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일지 7월 9일 - 하루종일 흐림

 

오늘 한 일 - 토마토 하우스 곁순 정리, 배꼽썩음병 걸린 토마토 제거

 

토끼, 닭, 오리, 흑염소가 모여 사는 비닐하우스 우리가 난리가 났다. 토끼는 어제에 이어 또 탈출했고, 흑염소까지 밖으로 나와 떠돌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밖으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밖으로 나온 동물들을 다시 집으로 들여다 놓았다. 토끼는 두번째이다보니 잡기가 훨씬 쉬웠다. 흑염소는 다행히 큰 말썽없이 우리로 들어갔다.

 

이들을 다시 하우스 안으로 들여다놓고 생각해봤다. 도대체 이들은 왜 탈출하려고 하는 걸까. 영화 <마다가스카>에선 뉴욕의 동물원에서 탈출하는 동물들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선 자유를 향한 탈출이라는 이상과 함께 동물원이 주는 안락함이라는 현실이 잠깐 충돌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유가 좋긴 하지만 때 되면 알어서 나오는 먹이와 잡아먹힐 걱정없는 잠자리가 주는 편안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대립은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들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하지만, 그 자유 속에는 불안과 고독이 꿈틀대고 있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구속을 원하게 된다.

 

나는 자유를 꿈꾸며 귀농을 선택하고자 연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가끔 흔들린다. 자유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아참, 그러고 보니 농장의 동물들이 왜 탈출했는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추측건데 배가 고파서다.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제때 식사가 보장되지 않았으니 갈등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일단 탈출해서 먹어야 한다. 동물들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이들에게 먹이를 꼬박꼬박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농장일에 쫓기다보면 가끔 밥을 챙겨주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니 이들의 탈출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귀농은 어떻게 되련가. 밥은 먹고 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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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1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이 때문에만 탈출하지는 않아요. 짐승들도 갇힌 것 얼마나 싫어하는데요.
더구나 비닐집이 우리라면... 짐승들은 이 더위를 어떻게 견디겠어요.
저희도 죽기 싫어 살려고 탈출을 하지요...

자급자족을 생각하면 시골에서 잘 살 수 있습니다..
농작물 팔며 생계 이으려 하면 도시 못지않게 힘들기만 할 테고요..

하루살이 2013-07-10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닐은 위에만 비가림 형식으로 되어있어요. 아래는 철망으로 구멍이 쏭쏭~.
그리고 그전까지 탈출을 안하던 녀석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탈출한 까닭을 짐작해 본게 먹이였답니다.

아, 그리고 귀농은 자급자족을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그리 녹녹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또한 나 혼자만의 자급자족으로 그치지 않고 지친 사람들의 쉼터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답니다. 특히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추억이 가득한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귀농일지 7월 8일 - 하루종일 비 오락가락

 

2주 전 연수생 한 명이 나가면서 일이 더 힘들어졌다. 더군다나 장마가 오기 전 날씨가 후덥지근하다보니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아토피가 더욱 심해졌다. 몸은 기진맥진한데 일은 산더미이다 보니 기운마저 빠진다. 밤늦게 들어와 밥 먹고 씻다보면 잠이 밀려온다. 열흘동안 귀농일지도 쓰지 못했다. 오늘도 자꾸 감기는 눈을 겨우 이겨가며 글을 쓴다.

 

지난주부터 방울토마토 수확이 시작됐다. 첫 수확 때 230킬로그램, 두번째엔 190킬로그램, 세번째인 오늘 350킬로그램 정도를 땄다.

점점 수확이 늘어나야 할텐데 여건상 그럴 확률은 떨어진다. 배꼽썩음병에 걸린 것이 많기도 하지만, 이 병 탓에 칼슘과 양분을 많이 주면서 물을 듬뿍 준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장마와 겹치면서 수분이 과다하게 공급돼 열매가 모두 터져버린 것이다. 소위 열과가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껍질이 두꺼운 스페셜 얼룩과 핑크체리는 열과 현상이 덜했다. 하지만 핑크 대추는 절반 이상이 터져나가 상품성을 잃었다. 수확이 주는 기쁨보다도 이렇게 수확하는 과정에서 잃게된 것들이 주는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내일부턴 비가 그치고 다시 무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면 열과 현상은 다소 줄어들지 모르겠다. 또한 장마로 인한 습한 기후 탓에 번진 곰팡이와 병균에 대한 방제작업도 가능해지리라. 하지만 무더위로 인한 아토피도 심해져 갈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진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작물이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그것에 사람이 대응을 하듯, 아토피의 변화에 잘 대처해 건강한 몸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정말로 정말로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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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28일 - 때때로 소나기

 

어제, 오늘 한 일 - 신축하우스 점적호스 깔고 멀칭, 방울토마토 정식, 방울토마토 수확

 

여름에 토마토를 키우는 건 어렵다고 한다. 밤 온도가 25도가 넘어서는 열대야가 찾아오면 토마토 꽃가루가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꽃가루가 없으니 벌이 온다 한들 수정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오늘 신축 하우스 2개동에 35센티미터, 40센티미터 간격으로 3400여주를 심었다. 원래 목표는 2주 전, 늦어도 1주 전이었지만 한참이나 뒤처지게 됐다. 무더위와 가까워졌으니 수정이 이루어질 지 걱정이다. 그래서 차광제를 사용할 생각도 있다. 차광제를 사용하면 3~4도 정도 온도를 낮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차광제를 뿌릴 시간이 허락될지도 의문이다. 워낙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늘 방울토마토를 230킬로그램 수확했다. 얼룩이 30킬로그램, 녹색 10킬로그램, 노랑이(조황) 50킬로그램, 핑크체리 대추 70킬로그램, 핑크체리 70킬로그램이다. 이것도 일손을 사서 겨우 해결했다. 그런데 그 일손이란 것이 아주머니 한 분과 70대 할머니 두 분이다. 36도를 넘어서는 하우스 안에서 토마토를 수확하는 일을 할머니들이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할머니를 구하는 것도 농번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빌린 일 손도 어제 예정됐다가 뺏긴 것이다. 시골에서 노동력을 구한다는 건 이제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할머니들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죄송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숙소로 돌아오면 시골 노동력의 또다른 모습과 대하게 된다. 지난주부터 숙소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는 미얀마 청년들이다. 퇴비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신선놀음처럼 보인다.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은 덕분에 그야말로 악덕 기업주를 만나지 않은 이상 근무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들어온 이들은 여유롭게 책도 읽고 멀리 떨어진 가족들과 장시간 전화통화를 한다. 반면 아침 6시나 7시부터 시작해 저녁 8시, 9시에 겨우 일을 끝내 녹초가 된 연수생들은 밥먹고 잠자기에도 빠듯한 하루다. 설마 이주노동자를 부러워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할머니와 이주 노동자, 이게 농촌이 지니고 있는 노동력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도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노동력 대신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감자를 캐느라 이곳저곳에서 아주머니와 할머니로 이루어진 열명 남짓의 품팔이도 기계 하나로 대체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자 캐기에서부터 수확, 선별까지 가능한 기계가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소농들의 농사에 대한 생각은 기계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사람 없는 시골, 기계만 돌아가는 시골, 상상이 가는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여지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멀지않아 우리 눈앞에 닥칠 현실일 수도 있음을 절감한다. 그러나 이것을 걱정하는 이는 세상에 드물다. 이미 시골은 먼 풍경에 있고, 사람들은 그저 마트에서 돈만 건네면 시골이 내어 놓은 산물을 마음껏 집어갈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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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25일 - 하루 종일 쨍쨍, 저녁 9시부터 비

 

오늘 한 일 - 잔디 정리, 신축 하우스 한 개 동 점적 호스 설치, 다른 한 개 동 유박 뿌리고 스프링클러로 10분간 물 줌.

 

오늘은 오전에 현장농민연구원 탐방이 있었다. 충북 음성군에 위치한 성기남씨 농장이다. 비가림 하우스 2400평 중 1200평을 고추농사 짓고 있다. 물론 유기농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실력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여년 전부터 남들이 안된다고 말하는 고추 유기농을 시도해 성공하신 분이다. 평당 10만원 가까이 수입을 올리실 정도로 경지에 달하셨다. 이날 탐방엔 김미화씨와 쌈지농부 천호균 고문 등도 참가했다.

 

2년에 한 번 유기농 축분을 주고, 철저히 윤작을 하며, 농작물의 부산물은 갈아엎어 땅으로 되돌려 땅심을 키웠다. 그래서 웬만한 병충해는 그냥 놔두어도 큰 피해없이 넘어간다고 한다. 다만 진딧물은 그 피해의 정도가 심해 할 수 없이 담배 훈증을 한다.

성기남씨가 말하는 기술적인 부분도 도움이 됐지만 그분이 말하는 삶의 철학도 가슴에 와 닿았다. 고추를 키우면서 우주를 본다는 그의 말은 고추를 키우는 것이 사람을 키우는 것과 닮았다는 뜻이며, 모든 생명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성기남씨가 말씀하신 것 중 가장 가슴을 울린 부분은 쓸만한 놈들만 고르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에 잘 난 놈들만 잘 났다고 살 수 없듯, 고추도 못나고 부실해 보여도 다 품어 안으라는 것이다. 그가 고추를 파는 방식 또한 그래서 특별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이런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만 고추를 내어준다는 것이다. 즉 좋은 것, 특별한 것만을 쫓는 사람들에겐 고추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못나도 내 자식이요, 잘나도 내 자식이듯, 사람을 자연을 생명을 그렇게 부모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참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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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20일 하루종일 무더위 하우스 들어가기가 겁나다

 

오늘 한 일 - 동물 우리 옆 애플마 밭 풀 정리, 신축하우스 두둑 정리 및 돌 치우기

 

유럽의 목초지를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고 평온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풀 속엔 소똥이 잔뜩 쌓여있다. 지나가는 자에겐 풍경이지만 머문 자에겐 생활인 셈이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흔하다. 생활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이곳 흙살림 농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수생들은 머물 사람들이 아니다. 이곳을 오랜 시간 지킬 사람은 따로 있다. 이들에겐 농장이 생활의 공간이다. 생활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공간도 다르게 다가온다. 그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변화는 힘든 일이다.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정체는 참기 힘들다. 떠도는 사람들이 머무는 사람들 틈에 끼이면서 공간엔 변화가 생긴다.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머무는 사람들은 선택해야 한다.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연수생 입장에서 보면 농장을 견학오러 온 사람들은 떠날 사람들이다. 반면 연수생은 머무는 사람이 된다. 떠날 사람이 아니라 머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연수생의 태도도 바뀌어진다. 일종의 생활공간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 것이다. 즉 연수생은 떠날 사람이자 머무는 사람인 것이다.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연수생들도 제각각 농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달걀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병아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파종한 토종콩이 싹을 틔웠다. 콩깍지를 깨고 나와야 새로운 세대가 탄생한다.

 

나를 둘러싼 벽을 깨뜨려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벽들은 나를 가로막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론 평온히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벽을 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차가운 겨울 아침 이불 속에서 일어나기가 힘들듯 말이다. 그러나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야지만 세상과 접할 수 있다. 평생을 이불 속에 산다는 것, 평화롭지만 권태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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