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다른 농장에서 고추모종을 옮겨 심고, 오후엔 올해 심을 벼 종자 수량을 점검했다. 이곳 흙살림 토종연구소에서는 토종벼의 보존, 실험재배, 보급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조도, 산도, 흑미도, 천주도, 다다조, 옥돼지찹쌀(?) 등등 듣도 보지도 못한 종자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토종 종자들의 대부분은 현재 재배되고 있는 종들보다 맛이나 풍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의 종자들이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개량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 맛이 우수한 토종 종자들도 있다. 이들은 이땅에서 오랬동안 그 생명력을 유지해 온것만큼 병충해에도 매우 강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토종을 생산하는 농가도 별로 없을뿐더러 이것을 찾는 소비자들도 없어 토종이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토종이 좀더 알려져 우리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그날이 과연올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가마니를 들어 저울에 놓아 기록하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만큼 여유를 갖게 된것이 신통방통하다.^^

 

저녁에는 실질상 귀농학교를 운영하시게 될 교장인 반명수 선생님과의 만남이 있었다. 반 선생님은 인근 소이라는 곳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계시는 농민이시다. 그분의 몇십년의 노하우를 어떻게 전수받게 될지 사뭇 기대됐다. 반 선생님은 "일하는 게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꿈을 시각화하면 즐거워지지만, 시간을 때우려고 생각하면 지겨울거예요"라며 한말씀 건네셨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일하며 배우자는 말씀이시다. 솔직히 지금까지 과정을 돌아보면 그다지 재미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 꽉 짜여진 시간과 여유없는 노동이 조금은 숨막혔다. 게다가 일주일의 대부분을 풀뽑기와 돌줍기로 시간을 보냈으니 살며시 회의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교장의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혹시 난 지금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무엇이건 기초라는 과정은 무던히도 지겹고 힘들지 않던가. 지금의 시간을 기초 체력을 다지는 시간으로 생각하며 보낸다면 조금은 재미를 느껴볼 여지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교장은 아이디어가 넘쳐 흐른다. 문제는 그 아이디어가 과연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일단 농장에 음악이 퍼져 나가고, 허리 통증을 완화할 운동시설의 제조, 흙벽돌집짓기 교육 등등. 포부가 멋지다. 함께 재미있게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 그리고 잡설 한마디. 우리 연수생들과 함께 농장을 지키고 있는 절름발이 암탉이 몰래 알을 낳았다. 옆에서 물도 꼴딱꼴딱 먹으며 아양을 떨더니 알까지 주다니 ^^ 볼 수록 물건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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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까지 일(농장의 화단 정리)을 마치고 오후엔 집으로 향했다.

 

 

6일 만에 딸을 볼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연애시절 지금의 아내를 기다리던 심정과 비슷한 느낌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다. 딸아이가 멀리서부터 팔을 벌리고 뛰어온다. 아, 이런... 눈물이 핑 돈다. 에구구구, 내 새끼... 부모님이 아직도 다 큰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된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그래도 딸아이를 번쩍 들고서 빙빙 돌아본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엔 그야말로 시체놀이. 딸아이가 감기에 걸린 통에 밖으로 나가 놀지 못한다는 걸 핑계삼아 하루종일 누워 지냈다. 이런, 쯧쯧. 하루만에 딸아이와 노는 것을 힘들어하다니. 얼른얼른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니, 하나 더. 지금 이렇게 사는게 옳은가라는 의문도 다시 고개를 든다. 그래도, 일단 한발을 내딛였으니 조금만 더 나아가 보자. 그리고 나서 판단하자.

 

다음날 새벽, 딸아이의 잠든 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딸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 살며시 손을 잡고나서 잠깐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자리를 떴다. 다시 괴산으로 향해야 한다.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하지만 '흙과 논다고 생각하자'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놀러가는 거야. 흙하고 말이야. 내 귀여운 딸아이도 머지않아 이 흙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겠지. 이렇게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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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저쪽에 사다리좀 가져와 줘"

하우스 안쪽에 비닐막을 치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사다리가 어디 있는거야?' 멀리서 사다리를 찾고 있는 L씨를 지켜보는 나도 궁금했다. 저쪽에 있다는 사다리가 L씨와 내 눈엔 비치지 않은 것이다. 지켜보다 못한 K 형님께서 직접 사다리를 찾아 가져오신다. '어라, 이게 사다리였네!'

 

 

 

고정관념이란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아니, 우스운거다. 멀쩡하게 있는 것도 보이지 않게 만드니 말이다. 평상시 자주 보아왔던 사다리와 조금만 다르게 생겨도 사다리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다니.. 분명 사다리인데 사다리인줄 모르고 지나쳐갔다는게 민망하다. 고정관념 속에 쌓여 실체를 모른 체 지나쳐버린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 반성해본다.

 

오늘은 비닐하우스 안에 물을 잔뜩 뿌리고 있다. 스프링쿨러를 통해 골고루 뿌린다. 홍수가 난다는 기분으로 뿌려야 한다. 발로 찍었을 때 발바닥에 물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말이다. 다른 하우스 안의 땅을 쟁기로 갈던 중 파이프가 파손됐다. 물을 잠그로 파이프를 고치느라 또 진땀을 뻈다.

 

 

기계의 편리함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 함께 공존하는 순간이다. 기계란 결국 말썽을 피우기 마련이지 않던가. 기계가 주는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우리는 그 말썽에도 대처해야만 한다. 편리와 말썽 사이 그 어디쯤의 이득에 따라 우리는 기계를 더 사랑할 수도, 또는 폐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문명은 어느 정도의 자리에 처해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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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싸움이야

축구의 미드필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농사 이야기다. 하루 종일 일하는 동안 허리 펴고 있는 시간이 별로 없을 정도다. 그래서 나온 푸념이다. 오늘은 트랙터에 쟁기를 연결해 땅을 갈았다. 쟁기질은 로타리보다 5센티미터 정도 더 깊게 땅을 팔 수 있다. 물론 트랙터는 내가 몰지 않았다. 솔직히 난 트랙터에 관심이 없다. 그것을 장만할 정도의 여유도 없을 뿐더러 그것을 사용할 정도의 넓은 땅을 갖고 있거나 임대할 정도의 여력마저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경운기 정도면 딱 내 수준에 맞을 것 같다. 얼른 경운기 모는 법이나 배워서 실전에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튼 쟁기질을 하고 난 후 땅에는 돌무더기가 무성하다. 이 돌을 모아 한곳으로 치우다 보니 징그러울 정도다. 만약 조그마한 돌까지 깡그리 다 모아 한곳에 쌓아둔다면 마이산의 돌탑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개의 돌탑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정말 많다. 허리 펼 시간이 없을 정도로. 그런데 이건 서막에 불과하다고 한다. K 형님 가라사대다.

 

 

 

돌을 고르고 난 뒤엔 스프링쿨러를 통해 하우스 2동에 물을 뿌렸다. 홍수가 날 정도로 뿌리라는 지시다. 이것은 이유가 있다. 단지 흙 속 부산물들이 잘 썩어 좋은 거름이 되는 것을 넘어 지하수위라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지하수위와 심토파쇄와의 관계는 전문적인 내용이라 다른 곳에 기록해두기로 한다. 한가지 밝혀둔다면 하우스는 사막과 환경이 같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막=하우스’. 뭔가 멋있는 공식 같지만, 그래서 과학적인 농법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방법은 항상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뛰어난 농부들의 보다 뛰어난 감각이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밀한 기계의 도움 없이도 풍작을 만드는 미다스의 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 그렇다면 농부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인가. 작물을 잘 만지는 사람과 기계를 잘 만지는 사람. ^^; 그러나 그 밑바탕은 작물에 대한 정보 또는 애정이라는 것은 결코 바뀔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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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 해봤자 부잣집 종노릇 밖에 못해"

종노릇 해본 사람은 이 말뜻을 잘 알 것이다. 월급쟁이들이 종이 아니고 무엇인가. 일류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 고액연봉을 받는들 자신의 의지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냐는 뜻일게다. 이 말씀은 현장농민연구원으로 있는 김봉기씨의 입에서 나왔다.

오늘은 현장농민연구원 탐방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에 잠깐 돌 줍는 일을 하고나서 청주로 향했다. 김봉기씨의 작업현장인 비닐하우스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김봉기씨는 1989년부터 유기농을 시작한 뚝심의 농부다. 지금은 2500여평의 하우스에서 토마토, 고추, 생채 등을 기르고 있다. 유기농 농사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신의 아들에게도 함께 할 것을 권장(혹시 강요?)했다. 그래서 아들도 농대를 나와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그런데 어머니는 반대하셨다면서 웃으신다)

 

 

 

이들 가족농은 3중 비닐막과 수막보온효과를 통해 다른 난방장치 없이 사시사철 농사를 짓고 있다. 비닐막 하나는 보통 3.5도 정도의 보온 효과를 지닌다고 한다. 수막보온이란 1중과 2중 비닐 사이에 물을 뿌려 온도차에 의해 안개가 끼면서 보온효과를 띠게 되는 것을 말한다. 김봉기씨는 자신이 작물을 키우면서 병충해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별로 없는 이유를 숯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땅에 매년 숯가루를 뿌려 준 것이 충해를 예방하고 생산량을 늘린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는 땅에 많은 것을 주어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비료는 절대 안된다. 욕심을 부려 비료를 주는 순간 병충해가 찾아온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 농장에 대해서만은 내가 박사'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땅을 바라보고 공부하라고 말한다. 서울대 농학박사가 왔다 하더라도 자기가 농사짓는 땅에서 만큼은 자신보다 더 잘알 수 없을 정도가 되라는 것이다.  김봉기씨는 실제로 미생물 배양이나 액비 제조 등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해왔으며, 자신의 땅에 맞도록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그가 말하는 초보농부가 지켜야 할 세가지 마음자세를 적어본다. 1. 일을 많이 하라. 2. 쉽게 갈 생각을 마라. 3. 돈 많이 벌 생각을 마라.

 

아이고, 머리야. 나는 기껏해야 3번만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쩝, 1번과 2번은 천천히 생각해보자. 아무튼 매일매일 나의 꿈은 시험무대에 올라 서고 있는 셈이다.

 

또하나. 그는  풀이 많은 나는 것을 속상해하지 말라고 한다. 풀이 잘 자라는 곳이 좋은 땅이기 때문이란다. 아이코. 그래도 풀 뽑는 것은 너무 힘들단 말입니다.ㅜㅜ

 

 

현장농민연구원 탐방이 끝나고 우리 연수원생들은 삽을 들었다. 이곳 농장이 아스파라거스 재배를 그만 둔다고 하기에 그것들을 캐서 흙살림 농장에 옮겨심기 위해서다. 아스파라거스는 초보자들이 재배하기에 쉬운 작물이라고 한다. 김봉기씨는 아스파라거스 수확시기가 봄, 가을 3주씩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점이 아쉬워 재배를 그만둔다고 한다. 얼치기 농부에겐 이것도 감지덕지일것 같은데. 아무튼 아스파라거스를 심어보고 재배할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일부러라도 가져보며^^; 삽질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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