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독 흰 고독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김영도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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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전에 읽은 <희박한 공기속으로>가 떠오른다. 한여름에 읽은 그 책이 어찌나 재밌던지 밤새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여느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는 글들에 나는 항상 매혹되곤 한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책을 읽고 싶었는데 사실 이 책은 얇은 편이다. 아내와의 이혼과 같은 산악인인 동생마저 잃고 어두운, 검은 고독을 맡보여 살아가는 그는 낭가파르바트의 단독 등반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생사의 기로에서 아무런 생명체라고는 없는 빙벽에 매달려 그는 흰 고독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는 이 고독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가 경험했던 흰 고독을 어떻게 상상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의미를 찾는 측면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인간관계와 행복이라는 연결고리가 너무나도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것으로부터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추측도 해본다. 이성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 성향이 그냥 끌리는 어떤 것.. 그런 것들이 점차 확고해지는 것이 다소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 또한 괜찮은 삶이지 않을까.

 

 어떤 일이든 완전히 혼자 힘으로 해내겠다는, 마지막까지 혼자서 해내겠다는,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그러한 갈망은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반을 마친 후 더 강해졌다. 이것은 모든 능력을 가지고 싶다든가 어떤 일이건 반드시 해내겠다든가 하는 욕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완전히 홀로 서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었다. 나는 내 안에서 안식을 찾고 그 안에 있고 싶었다.

 나는 때때로 명상에 잠기곤 했는데,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 세상의 모든 신비가 내 안에 있다는-모든 비밀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 내게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았다.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삶과 죽음의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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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2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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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다보면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이렇게 오래전에도 이런 주제를 다루었구나. 어쩌면 오늘날의 모든 주제들은 고전의 변주들이 아닐까하는 깨달음(?)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에는 관념 속에 사는 사람이 나온다. 스스로를 지하에 산다고 칭하며 책으로 배운 세상이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유리창 밖 세상에서는 적응할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며 지하에서의 생활을 안전하다고 느낀다. 지적 허영이 가득한 이 사람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해 서글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또한 안전하고 싶고 밖에서는 상처받기 싫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주인공이 마지막에 말하듯 도대체 무엇이 실제하는 삶인지 누가 선뜻 정의내릴 수 있을까,도 싶다. 책이 없다면, 관념이란 것이 없다면, 실제라는 것 또한 정의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위로는 책읽기라는 행위자체가 나에겐 온전한 그 자체로의 기쁨이므로, 이 행위 자체가 실제이지 않을까라는 변명..

 유리창안에서 보는 바깥은 평화롭다. 그러나 때로는 문을 열고 나아가 신선한 바람도 쐬고 비바람도 맞고 해야 한다는 것. 세상이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나 자신에게도 필요하다는 것.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단지 내 인생에서 당신이 감히 절반도 실행할 엄두도 못 낸 것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당신은 당신의 비겁함을 상식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당신 자신을 속이면서, 그것에 위안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 비하면, 내가 당신보다 더욱더 <살아 있다>는 결론이 된다. 자세히 봐라! 결국 오늘날 우리는 정확히 이 <살아 있는>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둬 봐라, 책 없이. 그러면 우리는 곧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합류해야 할지도,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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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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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마르케스가 어쩌면 마콘도와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는데 그 이유는 도무지 비슷비슷한 이름들 때문이었다. 책의 맨앞에는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도가 나오는데 그것을 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네 대 이상이 될 때는 봐도 누가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번 탄력을 받아 주루룩 읽었더니 다 읽을 수 있었다. 부엔디아 가문이 마꼰도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고독과 근친상간이다. 가령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충동적이며 모험을 좋아하고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들은 동굴 속에 파묻혀 자신만이 몰두하는 무언가에 집중한다. 평생을 고독에 사는 아우렐리아노 형제들(?)에게 나는 더욱 정이 갔다. 난무하는 근친상간 때문에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우르술라의 우려대로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우렐리아노는 돼지꼬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결국 마꼰도의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생을 살다 명을 달리하지만 이름이 반복되듯 또 누군가의 결혼과 출산으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쓴 방법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하는데 가령 불면증이 전염되어 온 마을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나 흙을 먹는 레베카 이야기, 멜키아데스처럼 죽은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 마을을 돌아다니는 이야기, 여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이야기 등은 사실이 아니지만 읽는 재미를 톡톡히 준다. 비슷비슷한 소설의 형식이나 내용 때문에 소설 읽기가 지루해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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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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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저자의 다른 책들을 작년에 몇 권 읽었는데 이 책 또한 그 책들과 맞닿아 있다. 같은 사람의 생각이라서 인지 몰라도 전작들과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나온다. 이번에 읽으면서 와 닿은 부분만 언급하면.. '함'의 과잉상태에 빠진 우리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근대 이후 개인의 자아실현은 우리 현대인들의 숙명과도 같다. 주체적으로 자아실현을 하지 않는자는 직무유기인 것처럼 개인의 진정성이란 본연의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자기주도학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혁신학교를 찾아다니며 이 혁신학교 출신이 특목고로 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무슨 연관인지는 모르겠다만...

 적극적인 성격으로 모임을 조직하고 세상에 내 자신을 끊임없이 알린다. 목적지를 향해 몰아가는 우리들은 여행도 목적지를 찍고 네비가 안내하는 가장 최적의 길로만 다닌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이 자아실현이 가능할 것 같다는 착각..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몰아부치는 삶은 여유가 없고 생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같지만 이는 자율적 주체로서 행하는 것이 아닌 단지 욕망의 노예로서의 역할만을 할 뿐이다. 자기가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많은 것조차도 사실은 선택이라는 이름의 강요였던 것이다. 열심히 살수록 공허한 이유를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결론은 우리는 살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을 던지는 척하지 말고 진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발 멈추고 내 자신을 되돌아봐야한다. 이대로 가는 것을 멈춘다면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 초조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의 가치는 속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여유롭게 물러서 질문을 던지는 삶. 긴 꿀같은 연휴를 끝내야 하는 저녁밤,불안과 초조가 엄습해오지만 5월에는 좀더 느리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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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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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물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선 그렇게 좋은 느낌의 단어는 아니다. 세상물정을 안다는 것은 이제는 속세(?)의 때가 묻어 더 이상한 순수한 아이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웬만큼 살아본 경험을 담보로 남에게 쉽게 속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들여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물정과는 조금 다르다. 이 사회를 사회학자의 눈으로 본 시각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도 언급했듯이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를 '세상으로서의 사회'로 인식한다면 사회학자는 '세계로서의 사회'로 인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텍스트를 노련하게 읽고 그 이론을 이 세상에 적용하여 사회를 해석한다는 것이 우리같은 범인들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이 필요없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해야겠다. 강신주의 다상담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이론과 실천은 절름발이처럼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언행일치라고 해서 이론과 실천이 동시에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둘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론으로 한발 나아가면 실천으로 다른 한발이 나아가면서 한 개인 나아가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반대로 행동이 먼저 나아갔는데 알고보니 이런 이론도 있었더라며 이론을 발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고 흔들리며 조금씩 나아가야지만 발전이 있는 것이다.

 

  책에서 기억나는 부분은 개인에 대한 관심이 곧 자기 속에서 사회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나 개인이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문제들.. 그것들에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 이 책의 힘은 여기에 있다.

 개인에 대한 관심은 나의 이익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작은 단위 속에서 반복되는 사회라는 커다란 단위에 대한 생각이다. 개인에 대한 관심을 나의 이익에 대한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개인을 언급할수록 탐욕스러워지지만, 자기 속에서 사회를 발견하는 사람은 개인을 언급할수록 품이 넓어진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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