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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랑 나랑 함께 살아요! ㅣ 그림책 보물창고 48
낸시 코펠트 지음, 신형건 옮김, 트리샤 투사 그림 / 보물창고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이혼이 더이상 특별하거나 낯선 것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내 주변에는 이혼을 준비중이거나, 이혼을 한 친구들이 제법 된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는 않지만 이혼에 대해 고려를 해 본 적이 없다. 이혼은 절대 안돼!라며 우리 어머니들처럼 인내하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함께 살면서 함께 살지 않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따른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아이때문에 어쩔 수 없이 라는 단서를 달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함께 살면서 볼 꼴 못볼 꼴 다 보여주며 아이 가슴에 주는 상처가,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받는 상처보다 결코 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아이의 부모가 이혼이나 별거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 과정이나, 그 과정을 아이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 생략된 채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이는 어떤 때는 엄마와 살고 어떤 때는 아빠와 산다. 아이가 엄마 집과 아빠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이는 예전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어울리는 친구도 예전과 같다. 그리고 강아지 프레드는 엄마집에서 살 때도 아빠집에서 살 때도 항상 같이 산다. 프레드는 엄마집에서도 아빠집에서도 각기 다른 장난을 친다. 그렇지만 언제나 '나'와 함께 논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엄마와 아빠가 프레드의 장난을 참지 못한 채 "난 프레드랑 살 수가 없어!"라고 소리쳤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프레드는 엄마나 아빠랑 살지 않아도 돼요. 프레드는 나랑 살 거니까요!"라고. 분명, 이 아이의 부모는 그들이 헤어질 때도 그랬을 것이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거나 서로의 차이를 좁히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함께 살 수 없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글의 내용이나 그림에서 아이의 분노는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엄마, 아빠는 '나'와는 어떤 유대감도 없는 존재이다. 엄마, 아빠가 함께 살지 않아도 '나'는 상관이 없다.
예전에는 '가족'이 한 개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사회에서 '가정'의 역할과 영향력은 아직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그것이 점점 허물어져가고 있음을 분명 느낄 것이다. '가족'보다는 개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 속의 아이는 부모보다 강아지 프레드와의 유대감이 더 끈끈하다.
그래도 이 아이에게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족'의 해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라고 믿었던 가족이 해체되고 이제는 '가족'이 아닌 '나'의 삶을 사는 시대이다. 아이들도 부모의 이혼을 상처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각자의 삶을 위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족'이나 '가정'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가정으로 회귀하라고 할 수 있을까?
'가정'이 긍정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서로가 작은 불편 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살아가는 데 힘과 의지가 되어주는 진정한 '가족', 행복한 '가정'이라면 말이다.
한 친구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혼, 결코 쉽지 않은 일이야.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그냥 살아지는 게 결혼이야. 상대의 목소리만 들어도, 상대의 물건만 봐도 진저리가 쳐지고 못견딜 정도가 되어야 진짜 이혼이 되더라." 고. 그렇기에 나는 이혼을 한 부모들을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의 아이처럼 강아지에게 더 의지하고 유대감을 느끼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예전같으면 나와 가장 가까우면서 나를 이해해주는 존재라고 하면 분명 '부모'라고 대답했을텐데 이젠 그런 대답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