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년 후배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안경 쓴 똘똘한 얼굴로 누나를 부르던 후배였는데... 열심히 해서 고시도 패스하고 중앙 부처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기도 했었고. 그 어느날인가 연락이 닿아 이야기도 나누었었고. 그냥 그렇게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죽었다고 하니 이건 뭐...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그냥 내 주위에서 벌어진 일 맞나 싶은 아뜩함만.

 

위암이라고 하고, 선고받았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고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 쉬고 있었는데 그냥 덧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나는 아픈 줄도 몰랐고 그러니까 아무리 같은 시간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일지라도 잘 살겠지 라는 믿음만 있지 실제 어떻게 사는 지는 정말 알 수 없는 거로구나 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장례식장이 지방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평일에 이동하는 게 부담이기도 했지만, 사실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가서 그 아이의 영정사진을 보고 파도처럼 밀려올 그 회한과 슬픔과 허무함을 감당할 자신이, 지금의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가는 편에 조의금만 맡기고 그냥 집에 가 조용히 고인을 기억해보았다.

 

뭔가 함께 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억지로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2년 후배들 우루루 몰려 있는 사이에서 난 선배랍시고 뭐라뭐라 했을 것이고 그렇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만 함께 했었던 모양이다. 특별한 이벤트를 함께 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라는 씁쓸함도 있다. 그래서 더 서글프게 느껴진다면 내가 너무 센치한 것일까.

 

한 사람이 세상에 있었고 열심히 살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았고 그렇게 매일을 평범하게 지내다가 어느날 날벼락같은 선고에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야 했다는 것이, 소름끼치는 공포로 다가온다. 사는 건 뭘까. 그냥 너무 우스운 거 아닐까.

 

올해 여러가지 안 좋은 일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많이 아프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마음을 크게 다치고... 그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서의 나는 어쩌면, 참 안전한 지역에 있는 것일테고, 이 안전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허약하고 부서지기 쉬운가를 그럴 때마다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이 고맙다. 살아 있음에, 내 주위 사람들이 건강함에... 구태여 큰 욕심 따위 떠오르지 않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 앞에서 약자가 되고 그래서 비루한 일상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소소한 감사로 매일을 포장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겠지. 그렇다.. 어쩌면 세상이 끝내는 공평한 것은, 누구나 죽는다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일테고, 그 죽음은 잘났다고 안 오고 건강하다고 늦게 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문득, 뜻없이 밀어닥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하나 빠짐없이 죽음 앞에 약자일 수밖에 없으리라. 참... 심란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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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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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들에 대해, 그리고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이 상실되어 가는 타자성에 대해 걸쭉한 언어들로 잘 표현해낸 소설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글을 읽으면 마음이 힘들어진다. 자꾸만 멀리 하고 싶어진다. 지금 사는 것도 팍팍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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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뜬 <속사정쌀롱>의 구구절절한 내용들을 읽어보니 (이게 다 신해철이 나왔기 때문이지만.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보는 내용이건만...) 이런 글이 있었다.

 

신해철은 "아내가 유머를 재밌어하냐?"는 윤종신의 질문에 “결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내가 잘 웃길 수 있는 여자, 내가 잘 웃어주는 여자였다”며 “내가 쉽게 행복함을 줄 수 있는 여자.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며 아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해서... 여기 옮겨보았다. 나도 누군가와 사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유머코드' 이다. 내가 한 말이 재밌는 사람, 그 사람이 한 말이 재밌는 나.. 가 가장 훌륭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재밌어도 나는 하나도 안 웃기면 그 사람이랑 어떻게 평생을 함께 하겠으며 내가 열심히 나불나불 얘기하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입도 안 아프나.." 라고 하는 사람이랑 무슨 대화와 소통을 하겠는가.

 

내가 하는 말이 다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국엔 남는 것 같다. 친구든 애인이든. 특히 애인이라면 정말 필요한 요건 아닐까... 신해철의 부인은 이런 사람 하늘나라로 보내고 어떻게 살까. 다시한번 마음이 짠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추신) 서점에 가보니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다. 사람의 죽음이 남기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 되새김질과 이런 상업적 피드백인가 싶어서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신해철의 영향력(?) 이랄까 하는 것이 컸었다는 반증인 듯도 하여 또.. 마음이 아팠다. 그저 가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울림이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이런 멋진 사람의 시신이 오늘 부검되었고.. 제발 진실이 밝혀지길. 부검까지 했는데 그냥 그렇게 넘어가지 않길 기원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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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정글같은 회사에서 열심히(?) 지내다가 토요일은 내가 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거 찾아 다니고 만날 사람 만난다. 일요일쯤 되면 사실 일주일간 기진맥진하여 몸살기운이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 밖에 나가기 힘든 몸상태가 되곤 한다. 오늘은 특히나... 이전에 했던 약속마저 잠시 뒤로 미루고 집에서 쉬어야 했다. 온종일 쉬니 이제 좀 낫다. 무엇보다 이 편안하고 차분한 시간들이 나를 좀더 건강하게 하는 모양이다.

 

강릉 테라로사에서 사온 과테말라 커피를 꺼내서 커피머신에 적절한 물을 붓고 나무 스푼으로 몇 숟가락 톡톡 거름종이에 커피가루를 털어낸 후 시작 버튼을 누르면 금새 브라운색 커피물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반복적인 리듬에 넋을 잃고 쳐다보며 잠시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담지 않곤 한다. 하얀 백지상태가 되는 것을 느낀다. 정신을 차려 내 전용 머그에 커피를 부을 땐 그 퍼지는 커피 내음으로 행복함에 젖어본다. 그렇게 머그잔 가득 커피를 받아서 방에 들어와 폭신한 소파에 앉아 읽던 책을 펼친다. 몸살기운으로 나른나른해진 몸에 커피와 책을 벗하니 뭔가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다. 이런 게 신선놀음인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읽었다. 헤르타 뮐러의 동명 소설은 아직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사실 그 전에 읽은 줌파 라히리의 책들은 내겐 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퓰리쳐상도 탔고 (상이 중요하다는 건 아니고... 대체로 퓰리쳐상을 탄 작품들은 내게 재미는 주었었다) 다른 분들도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작가인데 어쩐지 내 정서와는 좀 달랐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정말 망설였는데, 어제 밤 문득 끌려서 펼쳐 보기 시작했다. 무려 550페이지 가량의 장대한 소설이다. 다 보는 데 하루의 2/3는 쓴 것 같다.

 

다른 책들보다는 나았다. 역시나 나의 맘에 딸깍 맞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래도 이전에 읽은 책들보다는 훨씬 마음에 와닿았다. 수바시와 우다얀이라는 형제와 그들의 아내인 가우리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하여 어렸을 때부터 자라기까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각자의 인생을 살게되고 아이를 낳고 손녀를 보고.. 하는 거의 4대에 걸친 일대기 속에 인도의 역사와 정치를 담고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가족에 대한 상실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그 속에서 서로의 섬세한 생각의 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줌파 라히리는 원래 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있는 작가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역사 속에서의 개인에 좀더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의 역사이든 사람의 역사이든, 긴긴 세월동안 변화해가는 그 모습들을 담아가는 이야기에 많이 약하다. 특히, 한 사람이 어린 시절에서 젊은 시절로 나이든 시절로 그리고 이제 어딜 가도 두 번은 못 오리라 예감하는 노년에까지 이르는 짧지만 긴 인생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린 소설엔 아릿함을 매번 느낀다. 개인의 인생이 역사의 큰 톱니바퀴 속에서 마모되고 지쳐가고 희생되어 가는 과정은 그 개인에게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그리고 바로 집어든 책은 성석제의 <투명인간>이다. 구태여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지 않는 나로서는 이 책을 구입한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 작품들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라고 해두자. 좋아하는 작가들은 있다. 대표적으로 박민규. 이 사람 작품은 꼭 본다. 그리고는 옛 작가들을 즐겨 찾는 것 같다. 이문구, 박경리, 박완서... 가끔은 신경숙.

 

현세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나이니만큼 지금의 작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아는 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에는 시대상이 있고 그 속의 인간군상들의 삶이 녹아 있고... 그리고 그것은 나의 시대이자 나이고 나의 주변인들이기 때문이다.

 

첫장을 펼치니, 이런 단락이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라이더들은 바람과 급격한 외기 변화, 햇빛 등등에 몸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걷거나 뛰는 일반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복장을 갖춘다. 자전거는 빠른 속도로 인도와 차도를 달리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아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은 필수품이다. 넘어졌을 때 손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장갑을 끼어야 한다. 거기다 눈을 가리는 고글을 쓰고 마스크와 버프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다 (p7)

 

웃음이 피식 난다. 요즘 안 그래도 주위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난 불행히도 자전거를 못 탄다..) 딱 그들을 연상케하는 단락이라 말이다. 재미나게 읽어볼 생각이다.

 

 

 

함께 읽는 책들이다. 소설만 읽어가지고는 머리에 기름을 잘 칠 수가 없다. 이런 관점의 책들이 필요하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는 저녁에 자기 전 읽고 있고 (말하자면 취침용이다..ㅎ)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점심 시간 남는 짜투리 시간에 읽고 있다. 주중에도 나는 편안한 시간들을 조금씩 누리고 있다. 나에게 편안한 시간 소중한 시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읽는 시간이다.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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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 2014-10-26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선놀음이라는 것에 공감가면서 저도 그럴때 행복감을 느끼곤해요

비연 2014-10-26 18:34   좋아요 0 | URL
mira님~ 첨 뵙네요^^ 알라딘 서재가 좋은 건 이런 심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 때문인 것 같아요~ 자주 뵈요~
 

 

혼자 가는 여행. 이런 거 해본 지 백만년은 된 것 같다. 작년 5월인가. 일본에 가서 음악회 참석했을 때가 마지막. 그 이후로는 가족과 여행을 가거나 친구와 여행을 가거나 선후배와 여행을 가거나 동료와 출장을 가거나. 

 

사실, 그걸 원했는 지도 모른다. 나이가 드니까 혼자 가는 여행이 좀 적적한 건 사실이니까. 누구랑 얘기는 하지 않아도 뭘 먹을 지 의논하고 어디를 갈 지 상의하고 밤에 잘 때 같이 와인이나 맥주나 홀짝거릴 상대가 심히 필요해지는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 게 좀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급적 누구를 꼬셔서 여행을 가는 방향을 선택해왔던 것 같다.

 

이제, 혼자 가는 여행을 다시 해야 할 시기가 된 듯 싶다. 다 좋은데, 생각하고 책읽고 할 시간이 부족하다, 누구와 함께 하는 여행은. 여행의 종류별로 행선지별로 같이 가는 여행이 좋을 때가 있고 혼자 가는 여행이 나을 떄가 있고 하니까. 이번엔 혼자 가는 여행을 택하고 싶다.

 

그러나, 뭐. 휴가내기도 여의치 않은 판국이라. 과연 내 뜻대로 될런지는 미지수다. 그냥 요즘 많이 상상하고 있다. 어딜 갈까 하면서 여기저기 인터넷이나 책이나 기웃거리고... 언제쯤 휴가를 낼 수 있을까 하며 달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행선지는 기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조금 끌리는 데가 있어서... 한번 추진해봐야겠다 라고 맘먹는 중이다.

 

 

<인튜이션>은 절반 정도 읽다가 집어치웠다. 그닥 재밌지도 않은 내용을 어지간히 자세히도 쓴 책이더라. 의사결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지대한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끝까지 읽기 힘들지 않을까 라고 내맘대로 생각하면서 덮어버리고 이 책을 집었다.

 

 

 

 

 

 

 

 

 

 

 

하지만 대체 왜? 통증은 행복의 대가였을까, 행복을 누린 벌이었을까? 통증의 어원은 '처벌'을 뜻하는 라틴어 '포이나' (poena), '갚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포이네' (poine),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겪어야 하는 처벌과 고통'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펜' (peine)이다. (p37)

 

통증의 어원에는 은유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예전에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을 때도 비슷한 내용을 봤을 지도 모르겠지만, 새삼 느껴본다. 통증이든 질병이든 생물학적인 객관적 주체라기보다는 뭔가 의미를 담아 바라보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그것을 벗어나려고 해도 객체들의 그러한 시선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기억하고.

 

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이다. 뭔가 주제를 잡고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문학적 등등의 다방면에 걸친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관점을 설파하는 책. 쉽게도 쓰였고 해서 두껍지만 술술 넘기고 있다.

 

하지만 통증을 이렇게 이해했더라도 은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통증이 지속되면 생물학적 질병은 나 자신의 앓이로 바뀐다. 앓다 보면 사람이 바뀐다. 사람이 바뀌면 자신의 삶, 경험, 성격, 기질에 비추어 앓는 상태를 재해석하게 된다. 자기 자신, 주변 상황, 문화, 역사와 연관된 온갖 의미가 떠오른다. (p26)

 

정확한 지적이다. '재해석'이라는 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 일해야 하는데 이 책에 매달리고 싶어지는 이 느낌은 뭐지. (뭐긴. 일하기 싫은 도피지.ㅜ)

근데 이거, 여행가고 싶다고 제목달고 얘기하다가 책 얘기로 빠지는 이 삼천포는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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