요. 공부만 하면 바보된데요.. 스스로를 잘 조절하시면서 공부하시길...

2006-04-21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이오면 / 김윤아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녁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하얗고 붉은 향기 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연두빛 고운 숲속으로

어리고 단비 마시러
봄 맞으러 가야지

풀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마음엔 한껏 꽃 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봄바람 부는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으면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들녁은 활짝 피어나네

봄이 오면
봄바람 부는 연못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노저으러 가야지

나룻배에
가는 겨울 오는 봄 싣고

노래하는 당신과 나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어지러운 거리를 오늘도 하루종일 걸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낯선 거리를 거닐며
낯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낯설어
잠시 심호흡을 했습니다.
 
이 봄을,
이 순간을,
이 아름다움을,
이 생을
함께  느끼지 못하고
뚜벅뚜벅 걸어 가야한다는 외톨이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
날이 많이 따스해졌습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대기가
지치고 시린 육체를
안아주고 있습니다.
 
햇살은,
'네 마음을 열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용히
제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당신..
다른 이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당신..
쓰라림을 잘 알면서도
가슴 속 모래알을 뱉어내지 않는 진주조개처럼
삶의 상처를 품어 안고는
혼자 외로이 상처를 핥고 있는 당신..
그렇게 세상의 많은 길 중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당신,
 
 
자신의 상처만 바라보고 있어서
알아보지 못했었나요?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걸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먼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지금 이 도시의 사랑이야기입니다.
 
당신..
봄밤에 잔잔히 섞여 드는
봄꽃의 향기에
내 향기도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하루하루 일곱 날이
 무지개빛깔처럼
하나하나 모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살며시 귓가에 속삭여 주었던 그날은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봄밤에
당신의 코끝을 스칠
나의 향기의 이름은
'그리움'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알아채지 못한다고 해도
없는 것이 아니랍니다.
 
눈먼 이들의 사랑 노래가
이 도시의 사랑 노래랍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돌바람 2006-03-31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봄이 오면 선천적 그리움을 앓는데...
흑흑 봄이 오면 다 듣고 가요. 흑흑흑...

푸하 2006-03-31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오스님......... 너무나 좋은 시에요..... 머리에 피가 몰리네요..... 각자의 길을 가지만 가끔 마주침이 있잖아요....

잉크냄새 2006-03-3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인가요? 시인가요?
감상이 더 울림이 있네요.^^

파란여우 2006-03-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건 저에게 보내는 연서 맞죠? 맞죠?

클레어 2006-03-3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김윤아가 여러 사람 마음을 들쑤시네요.. ㅜㅡ

푸하님/ 마주침...그것이 기적같은 거란 것을 요즘에야 처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순탄하게 가던 길을 확 역주행하고 싶은 열정을 불붙여주는...흐흐~

잉크냄새님/ 감상을 그저 끄적인 거랍니다. 노래라 하기엔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감상(요즘은 쿨~한 것을 좋아하잖아요.) 위주고 시라고 하기엔 절제가 되지 못했어요. 그래도 잉크냄새님께서 해주신 말에 기분 좋아서 발그레~ 헤헤~

파란여우님/ 신(神)기를 운운하시더니..정말 그러신가 봅니다. 파란여우님의 봄봄..페이퍼를 보고 괜히 이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절로 들었던 거 보면, 제가 여우님을 많이 좋아하기는 하나봐요..^^

비로그인 2006-03-3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도 에오스 님의 글도 참 슬프도록 곱고 좋아요. 노래만 담아 갑니다. 고맙습니다.

hnine 2006-04-2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슬픈가요 이 노래. 당신과 함께 간다는데...봄이 온다는데...
퍼갈께요.
 
 전출처 : 푸하 > 지나친 행복이나 지나친 슬픔에 빠진 그대에게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승리에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실패에도 절망하지 않는 길


유대교 미드라쉬(midrash)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한 보석 세공인을 불러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나를 위하여 반지 하나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매우 큰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그리고 동시에 그 글귀가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느니라."

그 명령을 왕으로부터 받은 그 신하인 보석 세공인은 곧 매우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신하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습니다.

"왕의 황홀한 기쁨을 절제해 주고 동시에 그가 낙담했을 때 북돋워 드리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말을 써 넣어야 할까요?"

솔로몬 왕자가 이런 대답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반지에 이런 말을 써 넣으시요: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왕이 승리의 순간에 이것을 보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그가 낙심중에 그것을 보게 되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순간이요, 곧 지나가 버리는 허무한 것임을 알 때, 우리는 성공이나 승리의 순간에도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성공하였다고 하여 너무 흥분하거나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고, 실패하거나 패배하였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신하는 이 반지를 만들어 다윗왕에게 바쳤고 왕은 만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나친 행복이나 슬픔에 빠진 순간에 "이것 역시 지나가 버립니다." 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쉽게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고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서 서두에 ‘세상 만사가 헛되다’!는 말을 5번이나 반복한 것으로 나오고 그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할 때 그 대답은 잘 어울린다고 보겠습니다.

 

--------------------홍근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스승과 친구는 원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둘이 다르단 말인가? 만약 친구라서 사배를 올리고 학업을 전수 받을 수 없다면, 필시 그와 함께 친구가 될 수 없다. 스승이라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지 못한다면, 또한 그를 스승으로 섬길 수 없다.

                                                          -<< 분서>> 이지 지음 , 홍승직 옮김. 홍익 출판사 1998. 141면. -

 

명말청초 양명좌파의 대가 이탁오의 말이라고 한다.  푸하님께 빌린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는 책 속에서 찾아낸 귀절이다.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지식꼬뮌을 만들어 가파른 학문적 종횡단을 일삼으며 '노마디즘'을 실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 연대기인데,  잠 오지 않는 밤, 친구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꽤나 흠뻑 빠져서 책을 읽어나가고 있었다.

최근의 이사로 서로의 집까지 10분 거리가 되어버려 밤마실마져도 쉬워지는 상황이 되자, 녀석과 나는 커피 한잔을 핑계로 자주 서로의 집을 드나들게 되었다. 오늘도 녀석은 "커피한잔 마시러 가도 돼?'"라고 유혹의 말을 건네었고, 나또한 "물론!!" 하고 맞장구를 치는 바람에 녀석은 12시가 넘는 시간 내 집에 나타나 수다와 함께 진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갔다.

가끔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녀석과 내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란 생각을 하게 된다.  '수유+너머'의 고미숙씨가 '고마녀'라 불리며 악역을 도맡고 운영에도 무대뽀 정신으로 밀어붙이기를 할 때 이진경씨는 반대 입장에서 그녀랑 바락바락 싸우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공동체를 이루는 중심추가 되었듯, 녀석과 나의 관계또한 각각 다른 환경, 다른 정신 세계, 다른 처세술, 다른 학문을 추구하면서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뭉쳐져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견제해주는 역활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관계임을 다시 재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 친구..요즘에는 체중관리를 핑계로 내가 들이대는 술잔도 마다하니 나의 꼴이 참담하기 이를 때 없다. 혼자 홀짝거리는 술잔이 쓸쓸하다고 아양을 떨어도 단호하게 "내일 말이지..."로 시작되는 녀석의 신학기 박사과정동안 해야할 실험들의 번잡함과 "나잇살" 운운하는 데에는 나또한 찔끔할 수 밖에 없는 탓이다.

1시간 30분동안의 수다 후, 녀석을 돌려 보내고 '두고봐!! 내일은 일찍 일어나 운동해서 S라인 구축하겠다!!' 라고 선언을 해도 시간은 덧없이 흘러 이 시간이 되어버렸으니 공염불이 따로 없다. -_-

습관을 바꿔야 S라인 구축과 함께 녀석의 입심을 이길 수 있으려나? 어쨋든 녀석의 자극으로 내일(!!!)부터는 좀 달라질 거 같다.(정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하 2006-03-2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는 '다른 존재'를 대하는 방식이 중요한 거 같아요. 저는 좀 다르면 '얄팍한 내기준'으로 끊어 왔는지.... 생각해 봐야 할 듯합니다. 근데 이렇게 벌써 많이 읽으시다니(다 읽으셨죠?) 전 '독일사회와 인터뷰하다.'를 조금 읽었을 뿐인데. 저또한 빨리 읽을께요.... '발칙한 도발자'인 이지의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클레어 2006-03-2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다 읽었어요. 무척 재미있고 에너지 넘치는 책이더군요. ^^ '다른 존재'를 대할 때 조심스럽죠. 15년간 친구를 꼬셔서 만나도 모르는 부분은 모르고 아는 부분은 알고 그렇죠. 그래도,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줄 수 있게 된 것은 역시 시간의 힘이랄까요? ^^

2006-03-24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레어 2006-03-2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사람만나고 일도 해야하고 좀 바쁘네요. 좋은 포럼인 거 같은데 참여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이번 토론회 참관기도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
 

늦었지만 평택에 다녀왔던 것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하지 않고 넘어가는 삶은 잊혀지기 쉽다. 머리 속 깊숙히 내려앉을만큼 감정의 뿌리가 깊어지려면 자신의 문제가 되어야 하고 실랄하게 통증을 느껴야 한다. 모두들 피하고 싶어하는 고통속, 그 자리에 서서 견뎌낼 자신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필기구를 들어 그 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다시 되새기는 것는 것도 한 방법이란 생각에.

1. 첫만남..

용산역에서 평택으로 향하기 전에 돌바람님께 전화가 왔다. 목소리의 맛..부드러움속에 숨겨진, 질긴 무엇이 느껴졌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지만 바로 만날 수는 없었다.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였다. 엇갈림 속에 잠시 주저하다가 용산역에서 평택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차비 4000원. 편하게 창밖을 내다보며 기차의 경쾌한 달음박질을 만끽했다. 구름사이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햇살에 노곤해져 졸기도 하고...그렇게 하다보니 56분만에 평택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택역 맞은 편 2번째 골목"이라고 자상하게 평택극장의 위치를 가르쳐 주시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평택극장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돌바람님께 전화를 했고 지하철로 오시는 중이라 했다. 곧 도착한다..는 말씀을 듣고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나름 비장한 각오로 평택에 들어섰건만 평택극장앞의 여고생들의 웃음 소리와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여느 토요일 오후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다른 마음새로 같은 장소에 서 있다는 것은 들키지 않으려면 내 안의 초조함과 이질감을 극복해야 했다. 빨리 오셨으면 좋으련만....

돌바람님이 도착하셔서 전화를 해주셨다. 평택극장 앞에서의 조우.. 돌바람님은 눈이 무척이나 예쁘고 키 큰 청년과 함께셨다. 알라딘의 '푸하'라는 아이디의 청년... 간단히 인사를 했고 돌바람님은  큰 눈에 부드러운 모습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틀이나 밤새고 오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분의 열정이 느껴지는 듯 했다. 돌바람님께서 문.망.에서도 몇 분이 더 오시기로 했다고 하면서 바쁘게 전화를 하셨고 곧 우리들은 구두 한 켤레님과 구두 한 켤레님의 사모님도 만나뵐 수 있었다.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신 구두 한 켤레님, 그 사모님의 사람을 극도로 편안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위기에 이끌려 '좋은 분이구나..'란 생각을 절로 가지게 되었다.  

평택극장 주변 음식점에서 간단히 부대찌게로 밥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각의 나이를 이야기하며 20,30,40대가 한 자리에 모여 같은 주제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밥을 먹은 후, 돌바람님은 나중에 오시기로 하신 분들을 기다리신다며 평택극장 앞에서 기다리시기로 하고 나머지 4사람은 구두한켤레님의 차로 먼저 평택의 대추리로 가기로 했다.

2. 대추리...철조망과 깃발의 고장..

대추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너른 평야였다. 논갈이가 한창인 너른 평야들의 적막함과 고요함, 아무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란 섣부른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한 분위기의 들녘은 대추리 마을 입구의 거대한 대나무 장승과 "미군기지 반대한다." "올해도 농사짓자." 라는 문구가 새겨진 노란 깃발들의 힘찬 펄럭임 속에서 깨어지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대문에 달려있는 깃발들은 대추리 마을 분들의 위기의식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깃발들의 행렬 속을 비집고 달려 대추리 초등학교로 향했다. 대추리 초등학교의 정문은 트랙터가 3중으로 결계를 치고 있었고 대문은 쇠사슬로 굳게 닫혀 있었다.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본부로 대추리초등학교를 사용하고자 하는 국방부의 계획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대추리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는 샛길로 향하며 마을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구경했다. '미군들아 조심해라. 우리아빠 화났다.' '황형사 개X끼, 빨갱이는 정부이다.' 란 낙서를 보며 동시에 웃음을 지었던 우리들..웃음을 지으면서도 씁쓸했던 것은 마을의 벽에다 익명의 저항낙서를 해야 했던 상황들이 이 마을에서 벌어졌음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운동장에 내려갔더니 수십명의 대학생들과 마을 농민 분들이 불을 피우고 천막을 치고 있었다. 우리들도 불 피우는 것들을 도와드리고 천막 앞에 플랭카드 붙이는 것을 도와드렸다. 마을의 천막교회라고 하셨다. 운동장에서 불을 쬐며 대학생들에게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동국대 학생들인데 농활을 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모판준비랑 모판 흙담기를 했다고 했다. 시간을 조금 보내고 있으려니 돌바람님이 문.망.의 초여름님, 민들레님, 그리고, 알라딘의 잉크냄새님과 함께 도착하셨다. 모두 처음뵙는 분들이었지만 서로 인사를 하고 학교 건물구경을 하기로 했다. 농활을 오거나 사회단체에서 오신 분들을 위한 숙소가 2층 교실에 마련되어 있었고 잠자리로 썼는지 박스와 스티로폼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들은 학교 안에서 기념사진을 2장 찍고 밖으로 나가서 불을 피우고 계신 분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미군기지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철조망이 길게 쳐져 있었다. 민주노동당 경기지부 당원분이 거기에 마침 계셔서 함께 불을 쬐며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다. 미군의 후방 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정부가 강제로 땅을 매입하고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의 이주를 강제하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평택의  미군기지를 위해 필요한 땅이 649만평정도 인데 거기에 미군은 추가로 100만평정도를 미군 공군비행사들의 스트레스 해소용 골프장을 위해 더 매입해달라고 요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택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정부에서 평택시에 추진하고 있는 '국제평화도시계획'이라는 것에 대해 '미군기지의 배후 지원도시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라며 주민들의 동의도 없이 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반대하는 고덕면 주민들과의 연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와중에도 철조망 바깥쪽 미군기지쪽에는 지프차 같은 것이 한 대 서서 계속 이쪽의 동정을 감시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분들도 그쪽을 바라보면서 교대로 저쪽 상황을 망을 보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하시는 분의 얼굴에서는 피곤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 싸움이 언론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벌써 6년째라고 한다. 그 지리한 시간 동안 마을주민들 중에서 이사를 가신 분들도 있고 아직 이곳에서 싸우고 계신 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이 마을로 다시 들어오시는 젊은 분들-한 일본인 시인은 사람들의 삶을 억누르는 상황, 사회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아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평택 이야기를 듣고 평택으로 들어와 산다고 한다.- 이 있어서 폐가를 손질하고 다른 용도로 쓰는 방향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하셨다.

3. 비닐하우스 콘싸이트 - 평택을 밝히는 촛불, 촛불들.

7시가 되어 우리들은 모두 운동장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에 모였다. 비닐 하우스에는 마을 분들과 대학생들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계셨으며 모두들 손에 촛불을 들고 있었다. 함께 모여 촛불을 붙이고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이 촛불집회의 횟수만해도 벌써 564회째라고 하셨는데, 진행을 맡고 계신 민주노동당 분께서는 '비닐하우스 콘싸이트(콘서트)'가 벌써 564회째라고 하시며 분위기를 띄우셨다. 정태춘씨도 오셔서 노래를 해주시고, 영화인 대표로 임순례감독과 봉준호 감독, 양윤모(?) 영화평론가의 이야기, 민요패 아라리요의 노래를 들었다. 봄농활을 하기 위해 왔다는 한신대, 동국대의 대학생들의 이야기들, 평결사(평화결사대??)에서 여러 분이 오셨고, 한겨레 블로그에서도 3분이 오셔서 자신이 평택에 오게된 동기등을 이야기 해주셨다. 그들처럼 앞에 나가서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문.망. 과 알라딘에서도 왔었고(^^V), 길을 물어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평택이야기를 듣고 아기를 데리고 오신 가족단위의 방문객들도 있었다. 그리고, 15일 공권력 투입때 2명의 사회활동가와 2명의 대학생이 구속되었는데 2명의 대학생은 풀려났고 2명의 사회활동가는 계속 구속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비닐하우스 안의 촛불들은 그렇게 평택의 상황을 서로 알리며 밝히고 있었다.

1시간 20분정도의 촛불 집회를 마치고, 구두한켤레님께서 함께 모여서 정리집회를 우리끼리 가지자고 하셔서 돌바람님, 푸하님, 초여름님, 민들레님, 잉크냄새님, 구두한켤레님 사모님, 그리고, 나는 동그랗게 모여앉아서 오늘 받았던 느낌을 이야기 했다. 공중파에서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 이 곳 이야기를 찾아내어 모인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동, 미군부대이전을 통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마을 분들의 의지에 대해 죄스러움과 함께, 우리가 본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등등.

우리들의 정리집회를 마치고 비닐하우스를 나오며 바라본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잉크냄새님께서 별들을 보며 봄 별자리를 가르쳐 주셨고 푸하님은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는 나쁜 사람은 없다란 말을 해주셨다.

별...별까지 가는 길을 우리는 모른다. 어쩌면 우리세대는 망상과 공상 속에서 그 길을 찾아 해메다가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같이 촛불을 들고 있던 꼬마들에게는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별...우리들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있었던 별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한다.

4. 집으로 ...

잉크냄새님께서 초여름님과 민들레님을 평택역까지 태워 주시기로 하고, 돌바람님과 나, 푸하님은 구두 한켤레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잉크냄새님의 차를 따라 나가다가 평택역에서 내리시는 초여름님과 민들레님께 잠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보내고 우리들은 서울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함에 그냥 잠들었는데 이렇게 오늘, 2시간 남짓 어제를 정리하다보니 빚진 기분이 든다. 내 머리속에서 흘러넘치는 이 감정의 물결과 평택을 보고 느낀 것이 어찌 내가 만들어 낸 것이랴! 평택 주민분들과 거기서 숙식을 하면서 주민들과 생활하고 계신 활동가 분들, 젊은 혈기로 못자리를 만들고 흙을 돋우면서도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던 농활대들, 그리고, 돌바람님과 어제 함께 해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미흡한 이 글로서나마 감사함을 표시하고 싶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6-03-19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고생고생...
오늘 저녁 뉴스에서는 인권위 2명이 구속되고 가수 정태춘씨를 비롯한 여러 명이
불구속하기로 했다는 개떡같은 뉴스가.

잉크냄새 2006-03-1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택 대추리의 봄밤과 그곳에 모였던 많은 분들의 시선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참, 그날 별자리는 봄밤이 아닌 겨울밤의 별자리였답니다. 아직 그곳에는 봄이 오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딸기 2006-03-2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했네... 미안. 함께 하지 못해서.

돌바람 2006-03-2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퍼가요. 퍼가요.^^*

푸하 2006-03-2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후기에요..... 힘들으셨죠? 저도 후기를 써야하는데.... 이렇듯 잘 쓰시다니...^^; 안써도 될듯.. ㅎㅎ

클레어 2006-03-2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안고생안고생안고생... ^^ 장작불 고구마도 얻어먹고 별도 보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곳분들의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어요. 개떡같은 뉴스가 언제쯤 찰떡같이 될 수 있을란지...쩝~

잉크냄새님/ 아직 그곳에는 봄이 오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씀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도 경계할 수 있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적 군사기지로 평택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우리가 맛보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한시적일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깨어질 지 모르는 유리벽과 같은 평화를 봄이라 부를 수 없겠지요. "날씨가 따뜻하니 식민지인지 모르겠지? " 라고 했던 어떤 이의 씨니컬한 말이 떠오르네요..

바람구두님/ 뭐~ 딱히 해드리고 온 것이 없어서 그곳에서 상주하며 고생하시는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지요. 숙제만 가득 얻어온 느낌입니다.

딸기언니/ 딸기언니가 그곳 상황을 보았으면 더 생생한 문체로 정리를 해주셨을텐데..란 생각에 아쉽기는 했지만 다음 기회가 있겠지요. 이 평택문제는 FTA부터 시작해서 동북아 안보까지 복잡다단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땅위에는 약한 감자줄기만 보이는데 땅 속에는 주렁주렁 감자들이 매달려 있듯 말이지요.

돌바람님/ 퍼가주시면 영광이지요. ^^ 가서 무슨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오겠다는 무대뽀 정신으로 평택에 갔기 때문에 제 글은 감상투성이 이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얻고 왔습니다.

푸하님/ 안쓰시면 삐집니다. 하하~^^ 남의 말이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자기 가슴 속에서 생겨나는 말로 정리하지 않으면 제 것이 되기 어렵답니다. 예전, 저도 선배들의 고매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내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던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결국 그것은 앵무새가 뜻도 모르고 지껄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말과 글은 자신의 힘으로 두드리고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푸하 2006-03-2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고 싶은게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불편한 심기는 풀어야 합니다. 담부터 그럴께요....^^; 에오스님 내일 시간되시면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838577 오세요... 좋은 책이고 사람들도 좋은 사람입니다. 새만금에 일요일날 갔었는데 어느 멋진 수녀님이 단상에서 말씀을 하셨어요 "의인 10명이 있으면 세상은 그래도 존재한다.'(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네요) 참 작한 분들이 오실꺼에요.^^;

클레어 2006-03-21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모임인 거 같군요. 그런데, 내일은 해야할 일들이 있어서 어려울 듯 합니다.
푸하님께서 모임에 참석하시게 된다면 후기를 남겨주실 수 있을런지요. 참여했던 사람이 가장 그 분위기를 잘 말할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