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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저 아주 깊은 곳에 있었던 것 뿐인지도 몰라요. 물 속이었는지 땅 속이었는지 구름 속이었는지 어쨌든 아주 깊은 곳에 가면 그저 아주 깊은 곳이라는 느낌만 들지 구름이건 땅이건 물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아주 깊은 곳은 어디든 다 똑같다구요. 누군가 아웅 하고 울었던 것도 같은데 나는 그게 뽀르뚜갈어라고 생각했어요. 그거 아세요. 나는 내년이 가기 전까지 꼭 뽀르뚜갈어를 배우고야 말거에요. 세 달이면 할 수 있어요. 매일매일 한다면 그거보다 더 빨리 할 수 있어요. 아웅 아웅 아웅 혼자 있을 땐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웅 하고 울었던 게 누구였더라. 너무 많은 이들을 만나서 기억하기도 힘드네요 아웅. 만약 리스본이랑 모스크바 둘 중에 하나를 딱 고르라고 한다면 어디를 선택하겠어요. 리스본이요. 아웅. 그럼 리스본이랑 바르셀로나. 리스본이요. 아웅. 그럼 리스본이랑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소웅. 그럼 부에노스 아이레스랑 빠리. 아웅. 빠리요. 아응. 그럼 빠리랑 뮌헨. 빠리요. 아응. 그럼 빠리랑 빈. 아흐. 빈이요. 아흐. 그럼 빈이랑 서울. 아흐. 빈이요. 그럼 빈이랑 서울. 아흐. 빈이요. 그럼 빈이랑 서울. 아이고, 서울이요.

 

아주 깊은 곳은 무너지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하죠. 그래도 벼락같이 무너지는 것만은 아니에요. 역시 선택할 수 있어요. 빈이랑 서울처럼 말이에요. 그것보다 더 심하죠. 벼락같이 무너지지 않으려고 탄탄하게 땅을 고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 헛수고라는 걸 알게 돼죠. 아무리 강철같은 땅이라도 무너질 건 무너지게 마련이거든요. 아 쓸데없이 보드라운 흙을 모으기 보다는 미리 관이나 하나 장만해 두세요. 어쩌면 살아 있을 때 가장 신경써서 해둬야 할 일일지도 몰라요. 자기만의 관에 들어가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하나밖에 없는 평생의 힘을 다 쏟아부은 그런 관 말이에요. 나는 종이관을 만들기로 했죠.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실은 카프카를 처음 읽었을때부터 매일 조금씩 준비해왔어요. 아주 멋있는 관을 만들려면 오래 또 열심히 살아야 한답니다. 일년에 열 장이면 많이 모은 거에요. 처음에는 일년에 만 장 정도 모았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줄어들더라구요. 모았던 것 중에서도 버릴 게 많았어요. 이상하더라구요. 세상엔 왜 이리 반복이 많던지. 그런데 사실 제가 모은 종이에 쓰여있는 글자는 다 비슷하긴 해요. 어떤 사람들은 다 똑같은 말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요. 그게 반복이죠. 다른 사람들 눈엔 다 똑같이 보이지만 내 눈엔 다 다르게 보이는 그게 반복이죠. 그 깊은 곳에서 만난 조 씨 영감도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자기는 20개의 언어를 미치도록 공부했는데 사실은 다 똑같은 언어였다고 말이에요. 그게 반복인가요. 다른 사람들 눈엔 다 다르게 보이지만 내 눈엔 다 똑같이 보이는 그게 반복인가요.

 

그런데 굳이 아주 깊은 곳을 찾아 오려고 하진 마세요. 사실은 거기 서 계신 그곳이 아주 깊은 곳이거든요. 더 깊은 곳도 더 얕은 곳도 아니랍니다. 그저 한 곳에 머물 때마다 이쁜 관이나 하나 만드세요. 맞다. 남들 건 절대 만들어주지 마세요. 그러다 한곳에 계속 머물러있는 수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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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리 씨가 사라지신지 벌써 한 달이 넘다보니 무수히 많은 독자의 재촉이 끊기지 않고 있다. 그래서 편집자는 작가에게 마감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문단 역사상 가장 편파적인 계약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채, 일주일내로 다음 이야기를 써내지 않으면 계약금의 이분의 일만 주고 계약을 파기해버리겠다는 통고를 보냈다. 이러한 편집자의 처사는 전적으로 독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취한 것이므로 이를 두고 악덕 편집자 식의 비난을 가한다면 천상에서도 눈을 가리는 최악의 복수를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편집자는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게 미덕이니 이만 닥치고 바로 편집자의 통고에 대한 작가의 답장을 공개하겠다. 참고로 작가는 엽서에다 답을 써 보냈는데 산 마리노 공국 우표가 붙어있고 우체국 소인은 가리봉동으로 되어 있다. 엽서의 크기는 가로 280cm, 세로 3cm이고 무게는 888g이다. 엽서의 뒷면엔 전설로만 남아있는 아따리 해방국을 오직 자기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서 묘사한 살바도르 달링의 <아따리시아의 게>가 어떤 프린트로 박았는지 아주 흐릿하게 복제되어 있다. 작가는 빨간색 연필로 글씨를 썼으며 총 글자의 갯수는 x개이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글자 숫자가 다르기 때문에 지금 편집자 옆에 있는 편집자의 애인은 글자수가 단지 6개에 불과하다고 중얼대고 있다. 그래서 우선 편집자 애인의 의견을 존중해 6 글자 짜리 답장을 먼저 옮겨놓겠다.

아따리 씨가 사    

다음은 편집자의 의견에 따른 답장이다.

아따리 씨가 사라지신지 벌써 한 달이 넘다보니 무수히 많은 독자의 재촉이 끊기지 않고 있다. 그래서 편집자는 작가에게 마감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문단 역사상 가장 편파적인 계약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채, 일주일내로 다음 이야기를 써내지 않으면 계약금의 이분의 일만 주고 계약을 파기해버리겠다는 통고를 보냈다. 이러한 편집자의 처사는 전적으로 독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취한 것이므로 이를 두고 악덕 편집자 식의 비난을 가한다면 천상에서도 눈을 가리는 최악의 복수를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편집자는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게 미덕이니 이만 닥치고 바로 편집자의 통고에 대한 작가의 답장을 공개하겠다. 참고로 작가는 엽서에다 답을 써 보냈는데 산 마리노 공국 우표가 붙어있고 우체국 소인은 가리봉동으로 되어 있다. 엽서의 크기는 가로 280cm, 세로 3cm이고 무게는 888g이다. 엽서의 뒷면엔 전설로만 남아있는 아따리 해방국을 오직 자기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서 묘사한 살바도르 달링의 <아따리시아의 게>가 어떤 프린트로 박았는지 아주 흐릿하게 복제되어 있다. 작가는 빨간색 연필로 글씨를 썼으며 총 글자의 갯수는 x개이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글자 숫자가 다르기 때문에 지금 편집자 옆에 있는 편집자의 애인은 글자수가 단지 6개에 불과하다고 중얼대고 있다. 그래서 우선 편집자 애인의 의견을 존중해 6 글자 짜리 답장을 먼저 옮겨놓겠다.  

아따리 씨가 사    

다음은 편집자의 의견에 따른 답장이다.

다음은 독자의 의견에 따른 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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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리 씨가 사라지셨다. 아따리 씨 이야기를 고대하는 무수히 많은 독자들을 위해 또 몇마디 변명을 늘어놓아야겠습니다. 사실 아따리 씨는 수없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죽었다 살아나는 분이기 때문에 잠시 사라지졌다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애초에 아따리 씨는 굉장히 긴 글이 될 거라는 걸 저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아따리 씨가 나타난 건 작년 2월쯤의 일인데 그때 저는 건물 2층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우다가 까딱 잘못해서 담배를 그냥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는데 그때 갑자기 머리가 아닌 발가락부터 엄마의 뱃속에서 기어나오는 아따리 씨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저기 왼편에 있는 저런 색깔이긴 했지만 아따리 씨는 머리가 없다는 특징이 있었지요. 그래서 쓴 게 밑에 첨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야기가 떠올랐다는 자체로 굉장히 흥분해서 썼는데 너무나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글 자체가 완전 엉망이었죠. 재밌다고 평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한글이 이상하다 는 게 합의된 결론이었습니다. <트리스트럼 섄디>를 의식해서 아따리 씨가 태어나는 장면부터 해서 일생을 다 쓸 계획이었지요. 물론 조각난 이야기들이 마구 끼어들어서 단지 줄거리만 있는 그런 연속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저거 말고 또 쓴 게 있냐고 물어보시겠지요. 당연히 없습니다. 저걸 쓰고 나선 앞으로 어떻게 써야하겠다,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막연하게 칼리파 이야기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다지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여기서 강조해두어야 할 건, 저는 구상을 제대로 한 다음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르께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첫문장에서 끝문장까지 머리 속에서 다 써본 다음에 그걸 글로 옮기고 여덟번이나 교정을 보았다고 합니다. 머리 속에 그만큼의 글자를 기록할 수 있는 종이를 갖고 태어난 사람만이 그럴 수 있지요.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그런 종이가 한 장도 없습니다. 뭐가 들어있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종이는 없는 게 틀림없습니다. 종이가 있었다면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적어도 한 번은 들렸을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냥 생각이 나면 아무 문장이나 쓴 다음에 거기서 다시 생각을 해서 이어나가는 식의 작업을 합니다. 그러니 호흡이 길지 않고 자꾸 끊기고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많이 새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제게도 일종의 틀 같은 건 있습니다. 사실 제가 글을 쓰겠다고 생각할 때 글쓰기 전작업으로 하게 되는 건 바로 이 틀을 구상하는 일이지요. 내용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용은 언제든지 아무데서나 끌어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실 걸어다니다 보면 발에 차이는 게 내용 아니겠습니까. 제가 처음 들었던 고대철학사 교수님은 걸어다니면 발에 차이는 게 철학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철학이 아닌 철학사를 한다고 말입니다. 저 또한 그래서 문학이 아닌 문학사를 합니다. 그럼 과연 그 틀이란 게 무어냐, 라고 물으시겠지요. 묻지 않으시면 더 좋을 텐데 기어이 물으실 테지요. 우선 저는 한꺼번에 만개의 글을 쓸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첫째는 만개의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글을 쓰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둘째 똑같은 이야기를 만개의 방식으로 쓰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더 큰 비중을 두는 건 첫번쨰 의미입니다. 제겐 줄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줄거리엔 별 관심도 없어, 라고 말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또 줄거리가 없다면 빨아먹을 피가 없어지는 거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 속에서 하나의 긴 이야기를 짜낸 다음 그걸 쓴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짜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같은 글을 쓰는 게 평생의 소원이긴 합니다만 그것도 딱히 줄거리를 짜내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무능력과 비호감 때문에 줄거리를 굳이 만들고 싶지 않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별로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무수히 많이 만들어낸 다음에 여기에다 줄거리라는 혈관을 끼워넣는 게 더 쉬우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예 상관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어떻게든 상관이 있을 겁니다. 다만 상관관계를 미리 생각하지 않고 미리 끼워맞추지 않고 글을 쓴다는 말씀입니다. 너무 모호한가요.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저도 명쾌하게 설명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 의미는 뭐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저는 글쓰기가 판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똑같은 틀을 잉크가 다르게 아니면 누르는 힘이 다르게 어떻든 계속 찍다보면 모든 결과물이 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겉으론 똑같이 보이더라도 조금씩은 다 다른 것입니다. 보르헤스의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가 바로 이런 거지요. 물론 그냥 겉으로 똑같이 보이는 거를 다르게 읽는 거랑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개 쓰는 거랑은 분명히 다릅니다. 여기서 가장 재밌는 상황은 똑같은 이야기를 만개의 방식으로 썼는데 이 만개의 이야기가 다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상황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러시아의 어느 마을에 굉장히 마을 사람들의 신망을 받은 장군이 하나 살았습니다. 다른 도시에까지 소문이 퍼져서 한 외지인이 이 장군이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하고 그 마을에 갔는데, 아니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다 똑같이 생긴 게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니 모두들 장군을 너무나 좋아라 하다가 그만 장군을 닮아가서 결국엔 다들 장군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또 너무 빗나갔나요. 어쨌든 그렇습니다. 이런 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틀을 짜는 데 있어서 또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문학사라는 괴물입니다. 앞에서 저는 지나가는 말로 '나는 문학사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도 그냥 아무 관계없이 부적절하게 끼어든 표현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발표 준비를 해야하는 관계로 아주 나중에 다시 아따리 씨 소식을 정하면서 제 소견을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밑의 글은 최초의 아따리 씨 이야기입니다. 희귀본이니 잘 간수하시기 바랍니다.

-------------------------- 아따리 씨! 나는 배는 고프고 돈이 없어 빵이라도 하나 얻어 먹을까 헌혈을 하러 갔다 아따리 씨를 처음 보았습니다. 장장 이틀째 굶었던 터라 거울로 보기에 그토록 초췌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우 힘이 없고 우울해서 그저 내가 정신이 몽롱해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안경도 제대로 끼고 있었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귀신 같은 건 한 번도 보인 적이 없고 굳이 대자면 공포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쯤일 텐데, 그렇다고 정신이 말짱한 이른 아침에 헛것을 본다는 것도 이상하고요. 짤랑, 하고 문에 달아놓은 자그마한 종이 울리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문을 여는 그 몇 초 사이에 딴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문을 열자마자 아따리 씨가 서있었던 것입니다. 뭐 그래도 기절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어 머리가 없네, 하고 굳이 울부짖으려 하는 소리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기까지 했으니까 말이죠. 어 머리가 없네. 아따리 씨는 머리가 없습니다. 아따리 씨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없었습니다. 아따리 씨가 태어날 때, 아이를 받아주던 유명한 산파 칼리파는 머리가 아직 배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을 거라 말하며 머리 없는 아이를 처음 보고 경악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 할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이런 경우를 몇 번 봤다우 머리라는 게 몸에 비해 워낙 큰 것이라 원래 제대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셈이니까. 물론 아따리 씨의 엄마는 기적이란 게 참으로 잘도 일어나는 것이군요 라고 주제 넘게 나서서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칼리파가 시키는 대로 다시 배에 힘을 주기 시작했으니까요. 조금 더 힘을 주라구 곧 나올 거야. 아따리 씨의 엄마가 배에 힘을 주며 끙끙대는 사이, 먼저 밖으로 나온 머리가 없는 아따리 씨에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들 정말 아직 머리가 안 나왔구나 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다가 아따리 씨 엄마가 지쳐 끙끙대길 멈추자,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물론 아따리 씨의 울음소리였지요. 그러니까 마치 동굴에서 들리는 메아리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 개구리를 잡으려다가 발을 헛디뎌 우물 속에 갇혔을 때 제 목소리가 그렇게 들렸지요. 개구리 소리, 우물 벽, 물, 두레박에 부딪혀 비틀거리고 갈라지던 그런 목소리 말입니다. 간호사가 나와서 헌혈 하러 오셨어요 하고 말을 건넬 때까지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멈춰서 있었습니다. 원래 동굴에 갇혔을 때엔 우선 눈을 감고 가만히 멈춰서 있어야 어지럽지 않거든요. 아 아따리 씨 이쪽에 앉아 계시겠어요. 아따리 씨는 간호사에게 손을 잡힌 채 의자에 앉았습니다. 혈액형이 뭐냐고 아따리 씨가 아직 그 자리에 서있던 제게 물었습니다. 에 에이비형인데요. 그랬더니 아따리 씨는 신선한 게 먹고 싶었는데 라며 두 손을 탁 하고 치던 것이었습니다. 아 네.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 아따리 씨 기분이 상할 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 당시엔 제가 에이비형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마 제가 잡아먹히고 말거라는, 그러니까 아따리 씨가 무슨 식인종이라도 되는 것마냥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다지 터무니 없는 상상은 아니었던 게, 실은 아따리 씨가 식탐이 좀 있긴 하니까 말입니다. 칼리파는 울음소리를 확인하려고 아따리 씨 엄마의 자궁에 귀를 갖다 대었습니다. 저기 어디 깊숙이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조금만 더 힘을 줘보라구, 안에 있는 게 틀림 없어. 아따리 씨 엄마가 다시 배에 힘을 주고 끙끙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울음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나오지 않는 걸요. 그때까지 아무 말 없던 아따리 씨 아빠도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럴 만하기도 했던 게,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따리 씨 엄마가 끙끙대기 시작한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그저 울음소리만 들릴 뿐, 게다가 울음소리가 그다지 커지지도 않는 게, 머리가 있으면 저 깊숙이 어디 있을 거라고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열 시간이 지나자 열한 쌍둥이까지도 받아본 칼리파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따리 씨 엄마는 이미 잠들어 버린 지 오래였지요. 아무래도 배를 갈라야 할 것 같아. 칼리파는 수건에 물을 적셔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말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배를 갈라서 난 아이가 출중하다는 전설이 있긴 하지만 굳이 머리 하나 보자고 배를 가를 순 없습니다. 아따리 씨 엄마 어깨에 있는 주사 자국 조차도 싫어하는 아따리 씨 아빠가 말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있긴 하지. 칼리파는 땀을 닦은 수건으로 손에 묻는 피를 닦아 내며 말했습니다. 똥. 아따리 씨가 피를 음식으로 먹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따리 씨는 머리가 없고 맨 윗부분에 머리가 떨어져 나간 자리 때문인지 구멍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가끔 자칫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질 때면 그 구멍으로 피가 새어나가, 피를 마시는 것으로 피를 보충해야만 했습니다. 아따리 씨는 피는 음식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맛있는 피가 먹기에도 좋고 피를 많이 마셔본 사람만이 피 맛을 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타리 씨가 피를 그다지 좋아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먹을 수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맛있는 게 낫다, 그런 뜻이지요. 하지만 어쨌든 아따리 씨가 주스 같은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피 같은 즙 종류를 좋아하는 건 사실입니다. 오줌도 좋아하냐고 농담 삼아 물어보긴 했는데, 대답을 해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따리 씨는 이빨로 음식을 씹지 못하기 때문에 어차피 즙과 같은 액체로 된 음식이 아니면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따리 씨가 즙 종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아따리 씨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은 거의 없을 정도로, 세상 모든 것의 맛을 느껴볼 대로 느껴본 지라, 이빨로 씹어야 할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해도, 어쨌든 전부 다 먹어보고 즙 종류가 좋다고 하는 것이니, 정말 아따리 씨는 즙 종류를 좋아하시네요, 라고 단호히 말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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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옮겨놓고 보니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헌데 제 아픈 가슴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더욱 후벼파는 독자분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란 게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저게 무슨 굉장히 아름답고 섬세한 글씨야 차라리 악필이라고 해야 옳겠구먼. 아, 최소한의 동정도 없는 세상. 이 동정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 특히나 글을 쓴다는 건 애초에 미친 짓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독자분의 의견을 비난하진 않겠습니다. 세상엔 아름다움이란 걸 즐길 수 없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받아야 할 몫의 동정을 저 독자분께 드리겠습니다. 그런데도 또 뭐라고 웅얼거리십니다. 그렇게 사나운 눈으로 저를 쳐다보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는 더 이상...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독자분들께서는 안전제일 이라는 모토를 항상 유념하시면서 제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화제를 돌려서, 아니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저도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린 건 기억이 나는데 그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드리겠다고 약속하진 않았는지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뭐 아무 말도 없으신 걸 보니 여러분도 같이 길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아따리 씨의 책에서 이 방법을 발견했는데 지금처럼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써먹기 아주 유용해서 저기 바깥에 계신 분들께도 소개해드리려 하는 바입니다. 이 방법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호메로스란 사람이 서사시를 쓸 무렵부터 있던 것인데 전문용어를 써서 말하면 'deus ex machina 재수 억수 막히나'라는 것입니다. 혹시 배길수 씨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아따리 씨 이야기가 성공을 거두면 저는 번 돈을 모두 갖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배씨 일가 연대기를 쓸 생각입니다. 그러니 배길수 씨를 잘 모르신다거나 더 알고 싶다거나 하시는 분은 아따리 씨를 다룬 이 책을 많이 사시고 선물로도 많이 하셔서 제가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께 아따리 씨 이야기만큼 기막히고 슬프고 장중하고 재미있는 배길수 씨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배길수 씨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로마 시대에 서사시를 하나 쓴 게 있습니다. <이드아이네>라는 서사시인데 일설에 따르면 프로이트가 말년에 이 책을 발견하고 이드 밑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충격에 빠져 미아찾기하듯 다시 정신의 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따리 씨의 희대의 명작 <배길수와 둘한테>를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배길수는 둘한테가 살던 시대까지만 해도 하나의 전설, 아니 세상 만사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백과사전, 아니 그걸 넘어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 신은 구원을 준다 하지만 언제 줄지 몰랐고 배길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신보다 더 유용했다. 그러므로 근대의 실증주의는 신에 대한 배길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닥치거나 도저히 갈피를 못 잡아서 뭘 해야할지 모를 때면 항상 목욕재개를 한 후에 성스러운 다락방에 모셔두었던 배길수의 서사시 <이드아이네>를 꺼내왔다. 그런 다음 잔디가 가득한 정원으로 나와 양피지를 굴린 다음 하늘을 보고 침을 뱉어 침이 양피지에 떨어지면, 바로 침이 떨어진 곳에 적힌 단어를 답으로 생각하고 그 단어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에 옮겼다. 이는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 응용한 deus ex machina라 할 수 있다. 재수 억수 막히나...참으로 시적인 표현이다. 가끔은 내가 뱉은 침이 다른 이의 양피지에 묻어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알레한드로 까나바르의 에 인용된 앙리 까슐리에의 에 인용된 꼬르넬리우스 안토니누스의 에서 그 광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hortus plenum erat hominibus qui manibus idaenem ferenti. magna bella fuit cum saliva ceterae papyrae cecidit". 나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묘사를 찾아보려고 많은 책을 뒤져봤으나 아직 더 훌륭한 묘사는 찾지 못했다. 둘한테가 자신의 작품에서 배길수를 천국에 들지 못하는 자로 묘사한 이후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르네상스의 힘을 업고 둘한테가 권위자로 인정받으면서 배길수의 전설은 사라져버렸다. 둘한테가 그 자리를 곧 차지했으나 온데군데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아예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않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둘한테 또한 잊혀졌다. 그렇다면 deus ex machina란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린, 별로 기억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옳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내년에 쓸 책에서 이를 증명해보이려 한다". 안타깝게도 아따리 씨는 자신이 약속한 책을 쓰지 못했습니다. 재수가 억수로 막혔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따리 씨가 그의 애인이었던 요릭 가토스 1세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아따리 씨는 현대의 deus ex machina가 가능한지 증명하기 위해 집에 있는 모든 책을 폈다 덮었다 하며 예전사람들이 배길수와 둘한테에게서 자문을 구했듯이 글을 쓰다가 막힐 때면 책을 펼쳤을 때 처음 눈에 띄는 단어를 옮겨쓰고 즐겁게 글을 이어가다가 또 막히면 다른 책을 펼쳐보고 덮고 하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길 듣고 아따리 씨처럼 책을 덮었다 펼쳤다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시간을 계속한 결과, 저는 백퍼센트 완벽하게 제 막힌 길을 뚫어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그런 책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몇시간 몇일 몇달 몇년이건 열심히 찾다보면 분명히 여러분에게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아따리 씨가 증명하려 했던 게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현대에는 배길수의 서사시나 둘한테의 코메디아 같이 모든 이들에게 다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책은 없지만 각각의 개인에게 정확한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이 반드시 한 권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나 성급한 독자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기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라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이미 살만큼 산 사람입니다. 아무런 말이나 씨부렁거리는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시간은 예술가, 하잘 것 없는 것도 황금으로 만든다네. 그럼 잠시 기다리면서 뭐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시면 신성한 다락방에 올라가 책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이제 제대로 된 길을 찾으면 지금 느끼시는 약간의 지루함을 보상하고도 남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들 눈앞에 펼쳐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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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당에서는 당신의 모토를 진정한 성해방에 대한 하나의 테
다. 느리게 길게 끊김없게. 이는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성행
히 많은 남성당원들도 이에 대한 불만을 느끼고 있던 터이고 여
성이 당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 중에서 개인의 성생활이라는 가
장기지속능력을 갖고 있는 남성이 찬양받는 또 다른 억압을 낳는 결
구아라히르 대통령은 이미 생물학자들에게 오르가즘 세포 이식배양기
술적으로 이는 남성들의 표를 당신에게 끌어올 수 있으므로 굳이 성해
방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당신이 마리까라는 소문을 들
어따데고 여기서 그딴 소리를 하고 자빠졌냐 고 엉덩이가 앞쪽으로 나올만
큼직한 집회를 열어 우선 우리가 고용한 가짜 생물학자들을 등장시켜 과
학자들을 데려와 이 모토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나가야할 여남평등 시대에 얼
많아도 좋지 않으니 적정한 수를 정하는 게 좋을 듯 싶다. 지금 우리가 접
촉박한 상황이다. 당신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들의 성격을 간단히 설
명제를 주장하며 성기에 대한 모든 자료와 통계를 수집해 산술적인 통
계몽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고추제거당은 짐작하는 바대로 남성의 성
기가 더 진보적이고 정치적으로 옳바르며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필
요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남성들이 동의하고 있으며 가
스므로 여성들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묵시론적인 희망을 버리지 않
고대로부터 이어진 동성애의 정신적인 측면과 육체가 정신을 모방해 느
리는 어쩌면 당신이 고대의 자료들에서 모토를 끌어온 건 아닐까 추측해
본적으로 남성에게 적대적이지만 어느 정도는 합의점을 찾아내 함
깨 격으로 이성애자들을 습격하는 게릴라 단체이다. 이들의 주요 활
동에서 미국에 대항해 조지 부쉬와 조지 부셔의 구십분 라이브 섹스 카
매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다른 소문에 의하면 당
시는 써 본 적이 없다 등등 도저히 이성적으로 또 비이성적으로도 이
해방을 위한 동지로서 손을 맞잡는다면 고립된 개인에서 벗어나 하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오늘 하루도 해방, 해방을 외치며 뜨거운 가슴 차
가 운을 시험해보기를 바란다. 그럼 곧 답장을 받아볼 수 있길 바라
진 않지만 우리 당원 모두는 당신에게 표를 몰아주기로 결정을 내리


해방후진 이억팔천오백만육백오십사년 성해방조작위원회 회장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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