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답답합니다. 황우석 씨가 아직도 진실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 황우석 씨가 진실을 밝히고 백의종군 혹은 자연인으로 물러서기를 바라는 믿음은 같습니다. 불확실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헛된 꿈일 뿐입니다. 이 문제는 과학적으로 해명이 되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황우석 씨가 진실에 참여하리라는 믿음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반성에만 의존하는 사람(매일같이 반성하는 사람)'과 '우연에 의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츠버그의 김 연구원의 말 한마디에 의해서 많은 사람이 바보가 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촌극은 우리나라의 과학계와 언론이 모두 우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점에 있어서 'PD수첩과 MBC가 9회말에 만루홈런을 쳤다!'는 말도 못마땅합니다. 황우석 씨의 회견을 듣다가 티비를 꺼버렸는데, 과학에 문외한인 저조차도 그가 핵심을 벗어난 연막 전술을 쓰고 있으며, 과학계와 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언론과 국민을 향해서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실하다면 단순한 표현으로 알아듣기 쉽게 핵심만을 말해야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도(하반신불수 환자조차도) '황'의 이야기보다 '노'의 이야기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입니다.

 "마음 속으로는 노이사장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기를 바라지만 황교수보다는 노이사장 쪽의 얘기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경향신문, 12/17, 종합 6면)

저는 과학적 해명 문제와는 별개로 황우석 박사의 인간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추측성 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국난에 처한 과학자의 처신을 보여주는 하나의 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 연구자와 황우석 박사는 분명히 다른 연구자상을 보여줍니다.

“나로서는 아직도 그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없군요. 나는 사람들은 그 결단에 있어서는 시종일관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어떤 일정한 주위환경과 일정한 언어와 사고영역에 태어나서 매우 어릴 때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는 그 영역에서 가장 적절하게 생장할 수 있으며 또 그곳에서 가장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경험에서 미루어본다면 어느 나라든 조만간 혁명과 전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마다 미리 이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확실히 합리적인 충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이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하여야 하며, 도망갈 생각부터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파국을 자기들 스스로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와 같은 요청은 모든 파국을 미리 방지해야겠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부당한 것이라는 점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개개인이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민중이 완전히 잘못된 길로 휩쓸려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그 자신의 탈출도 단념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니까요. 다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점은 이런 경우에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일반적인 규칙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결단을 자기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결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아마도 둘 다 옳을 것입니다. 나는 몇 년 전에 독일에 남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결심은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와서 그 결심을 변경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불의와 불행이 초래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이미 알았으며, 그러한 결정에 대한 전제들이 아직도 전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 바로 그러한 질문을 천 번이나 스스로에게 반복하였습니다. 저 협소한 유럽에서 이 넓은 나라로 이민을 올 수 있는 가능성은 저에게는 끊임없는 유혹의 씨였습니다. 아마도 그때에 나는 이민을 했어야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머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과학에서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데 공헌하고, 전쟁 후에 독일에서 훌륭한 과학을 재건코자 하는 뜻 있는 젊은이들을 나의 주위에 모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이 젊은이들을 버린다면 그들은 나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우리보다는 훨씬 더 어려울 것이고, 이곳에서 쉽게 직장을 찾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 내가 이와 같은 나의 이점을 단순히 나를 위해서만 이용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페르미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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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든 인문학이든 학문을 하는 사람은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니쉬 라인에서 0.001초 앞서려고 가슴을 내미는 건 스프린터가 할 일다.

죽을 때까지 논문을 발표하지 않으려 했던 다윈이나, 죽은 후에야 저작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많은 철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진실은 초를 다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아프다.

어떤 네티즌의 말처럼, '진실이 이렇게 뼈저리고 쓰라린 건지 처음' 알았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자.

우리가 보름 가까이 헐뜯고 비판하고 의심했던 시간,

생명공학의 답보상태라고 했던 얼마간의 시간이 사실은

우리의 과학, 여론, 사회, 국가의 차원에서 잊지 못할 중요한 시기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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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관련 댓글들

저도 유구라, 그러니까 유홍준 선생님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게 다 구라야"라고 밝히고 계속 구라의 길을 가더군요.(하하하) 그런데도 옆에 있는 분들이 전혀 반감을 안 가져요. 그분의 이야기는 재미있구 유익한 구라니까요. 그런데 제가 구라를 치면, 그게 조금만 틀려도 저는 낙마하고 맙니다. - 최재천 교수, 『대담』 중에서

데이터를 조작하는 순간 그 전과 후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이죠. - soon...

 황교수님... 예전에도 그렇게 좋아하던 분은 아니었지만... 너무 슬픕니다... 적어도 오늘밤에는 몇년간 정말 피땀 쏟아부었던 수의대 친구녀석과 소주 한잔 기울이며 같이 있어줘야 할거 같군요... shsr...

 교수에게 주어진 최고과학자1호는 철회될 것 같은데, 내년에 선정될 최고과학자는 예정대로 2호 3호가 되더라도 1호는 영구결번으로 해두고, 우리가 이 사건을 가슴에 되새기고 후대에 물려줄 정신적 자산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live...

전 우리가 가진 내공 내지는 포스를 믿고 싶습니다. - anti...

철저히 이성적,논리적인 사고로, 과학적 방법론으로 진실을 규명해야합니다.  - wang...

황우석 살리기도 진실을 덮을 수 없듯이, 황우석 죽이기도 진실을 덮을 수 없습니다. 남아있는 진실만큼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겠지요.  - larr...

결국 모든 문제는 '상식'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 kk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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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연재를 들이밀어서 '말잔치'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제부터 제 전공 분야인 철학의 키워드를 가지고 현대의 문제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유명한 사조나 철학적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오로지 현대의 문제에 기탁하여 키워드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 연재의 큰 줄기입니다.

徐子曰 仲尼稱於水曰 水哉水哉여하시니 何取於水也시니잇고 孟子曰 原泉이 混混하야 不舍晝夜하야 盈科而後에進하야 放乎四海하나니 有本者如是라 是之取爾시니라
맹자 이루 하 18장
※ 科 구덩이 과, 盈 찰 영, 而 말이을 이(어조사 이), 後 뒤 후, 進 나아갈 진

(맹자의 제자) 서자가 묻습니다. "중니(공자의 자)께서 도도한 물줄기 앞에서 '물줄기로구나! 물줄기로구나!' 하고 두 번이나 탄성을 자아냈는데, 도대체 이 물에서 어떤 뜻을 취하신 것입니까?"
맹자가 답합니다. "샘의 근원은 졸졸 흘러 밤낮 가리지 않고,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나아가 (마침내) 큰 바다(사해)에 이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취하신 것이다.""

#장면 1

수영복 세트를 만드는 A중소기업은 2002년에 여성용 수영복 세트를 9만원 전후로 공급했지만 올해는 7만원대에 공급한다. 인건비와 물가는 올랐는데 납품가는 3년새 20% 정도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할인점이 챙기는 판매수수료(마진율)는 20%에서 25%로 오히려 늘어났다. 할인점 간에 가격경쟁이라도 붙는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할인점의 세일 경쟁이 붙으면 가격 하락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ㄱ마트에서 20% 세일하면 ㄴ마트는 30%로 해달라고 요청한다. 혹은 납품업체가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장 청소비, 광고비·판촉행사비, 매장 직원 인건비를 할인점 대신 부담하는 게 백DC다. 보통 매출액이나 납품가의 5~15% 정도 된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할인점은 납품업체의 피를 빨아먹는 통에 납품업체는 할인점을 '흡혈귀'라고 부른다.

“물건을 창고에 쌓아둘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매출의 98%가 할인점에서 이뤄지니 하나라도 더 팔려면 할인점에 들어가야 해요. 치사하지만 할인점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하니까요.”(수영복 제조업체 ㅎ부장)

"납품업체와 거래가 공평치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를 부담하더라도 납품하겠다는 업자가 한참 줄을 서 있습니다. ‘갑’인 할인점이 손해볼 장사를 할 이유가 없어요. 이게 바로 경제잖아요.”(할인점 MD 김모씨)

기사출처 : 경향신문 '05년 9월 13일자 기획기사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3. 납품업체는 할인점의 ‘봉’ 중에서

#장면 2
 
현대자동차의 하도급 업체 횡포도 유명하다. 이들은 하도급 업체 B 중소기업에게 납품을 받으며 납품 원가를 첫 해에는 2.5%, 두 번째 해에는 2% 인하했다. 이 결과 B 중소기업은 12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는데, 전 직원의 한 달 임금이 2억원이므로, 6개월 임금을 상납한 것이다.
때문에 하도급 업체 사이에서는 현대자동차를 위시한 대기업에게 "마른 수건을 쥐어짠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하도급 업체는 현대자동차 측에 납품 원가를 깎지 말아줄 것을 호소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운(社運)이 기울 판이기에, 공정위에 제소하여,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 혐의가 중대하니 원가 삭감에 대한 시정 조치를 명령했다. 이듬해 B 중소기업은 도산하고 말았다.

자료 출처 : KBS 특별기획 '양극화사회 희망의 로드맵(3)'('05.12.8일자 방영분)

이 결과 대형 유통점(할인점은 무슨 놈의 할인점!)과 대기업의 순이익의 급상승하는 반면, 하도급 업체, 납품 중소기업의 매년 순이익은 급감하여, 도산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무리한 투자를 해서라도 해외로 터전을 옮기는 일도 잦다.
이것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중소기업의 공동화 현상(空洞化現狀)이다. 이것은 우리의 경제기반은 잠식하는 동시에 대기업 할 것 없이 공멸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노동자의 87%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중소기업이 떠나간다면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의 폭리 → 대기업,중소기업 간 영업이익 편차 극대화 → 중소기업 잠식, 혹은 해외이전 → 중소기업 공동화 현상 → 경제 성장동력 정지 → 대규모 실업 사태 → ?

위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이러한 현상이 대기업의 이익이 될까.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가장 완숙하다는 '大'라는 글자를 허락할 수 있을까?

# 장면 3

오늘날의 포스코가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이 있었다. 포스코는 공정에 있어서나 제품 생산 등 핵심 개발 업무에 중소기업을 적극적은 파트너로 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한 해 얻는 이익은 수십억 원에 이르고 있으며,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철강업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포스코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거대한 기업 안에 개미만한 기업들이 앞, 뒤, 양옆, 속까지 받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이익은 중소기업의 개발 투자비로 책정된다.
(포스코는 수익을 거둔 첫 해의 이익을 모두 중소기업에 배당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이다. 중소기업 C는 현대중공업의 판매 유통망과 인지도를 이용해 세계 각국에 커다란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는데, 그것은 현대중공업의 인지도 상승과 기업 실적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꼭 현대중공업의 힘이 아니더라도 중소 업체가 그 길을 통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면, 그 이익은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대우조선은 아예 협력업체 직원을 데려다 교육시키고, 이윤 보장을 확실히 해주고 있다. 이 투자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 KBS 위의 프로그램

이와 같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우리 경제의 주축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윤의 도구로 보느냐, 공영의 동반자로 보느냐는 국가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 두 가지 인식이 존재한다. 그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人無遠慮 , 必有近憂 (사람이 넓게 사려하지 않으면, 근심거리가 가까워진다-논어)라는 말과 같이, 우리 기업들이 넓은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눈앞의 이익에만 어두운 모습이 안타깝다. 기회가 있으면 사마천 사기열전의 '화식열전'이라도 한 편 봤으면 한다.
"큰 장사꾼은 큰 장사를 한다."
제발 큰대 자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위의 몇 가지 사례만으로로 '盈科而後 進'(과영이후에 진)의 의미가 밝혀졌다. 구덩이 중에는 큰 구덩이와 여러 개의 작은 구덩이가 있다. 하지만 물은 큰 구덩이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작은 구덩이가 차지 않으면 반드시 나아가지 않는다. 이 물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에 적용해볼 수 있다. 이 키워드처럼 스펙트럼이 넓은 것도 없으며, 사회 문제의 많은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에 '마수걸이'로 정했다.

나는 이 키워드를 우리 사회의 경제 문제, 특히 대기업과 하도급 간의 공생관계의 측면에서 이야기했지만, 정치, 사회, 역사적으로 이 키워드를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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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넷'이라는 곳에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때도 없었다. '넷'이 없었을 때는 멱살잡고 싸우더라도 논리가 있었고, 경청이 있었고, 마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넷'의 세계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뱉는 것도 아니고, 싸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과 같이 구역질이 난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 나는 이 사태를 '신 전체주의'로 규정했다. 독일이 2차세계대전을 시작하기 전 독일 사회는 국가사회주의가 횡행했고, 실업률이 비상식적으로 떨어져 빈부격차가 심했다. 그들에게는 '상식'보다는 '전설' , '인생 역전', '영웅' 등의 환상적인 기대가 마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아래 네티즌의 말과 같이 이 문제는 이미 언론의 윤리, 과학의 윤리, 과학은 커녕 상식의 수준도 떠나 있는 것 같다.
짧은 시간 내에는 이렇게 취약한 여론과 언론 환경, 절망적인 관계 등의 분위기가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넷'이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 같다.
'우리들의 넷 윤리'는 내게는 세상 어떠한 윤리보다 더 실현 불가능하고 기대 불가능한 일일까. 오늘은 잠보다 절망이 앞선다.


문제는 황박사는 이미 추종자에게 종교 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예수가 행한 기적을 말이 안된다며 증명해보라고 한다면 신도들과는 절대 대화가 통하지 않을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에 관한 문제 즉 종교에 관한 문제이기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이글 역시 참 좋은 글이지만.. 이글을 읽고도 황빠들은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왜냐면.. "믿으면 되는것을 이런 골치 아픈 고민을 할 이유가 없는것이죠" 즉 황우석은 종교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학으로 접근하고자 하기에 충돌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 과학 갤러리의 한 네티즌

우리가 저명인사를 통해서 재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는 것만큼, 커다란 성과나 인물을 통해 이미지의 편승을 시도하는 심리도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월드컵 4강국이라는 고착된 이미지가 한국 축구에 장애적 요소와 압박으로 작용했듯이, 세계 최초 줄기세포 복제, 개 복제라는 성과는 분명 자랑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우리들의 이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영원히 4강을 할 수도 없고, 세계 최초의 역사를 계속 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황우석이라는 하나의 종교를 가지게 되었고, 황우석 씨도 그것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숫눈) 위를 건너듯이'나 '내가 여자였어도 난자를 제공했을 것이다' 등의 발언은 격정적인 한국인의 심리를 제대로 이용한 고도의 전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황우석 씨와 그 과학적 발견 등 이 주제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2002년 '정몽준을 대통령으로!' 하고 열광하던 그때와 지금 대상만 바뀐 황우석 열풍, 그리고 3-4년 후. 어떤 분위기일지는 예측할 수 없겠지만, 지금과는 굉장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알리딘에 남긴 나의 댓글

과학하는 것이 벼슬이 아닙니다. 그리고 Ph.D 이것도 벼슬이 아닙니다.
과학자 소위 전문가들은 머나 먼 옛날 부터 일종의 고급 사회 계층을 형성해 왔습니다. 물론.. 현 사회도 그렇지만 ..

남들 보다 이 분야에 대해 조금 더 많이 배워 조금 더 많이 알 뿐인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자연과학 특히 순수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인문과학과 같이 가야 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요성도..
Ph. D 라는 것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죠.

한국내의 인문 과학의 몰락과 현 사회의 패러다임의 부재는 같은 맥락을 취하고 있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정신적인 과학을 바탕으로 해야 순수 과학이 나오고 실용 과학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니까요. 과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과학자 나름데로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어야 겠죠.

그것이 현 사회의 패러다임와 일치하지않을 수도 있고 공통된 부분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 이데올로기는 권위가 아닙니다.

과학자 소위 전문가라 해서 누구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죠. "감히 누가 나한테." 라는 권위는 매우 조심해야 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과학자의 자존심이 권위를 세우는 것은 절대 아니고 이 권위 자체가 과학자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각자의 유전적인 영향, 환경, 민족성 등등에 영향을 받아 각자의 고유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되겠죠. 이러한 각자 개인나름의 독특한 이데올로기는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조그마한 점에 수렴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 이 사실들이 진실이 아니고 또한 진실이라고 해서 모두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실과 진실의 혼돈입니다.


그냥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Ph.D의 Ph는 역시 소중하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 Bric의 한 네티즌

좋은 전망과 자신감을 갖되 균형감각도 함께 견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윤리와 학술적 검증과 이성과 합리성을 충족시켜가면서도 충분히 국익을 구현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국민적 사랑과 신화 속에 당연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방기되지 않았는지 성찰해봐야 하는 것이다. 환상적 이익을 보면서 오히려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정신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 경향 언바세바의 네티즌 칼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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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2-0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정보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해 준 반면에 수 많은 지식, 생각들을 노이즈처럼 여기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가령 검색을 하면 내가 찾는 정보만 찾고, 나머지는 버리듯이 점점 '대화'가 힘들어진다 라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문제는 유사의견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부류들이 덩어리가 되면서 타인의 의견을 압도하고 관철시키려는 폭력성을 드러낸다는 점이죠. 가령 방송국이나 특정사이트를 '방법'하는 형태로... 이게 또 무지 가벼워서 유행처럼 퍼지고 놀이로 정착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백색테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흐..

승주나무 2005-12-08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생각이 박혀 있는 네티즌이라면 언제나 '짜증나는 퍼즐'을 하듯, 수많은 말의 형상 중에서 '말'을 찾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문맥을 인식해서.. 모든 댓글에 '반말'을 금지시키고, '존댓말' 시스템을 정착시키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그러면
'참 개아들이시군요.'
ㅡㅡ; 똑같나요?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휴가

김용민 화백이 '또' 휴가를 떠났다.

경향신문을 보면서 내 신문보는 습관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스포츠면부터 보기 시작하다가,

혹시나 해서 1면부터 보는 거였는데,

이제는 만평부터 보게 된다.

그것으로도 성이 안차 전날 저녁에 몰래 다음날의 만평을 훔쳐보기까지 한다.

다른 신문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인터넷 신문은 다음날 기사를 미리보기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다음날 만평'이 실리지 않은 날은 1. 토요일 저녁, 2. (앗! 갑자기 까먹었다), 3. 김용민 화백의 휴가이다.

특히 내가 얼마 전에 있었던 김 화백의 휴가일을 기억하는 것은 경향 만평을 그만큼 찾는다는 말도 된다. 군에서는 이런 경우를 '땡보'라고 하는데, 군 생활 내내 그런 소리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병 인사를 (겉으로만) 좌지우지하는 '병 인사 관리병'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김 화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경향 관계자에게 몰래 물어볼까? 혹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귀띔이라도 좀...

그런 의미로 최근 만평 중 기억나는 혹은 기억할 만한 김 화백의 만평을 하나 덧붙인다.



미국의 명언

워싱턴에서 전해오는 정동식 특파원의 칼럼을 즐겨 본다. 항상 똑같은 사진이라 아쉽지만, 근엄한 표정이 묻어난다. 주제도 다양하고 '글빨'도 차분하고 진중해서 좋다. 어제자 기사 말미에 미국의 유력 잡지 "TIME"이 공화당의 보수화 전략과 부시 35%, 공화당 77%의 지지율을 보여주며 "비가 올 때 비를 막어주는 것은 지붕인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지붕"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 명언인 것 같다. 그것을 한나라당에 적용하면 "한나라당이 별다른 쇄신 없이 죽쑤고 있어도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한때 국시(國是)로까지 신성시되었던 반공의 은택이자, 극우 세력이 사회 모처에서 협력(?)하고 활약(?)하여 만든 핵우산" 때문이다.

미국의 명언 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2001년에 911이 터지고 나서 4년 만인 2005년에 911 최종보고서가 제출된 것으로 기억하는 데, 보고서를 브리핑하던 총 책임 장성이 자료를 덮으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미국이 911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미국의 국력이 약해서도 아니고, 정보력이 취약해서도 아니다. 바로 상상력(想像力)의 부재다."

이를 보고 나도 상상력의 의미를 환기하는 기회로 삼았다. 상상력이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판타지'가 아니다. 상상력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이 전문가인데, 과학자에게는 2개의 상상력이 있다고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 외에 과학적 상상력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상상력은 확인할 수 없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힘이다. '논리'는 사실 상상력의 도구일 뿐이다.

명언까지는 아니지만, 이번에 MBC 사건을 접하고 참 안타까웠다. 이 방송사가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방송을 한 것만도 올해 일곱 번째라고 한다. 그야말로 '사과방송 데스크'라는 오명을 쓸 판이다. 미스터 엠비(엠비 씨)가 오기를 갖고 분발하고 자진하고 쇄신하고 정신을 번쩍 차리라는 의미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명언(明言)
을 하고자 한다. 엠비 氏는 명심( 銘心)하여 이를 극복하고 더욱 분발해주기 바란다. (그런 의미로 아주 새빨갛고 선명하게...)

정당한 의문(을) 부당한 방법(으로)

프랑스와 일본의 역사 왜곡

이 뉴스를 접하면 아마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은 깜짝 놀랄지도 모르며, 잘 아는 사람들은 그저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프랑스는 '2005년 2월 23일 법' 가운데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한 조문을 다수결로 재확인했다고 한다. 그것은 곧 과거 식문 국가에서 프랑스의 '긍정적 역할'을 교과서에서 인정하자는 것이다. 사실 지금 유럽의 발전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졌으며, '100원을 버는 사람이 있고 그 100배를 고스란히 갚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오늘날 제3세계의 냉전과 갈등, 내전, 독재 등 분열과 고통의 정국은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철없는 애 도토리묵 해집어놓듯이' 철없는 제국주의의 애들이 인류를 초월한 자연과 문화와 역사와 신과 철학에 모조리 제국주의의 빨간색을 칠해버린 것이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식민지(알제리 등) 국가에서 토지를 개간하고, 방역을 하며, 근대화 교육을 시켰다고 주장해 왔고, 이번 기회에 교과서에 정식(?)으로 올릴 심산인가보다.

우려할 만한 일은 내가 프랑스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우경화 추세는 차치해놓고서라도,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독일에게 방대한 배당금을 챙겨 독일 경제를 피폐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일은 그 가시밭길을 극복하며 점점 힘을 키웠고, 프랑스가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까지 자라나자 프랑스를 정복해버렸다. 이로서 프랑스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 혼란스럽다.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봐야 할 것인가? 프랑스 학생들이 힘겹게 치른다는 바칼로레아는 한낱 프랑스식 과시에 불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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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5-12-0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우연히 김용민 화백과 통화를 했습니다. 또 휴가간 이유는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고, 회사적인 일이기도 하답니다. 우려했던 '별일'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