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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바
키란 데사이 지음, 원재길 옮김 / 이레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

 

며칠 전 '온스타일'이라는 케이블 티브이를 시청하게 되었다. 패션과 관련된 프로그램이었고, 이승연이 게스트와 함께 나와서 요즘 계절에 유행이 될만한 아이템을 쇼핑하는 프로였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이승연이 게스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 전세계적으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한국의 동대문 시장과 인도의 실리콘 벨리라지요? 멋스러운 아이템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동대문 시장에서 그럼 몇 가지 소품을 구입해 보도록 할까요?"


인도의 실리콘 벨리가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인도가 정보 기술및 소프트 웨어 산업에서 높은 수준을 차지 하고 있다는 사실, 인도정부가 발벗고 나서서 인터넷 보급율을 올리기 위해 저가 PC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언젠가 스쳐 지나가듯 봤던  기억이 나면서 역동적으로 산업화, 근대화 되고 있는 인도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와 같이 정부 주도로 산업화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 인도는 여전히 카스트의 신분제도에 묶여 계층에 따라 다른 부와 교육, 일자리가 주어지고 있는 불평등, 반민주적인 나라라는 사실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마치 낡은 기둥과 서까래를 고려하지 않고 건물 층수를 무리하게 올리는 건물처럼 불안요소가 도처에서 풍기는 인도.


인도의 한 젊은이가 '구아바'라는 소설을 써서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고 한다. 27세에 최연소 '부커상' 수상이라는 타이틀 또한 '구아바'라는 이 소설을 읽기도 전에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 '구아바'라는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소설은 '풍자소설'이다.  구아바 속 인물들의 정신없는 소동들을 읽고 있노라면 "낄낄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무 생각 없는 듯  살다가 어느 날 구아바 나무 위로 쪼르르 올라간  주인공 삼파드의 행동뿐 아니라 그런 아들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그의 아버지, 먹는 것에 삘~이 꼿혀서 온갖 동, 식물로 요리를 하고 그것을 아들에게 먹이려는 어머니, '누군가가 날 따라 다닌다.' 라고 말하며 허영에 들떠 꽃단장 한 채 시내 나들이를 하던 삼파드의 여동생이 아이스크림 장수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심지어 '시네마 몽키'라고 불리는 원숭이들이 술주정에다 인간들이랑 한판 싸움을 하는 것은 또 어떻구.. 각각의 인물들이 그만큼 생동감이 넘치고  재미가 있다. 거기다, 그 인물들이 나타내는 은유를 파악하게 되면 젊은 작가의 재기에 무릎을 딱 하고 치게 될 것이다. ' 어... 이 소설이 이런 뜻이었어? ' 라고 생각하면서.


1. 내이름은 '삼파드'


삼파드라는 이름은 '행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랜 가뭄 속에서 고통받던 마을에 삼파드가 태어나는 날, 비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 구호식량은 그의 앞날에 항상 행운이 있을 것 같은 확신을 주는 듯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경쟁하는 것이 싫어 언제나 성적은 바닥이었고 직장이었던 우체국에서는 빠릿빠릿 하지 못해 직장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하고 결국 직장 상사의 딸 결혼식에서 결혼식 준비나 얌전하게 돕지 못하고 혼자의 생각에 취해 옷을 사람들 앞에서 홀딱 벗으며 자유를 느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이름이 주는 아이러니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왜 삼파드는 이다지도 현재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리버리하고 멍청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다가 '삼파드'라는 이름대신에 '인도'라는 이름을 넣어 보았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 생활로 피폐해졌던 인도가 독립을 할 때만 해도 인도인들은 뭐든 다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과 함께 후발 후진국의 위치에서 세계 질서속에 참여하게 된 인도는 세상과 경쟁하기에는 사회적, 인적, 자본적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을 뿐 아니라  꿈을 꾸는 듯한 독특한 사색과 내적 충만을 위해 사는 인도인들의 삶의 방식은 서구의 이성적이고 합리성, 결과를 중요시 하는 잣대로 본다면  뒤떨어져 보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꼭 서구의 기준에 맞추어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래야만 행복해지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작가는 가졌던 것 같다. 인도의 은유로 삼파드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필연적으로 그를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의 틀 밖으로 나가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삼파드는 남들의 말에 순순히 따르며 사는 것이 자신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구아바 나무위의 삶에서 찾고자 한다.

 

삼파드의 위치 이동... 이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가 예언처럼 이야기 하는 것들도 이웃들의 편지에서 훔쳐본 내용이었으며 그의 지식도 별다를 것이 없이 삶 속에서 접했던 것을 말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상은 그를 ‘나무 위의 도사’라고 부르며 그를 추종하고 아버지는 삼파드에게 부드럽게 땅으로 돌아오라고 유혹하는 한편 그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어머니는 억누르고 있던 요리의 욕구를 마음껏 발휘하며 요리를 했다. 또한 그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여성상에 머무르고 있던 누이조차 사랑하는 남자에게 열정을 표현하며 애정공세를 보이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간다. 즉, 그가 억지로 세상의 틀을 따라가던 위치에서 벗어나자 마자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작가는 인도의 행운은 인도인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믿음은 실제로 삼파드처럼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으로 옮겼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음에 분명하다.

 

2. 삼파드와 '시네마 몽키'

소설속에서 '시네마 몽키'는 꽤나 중요한 비중으로 나온다. 그저 어슬렁 거리며 시내 극장 주변에서 관람객들이 던져주는 땅콩이나 음식물 부스러기를  먹던 그들이 삼파드가 구아바 나무로 자리를 이동하고 난 후 삼파드 주변에 모여들어 삼파드의 추종자 뿐 아니라 삼파드의 가족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모습은 당황스럽기 까지 하다.

 

인도가 자립의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자본과 산업화는 인도의 고위 관리들과 연합을 해서 삼파드 주변에서 말썽만 피워대는 그들을 구아바 숲 주변에서 쫓아내려는 계획을 꾸민다. 그럼 '시네마 몽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구아바 나무 위로 올라간 삼파드에게 공물로 많은 음식과 술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시네마 몽키들'은 삼파드 주변으로 몰려드는데, 삼파드는 그들을 쫓지 않고 함께 생활을 하면서 '몽키 도사'라는 명성을 떨치게 된다. 삼파드로 비유되는 인도가  인도의 자연과의 공존을 꿈꾸고 그 특유의 자연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를 통해 명성을 얻는다 하여도  개발 도상국 특유의 개발 의지와 인도의 삶 전체를 뒷받침 해주는 자연과의 공존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소설 속에서는 몽키들을 진압하려는 군인들에게 쫓겨 몽키들은 다른 숲으로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 중에서 삼파드는 결코 내려오려고 하지 않던 구아바 나무에서 떨어져 어머니가 삼파드를 살찌우기 위해 특별 요리를 준비하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단지'에 빠져 죽게 된다.

 

이쯤되면 작가가 현 인도의 산업화와 개발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비판적이고 비관적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가? '행운'이라는 이름의 삼파드를 자연탄압의 상황에서, 그를 살찌우기 위해 끓여대던 솥단지에 빠뜨려 죽임으로서 인도의 행운은 자연을 고려하지 않고 산업화가 진행될 때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를 강력하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3. 그 외 에피소드..

작가는 인도의 결혼문화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성 작가인만큼 인도의 불합리한 중매문화에 대해서 할말이 많았나 보다. 삼파드의 영향을 받아 열정적으로 '헝그리 홉'에게 두 사람만의 사랑을 갈구하는 삼파드의 여동생은 아이스크림 장수인 '헝그리 홉'에게 사랑의 도피여행을 제안한다. 그러나, '헝그리 홉'은 도피여행 전날,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그에게 전통적인 미녀와 선을 주선하게 된다. 전통적인 미녀와의 중매를 통한 안정된 결혼과 삼파드 여동생과의 사랑의 도피 중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희극적으로 그려지는데 전통적인 결혼관과 연애를 통한 결혼이 충돌하고 있는 인도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에필로그...

 

풍자소설, 희극의 묘미는 아마도 한참 웃은 다음 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송곳에'정곡을 찔렸군!'하는 생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구아바 나무에 올라간 삼파드처럼 세계질서라 불리는 숨막히는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꿈꾸는 나라에서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기를 바라는 젊은 인도 작가의 입심을 즐겁게 읽으며 재기발랄하고 젊은 인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인도와는 다른 입장에 있지만 우리또한 같은 고민을 짊어지고 있지 않은가?

남들이 만들어낸 틀 속에서 숨막혀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세상의 질서를 새로 만들어 가길  꿈을 꾸는 자들에게 노래 한 곡을 선사하고자 한다.

 

"얘들아~ 애들아~ 오늘도 밤샘이다. 딱 걸렸다. 코피가 대박이네~ . "

 (-_-)/~(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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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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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지영씨의 이 소설은 작년에 나오자 마자 샀었다. 단숨에 읽어버렸고  이야기 중 한 단어에 빠져 들었다. 

진짜 .... 이 진짜라는  단어가 주는 아이러니함이라니... 허구를 쓴 소설 속에서 '진짜'라는 단어가 주는 낯설음도 나름대로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거기다 원하지 않았던 삶의 무게를 그저 연명해 주는 역할을 했었고, 두 인물을 철저히  만나지 못하게 할 뻔 했던 껍데기가 "우리, 진짜 이야기를 할래요?"라는 말로 깨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시원한 벽허뭄의 과정 뒤 두 사람의 소통을 이끌어낸 '진짜'라는 이 단어가 너무 좋았었다.

2. 작년 이맘 때는 왠일인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힘들었었다. 물론 나도 끙끙 거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기대고 싶은 어깨가 무척이나 필요했었는데 모두다 어깨를 필요로 하고 있으니 "어깨 좀 빌려줘"라는 말이 더욱 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밤마다 걸려오는 전화통을 붙잡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였다. 개운한 아침은 개뿔~ 매일매일  다크써클만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 때 한 사람에게 이 책을 주었었다. 느닷없는 책선물에 상대편은 놀라는 듯 보였으나 나중에 전화로 "노력하겠다."라는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어떤 노력을 했는지 현재의 나는 알지 못한다. 그냥 '나대신 어깨를 빌려주는 역할을 이 책이 했었구나.' 라고 느낄 뿐...

그래서, 지금 나에게 이 책은 없다.

3.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 그건 아마도 환경과 과거의 시간들에 대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혹 이해는 못한다 하더라도 공감을 할 수 있도록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소통의 순간' 이리라... 그 순간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와  타이밍이 필요하다.  아무한테나, 혹은 아무때나 "우리, 진짜 이야기를 할래요?" 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때문에 우리들이 행복해지는 순간은 무척 드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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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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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긴 추석 연휴가 지나가고 있다. 아쉽다. 이번 추석 연휴동안 읽은 책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였다.  동기는 단순했다.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악질 상사로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예고편을 보고 나서였다. 소박하기 이를 때 없는(이런 선입견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때문일 것이다.) 메릴 스트립이 어떻게 변신하고 나올까? 가 궁금해서 책을 사서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기차 속에서 내내 읽었다.

책 속에는 대학을 갓 졸업한 패션 전문지 편집장의 신입 어시스트 '앤드리아'의 좌충우돌 '회사에서 살아남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만명 정도의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라는 '런웨이' 패션 잡지로 표현되는 거대한 직장 조직 체계..그리고, 그 조직 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란다'라는 이름의 편집장.  '런웨이'잡지속 광고와 관련된 명품들(신발, 의상, 악세서리,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과 관련된 협찬업체들에도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유명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이 여자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아마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숭배와 부러움의 시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가까이 들여다 본다면....

한마디로 아랫사람에게는 '내가 서열이 위야..'라는 것을 나타내듯 안하무인에다 변덕스럽기 그지없고,  자기보다 위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평판을 발판삼아 친분을 쌓고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 내지만 개인적인 고민이나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는 어시스트의 시선으로 쓰여진 소설이니 만큼 이 소설에서는 '미란다'의 터무니 없는 요구와 변덕이 잘 묘사가 되어 있으며 독사같은 상사 밑에서 찍소리 못하고 일을 하면서 거대한 '런웨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잘 묘사가 되어 있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그럼 왜 그들은 악마와 같은 '미란다'가 호령하는 '런웨이' 속의 지옥같은 나날들을 참아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책 속에서도 여러 번 강조가 되고 있지만 백만명 정도의 여성들이 선망하고 있는 직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내가 해고 되더라도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식의 불안감과 그녀의 변덕스러운 명령에도  그 직장에서 1년만 버티면 1단계 업그레이드된 자리로 오를 수 있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두가지 조건은 어떤 누구에게도 쉽게 직장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족쇄일 것이다. 덕분에 '미란다'의 모습은 아무런 제재없이 일사천리로 통과가 되고 직장 속에서는 에밀리로 대변되는 일반적인 직장인의 대화 형태 '런웨이식 돌려 말하기- 상사인 미란다의 욕은 하되 욕을 한 끝에는 다시 미란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식의 말이 항상 덧붙는 것-' 가 생겨나게 되었다. 

직장 속 위계질서는 이해를 하지만 서로 소통이 없이 일방적인 명령과 꾸짖음만 있고 자신의 불만이 윗선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빙~ 돌려 말하는 대화 형식의 답답함,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직장 속의 불안감은 현대 직장인이 느끼는 것이라 안타까웠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조직체계속  '미란다'에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쁜년'이라고 외쳐버려 백만명 정도의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장 '런웨이' 신입에서 선임 어시스트로 업그레이드가 1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을 모두 박차고 나온 '앤드리아'의 반동적인 모습은 청량제와 같았다.

명품으로 휘감아야 회사의 격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자리에서 벗어난 앤드리아는 같은 경험이 있는 잡지사의 편집장의 전화를 받고는 자신이 원하던 글을 쓸 수 있는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된다. 역시 끝은 시작이랑 통하는 말이며 길의 끝에는 또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미란다와 앤드리아처럼 견고한 뉴욕 사회조직 속의 정점과 거기에 갓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초짜라는 극단에 있는 인물들과는 달리 중간에 끼어서 에밀리와 같이 적응하려고 무척 애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요즘, '명품적 삶'이 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추석 연휴동안에 TV문학관에서 해주었던 '등신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인간적인 고통을 그대로 품어안고 있으나 다른 이들에게 평안을 주는 부처의 모습을 가지게 된 인간체의 모습....어렸을 때는 몰랐기 때문이라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명품적 삶'으로 가는 족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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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6-10-0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알 쉬었고 내일부터는 새보금자리에 일찍 가야한답니다. :)
 
고슴도치 아이 그림이 있는 책방 1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보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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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젼 드라마 중에 '이 죽일 놈의 사랑'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비'라는 한류열풍의 주인공을 내세워 만든 드라마였는데 '비'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드라마는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이목을 사로잡았다. 물론 '비'가 문제였다. 그가 나오는 드라마는 그의 전작인 '풀하우스'나 '상두야, 학교가자~'등에서 이미 어느정도 연기력을 인정받았기에 그의 또다른 변신이 기대된 것이 사실이었다.

이 드라마속에서 '비'는 '강복구'라는 결손가정의 양아치 3류인생을 연기한다. 제 식구 건사 못하고 술에 절어 폭력만 일삼는 남편을 두고 마누라는 도망가고 딸려있는 아들 형제에게 세상의 분노를 퍼붓고 싸움질을 거는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습관화된 폭력'을 받는 그의 아들들. 보통 이론서 속에서는 '학습된 가정폭력'에 대한 통계를 들먹이며 그들의 미래또한 또다른 가정폭력의 씨앗을 품고 있는 시한폭탄처럼 이야기를 하되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사회제도의 필요를 이제서야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아동학대에 대한 전화고발 시스템 '1391' 이 등장하고 가정내 폭력문제가 사회계급의 이분화와 관계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세계화에 발맞추어 급격하게 해체되는 가정과 사회계급이 상류와 하류로 이분되는 한국내에 수많은 결손가정과 소년, 소녀 가장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푼돈이나마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손길도 알게 모르게 늘어가고 있으나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모두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자란다. 서로의 작은 어깨를 맞대어 온기를 얻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자란다. 그러나, 그들을 살펴봐주는 큰 손의 따스함을, 큰 어깨의 든든함을 느껴보지 못한 아이들은 추위에 오그라든 작은 손처럼 펴지지 않는 그들의 속내를 내보이는 대신 세상의 규칙에 눈을 뜨게 된다. 먹거나 먹히거나.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자면, '강복구'는 그나마 자신을 잡아주던 좁고 따스한 어깨인 형,'강민구'가 최고의 여배우인 '차은석'의 결혼발표와 함께 식물인간이 되는 일을 겪게 된다. 이미 세상의 밑바닥을 굴렀으니 더이상의 밑바닥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아버지 같이는 되지 말라'고 충고하던 귀찮은 형이 더이상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별 영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드라마 내내 슬플 때 울지 못하는, 울고 싶을 때 사탕을 빨고 있거나 오히려 웃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강복구'의 분열된 정신세계는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없어 울음을 잃어버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 껑충 커버린 소년의 모습이다. 이 소년은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간 세상에 대한 분노를 폭력으로, 다른 이의 멸망으로 앙갚음을 하려 한다. 이 소년에게 세상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들이 좀 더 일찍 있었다면, 그리고, 주변에 가까이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듯,  '강민구'라는 따스한 기억을 찾아 모여든 '강복구'와 '차은석'(부연설명을 좀 하자면 어려운 환경을 거쳐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으되 가족들은 그녀의 자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치부에 그녀를 이용할 뿐 그녀의 정서적 안정을 주는 바탕이 되지는 못했다.)이라는 두 남녀의 사랑은 어쩌면 예정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따스한 기억이 세상의 틈바구니 속에서 홀대받아 무너질 때 그들의 스러짐도 예정된 것처럼.

이들의 모습에서 난 고슴도치 아이의 미래를 보았다.  이 책은 '입양'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 보인다. 자녀에 대해 통념적인 혈연중시의 풍조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들어갈 많은 시간과 돈에 대해서는 '입양'이라는 해결책 뒤에도 그 어려운 결정을 한 각각의 가정들에게 그 책임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고슴도치 아이들을 안아줄 수많은 가슴들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예전 동네 분들이 동네 아이들을 키우듯 각 마을마다 사랑의 삼각끈처럼 아이들을 책임지고 품어줄 수 있는 시스템 계발은 진정 어려운 것일까? 예전에는 가능했는데 지금은 할 수 없다면 지금은 예전보다 더 좋은 세상일까?

글을 쓰다 흥분했다.  책 내용은 배가 아닌 가슴이 아파 서로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게 되고 부모로서, 자녀로서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부모가 되고 싶으나 부모가 될 수 없는 사람들, 누군가의 자녀가 되어 사랑받고 싶으나 그럴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인연은 그들의 마음속 결핍으로 무채색으로만 느껴졌던 세상에서 다른 색채와 맛을 찾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중요한 기회이다.

그러나, 그런 인연맺음이 계속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가족이었던 사람들이 해체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또한 중요한 일은 아닌지...

정부가 최근 세째자녀들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웠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아이들이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정책은? 하고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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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1-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텔레비전 뉴스 화면 앞에 대고 외치는 소립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만들란 말이야!"
메아리입니다만, 근데요. 남의 아이 께름직해서 어떻게 키우냐는 부모,
이외로 많답니다. 이게 우리들 자화상이죠.
여하튼, 에오스님! 알라딘이 '일반 수준'이라도 이곳에서 님을 쭈욱 만나고 싶어요.
제 마음 알죠?^^

클레어 2006-01-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왔더니 좋아하는 파란여우님이 도배를 해주셨군요. 님의 따스한 손길이 여기저기 묻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 제가 요즘 여력 부족으로 서재 관리에 소홀했음에도 찾아와 주시고 안부 물어주시다니...여우님을 봐서라도 힘을 좀 내야겠군요. 불끈~ ^^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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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다보면 가끔 작가의 거리와 내 자신의 거리를 놓치고 헤맬 때가 있다.  대부분의 이유는 내가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책들도 있다. 그러나, 그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방법론을 제시받거나 제시하면 그 뿐인 책들은 별로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느낌 좋고 바라보기는 좋으나 항상 같이 지내기는 뭔가 어색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라는 책을 며칠 전에 구입하고  통독을 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기 때문에 '재미있겠군..' 하고 나름 생각은 했었다. 소개팅 나가기 전에 '재미있는 녀석이래...'라는 말을 듣고 나가는 것은 얼마나 편안함을 주는가? 어색한 만남의 시간을 즐겁게 때울 수도 있고 잘만 하면 괜찮은 녀석 하나 건져서 시베리아 벌판과도 같이 시려운 옆구리에 녀석을 장착하여 앞으로 다가올 빙하기 이전이지만  항상 혹독하게 느껴지는 추위도 막을 수도 있고....라는 막연한 상상또한 그 만남 이전의 시간마져도 감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10편의 단편소설의 묶음...을 하나하나 읽으며 그의 의도대로 그의 말장난을 따라가기도 하고 그가 부비트랩처럼 심어놓은 웃음거리에 알면서도 홀랑 빠져서 낄낄거리기도 했다.  ' 녀석..오..괜찮은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소개팅으로 치자면 '우유'가 아니라 '쥬스'를 시켜야 할 타임! 호감을 느낀만큼 녀석의 속내를 훑는 더듬이는 더욱 뻗어나와 책 속 여기저기를 헤맨다.

'넌 어떤 녀석이냐?'

박민규는 말한다.

난 냉장고와 대화하는 사람. 냉장고 속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선별하여 집어넣는 사람. 나는 자신의 즐거움을 아는 너구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 나는 내 삶의 산수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 나는 지구를 떠나 지구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 나는 세상의 삼류들이 꿈을 향해 망명하는 도중에 잠시 머무는, 오리배의 중간 기착지인 유원지를 관리하는 사람, 나는 변비와 사투를 하면서 아무도 신경 써 주지는 않지만, 그 변비가 후기 산업사회로 가면서 만들어진 병임을 분석하는 사람,  어린 시절엔 과학잡지에서 봤던 15m 대왕오징어를 알기 위해 선생님께 물어볼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아이였고, 끈임없이 원폭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대왕오징어와 같은 재앙이 언제든 일어날 거라 믿는 사람, 어느날 불시에 당한 헤드락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력을 키우고 다른 이에게 내 힘을 시험해 보며(좀 비열하지? 그래도 돈으로 그들에게 보상을 했다구..) 끝내 맞장을 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헤드락을 걸어보는 사람, 관짝만한 고시원에 옹송거리며 누워 그곳을 벗어날 날을 기다리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던 사람...

작가의 수다에 빠져들면 들수록 그의 실체가 드러났다.  한편 한편이 그의 지인에게 선물로 주는 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수다에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웃음으로, 얼렁뚱땅 이야기 하기로 자신의 삶을 포장하고 있으나 그의 웃음 너머에선 '날 좀 봐주겠니?' 를 서툴게 표현하고 있는 한 청년이 보였다. 예전 유재하의 음악(오늘밤이었던가?? )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이 다시 샘솟았다. '왜 유재하는 그렇게나 쓸쓸하고 슬픈 가사에다  경쾌한 곡을 붙여 노래 불렀던가?'  라는.  감정의 균형. 나는 그것을 감정의 균형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어졌다. 이 말은 '울면 지는거다.' 라는 말 때문에 우리들의 내부에 언제부터인지 자리잡게 된 기능이 아닌가 한다. 신세한탄을 한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 것이 없는 세상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안간힘. 그리고, 이렇게 과장된 웃음으로 '난 괜찮아.'를 말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눈물'을 본 것은 나의 착각일까?

다시금 하나하나 차분히 읽어가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난 이미 그에게 빠져든 것이다.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다시 차분한 그의 말을 찾을 수 있었다.

잠시 인용하자면,

그것이 카스테라였다. 얘기를 전하자면, 가가린은 카스테라를 타고 비로소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며, 지미 핸드릭스는 카스테라에 불을 붙여 그 소리로 한 장의 앨범을 만들었고, 이백(李白)은 물에 떠 있는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주우려다 삶을 마감했고, 제인 구달은 침팬지와 인간을 연결하는 카스테라 카누를 만들었으며, 마더 테레사는 스스로 거대한 카스테라의 산(山)이 되었다 하며, 이를테면 체 게바라는 누구보다도 카스테라의 등분에 관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가게에서 팔잖아.

팔지 않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살 수 없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예전에 내가 생각했듯이. 결국 나는, 이 시시한 논리를 시시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해 빛이 나올 때까지- 하다못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

나는 결국, 모두의 도움으로 살아온 인간이다. 그 모두에게, 감사한다.

카스테라. 그가 진짜로 말하고 싶어하던 것을 드디어 찾아냈다. 그리고, 그가 '눈물'을 뒤로 감춘채 웃음으로 이야기 하는 진짜 이유도 찾아냈다.

현재의 삶 속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물질, 물질, 물질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느끼게 되는 헛헛함..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카스테라빵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많은 위인들은 다른 이들이 이루어 놓은 많은 노력과 눈물이 결실이 된 것들을 흡수하고 마치 예수처럼 스스로 많은 이들의 양식이 되어 살아갈 희망을 주었던 이들이다. 그는 그 또한 많은 이들이 그에게 준 따뜻한 관심과 도움을 통해(그의 식처럼 말하자면 다른 이들이 그에게 식을까봐 꽁꽁 싸서 넘겨준 카스테라를 먹으며) 살아왔음을 고백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카스테라'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려준 것이다.

울면서 음식을 먹으면 목이 메인다지?

그는 자신이 만든 따뜻한 '카스테라'를 함께 나누고 싶어했고, 그가 넘겨주는 '카스테라'를 먹으며  다른 이들이 목 메이지 않도록, 함께 웃으며 먹을 수 있도록 너스레를 떨어대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가 더욱 좋아졌다.

'카스테라'를 덮으며 나도 그에게 인사를 했다.

"당신의 따스한 '카스테라'... 잘 먹었어요. 난 당신에게 무엇으로 돌려주어야 할까요?"

흐~ 이만하면 작가와 독자의 사이가 제대로 무너진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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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19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즐거움을 아는 너구리...
자신의 즐거움을 아는 여우가 되고 싶어요.아참, 전, 에코의 칸트와 오리너구리를
읽고 있는데 머리가 뱅뱅 돌 지경이라서 중도에 책을 덮을 지경입니다.
카스테라는 편하고 달적지근하고 부드럽겠죠?^^

클레어 2005-08-1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트와 오리너구리는 왜 여우님을 괴롭히고 있데요? (한대 패줄까부다..흐흐~) 이 '카스테라'의 맛이 꽤 괜찮았습니다. 아직 젊은 작가가 쓴 것이라 조금 더 보완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작가 스스로가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겠지요. 독자인 저로서는 기대할만한 작가 하나를 만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여우님...여우님의 즐거움은 뭘까? 란 생각을 해봤어요. 글을 쓸 때 즐거우실까? 이웃들과 수다 떨 때 즐거우실까? 흠내골 여기저기를 탐험하며 알려지지 않은 이쁜 곳을 찾아내는 발견자의 기쁨을 맛보며 즐거워 하실까?

흐흐~ 난 왜 이렇게 여우님에게 관심이 많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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