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 이제 베짱이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한경애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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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내가 살아 있는 매 순간이며 삶 그 자체이다. 우리의 삶이 무엇도 박탈당하지 않고 그 자체로 충실한 현재일 수는 없을까? - P. 45

  나는 여전히 연속적인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새에 불과하다. 날고 싶은 꿈을 꾸었지만 비상하지 못한 채 날개만 파닥이며 새장 안을 떠돌고 있다. 창살에 부딪히는 순간 돌파구를 마련하기 보다는 왜 거기에 창살이 있는지 생각에 잠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보다 발까지 가는 길은 훨씬 더 멀고도 험하다. ‘모든 이데올로기의 종점은 행동’이라는 말했던 J. 네루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있지만 현실 속에서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분단위로 시간을 가른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상황이 이끄는 대로 움직일 때가 많다. 내 삶을 그 자체로 즐기거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다는 꿈을 버린 지는 너무도 오래 되었다. 잠을 줄이고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말자고 다짐하는 일이 서글프기도 하다. 책 속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는 없지만 토막 난 모든 시간들은 책 속에 몰입하며 지낸다. 나는 과연 내 삶의 주인인가?

  충실한 현재를 즐기고 있다는 믿음은 자기 최면이거나 미래를 위해 순간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겠다. 인생이 놀이가 되는 꿈을 꾸는 사람은 많지 않다. ‘놀이’라는 개념이 ‘일’의 대척점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생각해 봐야 한다. 한경애의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는 그렇지 않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패턴을 반성한다. 경쟁과 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우리의 인생을 되돌려 달라고 외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라는 시리즈 이름이 도발적이다. 첫 번째 책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서 고미숙이 힘주어 말했던 참된 공부법은 바로 ‘놀이’라는 개념과 상통한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고 자신의 이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놀이의 달인’을 내세운 것이 ‘공부의 달인’과 반대인 것 같지만 인생에 대한 진짜 공부가 놀이가 되는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어린 시절 ‘개미와 베짱이’ 우화로 세뇌되기 시작한 우리의 믿음은 단선적이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공부)해야 한다. 게으름은 죄악이다. 쉬지 말고, 놀지 말고 열심히 해라.’ 이러한 맹목적인 강요와 믿음은 여전히 계속된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 대한 목적과 방향이 없으니 삶의 패러다임을 바꿀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가진 자가 행복하다는 말에 반론이 있을 수 없다. 과연 그런가, 우리는 진짜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은가.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을 제시해서 이렇게 살면 된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반성과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당위는 그 안에서 찾아지지 않을까 싶다.

  두 살부터 영어를 시작하고 영어 유치원에서 경쟁력을 키워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각종 경시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늦게까지 문제집과 씨름하다가 중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특목고에 올인 한다. 입시지옥은 긴 설명이 필요 없고 정답이 정해진 논술을 위해 책은 수단이 되었고 대학은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재테크와 주식투자 동아리에서 실전 감각을 키워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전략을 세우고 청약 점수를 계산하며 아이가 생기면 내가 살아왔고 아이가 살아가게 될 미래의 경쟁력을 위해 또 다시 무한 경쟁이 반복된다. 늙어죽기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계산해 보라는 TV 광고의 압박에 시달리고 노후 준비를 하지 않는 삶은 끔찍하기만 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과연 행복한가?

  일반적인 삶의 패턴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는 없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들 인생의 자화상이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저자는 완강히 거부한다. 축제와 놀이로 가득한 인생은 불가능한가? 현재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소극적인 낙관주의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계란과 닭의 관계처럼 교육과 사회 구조의 문제는 단순화 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거기에 한미 FTA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가중되고 있다. 그 와중에 한바탕 즐기고 놀아보자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모두 파괴되고 모든 것이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버린 이곳에서, 아무도 나의 생존과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공포는 끝없는 노동을 강요한다. 과거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사람들의 삶은 훨씬 바쁘고 힘들어졌으며 노동은 고통스럽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행복은 끝없이 연기되고, 미래에 대한 공포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 P. 55 

  노동과 일이 어떻게 다른지, 놀이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들이 놀이의 달인이었는지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인 저자는 교육과 연관시켜 이 문제를 논하고 있지는 않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놀아본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있다. <모더니티의 지층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만만치 않은 내공과 편안한 글쓰기는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짧은 분량임에도 그림과 사진 등 다양한 예술 작품과 어울어져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고 책의 내용을 풍성하게 꾸며주고 있다.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들이 왜 필요한지, 인생역전이 과연 인문학을 통해 가능하지 의아하겠지만 새로운 시각과 트인 생각은 사람들과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정답도 없고,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대신 기쁨을 창조하라. 우리의 욕망, 우리의 성장, 우리의 실천, 우리의 놀이가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고 외치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한 번쯤 귀 기울여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싶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갖는다면 현실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그러나 잊지 말자. 즐거움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루한 세계를 돌파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함께 놀 친구들, 힘센 상상력이 필요하다. - P. 163

07102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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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7:04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멜기세덱 2007-12-1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sceptic 2007-12-17 22:15   좋아요 0 | URL
저보다 님에게 축하를 보내야 할 듯 한데요...책값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