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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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오십 초반의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여는 하루의 여정을 보여준다. 런던 구석구석을 마치 소개하듯이 클라리사의 동선에 따라 묘사되는데 금방이라도 런던에 가보고 싶게 만든다. 클라리사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 파티를 연다는 것. 그것은 사실 어떤 목적이 있는 일은 아니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만남의 기회를 주는 것 정도랄까. 그런데 그런 일에 의미를 두는 클라리사는 그 준비과정에서 삶의 기쁨을 한없이 만끽한다. 그녀의 표현대로 삶에의 어떤 '봉헌'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클라리사가 한없이 순수한 여인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주변인들의 묘사에 따르면 그녀는 세속의 성공을 지향하는 인물이었다. 평범한 인간이 삶에서 아주 작은 기쁨, 행복을 느끼는 것의 중요함을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새긴다. 하지만 클라리사의 이런 삶에의 태도는 삶을 꼭 맹목적으로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끝나지 않아서 좋다. 셉티머스의 자살이 클라리사의 삶과 대비되는 장면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의 마감이 자살로 종결되었다는 점과 어찌보면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을 더 찾아 읽고 싶다.

 

이상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좀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싶었다. 어떤 즐거움도, 하고 그녀는 의자들을 바로 놓고 책 한 권을 서가에 꽂으며 생각했다. 어떤 즐거움도 젋은 날의 승리들과 결별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가 가끔 기쁨에 떨면서 해가 뜨는 것을, 날이 저무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는 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부어턴에서도 다들 이야기하고 있을 때 혼자 하늘을 보러 갔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는 식사 중에도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곤 했었다. 런던에서도,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하늘을 보았고.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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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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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에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클래식 캘린더>를 샀더랬다. 무엇인고 하니.. 매일 한페이지씩 민음사전집의 1권부터 제일 첫 페이지가 나오는 식이다. 어떤 책의 첫페이지만 읽어도 끌리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첫 문장은 군고구마, 군고구마아, 따끈따근한 군고구마아. 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 이 소설에는 인도 단체여행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 몇명 나온다. 물론 제각각 인도를 여행하려는 이유는 다르다. 이소베는 아내의 환생을 찾아서, 미쓰코는 한 때의 남자 오쓰를 찾아서, 기구치는 기구치대로 정글에서 인육을 먹은 고뇌를 잊고자, 누마다는 유일한 위안이었던 동물 구관조를 찾아서..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자신의 인생에서 놓지 못하는 무언가를 붙잡고 번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무언가를 붙잡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갈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몇년전 재밌게 읽었던 <테레즈 데케루>의 이야기가 자주 나와 반가웠다. 엔도 슈사쿠는 종교색이 짙은 작품이 많다는 데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종교에 대한 생각이라면 오쓰의 경우처럼 모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데 나도 동감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그 만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주어진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도라는 나라는 흥미롭지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도 갠지스 강가는 이런 분위기일까 궁금해진다. 이 소설의 '깊은 강'은 인도인에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몸도 마음도 정화가 일어나고 자신의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도인의 힘이 이 강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인도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가 마음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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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살의 남자는 여자문제(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인지는 나와있지 않다.)로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백면서생인 이 남자는 지나가는 길에서 갱부가 되지 않겠냐고 제의하는 어떤 사내를 만나 광산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어디 갱부가 되는 일이 쉬운가. 다행히(?) 기관지염때문에 갱부도 되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듯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학문의 세계에서 빛을 발하지도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 같은 잉여인간의 삶이 그려져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렇듯 작가의 말대로 삶의 기둥뿌리가 뽑힌 사람들도 그 정도는 상대적인 법이다. 주인공보다 붉은 담요, 심지어 나이도 어린 꼬맹이는 어디 삶의 기둥이란게 있는지 모르겠다. 광산에서 만난 수많은 갱부들의 삶 또한 그렇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며 주인공의 인생영역도 확장된다. 이 소설은 어딘가에 연재해서 그런 모양인지 정확히 세 페이지씩 번호가 매겨진다. 그것이 더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병에 잠복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상이나 감정에도 잠복기가 있다. 이때에는 자신이 그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에 지배당하면서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또한 그 사상이나 감정이 외계와의 관계로 의식의 표면에 드러날 기회가 없으면 평생 그 사상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은 결코 그런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는 이런 거라며 줄기차게 반대의 언행을 해 보인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그 언행은 모순되어 있다. 스스로 미심쩍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미심쩍다는 것은 모르더라도 엄청난 고통을 겪기도 한다. p.62

사람들은 경험한 당시에 쓴 글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당시의 사정은 순간의 혈기에 사로잡혀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전하기 쉬운 법이다. p.68

도쿄에 있을 때는 눈이 팽팽 돌 만큼 사람이 움직이고 있어도, 움직이면서 다들 뿌리를 내리고 있고, 마침 뿌리가 뽑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세상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나 하나뿐일 정도라서 센주에서 옷뒷자락을 허리에 지르고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도 남의 두 배였지만 이곳 역참 마을에서 뜻밖에 붉은 담요를 얻었다. 붉은 담요를 얻고 나서 2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그 꼬맹이를 얻었다. 두 사람 다 나보다는 훨씬 뿌리가 뽑혀 있었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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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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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안 쓴지 오래되었다. 가장 치열하게 일기를 쓰던 때는 중고등학생때였다. 초등학교 숙제 일기에서 벗어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기를 쓰던 그런 때가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일기라기에는 뭐한 것을 끄적거리고는 했는데.. 유별난 자의식 때문인지 정기적으로 쓰던 것들을 없애곤 해서 남아있는 것이 없다. 요즘은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그렇게 치열하게 쓰고 싶은 것을 못 느껴 쓰지 못하고 있다. 아주 큰 걱정거리도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없어서 인지 오늘이 어제같고 내일도 오늘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에세이를 읽으며 나도 치밀하게 기록하고 픈 욕구가 일었다. 내 섬세한 감정선을 기록에 남기고 싶다는... 간만에 재밌는 에세이를 만났다. 이름이 남자로 오해할 만하다. 직업이 카피라이터인데 직업의 특성인지는 몰라도 글이 생글생글 살아있는 것 같다. 적당히 내 취향인 것들이 나와 더 공감하며 읽었다. 도서관에서 우선 빌려있는 독서 습관하며.. 비닐에 책을 싸서 다녔던 경험까지 나와 같다. 지금은 나도 저자처럼 책을 사서 읽는 편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책을 깨끗히 읽는 버릇은 여전하여 약간 책을 신성시여기는 면도 있다. 방목 스타일인 엄마의 양육태도를 읽곤 울엄마를 떠올렸다. 정말 우리엄마는 TV를 그렇게 사랑했는데도.. 나에게 책 한번 읽어 준적이 없는데도 나는 일탈한번(?) 못해보고 책벌레로 컸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꾸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했는데, 잘 쓴다는 것을 잘 산다는 것으로 바꾸어도 괜찮을 듯하다. 어떤 일이 나에게 닥쳐도 잘 살아가기 위해 지금 현재에서 나는 좋은 토양을 가꾸어 나간다. 책을 읽고, 미술관에 가고, 여행을 가고, ...

새로 주어진 365일 2017 한해동안 좋은 토양을 가꾸어 나가는 부지런한 내가 되고 싶다.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쓰다'와 '살다'는 내게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나는 이 문장 속에서도 언제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쓸 수 있어 진실로 다행이다.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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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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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오랫동안 했다. 그 공부로 무엇을 얻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야말로 그냥 했다.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공부가 자의적인 공부였다는 것.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는가? 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책을 읽고 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공부하는 내가 좋아지는 책 말이다. 정여울씨의 책은 앞서 몇 권 읽었는데 다소 감성적인 문장이 맘에 들때도 있고 맘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나 좋구나.

이 책을 통해 인문학적 지식을 얻었는가, 이런 것 보다 공부를 하는 이유, 공부를 하는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읽혀서 가슴이 찡하면서도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조금더 깨어나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이 어수선하고 험난한 세상에 나의 주관을 잃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겠다. 무엇보다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포스트잇 엄청나게 붙여가며 책을 읽었다. 또 다른 책의 세계로의 안내, 그 책을 만나는 순간 내 삶도 조금 더 깊어지길.

 

여러분은 가장 끊어 내기 힘든 열망이 무엇인가요. 제 경우는 자기애입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여전히 많습니다. 삶을 돌이켜 보면 자기애의 굴레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곤 했습니다. 때로는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구보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지요. p.189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가리라.

누가 가장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참다운 인간은 집단이

강요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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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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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2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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