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 : 성경 왜곡의 역사-누가, 왜 성경을 왜곡 했는가Misquoting Jesus: The Story Behind Who Changed the Bible and Why, 2005
저자 : 바트 어만
역자 : 민경식
출판 : 청림출판
작성 : 2007.08.31.




“성서는 매우 인간적인 책이다.”
-본문 중에서-




  이 기록은 화창한 주말의 날씨에 한적한 공원 등의 벤치에 앉아 독서를 즐기던 저에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야말로 진리랍시고 형광펜까지 죽죽 그어진 부분을 펼쳐들고 열심히 설교를 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바쳐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이번 책에 대한 추천의 글로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하면서 이번 책에 대한 집필의 주제를 품게 되었다던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이어지는 기록은[서론-잃어버린 원문을 찾아서], 로마제국과 유대교의 신화적 전통의 차이점을 기점으로 기독교의 모태가 된 ‘정경’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소게됩니다[1장. 성서의 기원]. 그리고 ‘책의 종교’라 말하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기록문서가 처음 어떻게 제작되었는지에 대해 필사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의 의도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변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2장. 초기 기독교의 필사자들]. 계속해서 ‘신약성서’를 기준으로 각각의 언어로 번역되는 필사서에서 발견되는 서로 다른 내용에[3장. 신약성서의 전승과정], 복제에 복제를 거듭해 그 진실성이 불확실해진 성서의 원문을 추적해나가는 사람들과 그 나름대로의 방법 등의 소게가 나오게 되는데요[4. 원문을 찾아 나선 사람들], 그 방법에 대한 실증적인 예시가 좀 더 상세하게 전개되기 시작합니다[5장. 원독법 탐구의 중요성]. 거기에 감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을 변조에 대한 이야기[6장, 7장. 본문을 왜곡시킨 교리적, 사회적 요인들]와 함께 저자는 그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결론. 성서의 변개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아. 결론부터 적어보자면 재미가 반이고 지루함이 반이었습니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학과 관련으로 공부를 하며 만난 여러 책들과 최근 접하게 된 영화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 1986’, 소설 ‘내 이름은 빨강MY NAME IS RED, 1998’까지 접하며 각각의 ‘진리의 서’들이 초기에 어떻게 제작되고 유포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공부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는 것이고, 지루했던 부분은 이 책에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설명으로 성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비교 분석하며 설명한 부분이었는데요. 그래도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필사’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을 어린 시절에 우연히 접한 적 있던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떠올라버려 그만 흥분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너무 오래된 기억 속에 존재하던 것이었기에 증거랍시고 열심히 찾아보긴 했었지만 그 출처를 명확히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아쉬울 뿐이었는데요. 대신 그 내용으로 성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경’과 ‘외경’으로 나뉘게 된 사연을 말하고 있었다고 적어봅니다. 아무튼, 이번 책을 통해서는 그동안 ‘기록’이라는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어가는 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듣고 생각해왔던 저에게 있어서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길거리의 복음 전파자’들의 억지 같던 논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논리적인 답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논리’라는 것 자체가 진실 된 기록을 왜곡한다고까지 열변하시던 그분들의 모습이 뒤이어 떠오르니, 흐음. 글쎄요. 이 세상의 흐름은 그런 다양함으로서 존재한다고도 하니 그냥 그러려니 넘겨볼까 합니다.




  기록. 그리고 그것을 복제해나가던 과정인 ‘필사’. 요즘에야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최소 한번쯤은 필사라는 행위를 경험해보셨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보는데요. 아직 젊은 나이인 저일지라도 최근처럼 고성능의 컴퓨터가 보급되었던 시절이 아닌 디스켓으로 컴퓨터를 부팅 하고 하드디스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컴퓨터의 학창시절을 지냈었기에 숙제나 벌칙 등으로 인해 손으로 하얀 지면 한 장 이상에 빡빡하게 글씨를 적는, 일명 ‘빡지’라는 것을 해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라는 것이 인쇄된 원문의 내용을 똑같이 손으로 베껴 쓰는-복사를 하는 것이었기에 그것을 ‘필사’의 경험이 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가장 최근 기억으로도 자필로 작성한 리포트를 제출하라하시기에 출력한 리포트를 다시 손으로 열심히 베껴 쓴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지우개나 수정액이 때마침 보이지 않아 그 수많은 글씨 사이에 ‘오타’를 그냥 남겨 버리거나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비슷한 음절이 있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중간의 한 뭉텅이를 날려버린다거나, 다른 사람의 리포트에 대해 그것이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교묘하게 재구성해본 추억들이 이번에 읽은 책에 묘사되는 필사자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비단 저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종교의 성서인 ‘성경’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누군들 상상이나 해보셨을까나요?




  그래서 이번에는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과연 우리가 얼마만큼의 영역을 ‘인지’ 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감각이라는 오감-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중심으로 우리는 시시각각 과거가 되어버리는 현재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지영역을 벗어나라버리게 되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70화(2003년 8월 17일자로 방영)’에 나오는 도나 히그비 박사의 ‘무의식에 의한 불가시 현상’에다가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인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같이 말할 수 있을 상황이 되고 만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까운 예로 ‘내가 할줄 알면 다른 사람은 당연 할줄 알아야 한다’는 심리를 예로 들 수 있기에,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대의 문헌 기록자들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는 저자의 모습에 나름대로 이해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현재보다 확연히 높은 문맹률을 자랑하던 고대에 농업과 수산업 등에 종사하던 분들이자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 된 ‘기원’인지, 거기에 한점 의심 없는 순수한 믿음으로서 모든 것을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종교적인 문제를 거론하고자 한 것이 아니니 다시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인데요.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이 기록물들이 무형의 ‘말씀’들을 ‘활자’로서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 형태가 변경되었으며, 그것이 전파되고자하는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또 그 과정에서 이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의도적이었든 비의도적이었든 ‘변질’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를 빼버린다면, 우리가 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저작물들에서도 위와 같은 이야기를 말 할 수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까운 예로. 황순원 등의 한국현대소설의 여러 출판물들을 펼쳐보면 <일러두기>부분을 통해 ‘표기는 원문의 효과를 고려하여 발표당시의 표기를 중시했으나, 방언은 살리되 의미전달을 위해 되도록 현대 표기법을 따랐다. 띄어쓰기는 개정된 한글 맞춤법에 따랐다’ 등으로 안내가 되어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요. 한때 한국현대소설을 전자문서로 보관해본답시고 워드작업을 해본 적이 있던 저로서는 각 출판사별로 미묘한 차이를 가진 것도 있으며 한번씩은 문장이나 문단 단위로 잘려 나가있는 것도 만나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직접 손으로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뿐이지 타자기마냥 키보드를 두들기며 전자지면에 글씨를 일일이 적는 행위는 필사가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라 할 수 있기에 오늘날의 책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되는 ‘변화’를 경험중이라는 것에 쉽게 부정을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거기에 외국 번역본 중 각 언어영역에 따른 방언과 같은 미묘한 언어 사용법의 차이로 인해 번역시에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위한 변형이 가해지기도 하며, 같은 책일지라도 번역가에 따라 작품이 변해버리고 만다는 사실은 현재 수집중인 ‘스티븐 킹’이라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다채로운 번역본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리고 이념에 따라 같은 이름으로 미묘한 변화를 거듭해나가는 책-기록물. 이번 책의 저자분은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위에 적어둔 말을 했다지만, 저는 그것을 “책은 매우 인간적인 기록이다.”라고 고쳐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 또한 기록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동반해-어쩌면 기원을 찾아가는 방향을 제시했을 수도 있지만-원문이라는 진실이 사실상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을 현재에서 또 하나의 ‘이론’으로서 또 다른 미래로의 길을 열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책-기록’에 대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 기록을 마치고자합니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TEXT No. 493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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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내 이름은 빨강BENIM ADIM KIRMIZI, 1998
저자 : 오르한 파묵
역자 : 이난아
출판 : 민음사
작성 : 2007.08.28.




“그럼, 내 이름은?”
-즉흥 감상-




  수많은 작품들에 대해 “추천해주세요~”라고 말해놓고 나름대로의 답을 받았다지만 사실상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책 또한 그동안 몇 분이 추천해 주셨던 책이 되겠는데요. 그나마 독서모임에서 8월의 선정도서로 지정되어 이렇게 만나보게 되었음을 알려드리며 작품에 대한 짧은 소개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작품은 자신이 죽은 상태라는 것을 말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먼저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또 다른 한 남자가 이야기의 바통을 이어받게 되는군요. 
  그렇게 본론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는 한명의 세밀화가의 죽음을 중심으로 범인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함께, 그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는 이슬람의 군주인 술탄의 밀서에 대한 진상을 통해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적 충돌 등의 이야기가 그저 어렵게 풀려나가는 연인 한 쌍의 아슬아슬한 로맨스와 섞이며, 처음에는 각각의 이야기로 시작된 것이 뒤로 가면 갈수록 거대한 그림을 그려가며 대단원의 마침표를 향한 숨 막히는 질주를 하기시작 하는데…….




  후우. 이 감기록을 작성중인 지금은 새 학기가 시작되어 그나마 한가로운 첫 주간이라서 그렇지, 이 책을 읽을 당시만 해도 방학동안 열심히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깜빡하고 있던 독서모임을 며칠 앞두고 급하게 책을 사서 정신없이 잃었었습니다. 결국에는 모임시간까지 다 읽지 못해 결론에 이르는 나름대로의 ‘느낌’도 없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지만, 이 작품을 읽는 중에는 우선 수많은 단편적인 조각을 하나하나 짜 맞추어 거대한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직소퍼즐’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밀화’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영화 ‘장미의 이름Le Nom De La Rose, 1986’에서 성경 필사본에 삽화를 그리는 수도승들을 연상하는 즐거움이 있었으며, 최근 읽기 시작한 ‘성경 왜곡의 역사-누가, 왜 성경을 왜곡 했는가Misquoting Jesus: The Story Behind Who Changed the Bible and Why, 2005’를 읽어들어 감에 있어서는 외화드라마 ‘CSI-Crime Scene Investigation’를 문서로 만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까지 했다고 감히 생각하는데요. 그러면서도 각각의 이야기와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빨강’을 찾는 재미는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듯했으며, 한편의 멋진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진실을 향한 숨 막힘까지, 크허! 왜 그동안 추천을 받아왔었는지 이해가 되는 느낌이라면 설명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이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이라는 것은 그 만큼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생각이 들긴 했지만,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이라는 지방과 그 문화권의 역사 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저로서는 작품 안에서 말해지는 세밀화가 지닌 그곳만의 이야기들에 대해 그나마 작품상의 주인공들의 심정을 빗댄 설명이 있어서 그랬지 생각보다 어렵다는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문화적 충돌을 통해 자신들만의 고유성의 유지냐 소멸이냐에 대한 갈등과 대립의 상황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고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을 더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기분이 들었는데요. 거기에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이야기의 기록자가 작품속의 주인공이기도 했다는 설정에 얼마나 충격을 받아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구요? 뭐. 궁금하신 분은 직접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장해보렵니다(웃음)




  이야기는 사람 수 만큼 존재한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모여 이 세상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면, 과연 저는 이 세상의 거대한 그림을 위한 어떤 작은 한 조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흐음. 그럼 저 자신만의 진정한 이름을 찾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인생이 담긴 작품 하나를 집어 들어보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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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게임
리처드 바크만 지음 / 반도기획 / 1994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 : 완전한 게임The Long Walk, 1979
저자 : 스티븐 킹
역자 : 김진준
출판 : 반도기획
작성 : 2007.08.19.




“이건 스티븐 킹 님 식의 로드 무비?!”
-즉흥 감상-




  우선 ‘happy.net’의 ‘동글이’님께 감사함을 말하고자합니다.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든 책을-비록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제 손에 들어오게 해주셨고, 거기에 저의 착각으로 같이 사버린 다른 책들로 인해 감상의 새로운 지표를 제시해주셨기 때문인데요. 아무튼, 걷기를 좋아하던 제가 그 ‘걷기’라는 행위에 대해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 보게 한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어머니와 함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어느 장소에 도착하는 듯한 한 소년의 모습으로 그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소년과 비슷한 또래의 100명의 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드디어 걷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군요. 
  처음에는 가벼운 기분으로 소년들은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걷고 또 걸으면서 3개의 경고를 받게 되는 소년들이 하나 둘씩 강제적으로 운명을 달리하게 되면서부터 ‘롱워크’라는 경기의 실체와 그 심각성이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제가 왜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롱워크’라는, 얼핏 봐서는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경기에 참가하게 된 소년들의 이야기라 생각하면서, 한명씩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저세상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그저 어이가 가출해버리는 듯한 기분을 받아버렸었는데요. 결국 게임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다니요!!




  걷기. 걸어서 10분 거리라도 멀다면서 투정부리는 이들을 간혹 볼 때마다. 심지어 그 상황에서 자가용을 애용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만보계나 기타 운동기구와 함께 어두운 밤의 시간마다 일부러 걸어 다니면서까지 운동을 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1시간 이상 걷는 게 아니라면 그리 멀다고도 생각이 들지 않으며 그저 바쁘다는 생활 속에서의 작은 여유를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걸어 다님을 즐기는 저로서는 그저 혼란을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걷기야말로 가장 일상 적인 것인데 그것마저 운동이라 생각하고 별도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제가 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질 따름입니다.




  그러고 보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걷기’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로 먼저 기록을 남겨버렸는데요. 그만큼 그저 일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걷기’라는 행위를 작가님의 필터를 통해본 또 하나의 세상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붉은 여왕’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 산뜻한 충격을 받아버렸습니다. 뭐랄까요? ‘앨리스’에서는 달리기를 멈출 경우 현재라는 움직임의 흐름에서 뒤쳐져버려 사라져버림을 말하고 있다 판단하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 걷기를 포기할 시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궤도에서 사라져버림을 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기점에서 ‘올바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상대적인 가치에 기준을 잡아 서로의 길이 잘 걸어왔고 잘 걷지 못했다는 평가를 종종 내리곤 하는데요. 이번 작품에서처럼 그 끝을 알 수 없이 시작을 함께한 많은 이들이 결국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는 설정에서 저는 이번의 작품이 한편의 로드무비이자 인생을 대변한다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걷고 있는 길은 하나로 다른 지나쳐온 길들이 보이지 않게 되지만, 사실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을 경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과연 저는 저만의 인생의 길을 얼마만큼 오래 걸어왔고 나름대로의 결승점을 향해 얼마나 더 걸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혼자 중얼거려보며 이번 감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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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스티븐 킹 지음 / 홍원출판사 / 1992년 6월
평점 :
절판


[알림] '공중그네'라는 작품은 '쿠조'의 또다른 번역서임에 일단 리뷰를 등록해보게 도



제목 : 쿠조CUJO - Author of FIRE STARTER, 1981
저자 : 스티븐 킹
역자 : 정성호
출판 : 밝은세상
작성 : 2007.08.07.




“역시 작품은 예고편을 먼저 접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흥 감상-




  네? 시작부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구요? 아아. 당장 본론부터 들어가 보자면 저는 처음 이 작품에 대해 ‘흡혈박쥐에게 물려 미쳐가는 개 이야기’라고 들어왔었고 영화 ‘나이트 플라이어Night Flier, 1997’를 거치면서는 주연 같은 조연인 뱀파이어의 대리자처럼 등장하는 어떤 개의 모습을 통해 ‘개도 뱀파이어가 될 수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었는데요. 결국 이렇게 문제의 작품을 실제로 만나는 순간 엄청난 실험정신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처참하게 무너져감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분명 즐거운 시간을 질수 있었기에 조금 소개해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우선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옛날,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괴물의 죽음이 하나의 전설이 되었을 무렵, 마을에 나타난 또 한 마리의 괴물이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본론의 장이 열리게 되는군요. 
  그렇게 이야기는 어느 날 야생토끼를 쫒던 중 동굴로 떨어진 ‘쿠조’라는 이름의 개가 있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우연히 콧등을 박쥐에게 상처를 입게 되어 점점 상태가 나빠지던 중 결국 자신의 통제력을 상실해-미쳐버려 난동을 부린다는 것을 중심으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처음에는 각각의 작은 문제점에서 시작되어 이어서는 그것 모두가 하나의 끔찍한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사실 즉흥 감상으로 ‘배너맨 보안관에게 조의를 표하며.’라고 작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이어서는 “표지의 개는 ‘세인트 버나드’가 아니었다!!”라고 적으려고까지 했었는데요. 우선 배너맨 보안관은 앞서 소개한 소설 ‘죽음의 지대The Dead Zone, 1979’에서의 이야기에 뒤이어 등장하다가 비중 있는 역할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그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 표지에는 늑대와 비슷한 개가 그려져 있는데 반해 ‘세인트 버나드’는 영화 ‘베토벤Beethoven’시리즈를 통해 ‘참 성격 좋은 개’이자 큰 덩치에 비해 그저 한 없이 둔해 보이기에 키워볼까도 생각했었던 녀석이었는데요. 그러한 사전지식이 없이 이 작품을 접하신 분들은 국내 번역서를 통해 많은 오해를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번 작품의 영상물에 대한 평가에도 경고처럼 기록되어있었지만, 사실 원작이라 말해지는 이 책을 통해서도 이렇다 할 생각할 거리에 대해 언급해볼 것이 썩 없었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가벼운 비극적 요소로 가득한 일상이라도 그것이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될 경우 최악의 사태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작가님의 운명의 장난질에 대해 그저 극찬에 가까운 감정을 느껴버렸는데요. 그럼에도 작품 내의 교훈에 대해 적어보라하신다면, ‘만약 개를 기르게 될 경우 광견병 예방주사를 꼭 처방하라!’라거나 ‘예쁜 아내를 심심하게 하면 가정에 불화가 생긴다.’, ‘평소에 착하게 살아라.’ 정도가 될까 모르겠습니다. 아. ‘때로는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의 말일지라도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까지 더해봐야겠군요.




  아아. 어제까지는 야근도 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할 일도 없이 창 외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감상해보는군요. 해물파전에 막걸리가 땡기는 날씨지만, 점심을 잘못 먹었는지 나오는 것 없이 화장실로의 단골손님이 되어버렸고, 흐음. 설마 어제 따꼼하게 앉아 피를 빨아먹던 모기를 잡다가 피가 튀었는데 저도 쿠조화(?)되어가는 중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장마마냥 연일 이어지는 빗길 조심하시고, 상태 안 좋아 보이는 도시 짐승(?)들을 또한 조심하실 것 을 당부 드리며, 이번 감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483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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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 이토준지 공포만화 콜렉션 8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 : 인형의 집あやつり や-しき, 1998
저자 : 이토준지
역자 : 고현진
작성 : 2007.08.06.




“오랜만에 보니 재미있네?!”
-즉흥 감상-




  매번 비슷한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생각이 들자 그저 지겨워짐에 잠시 읽기를 중단했던 것을 지독하리만치 순식간에 누적되어가는 사무실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해보고자 다시금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군요?




  작품은 어둠이 내린 밤의 주택단지에 들어서는 아이스크림 차와 그것에 환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되는데요. 미청년이 운행하는 아이들만 태워주는 아이스크림 차는 사실…… [아이스크림버스], 유령의 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폐허를 방문하게 되는 세 소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두 소녀가 그곳을 들어간 후부터 절친했던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지게 되는데…… [동지의 집], 담배를 핀 것에 대한 적발 현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문제의 담배와 관련된 모임의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던 담배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데…… [흡연회], 흥얼거리는 듯한 소리의 음악. 그러면서도 복사되지 않는 신비한 느낌의 레코드를 친구에게서 훔치게 되는 한 소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레코드를 작동시킬 수 있는 장치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되면서 그 레코드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중고레코드], 3일 동안이나 잠들 수 없다고 말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애인은 그의 말을 심각한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마는군요. 그리고 그와 함께 밤을 넘기던 중 그녀는 그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는데…… [꿈속의 주민], 모든 이가 잠들어있을 밤의 시간. 어떤 집을 방문하게 되는 한 남자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는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남자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최면을 걸게 되는군요.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최면술사는 자신이 시전한 최면술에 대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면서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데…… [최면술], 자신을 가난한 떠돌이 인형사의 집에서 태어났다는 소개와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로 이어져 광시곡으로의 마침표를 준비하게 되는데…… [인형의 집]




  작가와의 인터뷰에 대해 지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라서 일까요?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이 작품들을 만나서일까요? 이번에 접하게 된 모든 이야기들은 한 편 한 편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줌에 즐거운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특정 대상만을 위한 봉사행위에 대해 그 범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해볼 수 있을 상상 중에서 그 극단성 마저 뛰어넘은 이야기, 원한으로까지 발전하고야만 집념, 아마도 작가분이 담배를 절대적으로 싫어할 것이라 예상이 되게 하는 이야기, ‘링’시리즈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는 듯한 이야기, 영화 ‘장몽長い夢, 2000’의 또 다른 버전이라 생각하게 했던 이야기, 이해의 영역을 벋어났다 판단되었지만 최면술로 인해 만들어진 사이코페스의 이야기를 본 듯한 이야기, 누가 진정한 조정자인지 헷갈려버렸으면서도 이 사회에 대한 힘의 원리와 개성의 존재성에 대해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 보게 한 이야기까지, 언젠가부터 방전되어버린 듯한 뇌력이 충전되는 기분이 들어 그저 황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일상에 있어 너무나도 극단적이기에 그 가능성마저 애써 무시해가는 이야기를 섬세한 그림체로서 그저 기괴하게 그려낸다 생각되는 작가님의 작품을 또 한 묶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인분과의 대화를 짧게 더해본다면 공포장르의 작가 분들일 경우 예상과는 달리 취미생활이 정말 건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일반인들보다도 더욱 건전하기에 그 반대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관찰력과 통찰력, 상상력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공포 장르를 스티븐 킹 님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접하고 있다지만 모던 호러 소설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분 또한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공포로 물들이시는 능력을 가지셨는데 반해 에세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서는 누구보다도 건전한 삶의 모습을 가지셨다는 점에서… 네? 알아듣지도 못할 깨달음을 적기보다 암흑을 토해내는 작가라는 작자들이 무슨 취미 생활을 가졌는지나 적어보라구요? 흐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인터뷰와 에세이를 찾아보실 것을 권장해 보렵니다. 저는 감상꾼일 뿐이지 대변인은 아니니까요(웃음) 
 

TEXT No. 482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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