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영풍문고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구경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난 보통 서점에서 시간때우기용 책구경을 하면 신간 위주로 보긴 하지만, 대략 장르는 인문/사회과학, 비평서, 에세이 쪽을 중심으로 본다. 이때는 아마도 철학대중서를 보고 있었던 듯.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은 그렇게 나와 처음 마주했다. 일단 제목이 끌린다. '책상은 책상이다'. 그래 책상은 책상이야. 그런데 뭐?!, 하고 한번 질문을 던지게 하지 않는가. 아니 책상이 책상이야 그래 그런데 어쨌다는거야?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픈건데? 흔히 친구에게 너는 누구냐, 라고 장난삼아 물어보면 대개는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나야. 그래. 너는 너야. 그런데 그런 너는 누구야. 말장난 같지만, 또 말장난 이기도 하지만 심각한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해 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먹고 마시고 놀기 위해도 아니고, 내 자녀와 손자손녀를 보기 위해서도, 세상이 어떻게 변하가나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찾기위해 우리는 살아간다.

  "지금까지의 삶은 좀더 나를 위한 과정일 뿐이다."

  내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프로필 란에 적혀있는 문구다. 누가 말했느냐. 내가 말했다. 홈페이지에 있어 프로필란은 대외적으로 나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그곳에 나는 저런 문구를 집어넣었다. 아니 무슨 생각으로? 프로필은 내가 누구인가를 소개하는 것인데,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남에게 나를 소개할 만한 것이 없고, 지금의 나를 봐달란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러니 나를 소개하는 대신 그냥 나를 보여주겠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저렇게 대답을 하겠다. 과거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지만, 앞으로 만들어 나갈 나도 나다. 나라는 건 정해져있지 않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내 머리 속엔 저런 생각들이 오고갔다. 정말 제목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청소년용 철학도서로 분류되어 있었다. 페터 빅셀이라는 스위스 작가가 7가지 짧은 이야기를 이 책 속에 담았다. 한편의 동화와도 같고, 한편의 환타지와도 같은, 얼마전 읽은 베스트셀러 <모모>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제목은 이 책 속에 담겨있는 한편의 짧은 이야기의 제목에서 따왔다.

  그는 눈을 뜨면 달라진 삶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똑같다. 시계는 재깍재깍, 방 안엔 책상 하나, 의자 두개, 침대 하나. 뭐 하나 달라진게 없다. 그는 분노한다. 너무나도 똑같은 일상에.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어야 하는거지?"

 이런 질문을 던지다니. 그는 이제 침대를 사진이라, 책상을 양탄자라, 의자를 시계라, 신문을 침대라, 거울을 의자라 부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책상 위에 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혼자만 사용하는 언어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차단시켰다. 다른 이들은 그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그도 결국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말을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만 이야기를 나눈다.

  '책상은 책상이다'는 책장을 펼치기 전에 생각했던 그런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사물을 보지만 한국인과 미국인은 서로 다르게 지칭한다. 한국인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종이로 엮여진 뭉치를 '책'이라 하지만, 미국인은 'Book'이라고 말한다. 집에 들어오면 반겨주는 멍멍 짖는 동물을 한국인은 '강아지'라고 부르지만, 미국인은 'dog'라고 부른다. 같은 사물을 지칭하더라도 표현이 다르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장을 포함하여,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결론을 내리거나 독자에게 어떤 가르침을 전해주지 않는다. 그저 내던져 제시해놓고 독자 스스로가 각자 생각의 장을 펼치도록 열어둔다. 그래서 같은 텍스트를 접하더라도 모든 독자의 머리 속엔 다른 생각이 펼쳐진다. 답을 하나라 제시하지 않고, 또 답이 없다고도 말하지 않고, 답은 여러개다 라는 암묵적인 전제 아래 이 책은 다양한 사고의 장을 열어준다.  어떤 철학이론이나 철학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이 책이 청소년용 철학서로 분류되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분명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을 집필 했을 것이나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텍스트는 독자의 손에 들어왔을 때, 독자의 눈에 들어왔을 때, 증발한다. 남는 것은 그들의 머리 속에서 피어오르는 또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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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2-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에요. 책상은 책상이다를 아이들에게 게임하듯 언어의 사회성을 가르친 적이 있죠. 아이들도 참 재미있어 했는데

마늘빵 2006-02-2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밌는 책이더군요. 중학생 정도에서 읽어도 쉽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흠. 초등학교 고학년도 괜찮겠군요.

balmas 2006-02-2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신림동에 가면 이 이름을 단 헌책방 집도 있어요.

마늘빵 2006-02-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방 이름이기도 하군요. 독특하네요. '책은 책이다'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