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저주(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잭 스나이더 감독, 사라 폴리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제목 : 새벽의 저주 Dawn Of The Dead, 2004
원작 : 조지 로메로-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2 - 시체들의 새벽 George A. Romero's Dawn Of The Dead, 1978’
감독 : 잭 스나이더
출연 : 사라 폴리, 빙 라메스, 제이크 웨버, 타이 버렐 등
등급 : 18세 관람가
작성 : 2008.04.24.




“차라리 지겨운 감이 없지 않았던 원작을 다시 보겠네.”
-즉흥 감상-




  한동안 뭐가 그리 바빴던 것인지, 그나마 중간고사가 끝난 오늘 저녁이 되어서야 약간이나마 편안해진 기분으로 밀려버린 감상기록을 잡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는 로메로 감독님의 ‘시체’ 시리즈의 리메이크 중 하나를 조금 소개해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병원에서 초과근무중인 한 간호사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러면서 ‘물려서’ 입원했던 환자의 이야기가 오가게 되는데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물려서’ 병원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결국은 퇴근해 집에 오게 된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의 품 안에서 일단 잠들게 되는데요. 한잠 자고 일어나보니 무슨 이유때문인지 상태가 이상해진 딸아이가 열려진 문틈으로 서있었고, 그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접근하게 되는 남편은 그만 ‘그것’으로 변해버린 딸아이에게 물어 뜯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어뜯긴 나머지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이 다시 일어나 주인공을 향해 덤벼들게 되는데요. 아슬아슬하게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상황의 혼란 속에서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다시금 정신을 차린 그녀는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과 합류하게 됨에, ‘그것’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시도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그 결과로서 일단은 ‘대형 쇼핑몰’ 같은 곳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먼저 그곳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과 마찰이 있게 되고, 어떻게든 그 사태를 진정시켜 그 장소를 장악하게 되는데요. 한동안은 나름대로 즐거웠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결국 위험을 마주하게 된 그들은 결국 탈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흐음. 어떤 분들은 속도감 있는 ‘그것’의 모습에 오랜만에 괜찮은 액션영화를 만나보았다는 평들도 보이지만, 글쎄요. 저는 그 빠른 속도감으로 인해 애초부터 맨손으로 일대일 대결을 벌일 경우 인간 쪽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기분 때문이었는지, 처음에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버거워지는 공포감을 선사하신 로메로 감독님의 원작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랄까요? 한정된 공간에서 술래잡기를 할 때를 예로 들어, 둘 다 같이 뛰어다니며 함께 지쳐버리기보다는 추격자는 분위기를 잡으며 걸어가고 도망자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하는 전술이 은근히 지독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번 작품은 전작에 비해 조금 가벼운 느낌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앞선 작품들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도 있었는데요. 바로, ‘그것의 탄생’ 이었습니다.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면, 이 ‘탄생’은 아직 작품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힌트를 조금 적어보아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데드 얼라이브 Dead Alive, Braindead, 1992’에서 짧게 실험된 ‘위대한 탄생’이 이번 작품에서도 시도되었다고만 적어봅니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제작진은 ‘리메이크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었어도, 개인적으로는 ‘질을 떨어뜨린 리메이크’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면 제목을 우선으로 비슷한 상황 설정을 과감히 밀어머리는 것이 좋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그런 결론을 이끌어낸 듯합니다.




  그래도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 South Park’를 통해 먼저 만나보았었던, 탈출하기 위해 특수제작 되는 자동차의 모습과 이어서 소개해볼 영화 ‘[Rec], 2007’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듯한-엔딩 크레딧과 함께하는-본편의 뒷이야기 부분은 정말 멋졌다고 속삭여보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입니다. 
 

TEXT No. 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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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킹의 시너
톰 홀랜드 감독, 마이클 콘스탄틴 외 출연 / 블루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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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너 Thinner, 1996
원작 : 스티븐 킹-소설 ‘Thinner, 1984’
감독 : 톰 홀랜드
출연 : 로버트 존 벌크, 조 맨테그나, 루신다 제니 등
작성 : 2008.04.22.




“무엇이든, 지나치면 피를 보기 마련이니.”
-즉흥 감상-




  아아. 국가기록원 견학을 다녀 온지도 벌써 이주일이라는 시간이 다되어갑니다. 그런데,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장대한 여정 속에서 만난 작품에 대해 이제야 정리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니요! 아무튼, 긴말은 생략하고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보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은 뿌연 안개 속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기나긴 행렬로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저 따사롭게만 보이는 아침햇살이 비칠 때까지 계속 달려가는 자동차들을 지켜보며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푸짐한 체격의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 있게 되는데요. 출근하기 전에 체중을 먼저 재는 것으로 가벼운 식사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주인공이 변호사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는 소개가 있게 되는 작품은, 하루하루 살과 삶의 전쟁을 치르던 어느 날. 파티 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부인과 함께 ‘그짓’을 하던 중 교통사고를 내게 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그 결과 마침 마을에 들리게 되었던 떠돌이 집시무리 중 노파를 치게 되었고, 그 대가로 노파의 남편이자 집시무리의 대장으로부터 ‘말라갈 것’을 저주받게 됩니다. 
  ‘저주’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주인공은 처음에는 살이 쫙쫙 빠져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게 되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비정상적인 속도로 살이 빠져나감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거기에 교통사고와 관련된 판사 또한 저주의 하나로 피부병에 걸리게 되었는데요.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노력하던 주인공은 결국 집시일행을 찾아가게 되지만, 집시무리의 거센 반발에 그만 폭발해버리고 마는데…….




  이번 작품은 저자가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책을 원작으로 만든 것임을 조사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서 ‘리처드 바크먼=스티븐 킹’이라는 공식이 들통나버렸다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는데요. 아쉬운 점은 문제의 그 작품이 국내로는 번역서가 소개된 기록이 보이지 않다는 것이니, 하나 둘씩 예전 책 또한 재출간하는 흐름을 따라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뭐 이런 이야기는 여담이고, 이번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뚱뚱한 사람이 순식간에 말라깽이가 된다는 설정은 예전에 지나가는 길에 만난 적 있던 영화 ‘너티 프로페서 The Nutty Professor, 1996’,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Shallow Hal, 2001’, 그리고 ‘미녀는 괴로워 Pounds Beauty, 2006’를 차례로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약을 먹거나 최면에 걸리거나 수술을 통해 뚱뚱해서 괴로웠던 옛 시절과 작별할 수 있었던 주인공이 아닌 ‘저주’를 통해 살이 빠지는 것도 모자라 해골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토록 소망했던 ‘다이어트'의 심각한 부작용을 보는 것 같아 겁이 나버렸는데요. 문제는 영화로만 봐서는 그리 무서운 기분은 들지 않으니 국내로도 책이 정식으로 출판되어줬으면 해봅니다.



  어디서의 언급이었더라? 영화 ‘슈퍼 사이즈 미 Super Size Me, 2004’였던가? 아무튼, 우리는 비자연적인 환상의 먹을거리를 통해 살이 찐 다음 쉽게 빠지지 않는 후유증을 경험중이라는 이론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한편, ‘어쩔 수 없다’라는 심리와 함께 말라있는 것이 최고로 인정받는 생활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 것인데요. 살이 찌지 않아 괴로워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영화를 교훈삼아 ‘저주 다이어트’를 개발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몸에 좋은 것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었으니, 글쎄요. 이 작품에서 해결책으로 나온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저주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다이어트’의 측면에서는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도 원작자인 스티븐 킹 님이 출연하셨는데요. 으흠? 그러고 보니 ‘미래의 묵시록 The Stand, 1994 ’에도 생각보다 긴 시간 출연하셨는데 기록을 빼먹었습니다. 아무튼, 이번 작품에서는 짧게나마 약국에서 흰 가운 입고 계셨다는 것만 속삭여볼까 하는군요. 
 

TEXT No.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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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18
헤르만 헤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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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데미안 DEMIAN, 1919
저자 : 헤르만 헤세
역자 : 정홍택
출판 : 소담출판사
작성 : 2008.04.19.




“당신의 인생은 누구의 선택인가?”
-즉흥 감상-




  책을 많이 읽는 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 달 평균 최소 세권 정도의 책을 읽으며 마침표를 만나는 것 마다 감상기록을 남기고 있었다보니, 그 흔적을 한꺼번에 보신 분들은 ‘책 많이 읽어서 좋겠네요.’와 같은 부러움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도 간혹 ‘당연히 봤어야했지 않느냐’고 하시는 책이 소개될 경우, 아직 안 읽고 있었다는 사실에 ‘당신 어느 별에서 왔냐?’의 반응까지 받곤 했는데요. 이번에 소개해볼 책 또한 가장 가까운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잔소리를 들었던 작품이자, 오랜만에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읽게 된 것임을 알려드리며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으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으로 우선은 유년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는군요. 
  그렇게 이야기의 바통을 쥐고 있는 화자가 10살이었던 때로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두 세계’의 설명이 있게 됩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안정적인 세계인 ‘집’과 파격적이고 변화무쌍한 세계인 ‘집 밖’이었는데요. 그런 양 극단의 세계에 대해 주인공은 어울려 다니던 또래집단에서 있게 되었던, ‘거짓말’로 인해 꼬여버린 인생을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피 말리는 나날 속에서 구세주마냥 등장하게 되는 전학생 ‘막스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영원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새로운 배움의 터를 위해 진학을 하게 된 주인공은 데미안과의 헤어짐은 물론이고 방황의 시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방황과 깨달음을 반복하던 주인공은 그토록 찾아 해매이던 하나의 ‘진리’에 도달하게 되지만…….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처음 이 작품을 읽어 들어가면서 자꾸만 데이비드 셀처의 소설 ‘오멘 The Omen, 1976’에 등장하는 데미안을 연상할 수 있었는데요. 심상치 않은 중압감으로 화자는 물론이고 읽고 있는 저로 하여금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의 구렁텅이를 선사하는 그 모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상되는 다른 작품들도 있었으니 바로 파울로 코엘료 님의 소설 ‘연금술사 O Alquimista, 1988’에 이어 ‘순례자 O Diario de um Mago, 1987’를 말할 수 있겠는데요.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은 도입부에서의 충격을 제외하고는 방금 말한 두 작품이 현재의 시점에서는 더 이해가 편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원 벤치의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주인공의 방황 부분을 읽는 동안 ‘거리의 전도사’분들과의 규칙적인 마찰을 경험해서였는지, 아니면 주인공의 체험이 개인적으로 와 닿지 않았던 것인지, 차라리 집중되지 않는 결말에 이르는 과정부분에 대해서는 소설 ‘오 자히르 O Zahir, 2005’를 다시 읽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볼 수 있었는데요. 한편으로는 이 책이 처음 소개되고 한 세기가 다 되어가면서도 이정도의 심적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그토록 찾아 해매이던 ‘진리’이자 ‘그녀’의 모습으로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이었는데요. ‘거리의 전도사’ 분들과의 대화에서도 나온 ‘하나이자 모든 것’에 대해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이미지까지 같이 연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여성인 듯 하면서도 남성의 모습이 있으며, 양 양극단의 세계와 그에 대한 모든 중간지대의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는 ‘존재’에 대한 설명은 한편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의 작품 세계까지 떠올리게 했는데요. 그것에 대한 설명은 이번작품에 대한 이야기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 자진 생략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작품의 시작부분이 그렇게도 충격적이었을까요? 저는 그것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거짓말의 악순환’이라는 추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감히 장담해보려 하는데요. 물론 모든 분들의 삶이 다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자존심과 관련된 사소한 거짓말이 크게 커짐으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빠져봤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슴 하나 가득 불편한 심정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의 주인공이 참 답답한 녀석이라는 기분이 들었는데요. 결국 자신의 주체성을 구축하기 보다는 남에게 하염없이 끌려 다닌다는 기분이 들자, 주인공이 바로 옆에 있는 친구 녀석이었다면 같이 산속으로 캠핑을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단순히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자괴감에 허덕이는 것 보다는 죽음으로의 경험을 시켜 줘봐야 정신을 차리지, 허약해빠진 영혼, 하루 종일 우는 소리만 내는 것 같아 짜증이 났습니다. 으흠? 그러고 보니 현재에도 저만 보면 우는 소리를 내는 녀석이 하나있으니 이 책을 한번 추천해보던지 캠핑에 한번 데려가 ‘대리죽음’을 맛보여주던지 해봐야겠습니다.




  자, 그럼 본궤도로 재진입하여 ‘데미안’입니다. 저는 이 친구를 ‘몽상가’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의 주인공 마냥-단지 조금 앞서 걸어가고 있었을 뿐-양 극단의 세상 속에서 배회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떠한 답도 내지 않으면서 ‘진리’로의 과정과 이론만을 읊조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듯한 모습에, 역시나 한방 쥐어박아주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멘토’라 하여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지표가 되어주는 정신적 스승이었다는 것은 좋지만, 일말의 책임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인공이나 발변 다를 것 없다는 기분이 들어버렸는데요.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이니 혹 그런 부분의 영향이 있기 때문이라면 가르침의 시간을 청해보고 싶습니다.




  처음은 좋았지만,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붕~ 떠버린 기분이 들어버렸는지라 이번 작품이 독자를 대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함인지 판단이 쉽게 서질 않았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유년시절의 고통어린 기억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진리’를 찾기 위한 머나먼 여정. 그리고 답을 찾았으면서도 답을 향한 새로운 여정이 열리는 모습을 통해 ‘이것이 바로 삶의 모습이다!’까지는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장대하다면 장대하다 말할 수 있을 시간의 강을 넘어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저는 다른 분들의 의견이 더 궁금해지는군요.




  그건 그렇고,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서 위의 즉흥 감상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제가 듣기로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누구하나 쉽게 믿지 못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어도 무인도에 홀로 존재하는 것 마냥 끝없는 고독을 경험중이라는 것을 쉽게 부정 할 수 없을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인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외로움의 해소’에 대한 ‘열쇠’를 가진 존재가 혹시 옆에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심리 때문인지, 아니면 ‘자극’이 될 만한 무엇인가가 등장함에 새로운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되는 것인지, 이리저리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위의 즉흥 감상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의 영화가 한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였던가요? 예전에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 영화를 보려고 하면 이런 문구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근례에 읽은 도서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You've GOT to Read This Book, 2006’의 내용마냥, 우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른 한 사함’을 만남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 좌표를 인식하고, 자극받으며, 새로운 방향성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한 것이라면, 결국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은 자기 자신 뿐! 홀로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한 체 생을 마감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에 열심히 살아가보고자 다짐해 봅니다. 거기에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나쁜 인연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교훈삼아 이왕이면 ‘좋은 인연’으로서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싶지만, 지내온 시간이라는 것이 스스로 강해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왔기에 그저 이때까지와 같이, 아니 좀 더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뿐이로군요.




  그럼 저만의 ‘데미안’을 찾기보다는, 스스로가 이번 책을 통해 만나본 데미안보다 ‘훨씬 책임감이 있는 데미안’이 되자고 다짐 섞인 기합을 넣어보며 기록을 마쳐볼까 합니다.




“내 인생이 ‘우리 것’이 되기 전에

우선은 ‘내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TEXT No. 676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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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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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글쓰기 생각쓰기 On Writing Well-30th Anniversary edition, 1976~2006
저자 : 윌리엄 진저
역자 : 이한중
출판 : 돌베개
작성 : 2008.04.16.




“답은 이미 나와 있었으니.”
-즉흥 감상-


  간혹, 평생 한 번 읽어볼까 말까 의심이 드는 책을 만날 기회가 주어짐에도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책도 과제를 처리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된 그런 부류의 책이 되겠는데요. 언젠가부터 자만심에 빠져 ‘글쓰기’에 대해 우습게 생각하고 있던 저를 되돌아보게 한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현재의 시점에서 글을 쓰는 행위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으며,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저자의 [서론]으로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어떤 행사에서의 ‘직업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문답형식의 강연장의 모습으로 본론으로의 장이 열리게 되는데요. 그것에 이어 글을 쓰기 위한 ‘기본자세’에 대한 설명이 나오게 됩니다[1부 좋은 글쓰기의 원칙].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 꼭 [2부 알아두어야 할 것들]에 대한 짧은 소개에 이어, 좀 더 실질적인 예시를 통해 논픽션,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전문분야, 업무보고서, 비평, 유머 등의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오게 됩니다[3부 여러 가지 형식]. 그리고는 저자의 사실적인 경험을 통해 익히게 된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존재감 확립’에 대한 몇 가지 재미있는 실험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요[4부 글씨기의 자세]. 으흠? 그것에 이어지는 마지막으로는 [영어 글쓰기를 위한 조언]으로서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결론부터 적어보자면, 이때까지 읽어봤었던 몇 가지의 ‘글쓰기 책’중에서 분명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으면서도 읽어 들어가는 것이 참 힘들었던 책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도서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You've GOT to Read This Book, 2006’를 읽을 때 마냥, ‘유명 인사들이 말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읽어본 게 몇 없다니!!’와 같은 공황상태를 경험하게 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거기에 [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이 된 문제이지만, 분명 저자가 어떤 사례에 대한 설명 도중 ‘농담’을 하는 것 같은데도 번역 상에서의 문제인지, 정서상의 차이 때문인지 그다지 와 닿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방금 위에서 언급한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소개해보자면, 스티븐 킹 님의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2001’와 딘 R. 쿤츠 님의 ‘베스트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 How to Write Best Selling Fiction, 1981’. 거기에 비록 글쓰기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전업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스즈키 코지님의 ‘새로운 노래를 불러라 あたらし․い うた うたい, 1997’라는 책들을 말할 수 있겠는데요. 이 경우에는 해당 작가님들의 책을 거의 다 읽어보고 그들이 글을 쓰는 삶을 통해 익혀왔었던 것들에 대한 설명을 접해서인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반면, 이번 책일 경우에는 일단 저자부터 처음 뵙는 분 이었으며 그분의 다른 책은커녕, 책 안에서 예시로 등장하는 다른 글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인지 부분부분 재미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이해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역자 분이 아쉬운 대로 번역하신 것인지, [영어 글쓰기를 위한 조언] 부분은 그리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일단 마침표를 봐야한다는 일념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으흠. 영어로 글쓰기 공부를 하시는 분이 아니고서는 꼭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럼 책에 대한 첫 느낌은 이 정도로 마치고, 책을 읽어 들어가면서 생각하게 된 것을 몇 자 적어볼까 하는데요. 
  우선, ‘회고록: 나에 대한 글쓰기’의 시작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대학 작문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화로, 무슨 문제가 있느냐의 저자의 질문에 “우리는 선생님이 바라는 걸 써야 해요.”라고 답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때문이었는데요. 여기서 살짝 고발(?)을 해보아도 “누구를 위하여 리포트를 작성하는가?”를 소리 높여 외쳐보는 바입니다. 작성자의 의지는 애초부터 묵살되어 이미 만들어진 리포트에 살짝 각색만 더한 불법 복제물이 당연시 되고 있는 것을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인식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저작권’관련으로 수업을 들으면서도 ‘불법복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통해 “현실과 이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라며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러버리고 말았었는데요.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씀 하시는 분들, 일단 써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비평: 예술에 대한 글쓰기’였는데요. 비평가critic와 평자reviewer의 구분에 대한 설명에서 이어지는, 두 분야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의 나열이 저를 그저 즐겁게 만들어줬습니다. 바로, ‘비평가는 자신이 평가하는 매체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줄거리를 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말아야한다.’, ‘구체적인 디테일을 이용하자’ 등이었는데요. 비록 그것과 함께 설명되는 예시는 이해가 어려웠지만, 이번의 기록을 포함하여 공식 674회째 감상기록을 작성중인 저에게 있어서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따라서 여러분이 비평가가 되고 싶다면, 먼저 전문으로 하려는 매체의 문헌들을 섭렵해야한다.’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는데요. 한 작품이 나왔을 때 그것 하나만을 보고 평가하기 보다는 그것이 나오기 이전에 그것의 ‘모태’가 되었던 작품을 시작으로, 앞서 다른 형태로 나온 작품들에 대한 지식까지 갖추었을 때 ‘입체적인 감상’의 장이 열린 다는 것을 경험해 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저의 ‘감상기록’에 어느 정도 전문성을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있다는 점에서 제 가슴은 흥분됨의 고동을 알리고 있군요. 
  그 밖으로도 부분적으로 공감 가는 것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다 적어버렸다가는 이 기록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일단은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한 언급을 마쳐볼까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 그러고 보니 방학기간동안 있었던 사건 중에서 노동청에서 주관하는 ‘성취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에도 동네에 있는 공공도서관으로 ‘인턴’으로서 1년 계약직이 성립 되었었지만,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기 소개서’ 작성법에 대한 안내와 면접에 대한 모의실험을 했었는데요. 나름대로 글을 쓴다는 자부심으로 작성했었던 ‘자기소개서’가 그 과정을 통해서는 왜 그렇게도 초라해 보이는 것인지, 역시 사람은 직접, 포기 하지 않고, 용기 있는 자세로, 마침표를 찍기를 다짐하며, 많은 글을 써봐야 한다는 것을 실감해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지금 작성중인 이런 ‘리뷰-감상기록’ 또한 공식적으로는 2002년 02월 06일자로 시작되었던 것이기에 어느덧 8년째 작성중이다보니, 처음의 기록과 현재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그만큼의 많은 발전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요. 그렇다보니 이런 ‘감상문’ 하나만큼은 두렵기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 저를 확인해 볼 수 있어, 그저 자랑스럽다는 기분마저 드는 듯합니다.




  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잠시 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군요. 사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 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신 또한 글쓰기가 두려운 자 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요. 글쎄요. 아직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었다보니, 이 책의 저자처럼 무엇인가 색다를 것 같은 작문 선생님을 만나 뵈어 가르침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빨라진 만큼 사람 본체의 속도도 빨라져야 할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 그렇기에 그 처리속도를 따라잡고자 컴퓨터를 만들게 되었건만, 정작 컴퓨터는 단순 계산만 할 줄 알았을 뿐 실질적인 것은 사람이 입력해야만 하는 상황. 그리고 그런 모순 때문인지 수많은 편법들이 난무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서 도덕과 윤리라는 것이 은연중에 그 존재성을 상실해 버렸다고 생각하는 저는, 어차피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면 저 혼자만이라도 정도를 지키려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들 말하니, 저는 저 나름대로 열심히, 감히 ‘무한’의 이름을 걸고 있는 감상기록 계속해보고자 합니다. 
 

TEXT No. 674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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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오브 데드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 : 랜드 오브 데드 Land Of The Dead, 2005
감독 : 조지 로메로
출연 : 사이몬 베이커, 데니스 호퍼, 아시아 아르젠토, 로버트 조이 등
등급 : 국내 18세 관람가
작성 : 2008.04.12.




“살아남기 위해선 진화해야만 했었다!!”
-즉흥 삼상-




  사실,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1990’을 볼까 했었지만, 감독 정보가 달라 이왕이면 로메로 감독님의 작품을 먼저 접해보고자 해서 이번 작품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역시나 기대를 확실히 충족시켜준 이번 작품에 대해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흑백 화면으로 ‘얼마 전’, 죽은 자들이 살아 일어나 돌아다니면서 살아있는 사람을 주식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공포와 혼란의 방송으로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로서 칼라로 전환되는 화면을 보이게 되는데요. 어둠의 시간 속에서 ‘그것’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게 됩니다. 
  그렇게 물자 조달을 위해 ‘예전의 도시’를 방문하는 살아있는 자들의 모습이 있게 되는데요. 작은 사고가 있게 되지만 무사히 ‘현재의 도시’에 돌아오게 되는 것으로 새로운 삶의 무대를 소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든 불화가 생기기 마련인지, 살아남은 자들의 마을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시작으로 삶의 균형이 깨지는 것과 함께, 이미 죽어있음에도 나름대로 살아남아보고자 그들의 도시에 몰려들기 시작한 ‘그것’들이 있게 되는데요. 이 사태를 진정시켜보고자 길을 떠나게 된 주인공 인행은 과연 그들이 원하는 마침표를 만나게 될 것인지…….




  밤, 새벽, 날, 그리고 ‘땅’.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3 - 시체들의 날 Day Of The Dead, 1985’로부터 20년이라는 시간을 공백을 두고서 세상에 나온 이번 작품은 정말이지 로메로 감독님을 ‘거장’의 이름으로 불러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작품이 발전해온 순서대로의 만남을 통해 ‘현재’적 관점으로서 궤도에 진입했기 때문인지, 모든 것이 그저 ‘적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인데요. 오락성과 사회고발성, 액션과 해학 등 많은 것들이 균형을 잡아감에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도시’의 모습이었는데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님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Le Livre Secret Des Fourmis, 1993’에서의 계층분할에 대한 예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체계’의 유지를 위한 권력구조의 분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붕괴되기 시작하는 균형의 모습은, 안과 밖의 엄청난 빈부격차의 모습에 이어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대립에까지 그 어떤 심각성을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했는데요.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지 이어진 4부작은 서로 닮아있는 ‘무엇’이 있다고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먹고 마시며 사랑하는 것? 통제되는 환경 속에서 무한할 것 같아 보이는 자유를 쟁취, 유지하는 것?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그런 ‘육체라는 생체 시스템’으로 인해 일단 일정한 ‘한계’를 가진 다음 ‘사회라는 지배 시스템’으로 인해 자유의사마도 속박되어버리는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진지한 검토를 해봐야 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글쎄요. 요즘 추세는 3부작이 끝나고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경우 크게는 6부작까지 만드는 것이 유행인 것처럼 보이기에 ‘땅’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른 새로운 시리즈에 대한 정보가 보이지 않는 바. 이번 시리즈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리메이크’들을 만나볼 것을 예고해드리며 기록을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670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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