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도 언급했지만, 하비의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의 한국어 번역본은 오역으로 가득차 있다. 역자가 맑스주의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있는지 의심스럽고, 성의없이 번역한 것은 아닌지..

번역본을 사서 보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원문을 보다가 하다가, 짜증이 폭발해서 이제는 원문으로만 본다! 라고 하다가 또 진도가 안나가서 번역본을 보다가 하는 작업의 반복.

내 시간도 아깝고 해서 왠만하면 넘어가겠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정반대로 번역해 놓은 것들이 읽다가 눈에 띄면 정말 화난다.

국역 178페이지, 원문 141페이지를 보자.

The consequent slackening of effective demand was offset in the United states by the war on poverty and the war in Vietnam. But declining corporate productivity and profitablitiy after 1966 meant the beginnings of a fiscal problem in the United States that would not go away except at the price of an acceleration in inflation, which began to undermine the role of th edollar as a sable international reserve currency. (141)

그 결과 침체된 유효수요는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이나 가난과의 전쟁에 의해 고갈되어 버렸다. 그러나 1966년 이후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떨어진 것은 미국에서 재정문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인플레이션의 가속화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이러한 재정문제가 사라질 것 같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안정적 국제준비통화로서 달러의 역할이 손상을 입었다. (178)

원래는 "유효수요의 끊임없는 감소는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과 가난과의 전쟁에 의해 상쇄되었다." 즉 보완되었다는 의미. 따라서 뒤에 나온 '그러나'가 논리적이 된다. 유효수요가 아예 고갈되었다는 것, 그것도 전쟁에 의해! 전쟁이야말로 수요의 창출이고, 가난과의 전쟁이 바로 수요 창출 사업이 아닌가;;;

이런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한 챕터에 두 셋의 오역이 끊임없이 나온다. 독자로서, '봐 줄 수 있는' (중의적이다) 역서의 한계는 어디인가? 누구나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에게 이 책은 봐주다가도 짜증이 나다가도, 그래도 또 봐주게 되는 그런 경우다.

특히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문학도로, '번역서'라는 것은 '한국어로서 학문하기'에 있어 뗄 수 없는 동맹관계에 있다. 사유를 한국어로, 한국어 개념으로 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번역의 질적 양적 수준 미비에 큰 원인이 있다. 아예 '원서'가 더 쉽다는 것. 박사학위자 이상의 지식-생산자는 국문학의 경우에도 원서주의자가 부지기수인 것이 놀랍지 않다. 그럼 다른 학문의 경우는?

한국에서 여타 학문을 하는 이들이 한국어로 사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어라는 언어에 큰 결함이다. 한국어 단어, 문장구조 모두에, 번역은 큰 기여를 한다.

일차적으로는 번역 자체가, 이차적으로는 번역에서 들어오는 한국어 개념과 문장구조 사유구조 자체가 한국어 내에서 소화되어, 새로운 사유, 개념이 도출됨으로서!

번역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고,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작업도 아니다.

80여년전에 김동인은 자신은 소설 창작을 머리 속에서 일본어로 하고, 한국어로 옮겨쓴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땅의 지식인, 지식-생산자들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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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우선은 '번역본'을 구한다. 쫌 보다가 포기한다. 원서를 본다... 영어 공부나 다른 언어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이런 구도? 남한은 인구수나 다른 토대의 문제 때문에 책임있게 번역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될 수 없는 것일까? 책임있게 번역할 수 있는 이의 '수준'이면 남한에서는 자기 논문 써야 되고, 쓸 수 있는 유효수요가 있기 때문에?

로쟈 2007-03-0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챕터에 두 세개의 오역이라면 '봐줄 만한' 수준 같은데요.^^; 한 페이지에 그 정도 나오는 책들이 부지기수인지라...

기인 2007-03-0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챕터에 두 세개 나오기 시작하면, 더 이상 국역본 안 봐서요 ^^; 다 세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비로그인 2007-03-0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은 바이링궐이라서 좋겠어요.

기인 2007-03-0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제 어휘의 한계는 제가 한국에 돌아온 중2입니다. -_-; 요즘 영어 공부 시작했어요;; SAT대비 어휘 보고 있습니다. 이제 어휘를 고딩에서 대학교 입학 수준으로 올리려는 노력 중;;; 그것도 멀었습니다. 근데, 바이링궐이라뇨! ㅋ

2007-03-08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07-03-08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onsequent를 "끊임없는"으로 해석하신건가요? 이 단어는 "필연적인, 결과로서 일어나는 "정도의 뜻으로 알고있는데..그렇다면 "The consequent slackening of effective demand"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그 결과 유효수요의 감소는" 정도가 더 적당하지 않나요?

기인 2007-03-09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offset'에 집중하느라 그 부분 그냥 쓰고 말았네요 ^^ 원래 해석, 윤타님 해석이 옳습니다.
속삭이신 s님/ 관련 정보는 잘 모르겠네는데요. 주위 영문학도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고 ^^; 구글을 쫌 검색해보니, 젠더,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고 하던데..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맑스주의의 역사 세미나 <공산당 선언> (맑스 엥겔스 선집 1, 박종철출판사)

1882년 러시아어 제2판 서문

<공산주의당 선언>은 불가피하게 닥쳐오고 있는, 현대 부르주아적 소유의 해체를 선포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우리는 급속히 번창하는 자본주의로 인한 현기증과 이제 막 발전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토지 소유의 맞은편에서 절반 이상의 토지가 농민들의 공동 점유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긴다: 비록 토지의 원시적 공동 점유의 심하게 붕괴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러시아의 오브쉬치나Obschtschina는 공산주의적 공동 점유라는 보다 높은 형태로 직접 이행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서구의 역사 발전을 이루고 있는 동일한 해체 과정을 먼저 겪어야만 하는가?

오늘날 이에 대한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혁명이 서구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가 되어, 그리하여 양자가 서로를 보완한다면, 현재 러시아의 토지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72

1883년 독일어판 서문

<선언>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 사상: 각 역사적 시대들의 경제적 생산과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사회 구조가 그 시대들의 정치사 및 지성사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 그에 따라 (원시적인 토지 공동 점유의 해체 이래로) 역사 전체는 계급 투쟁의, 즉 사회 발전의 다양한 단계에서의 피착취 계급과 착취 계급, 피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 사이의 투쟁의 역사였다는 것; 그러나 현재 이 투쟁은,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동시에 사회 전체를 착취, 억압, 계급 투쟁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자신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부르주아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기본 사상은 오로지 전적으로 맑스에 속한다. 373

1893년 이탈리아어 판 서문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는 이탈리아였다. 봉건적 중세의 종말과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시작은 한 위대한 인물에 의해 고지된다: 그는 중세 최후의 시인이자 동시에 현대 최초의 시인인 이탈리아 인 단테이다. 오늘날, 1300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 프롤레타리아의 새 시대의 탄생을 고지할 새로운 단테를 우리에게 보내 줄 것인가? 394

1. 단테를 중세 최후이자 현대 최초로 보는 이유. 종교와 정치 분리 주장. 중세가 성경과 신적 질서의 현현으로서의 자연을 중시했다면, 단테는 신과 인간을 중시. 이탈리아어(지역어)로 신곡 서술(14세기 초서, 보카치오와 함께 최초. 조선 최초는? ‘최초’라고 하면 지리한 논쟁이 되기 쉬운데, 1511 <설공찬전>으로 봄.)

2.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의미하는 것?)

공산주의당 선언 본문의 문제들.

I.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Bg발전단계의 상응하는 정치권력의 발전(402)에 ‘기계적’으로 대응되는 pt혁명. 즉 pt혁명의 모델로서의 Bg혁명. (파리꼬뮌 이후 인식이 바뀌기는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의문)

II.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문제적 부분.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따라서, 당-국가, 전위의 문제들이 나타난다. (사실 이런 문제는 어찌보면 스콜라적 문제일 수 있다. 맑스가 ‘어떻게’ 말했느냐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실제 실천에서 어떤 것이 더 적합했느냐의 문제. 그러면 그 ‘적합성’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해보면 아는 것일까?)

‘공산주의자’라는 주체는 어디서 왔는가? pt 전체의 이해 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는 갖지 않으며, pt운동을 짜 맞추고자 하는 바의 특수한 원리를 세우지 않으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pt 정당과 구별’되는 그들. 또는 그 집단.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pt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여타 pt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pt 정당들의 그것과 동일하다. pt의 계급으로의 형성, Bg 지배의 전복, pt에 의한 정치 권력의 장악.’

공산주의자와 pt는 다른가 같은가? 결국 ‘혁명적 주체’라는 정체성은 누구에게 있는가.

또 pt라는 계급은 대상성으로 대상적으로 규정된다. 생산수단의 무소유(비소유?). 이러한 pt를 주체화하는 몫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돌아간다. pt의 계급으로서의 형성. (즉 이때는 주체로서의 형성) 이러한 pt가 주체(정치-주체)로 된 이후에, 정치권력을 쥐고 pt독재가 일어난 후, 이 pt독재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계급의 철폐, 이고 ‘사물의 관리’로의 이행, 즉 다시 정치의 측면에서 ‘비주체화’, 대상으로 돌아간다. (420~421면)

자기 자신의 폐지를 위한 것. 그 매개로서의 또 ‘당’이 등장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당은 당을 없애기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마치 우로보스의 뱀같이, 두 대가리가 서로 먹어들어가다가 없어지는 것? 결국 ‘사물의 관리’하는 정부로의 점진적(?) 이행은 pt독재 후에 가능한가? 아니면 다시 ‘영구혁명’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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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1989)

역자 서문

이 책이 처음 발간된 1989년은 서양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지배력이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때였다.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사망선고를 내리고 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비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정치경제적 조건을 연구하여 문화변동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I부에서는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를, II부에서는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이라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III부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시공간 경험의 변화를, IV부에서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다루고 있다. (5)

서: 하비의 특장은 맑스주의적인 정치-경제학적 토대의 중요성을 전제하면서도, 상부구조의 변모양상을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부구조와 정치-경제학적 토대를 매개하는 것으로서 ‘공간 및 시간 경험’에 대한 분석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치-경제학적 토대 분석과 상부구조의 변모양상을 주의깊게 서술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대단하다. 모범적인 ‘맑스주의적’ 연구자.

물론 이 ‘공간 및 시간 경험’이 과연 ‘매개’가 될 수 있느냐, 아니면 이는 정치-경제학적 토대의 상층부나, 상부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지나지 않느냐는 판단은 하비를 읽어나가면서 판단해야할 몫이다. 이 ‘공간 및 시간 경험’은 건축과 통신, 교통 시설의 발달의 문제이다. 이는 일상 생활의 문제이며, 세계인식의 문제이다. 이것이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 반영된다는 것, 일반인의 세계경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법과 같은 다른 상부구조에도 ‘근본적’으로 반영되는 것일까. 이것은 의문시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정치-경제학적 토대와 상부구조 관계에 대한 원활하고 설득력있는 설명으로서의 ‘공간 및 시간 경험’이라는 매개항이다. 어쨌든 얼마나 폭넓은 시야와 자료를 토대로 한 연구인가!

1. 현대문화: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 가는 길

1.1 도입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비의 특장이자 전공은 ‘도시-건축’이라는 매개로 정치-경제학적 토대와 문화, 예술 등의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내는 것이다. 이에 이 책의 목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주장되는 문화형태가 ’보다 유연한 자본축적양식의 출현, 그리고 자본주의의 조직에 있어 ‘시 공간 압축’이라는 새로운 국면 사이에 일정한 유형의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것과, 이것이 단지 자본주의의 표면형태의 변화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에 대한 하비의 이러한 주장이 더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는, ‘포스트모던’자체의 기원을 보통 건축양식의 변화에서부터 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정치 경제적 배경’에 대한 검토작업(다소 단순화된 방식으로)을 거친 뒤에, 자본주의 역사 지리 발전의 역동성과 문화생산 및 이데올로기적 전환의 복잡한 과정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중간고리(원문은 one singularly important mediating link 하나의 남다르게 중요한 매개하는 연결) 역할을 하는 ‘공간 및 시간 경험’을 보다 자세하게 살피고 있다. (12)

1장에 도입에서는 도시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견해를 보이는 J. Raban의 견해를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는 ‘물질적 재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합리화된 자동화시스템 아래 도시가 희생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는 ‘기호와 이미지의 생산에 주로 관련’된다고 하며, 도시가 ‘직종과 계급에 따라 촘촘하게 성층화된다는 테제를 거부하고, 그 대신에 사회적 구별의 기호가 주로 「개인의」 소유물이나 겉모습에 의해 부여되는 개인주의와 기업가주의’로 도시적 문화를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도시라는」 백과사전은 형형색색의 조각들이 서로 아무런 관련 없이, 아무런 결정적 합리적 또는 경제적 체계 없이 가득 차 있는 편집광의 스크랙북’이다.

이러한 Raban의 주장에 대해 하비는 이것은 ‘포스트모던한 시점이 닥쳤다는 지적’으로 파악한다. 이를 ‘서론’으로 제시하며 결국 ‘포스트모던한 것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에서 유일하게 합의되는 사항이라고는 모던한 것과의 암묵적 관계밖에 없으므로’ ‘우선 모던한 것들의 의미’를 살펴보겠다고 한다.

1.2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이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하나의 용어지만 두 가지 구조 즉, ‘찰나적 일시적 우연적 측면과 영원불변한 측면’ 사이에서 동요한 역사이다. 우선 ‘모더니티는 그 이전의 모든 역사적 상황과의 가차 없는 단절을 뜻할 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단절행위와 분절화 과정을 그 특성으로 삼는다.’

이 모더니즘은 그 동요라는 측면에서 모순적이다. ‘모더니즘은 미래주의와 허무주의, 혁명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 자연주의와 상징주의, 낭만주의와 고전주의가 특이하게 결합된 것이다.’

그럼 이를 왜 ‘모더니즘’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불러야 하는가? ‘모던’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오세영 선생님은 ‘모더니즘’은 영미식 모더니즘과 대륙식 아방가르드가 결합한 것이라 하며 각각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후예라 규정한다. 이러한 분절적 이성은 명쾌해 보인다. 그래도 결국 '모던/근대/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어쨌든 1848년 이후 계몽주의가 도전을 받으며 ‘오직 하나의 재현양식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20세기 초에 그 유명한 프루스트, 조이스, 로렌스, 만, 파운드의 미래파 선언 등이 등장한다. 미술에서 마티즈, 피카소, 칸딘스키 등, 음악에서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언어학에서 소쉬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테일러 주의와 포드주의 등이 발생한다. 모두 20세기 초 1910년부터 1915년 사이 쯤에!

이는 모든 재현방식과 지식들이 근본적인 전환을 일으킨 것이며, 이는 ‘필연적인 진보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고 ‘계몽사상의 범주적 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난 데 따른 결과’였다. 이 시기 모더니즘은 ‘민주화 정신과 진보적 보편주의의 편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는 ‘복잡하면서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배후 실재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히기 위해 다각적 원근법주의(multiple perspectivism)와 상대주의(relativism)을 인식론으로 삼았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리고가 맞는가? 이에 대해 하비의 서술은 모호하지만 세계 대전 이후와 20세기 초를 구분하고 있기는 하다.) ‘세계대전의 참상과 이에 대한 정치적 지적 대응들은 보들레르 정식의 이면에 자리잡은 ’모더니즘의 영원성 본질성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에 대한 고려를 불러 일으켰다. 인간의 완전무결함에 대한 계몽적 확신이 사라져 버렸으니 모더니티에 적합한 새로운 신화를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다.’(51) 그런데 신화화되는 대상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이 시기 즉 ‘영웅적 모더니즘’ 시대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문제였다.

전간기 모더니즘 또한 ‘영웅적’이었지만, 점점 이 중 일부는 파시즘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러한 파시즘은 계몽사상의 취약함으로부터 연유된 측면이 강하다. 이 heroic이라는 것은 '영웅적'으로 번역되기 쉬운데 뭔가 초월적인 가치를 찾는 정도의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1945 이후는 ‘보편적’ 또는 ‘본격’ 모더니즘이라 명명된다. 이는 ‘사회내 지배적인 권력중심들’에 ‘편안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진보나 인간해방을 위한 발전구상인 계몽 프로젝트가 기업자본가적으로 수정되어 압도적인 정치 경제적 지배력을 얻게 된 사회에서 본격 모더니즘의 예술, 건축, 문학 등은 기성예술이 되었다. 지식 및 생산의 조건이 표준화된 상황에서 ’단선적 진보, 절대적 진리, 그리고 이상적 사회질서에 대한 합리적 계획‘에 대한 신념은 유난히 강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모더니즘은 ’실증주의적, 기술중심주의적, 합리주의적‘이었으며 동시에 고급 취향을 지닌 계획가, 예술가, 건축가, 비평가, 기타 후견인들의 엘리트 아방가르드 작품에 표현되었다.’ (57) 본격 모더니즘의 실질적 이면에서는 기업관료적 권력과 합리성에 대한 은밀한 예찬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는 인류의 모든 열망을 실현시키기에 충분한 신화로서 효율적 기계에 대한 표면적 숭배에 대응하는 것임을 가장하고 있었다. (58) 계몽예술과 고급문화가 지배엘리트층의 배타적 전유물이 되어버려서 그 틀 속에서의 실험적 움직임들(예컨대 원근법주의의 새로운 형태들)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 기성예술과 고급문화는 기껏해야 기업이나 국가권력 또는 ‘아메리칸 드림’을 자기지시적 신화라는 형태로 기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던 듯했다. (60)

이에 대항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도출된다.

기업이나 국가, 기타 제도화된 권력 등 거대한 단일체를 이룬 세력들(관료화된 정당이나 노동조합도 포함됨)이 만들어 놓은 기술적 관료적 합리성은 ‘과학적’이라는 미명 아래 서슴 없이 압제를 휘두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대항문화들은 독특한 ‘신좌파’ 정치를 통해 반전체주의적 입장이나 반전통, 일상생활 비판을 포용함으로써 개별적인 자아실현 영역을 개척했다. (....) 1968년의 운동은 뒤이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선회를 알린 문화적 정치적 전초병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리하여 1968년에서 1972년 사이 언제쯤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 반모던운동의 껍질을 벗고서 여전히 일관되진 못하나마 전면적인 움직임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60-61)

그렇다면. 20세기 초 포드주의 시기에 나타났던 ‘영웅적 모더니즘’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비의 서술을 읽다보면, 굳이 왜 이를 모두 ‘moderism'이라 이름 붙여야 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오세영-주의자 여서 그러한가?) 똑같은 물적 조건 하에서 다른 식의 모더니즘이 돌출된다. 그렇게 ’모더니즘‘으로 모두 이름붙일 수 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모더니즘이 아닌가? 물적 조건의 급격한 변모 때문에 이것을 ’포스트‘라고 붙여야 하는가? (하비의 주장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모던‘한 것이라는 것? )

1.3 포스트모더니즘

하비의 서술을 읽어가면서 재미가 있어진다. 이번 절은 포스트모더니즘도 명확하게 특성화할 수는 없지만 여러 이론가들에 대한 서술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을 구분하는 정서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란 도대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소설은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변화했다. 모더니스트들은 복합적이면서도 단일한 실체의 의미에 집착했다면, 매우 다른 실체들이 서로 공존하고 충돌하며 상호 관입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를 전면화시키는 쪽으로 변동이 일어났다. 포스트모던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세계에 자신이 자리잡고 있는지, 그 세계에 어떻게 맞서야 할는지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고 한다. (64 참조)

포스트모더니즘은 1.2절에서 살핀 보들레르의 모더니티 개념 가운데 한 쪽 측면, 즉 순간성, 분절성, 불연속, 혼돈을 전면 수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 사실에 대한 대응은 보들레르와 달리, 이 사실에 맞대응해 넘어서고자 애쓰지 않으며, 심지어 그 배후에 깔린 ‘영원불변’한 요소들을 밝혀보고자 하지도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치 그것이 전부인 듯 ‘분절성과 변화의 무질서한 흐름’ 속에서 헤엄치며 심지어 이에 탐닉한다. (68참조) 결국 ‘현상-본질’이라는 근대적 인식은 폐기된다. 차연들로 가득차서 의미는 끊임없이 미끄러질 뿐이고 현상의 배후를 묻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현상만이!

우리는 더 이상 개인들이 고전적 맑시즘의 주장처럼 소외되어 있다고 볼 수가 없다. 소외되었다는 말에는 소외의 대상이 될 자아에 대한 의식이 분절적이지 않고 일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미리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일정 시간을 두고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현재나 과거보다 뚜렷하게 나은 미래 건설에 매달리기 위해서는, 이처럼 개인적 정체성에 바탕하는 길뿐이다. 비록 미래 목표의 끊임없는 좌절이 편집증을 불러일으키곤 했을지라도 모더니즘은 보다 나은 미래의 추구에 아주 많은 부분을 바쳤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신분열 상황에 치중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대부분 내던지고 만다. 이때, 창의적 전략의 생산은 말할 것도 없고, 전혀 새로운 급진적 형태의 미래를 조리 있게 그려보지도 못하게 만드는 분절화나 불안정성(언어의 불안정성도 포함)에 의해 정신분열 상황이 만들어진다. (....) 포스트모던 미학에서 ‘주체의 소외가 주체의 분절화로 대체되었다’고 평가할 근거는 넉넉하다. (80-81)

과거를 배경으로,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와 마주하는 것으로서의 견고한 ‘자아’는 폐기되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의미도 전혀 변해버렸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순간의 욕망을 따르고, ‘쥬이상스’를 추구하면 되는가. 미시적 권력관계 분석을 통해, 이제 앞으로는 미시적 장들에서의 저항만이 가능한가. 이제 ‘순간’만이 존재하는가.

패션, 팝아트, 텔레비전 및 기타 매체 이미지 형태들의 동원, 그리고 다양한 도시 생활양식들은 자본주의하에서 일상생활의 요체가 되었다. 그 개념을 어떤 식으로 다루든지,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떤 자율적인 예술 흐름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상생활 속으로 내린 뿌리는 자신의 가장 분명한 액면 그대로의 모습이다. (93)

때문에 이제 하비는 다음 절에서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 도시 디자인에서 어떻게 가시화되고 있는지를 살펴 그 상세한 그림을 덧붙’임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더 가시화하여 보여준다. 결국 하비의 특장이란,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건축, 도시’와 같이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한 분석을 매개로, 상부구조와 토대 사이의 관련성을 (이번 경우에는 ‘포스트모던적’) 설명해 내는 데에 있다.

1.4 도시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과 도시 디자인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 공간관에 있어 모더니스트들과 크게 다르다. 모더니스트들은 공간을 사회목표에 따라 형성되는 어떤 것으로 여겼기에, 이것이 사회적 프로젝트의 실현에 뒤따를 뿐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공간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어떤 것으로 보고서, 그 어떠한 전반적 사회목표와도 필연적 연관이 없는 심미적 목적이나 원리들에 따라 공간이 형성된다고 여긴다. 단, 시간을 초월하는 ‘무심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일은 하나의 즉자적 목표로서 예외일 것이다. (94)

순간성이나 혼돈 같은 느낌들과 한결같이 뒤섞여 있는 허구와 분절화, 꼴라쥬, 절충주의는 아마도 오늘날의 건축 및 도시 디자인 관행을 주도하는 주제들일 터이다. 예술이나 문학, 사회이론, 심리학, 철학과 같은 다른 영역의 실천과 사고들도 이와 상당부분 엇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지배적인 분위기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까? 어떻게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자본주의적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평범한 실재들을 낱낱이 살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통해, 사회생활의 재생산에 있어 이런 허구와 분절화의 기능을 설명해줄 단서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밝혀내야만 한다. (131)

1.5 근대화

모더니즘은 근대화라는 특수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모더니티의 조건들에 대한 미학적 대응으로서, 불안정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개념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을 적절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근대화의 본질을 파악해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포스트모더니즘이 변함없는 근대화 과정에 대한 하나의 또다른 대응인지, 아니면 이른바 ‘탈산업’ 사회 또는 심지어 ‘탈자본주의’ 사회의 일종을 지향하여 근대화의 본질 그 자체가 급격히 변동한 것을 반영하거나 혹은 그 징조를 보여주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132)

명확하고 올바른 접근.

맑스는 아마도 ‘타인을 꿰뚫어 볼 수 없음’을 신조로 삼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물신성의 표출형태에만 표면적으로 집착할 뿐, 그 배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비난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134)

물신성이라는 것. 맑스가 상품을 분석하면서, 상품의 사회적 관계망을 은폐시키고 상품 자체의 성질로 가치를 파악하는 그 ‘전도’를 의미함.

기의보다는 기표가, 그리고 메시지(사회적 노동)보다는 미디어(화폐)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관심이 기능보다는 허구를, 사물보다는 기호를, 그리고 윤리보다는 미학을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보면, 맑스가 묘사한 화폐의 역할이 변모되었다기보다 더욱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135)

결국 포스트모던 사회는 모던 사회의 연속성을 더욱 강화한 것이고, 포스트모던적 현상은 이러한 것에 대한 미학적, 사상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각 용어의 층위가 다르지만) 대응 또는 상응이 아닌가? 그러니까 왜 ‘포스트모던’이라고 해야 하는가. 왜 ‘post'인가. 이 또한 자본주의가 ’새로운‘ 욕구를 창출해야 하기에,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야 하기에, ’학문‘이라는 장에 새로 도출된 흥미로운 새 장난감(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자기 자신의 세계사 속에서 끊임없이 혁명적인 뒤집기의 동력이 확보되어야만 자기유지가 가능한 사회체계가 바로 자본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만약 ‘모더니티에 있어 유일하게 안정된 것이라곤 불안정성뿐’이라면, 그 불안정성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밝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맑스는 이러한 모든 혁명적 봉기와 분절화, 그리고 끊임없는 불안정성의 토대를 굳히고 그 틀을 잡는 원리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원리는 그가 말한 최고의 추상 수준인 ‘운동하는 가치’에 있거나, 또는 더 간단히 말해 새로운 이윤추구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자본의 순환에 있다. (141)

결국 이 ‘토대-상부구조’의 은유를 하비는 받아들이고, 이를 설명해내기 위한 매개로서 ‘시간과 공간 체험’을 설정한다. 독자로서, 우리는, 이제 이것이 설득력이 있는지를 주의깊게 살피며 그를 따라가야 한다.

맑스가 그리고 있는 것은 사회 변동의 위기개재적 역학뿐만 아니라, 개인주의, 소외, 분절화, 순간성, 혁신, 창조적 파괴, 투기적 발전, 생산과 소비(필요 및 소요) 방식의 종잡을 수 없는 변천, 시 공간 경험의 변동을 일으키는 자본주의하에서 작용하는 사회과정이다. 만약 이러한 자본주의 근대화 조건으로부터 모더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나 문화생산자들이 자신의 미학적 감각이나 원리, 실천 등을 만들어내는 구체적 맥락이 생겨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선회는 사회적 조건의 근본적 변동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은 “그러한 사회적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사고 방식을 벗어 던졌음(그런 것이 만약 있다면)을 뜻하거나, 아니면 최근 자본주의의 작동방식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든 맑스의 자본주의 설명은 (만약 옳다면) 그러한 조건들로부터 동력을 공급받은 근대화와 모더니티, 그리고 미학적 운동들 사이의 일반적 관계를 고찰하는 데 매우 탄탄한 기초를 제공해준다. (147)

하비를 읽으면서 감탄하는 부분은,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의 ‘거대함’(또는 ‘정통성’)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면서 끌어들여오는 자료들의 전방위성일 터이다. 이러한 하비의 기본 인식틀 자체가 ‘포스트모던’스럽지 않다.

1.6 포스트모더니즘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 특히 성공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주관성, 성, 인종과 계급, 시간적(감수성의 판도) 공간적인 지리적 입지와 탈입지의 차이로부터 출현한 다양한 형태의 타자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148)

결국 폭력적 동일화로서의 계몽에 대한 거부.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의 발전(?)된 또는 전개된 형식이 아닌가.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 경제 정치적 행위들의 반영 혹은 모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러한 행위들의 다양한 측면들을 반영 모방한 것이기에 아주 다양한 모습들로 나타난다. 많은 포스트모던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세계들(이 세계들 사이에서는 그 공존의 틈 속에 비의사소통적 ‘타자성’들이 가득차 있다)의 중첩은 영국과 미국의 도심 불량주거지에서 늘어나는 게토화, 무력화, 빈곤층과 소수민족들의 고립과 섬뜩한 관계를 맺고 있다. 포스트모던 소설을 런던, 시카고, 뉴욕 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분절화된 사회적 경관과 하위문화들과 의사소통의 지역적 양식에 대한 은유적 단면으로 읽어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사회지표들을 보면 대부분 1970년 이후 실질적 게토화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므로, 포스트모던 소설들은 그러한 현상에 대한 반영 모방이라고 생각함이 옳을 것이다. (148-149)

이 부분은 쫌 나이브하게 말하고 있다. 문학이라는 텍스트 구조의 상대적 자율성. 이를 부정하기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조금 후에 가서 하비는 이러한 자신의 언술을 뒤집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치 경제 사회생활에 대한 심미적 개입이라기보다는 단지 모방일 뿐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 모방과 미학적 개입을 결합시킨 폭넓은 측면을 살펴보아야 포스트모더니즘의 폭넓은 영역을 이해할 수 있다. (150)

포스트모더니즘은 스스로를 훨씬 더 단순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예상되는 모더니즘의 병폐들을 극복하기 위한 집요하고도 혼돈스러운 운동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보며 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모더니즘에 대해서도 대충 묘사한 채 EJ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50)

모더니즘의 역사 전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운동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연속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속에 일어난 특정 종류의 위기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보들레르 정식 가운데 분절적이고 순간적이고 혼돈된 측면(맑스는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총체의 일부임을 훌륭하게 분석하고 있다)을 강조하고 영원불변한 것을 사유하고 재현하거나 표현하는 방법에 관한 모든 특정한 처방에 대해 깊은 회의를 보이는 것이 곧 포스트모더니즘이다. (152)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대목! 152 후반부터

가장 나쁜 것은 포스트모던 사상이 타자들의 목소리의 신빙성을 인정함으로써 진보적 전망을 열어 보이면서도, 곧바로 그 타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보편적인 권력의 원천으로 옮겨가는 것을 봉쇄한다는 사실이다. 타자들의 목소리들을 난해한 타자성 속에, 즉 이러저러한 언어게임들의 특수성 속에 가두어버린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던 사상은 불균형적 권력관계의 세계에서 타자의 목소리들의 권한을 박탈한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사는 정치 경제의 실재와 범지구적 권력의 상황에 맞서기를 회피하고 있기에 위험스럽다. (...) 가장 단호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조차 결국에는 보편적 입장을 갖게 되고 말거나, 또는 데리다처럼 완전히 정치적 침묵으로 빠져들게 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이론이 없을 수는 없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손쉽게 매장해 버린 메타이론이 이제 지하에서 하나의 ‘무의식적 영향력’(제임슨)으로서 계속 기능하고 있다. (153)

만약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둘 다 분절화나 순간성, 혼돈스러운 흐름의 구체적 현상들과 맞서 투쟁을 벌임으로써 자신들의 미학을 얻어낸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매우 중요해진다. 왜 그러한 구체적 현상들이 경험 속에서 그처럼 오랜 기간동안 그렇게 널리 팽배해 있어야 했는가? 왜 그러한 경험의 강도가 1970년 이후 그처럼 크게 솟구쳐 올랐는가? 모더니티에 대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단 하나가 불확실성이라면,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낸 사회적 동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부터 살펴보게 될 것이 바로 이 사회적 동력이다. (II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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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3-0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턴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을 읽는 중인데 요긴한 도움이 되는군요.
저도 곧 서평이라는 것을 시작해야 할텐데요. 개강을 하니 좀 분주합니다.
근무 잘 서세요! ^^

기인 2007-03-0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대학원 시작하신 거죠? ㅎ

나비80 2007-03-06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뭐. 시작부터 마사오 미요시의 여행기 번역에 당첨(?)되어 지금 죽을 맛입니다. ^^

기인 2007-03-0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생산적인 일 하시니까 좋네요 :) 저도 대학원 시작할 때 사이드 글 번역 맡아서 죽을 뻔 했습니다. 그래도 끝내고 나면, 매우 보람차니, 열심히 재미있게 하시길 :) ㅎㅎ
 

pt와 무산자 관련도 페이퍼에 정리해 놓기는 했습니다만.
정작 맑스가 사용한 개념을 따르자면, 임금 노동자와 pt가 다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받았던, 사람들의 외경을 갖고서 바라보았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버렸다." (공산주의당 선언, <선집1>, 박종철출판사, 1991, 403면)

의사, 법률가 등도 '유급 임금 노동자'라는 것은, 여기서 '임금 노동자'라는 것이 소부르 계층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공산당 선언의 말미에는 그 유명한 구절인,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가 나오는데, 제 생각에는 이는 즉자적 계급으로서의 무산자와 임금노동자 중 일부를 대자적 계급으로서 호명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혁명의 주체로서의 pt는 단지 생산수단 소유의 여부로 규정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맑스의 서술 속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룸펜 pt'에 대한 경멸과 그들의 반동성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pt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로서 '앞으로' 혁명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따라 '농후한(?!)'이들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이는 또 자본주의 발전법칙의 필연성 같은 문제로 나아가서 또 골치 아파지지만, 저는 이를 '강한 개연성'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는 그저 맑스의 텍스트에 입각해 살펴본 pt, 임금노동자, 무산자 등의 개념이고, 실제 '지금-여기'서 역사의 혁명적 주체를 누구로 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노동자' 또는 'pt'라는 개념을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의 문제는 또 다른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로쟈님 방명록에 올린 글.)

에로이카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맑스에게 있어서 'pt'와 '노동자'는 같은 텍스트에서도 다르게 쓰이고 있음으로 참조해야 하겠다. 맑스주의의 '정치경제학 교과서'인 <자본>에서도 맑스주의의 정치 교과서인 '공산당 선언'에서도 두 개념이 동시에 나온다. 물론 이를 잘 정리해놓은 이론가(?) 주석가(?)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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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기인님, 안녕하세요.. ^^ 이진경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의 한 부분이 도움이 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이진경이 임노동자 계급과 프롤레타리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를 다루는 부분이 있어요 (235쪽 이후, 혹시 관심 있거든 보시고, 책이 없다면 제가 밑줄긋기 해놓은 게 있으니 한번 찾아보세요..). 저는 사실 이진경이 "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소수자 / 비-계급)는 이 시대의 부르주아지(다수자 / 계급)를 뺀 전부다"라는 주장이 별로 말해주는 것도 없고, 이래저래 문제도 많게 들려서 별로 수긍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 240-1쪽을 보면 발리바르가 맑스가 <자본>에서 어떻게 프롤레타리아와 임노동자계급을 구분해서 썼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이 나와요. 프롤레타리아트는 기인님께서 아시는 바대로 무산자입니다. 하트와 네그리는 Vogelfrei라고 부르고요...

제 생각에 님께서 혼란스러워 하시는 지점은 "1848년 당시 혁명적 시국에서 정치적 팸플렛이었던 <공산주의 선언>에서 접합되어 동일시되었던 프롤레타리아와 임노동자가 과연 오늘날에도 동일시될 수 있는가?" 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맞나요? ^^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임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라는 것이 이진경의 입장이고, 저는 잘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당시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나 가능했던 현실적 접합 (혹은 정치적 구성)을 과연 이 시기에 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입니다. 거기에도 어떤 지혜가 있겠지만, 21세기의 현실을 19세기의 언어로 재단하기에는 무리입니다. 쫌 심하게 말하면, 불행히도 "우리의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 좌파들의 관성이고 사대주의입니다.

이건 그냥 제 짧은 생각이니 괘념치 마세요...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2007-03-01 07:03 삭제
 
기인
옷 에로이카님 안녕하세요. :) 흠 사실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라기 보다는, 무산자=임노동자라고 호명하는 배후에는 정치적 의도성(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임노동자와 무산자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사실 '프롤레타리아'와 '무산자'도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혁명적 주체성의 여부로 나뉠 수도 있습니다. 즉 대자적 계급으로서, 정치적 계급으로서의 pt와 즉자적 계급으로서의 무산자로요.
에로이카님 말씀처럼 임노동자=무산자라고 호명했던 당대 정치적, 이론적 배경이 물론 있었고, 지금도 그게 통용될 지는 정말 미지수입니다. ㅋ 그러니까 공부해야 되는 것이겠지요.
요즘은 조합주의에 관심이 많은데. 베네주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망으로 삼을 수 있을지. 관심만 갖고 있는 수준입니다. 빨리 이 부분을 공부하고 싶어욧!
(현실에 억매인 -_-;;; ) 어쨌든 좋은 지적해주셔서, 페이퍼로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 2007-03-01 10:46 수정  삭제

 

결국 pt라는 개념에 현대의 맑스주의 이론가들도 '집착'하는 이유는, pt의 혁명적 주체성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pt는 형성되어야 하는 계급이고 '비계급'이라는 것 또한, 이 pt라는 것은 즉자적인 생산수단의 비소유에서 대자적인 혁명적 주체성으로 형성되어야 할 존재라는 데 있다.

맑스가 'pt'라고 하면서 임금노동자를 호명한 것은, 자본주의의 '과학적' 발전 과정에 따라 그들은 모두 pt가 되어가는 것이며, 임금노동자들 중 전위가 바로 pt이기 때문이다. 결국 임금노동자가 자본주의를 뒤업는 pt(대자적 계급)가 되기를 바라는 호명, 그것이 공산주의 선언 아닐까. 왜냐하면 실제 'pt'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맑스는 항상 룸펜 pt와 pt를 구분한다. 맑스에게 룸펜 pt는 사회의 '쓰레기'로까지 언명되는 집단이며, 그들의 속성상 pt보다는 지배계급의 농간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을 의미한다. (파리 꼬뮌때 반혁명의 선두에 섰던 룸펜 pt들에 대한 기억...) 사실 이는 단순한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그들의 정치성이 결정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다만, '무산자'들이 'pt'로 주체화 되는 것은 '필연적' 수순, 또는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맑스와 같은 당대 '공산주의자'들의 역할이었던 것.

이 '공산주의자'라는 주체도 애매한데, 공산주의 선언의 2장에서는 그들에 대해 서술되고 있지만, 여러가지 의문만을 던지게 할 뿐이다.

II.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문제적 부분.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따라서, 당-국가, 전위의 문제들이 나타난다. (사실 이런 문제는 어찌보면 스콜라적 문제일 수 있다. 맑스가 ‘어떻게’ 말했느냐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실제 실천에서 어떤 것이 더 적합했느냐의 문제. 그러면 그 ‘적합성’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해보면 아는 것일까?)

‘공산주의자’라는 주체는 어디서 왔는가? pt 전체의 이해 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는 갖지 않으며, pt운동을 짜 맞추고자 하는 바의 특수한 원리를 세우지 않으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pt 정당과 구별’되는 그들. 또는 그 집단.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pt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여타 pt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pt 정당들의 그것과 동일하다. pt의 계급으로의 형성, Bg 지배의 전복, pt에 의한 정치 권력의 장악.’

공산주의자와 pt는 다른가 같은가? 결국 ‘혁명적 주체’라는 정체성은 누구에게 있는가.

또 pt라는 계급은 대상성으로 대상적으로 규정된다. 생산수단의 무소유(비소유?). 이러한 pt를 주체화하는 몫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돌아간다. pt의 계급으로서의 형성. (즉 이때는 주체로서의 형성) 이러한 pt가 주체(정치-주체)로 된 이후에, 정치권력을 쥐고 pt독재가 일어난 후, 이 pt독재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계급의 철폐, 이고 ‘사물의 관리’로의 이행, 즉 다시 정치의 측면에서 ‘비주체화’, 대상으로 돌아간다. (420~421면)

자기 자신의 폐지를 위한 것. 그 매개로서의 또 ‘당’이 등장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당은 당을 없애기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마치 우로보스의 뱀같이, 두 대가리가 서로 먹어들어가다가 없어지는 것? 결국 ‘사물의 관리’하는 정부로의 점진적(?) 이행은 pt독재 후에 가능한가? 아니면 다시 ‘영구혁명’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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