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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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 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런 까닭에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일치 속에서 살아가므로 원초적으로 행복하다. 또한 그들은 지구에게도 행복을 준다. 지구가 원하는 것은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순환의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인데 그들은 나무를 베어 그걸로 책을 만들고 한쪽 구석에 쌓아놓는, 이른바 순환의 톱니바퀴에서 이빨을 빼내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자기 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까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뜯어 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3쪽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는 이는 전체 숫자에 비해서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책 자체가 아닌 세계, 즉 책이 놓인 공간 속에서 책의 의미를 살펴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언명의 비진리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책, 넓게 말해서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 즉, 세계가 텍스트에 앞서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텍스트는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거짓을 앞세워 자신에 앞서 있던 세계를 희롱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텍스트는 그것 자체로 일정한 힘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 와중에 세계와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텍스트도 생겨났다. 이것은 인간 의식의 분열인 동시에 세계의 분열이다. 결국 이것은 세계의 불행이며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불행이다.
-4-5쪽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궁극적으로 두 가지 이다. 하나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탐욕이다. 공포는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요, 탐욕은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즐거움에 의해 생겨난다. -11쪽

직립 보행 이후 인간의 모든 행위는 환경과의 끊임없는 소통의 산물이다. 인간이 폭력적인 것은 폭력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쪽

매체는 가장 직접적으로 텍스트를 옮기는 도구이다. ...중략...
텍스트를 담은 그릇만 외따로 떨어져 있으면 그것은 그저 텍스트 덩어리일 뿐이다. 그것의 본래 목표는 텍스트를 전달하는 데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합해서 넓은 의미의 매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6쪽

텍스트를 수용하는 집단과 텍스트를 담는 매체가 텍스트의 유통과 전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임은 이미 앞서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러면 이것을 좀더 다듬어보기로 하자. 거듭 말하지만 텍스트는 외따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것이 널리 열심히 읽히는 것은 텍스트를 생산하고 그것이 전달되는 중간의 여러 절차들과 조직들 전체가 유기적으로 작용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이 전체는 크게 세 가지 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텍스트의 내용이요, 다른 하나는 그 텍스트를 만들어내고 공유하는 조직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 텍스트를 기록하고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테크놀러지, 즉 좁은 의미의 매체라는 층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가 서로를 긴밀하게 제약하면서 성립한다. 이를테면 텍스트를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방식은 텍스트 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그것을 공유하는 조직의 형태에도 파급력이 있을 수 있는데, 이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점은 모든 요소들의 그러한 관계들은 순수한 텍스트적인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텍스트의 내용 자체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컨텍스트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이다. -68-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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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3-0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라는 말이 참 와 닿더라구요. 원환식 구성도 맘에 들고, 좋은 책이었습니다.

마늘빵 2006-03-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이 책 괜찮았습니다. 본문 내용보다는 전 앞장에 써 있는 저 부분이 더 좋더라구요. 본문은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어요. ^^
 
지식의 사기꾼 -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거짓 신화를 창조한 사람들
하인리히 찬클 지음, 김현정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2월
합본절판


프로이트가 몇 안되는, 그것도 극히 일부분을 피상적으로만 분석한 사례에서 다양한 이론을 구축한 사실은 매우 놀랄 만하다. 그가 1907년 자신의 모든 기록을 불태웠기 때문에 가설의 토대를 좀더 자세히 검토하기 위한 문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몇몇 사례에서 고의적으로 사기행각을 범했는지, 혹은 그가 무의식적 자기기만에 빠진 것은 아닌지는 지금까지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일시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렸으며, 옛 친구들을 상대로 비방했던 편집증 증세로 자신 역시 고통받았다는 일부 증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인간의 심리기제를 보다 잘 통찰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과 가설을 개발하는 데 큰 공적을 세운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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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사기꾼 -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거짓 신화를 창조한 사람들
하인리히 찬클 지음, 김현정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합본절판


 지금 이 시점에서 출간된 <지식의 사기꾼>은 많은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출판사 또한 이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온나라가 황우석 박사 사기 사건으로 큰 혼란에 휩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신문에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이 사건에 대한 후속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 모두가 지금은 그가 전 국민을 상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 러브 황우석 팬들은 제외해야할지 모르지만. 믿었던 국가적인 지식인에게 크게 당한 지금, 각 분야에서 이름을 드높이며 사기를 친 이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이 책은 관심을 받을 밖에.

  <지식의 사기꾼>은 내가 애초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철학사적으로, 혹은 사상사적으로 이름을 높인 이들의 음모론이나 사기행각, 파렴치한 행동 등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지나친 잘못된 기대에 기인한다. 이 책은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는 '지식인'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잘보면 제목은 '지식인의 사기'가 아니라 '지식의 사기꾼'이다. 각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이들을 담아낸 책이다. 그러니 나의 실망감에 대해 책은 죄가 없다.

  학계에 있어서, 학문에 있어서, 사기행각을 맨 처음 체계적으로 다룬 사람은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라고 한다. 1830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 <영국 학술의 몰락에 관한 고찰들>에서 배비지는 한 꼭지를 할애하며 '학술사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의 사기에 대한 분류를 위조, 요리하기, 다듬기(데이터마사지), 장난질 등으로 나누며 자세히 사기행각의 종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한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사기행각들을 학문의 종류별로 묶어봤다. 첫번째, 화려한 명성과 영광 뒤에 감춰진 유혹, 두번째, '지식인'이 저지른 지능적인 조작과 음모, 세번째,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 첫번째 장은 주로 의학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결핵 예방법, 거식증 환자에 대한 논쟁, 심장학 연구, 에이즈 바이러스, 신약 테스트, 항암화학요법 등에서 나타난 온갖 치졸하고 더러운 행각들. 두번째 장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로이트의 음모와 인격모독적 행위를 비롯하여, 지능검사와 뇌신경전달물질, 다중인격증후군에 대한 조작과 음모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장에서는, 고고학과 민속학, 인류학에서 벌어지는 온갖 조작과 속임수 사건들이 드러난다. 앞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이쪽 분야의 사기사건은 신문지상을 통해서 잘 알려져있는 편이다. 몇년전에 신문에서 봤던 일본 고고학자의 사기사건도 다루고 있다.

  보통 흔히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때의 지식인은 개인과 사회, 국가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의미의 사르트르적 지식인을 의미하진 않는다)의 위대한 성과 뒤에는 온갖 더러운 행각들이 숨어있다. 논문의 결과를 이미 결정해놓고서 이에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남이 쓴 글을 자신이 썼다고 주장하며 표절시비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학계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학계의 권위자에게 빌붙어 있다가 음모와 헛소문으로 상대를 몰아내는 경우도 있다. 없던 것을 있다고 주장하는 황우석 박사와 같은 경우도 있고, 자신이 놀라운 것을 발견한 양 과시하기 위해 증거물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위대한 이들의 사기사건에 놀랄 필요는 없다. 대학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사기사건이다.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지도학생의 논문통과를 막고는 내용을 빼앗아 자신의 것인양 발표하는 경우도 있고, 뛰어난 제자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함께 올려 공저자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다반사다. 황우석은 없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주장했으며, 궁지에 몰리자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밑에 있던 제자가 자기 모르게 한 짓이라 덮어씌우기도 했다. 아직 드러난 진실은 사기라는 것일 뿐. 확실하게 누가 어떻게 어떻게 지시를 했고, 조작을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사기행각이 뒤섞여 종합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사기행각에 찬사를.

  이 책은 여러가지 사기사건을 한꺼번에 다루려다보니 간략간략하게 진행경과만을 언급하고 넘어가고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길게 언급해봐야 알 수도 없을테고, 대중에게 사기행각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정도의 간략한 언급만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못내 아쉬운 부분은 남아있다. 아 이런 사건이 있었구나, 하고 인식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접하면 되겠다. 함께 나온 <과학의 사기꾼>은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사기사건들을 담아내고 있으니, 관심있는 이들은 그 책을 추가로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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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오랫만에 당첨된 시사회였다. 빔 벤더스와 샘 셰퍼드의 20년만의 해후라고 자꾸 강조를 하고 있는데, 난 그들을 모른다. 하지만 자꾸 강조하니 관심이 갈 밖에. 그래서 뒷조사 들어갔는데, 내가 본 빔 벤더스 감독의 유일한 영화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뿐. 또 들어본 작품으로는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가 있는데, 내가 아주 어릴적 영화인지라 이름만 들어본 듯 하다. 꾸준히 영화를 한 감독이고 이런저런 큼지막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럼 샘 셰퍼드는 누군데? 역시 조사들어갔더니 이 사람 역시 꾸준히 영화는 했지만, 띠엄띠엄 했다. <블랙 호크 다운>과 <스텔스>가 익숙하다.

  영화는 한때 아주 잘 나갔으나 지금은 어느 덧 늙어버린 한 서부영화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늙었지만 아직도 그의 영향은 대단해서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보고, 여자들이 뒤따른다. 사막 한 복판 촬영 중 갑자기 말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하워드 스펜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계약된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대뜸 말을 타고 도망가서는 30년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향한다. 왜? 충동적으로 떠났지만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게 되는데, 서부 어딘가에 자신의 아이가 있을거라는.   또다시 앨범 속 사진 한장을 가지고 무작정 떠나는 그.

  이제 늙었기 때문일까. 늙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던걸까. 그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서부의 아이를 찾아 떠돈다. 예전에 아주 젊었을 적에 촬영했던 그곳으로. 그리고 옛 애인과 자신의 아들, 그리고 또다른 이미 죽은 여자의 딸을 발견한다. 젊은 시절의 술, 마약, 여자, 온갖 스캔들로 점철된 방탕한 삶의 종지부를 찍자. 그에게 안겨졌던 명성과 돈은 그의 삶을 방탕하게 이끌었고 그는 다 늙은 지금 도피처를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동안의 삶을 후회하며.


 * 옛 애인과 스펜스의 만남. 아줌마 기막혀 하며 곧 있으면 그를 팰 기세다.

 

 

 

 




 * 당황, 황당, 좌절, 우울, 분노. 방안에 있는 모든 집기 다 내던지고 밖에서 꼬마엠프에 앉아 담배꼬나 물고 기타 연주하고 있는 아들놈. 그리고 도너츠 사왔다며 먹으라고 건네주는 스펜스의 또다른 딸.

 

 

 

 

  카페를 하는 옛 애인과 서부 마을 호프집에서 노래를 하는 자신의 아들, 그리고 엄마의 유골을 품에 안고 다니는 한 여자아이. 잘나가는 영화배우였던 하워드 스펜스는 그렇게 자신의 삶과 마주한다. 가족을 찾아간 스펜스야 그렇다치고, 갑작스레 나타난 그를 마주하는 아들과 또다른 딸, 옛 애인은 어찌하라고. 오히려 안가는 것이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평온한 그들의 삶을 깨뜨렸다. 어릴 땐 아빠가 없는 게 이상해서 물어보곤 했지만 지금은 적응되어 그냥 그럭저럭 악기연주하고 노래하며 살고 있는 아들놈은 갑작스레 나타난 작자가 자기보고 니 애비다, 그러니 오죽 황당할까. 또다른 딸은 되려 담담하다. 오히려 아비를 따라다니며 그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아비는 그 아들만 자신의 아이인줄 알았지 여자아이까지 자신의 딸인줄은 몰랐던 것.

  방탕과 방랑을 끝마치고 이곳에서 가족을 찾는 스펜스와 그들은 예고된 갈등을 겪게 되지만 이내 화해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촬영장을 떠난 그를 쫓는 사설탐정에게 걸렸다. 다시 나머지 장면 찍으러 돌아가야한다. 작별이다. 안녕. 끝내 그를 거부하며 분노를 표출하던 아들놈은 결국 그와 화해를 하고, 딸은 그의 품에 안긴다. 잘나가던 영화배우 스펜스는 자신을 구원해줄 가족의 사랑을 되찾았다.

  영화는 무덤덤하고 약간 지루한 듯 하고 밋밋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이 너무나 재밌다. 스펜스를 제외하고도, 그를 찾아다니는 검은 선그라스를 낀 사설탐정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고요한 호수에 퐁당 돌맹이를 던진 듯한 웃음을 선사한다.

"여기는 스펜스의 트레일러. 여느 배우와 마찬가지로 방탕하게 논 흔적들이 보인다." 녹음.
"이 요리와 이 요리는 어떻게 다르죠?" (한참 가게주인이 설명하자) "그럼 물 한잔만 주세요"


 ← 바로 이 아저씨. 저 장면은 스펜스의 트레일러에서 녹음기에 대고 말하는 장면.

 

 

 

 

 

  또 그의 아들이랍시고 나오는 놈이나 그의 머리텅빈 애인,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또다른 딸의 말과 행동도 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서로 다른 각자의 행동패턴을 보여준다. 특별히 흥겹지도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밋밋한 이 영화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살펴보는 재미만으로 대신할 수 있다.

 

  * 영화를 보고 난 뒤 알게 된 재밌는 사실 하나 : 영화 속 스펜스와 그의 옛 애인은 실제로도 부부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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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영풍문고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구경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난 보통 서점에서 시간때우기용 책구경을 하면 신간 위주로 보긴 하지만, 대략 장르는 인문/사회과학, 비평서, 에세이 쪽을 중심으로 본다. 이때는 아마도 철학대중서를 보고 있었던 듯.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은 그렇게 나와 처음 마주했다. 일단 제목이 끌린다. '책상은 책상이다'. 그래 책상은 책상이야. 그런데 뭐?!, 하고 한번 질문을 던지게 하지 않는가. 아니 책상이 책상이야 그래 그런데 어쨌다는거야?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픈건데? 흔히 친구에게 너는 누구냐, 라고 장난삼아 물어보면 대개는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나야. 그래. 너는 너야. 그런데 그런 너는 누구야. 말장난 같지만, 또 말장난 이기도 하지만 심각한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해 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먹고 마시고 놀기 위해도 아니고, 내 자녀와 손자손녀를 보기 위해서도, 세상이 어떻게 변하가나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찾기위해 우리는 살아간다.

  "지금까지의 삶은 좀더 나를 위한 과정일 뿐이다."

  내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프로필 란에 적혀있는 문구다. 누가 말했느냐. 내가 말했다. 홈페이지에 있어 프로필란은 대외적으로 나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그곳에 나는 저런 문구를 집어넣었다. 아니 무슨 생각으로? 프로필은 내가 누구인가를 소개하는 것인데,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남에게 나를 소개할 만한 것이 없고, 지금의 나를 봐달란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러니 나를 소개하는 대신 그냥 나를 보여주겠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저렇게 대답을 하겠다. 과거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지만, 앞으로 만들어 나갈 나도 나다. 나라는 건 정해져있지 않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내 머리 속엔 저런 생각들이 오고갔다. 정말 제목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청소년용 철학도서로 분류되어 있었다. 페터 빅셀이라는 스위스 작가가 7가지 짧은 이야기를 이 책 속에 담았다. 한편의 동화와도 같고, 한편의 환타지와도 같은, 얼마전 읽은 베스트셀러 <모모>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제목은 이 책 속에 담겨있는 한편의 짧은 이야기의 제목에서 따왔다.

  그는 눈을 뜨면 달라진 삶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똑같다. 시계는 재깍재깍, 방 안엔 책상 하나, 의자 두개, 침대 하나. 뭐 하나 달라진게 없다. 그는 분노한다. 너무나도 똑같은 일상에.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어야 하는거지?"

 이런 질문을 던지다니. 그는 이제 침대를 사진이라, 책상을 양탄자라, 의자를 시계라, 신문을 침대라, 거울을 의자라 부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책상 위에 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혼자만 사용하는 언어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차단시켰다. 다른 이들은 그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그도 결국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말을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만 이야기를 나눈다.

  '책상은 책상이다'는 책장을 펼치기 전에 생각했던 그런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사물을 보지만 한국인과 미국인은 서로 다르게 지칭한다. 한국인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종이로 엮여진 뭉치를 '책'이라 하지만, 미국인은 'Book'이라고 말한다. 집에 들어오면 반겨주는 멍멍 짖는 동물을 한국인은 '강아지'라고 부르지만, 미국인은 'dog'라고 부른다. 같은 사물을 지칭하더라도 표현이 다르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장을 포함하여,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결론을 내리거나 독자에게 어떤 가르침을 전해주지 않는다. 그저 내던져 제시해놓고 독자 스스로가 각자 생각의 장을 펼치도록 열어둔다. 그래서 같은 텍스트를 접하더라도 모든 독자의 머리 속엔 다른 생각이 펼쳐진다. 답을 하나라 제시하지 않고, 또 답이 없다고도 말하지 않고, 답은 여러개다 라는 암묵적인 전제 아래 이 책은 다양한 사고의 장을 열어준다.  어떤 철학이론이나 철학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이 책이 청소년용 철학서로 분류되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분명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을 집필 했을 것이나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텍스트는 독자의 손에 들어왔을 때, 독자의 눈에 들어왔을 때, 증발한다. 남는 것은 그들의 머리 속에서 피어오르는 또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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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2-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에요. 책상은 책상이다를 아이들에게 게임하듯 언어의 사회성을 가르친 적이 있죠. 아이들도 참 재미있어 했는데

마늘빵 2006-02-2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밌는 책이더군요. 중학생 정도에서 읽어도 쉽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흠. 초등학교 고학년도 괜찮겠군요.

balmas 2006-02-2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신림동에 가면 이 이름을 단 헌책방 집도 있어요.

마늘빵 2006-02-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방 이름이기도 하군요. 독특하네요. '책은 책이다'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