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 -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 너머의 역사담론 6
미야지마 히로시 외 지음, 김현영 외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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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사회 경제사 전문가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교수와 명청시대사 전문의 기시모토 미오(岸本美緖)교수의 저작으로 본서는 2008년 발행된 주오고론(中央公論)문고판의 번역서입니다

조선사의 경우 14세기 초 조선초부터 19세기 세도정치기와 흥선대원군의 집권시기를 다루며 중국사의 경우 명과 청의 정치경제사를 아우릅니다.

제가 읽고 느낀 이 책만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료를 직접 인용해 설명하는 편인데도 내용이 편하게 전달될만큼 읽기 쉽습니다( readable)

2. 1장과 5/10장을 제외하고 조선과 중국의 각 주제에 대한 서술은 공동 저자 두분이 번갈아가면서 진행했습니다.

3. 조선사의 경우 족보에 대한 사료를 기준으로 서술했으며 15세기 이후 초기 족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다르게 부계혈통과 모계혈통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가 17-18세기의 사회변화를 거쳐 부계혈통만 기록되는 것으로 변천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4. 조선의 양반의 경우 양반임을 입증하는 문서가 향안 (鄕案)으로 기본적으로 향안에 이름이 올라야 양반노릇울 할 수 있었다는 점 입니다. 양반이 되는 경우는 양인 중에 과거(科擧)에 합격하고 향안에 이름이 올라있어야 하는 조건으로 조선 초 사회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였으나 조선 중기를 넘기며 권문세족이 확립된 이후 과거의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그 지위를 유지하게 됩니다.

5. 명의 경제는 도심과 농촌의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하여 명나라 말기 왕조의 몰락을 제촉하는요인이 됩니다.
동남해안을 중심으로 무역을 활발히 행해 그 영향력이 말레이시아와 류큐 일본에까지 이르지만 명의 상업은 오로지 도시를 중심으로만 영향을 미쳐 농촌의 빈곤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6. 청은 중원을 정복한 이후 청의 황제는 중국의 황제로서의 지위와 여진/몽골/티벳의 유목민족을 통치하는 칸(Khan)으로서의 지위를 모두 가집니다.
명나라가 북방의 몽골을 제압하고 중원을 안정시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으며 저항해 왔다면 청은 동북 출신의 유목민족으로서 몽골을 먼저 제압한 이후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중원을 통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7. 청은 따라서 한족 중심의 중원을 통치하는 것과 자신들의 출신지인 동북 및 서북의 이슬람(주로 투르크 계통의) 지역인 신장(新疆)은 자치권을 보장하는 이중 통치체제를 이루었는데 어찌보면 이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으로 보건데 당연한 통치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8. 조선의 양반 중심 사회체제는 16세기에 그 전성기를 이루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사대부들은 병자호란을 통해 그동안 오랑캐라고 업신여겼던 여진에 무릅을 끓으며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이 치욕의 결과 청에 볼모로 심양에서 18년이나 잡혀 지내야만 했던 후대의 효종은 북벌을 주장하고 추진하지만 청의 현실적 힘에 밀려 실제 북벌은 행하지 못합니다. 청과 조공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조선이 망해버린 명을 섬겨야 한다는 자가당착적 명분론에 집착한 결과입니다. 송자 (宋子)로 일컬어지는 당대의 대유 송시열이 이런 주장을 했고 실제 조선의 외교가 그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명분론을 따랐습니다.

18세기 이후 경제력의 향상으로 힘을 가지게 된 양인과 향리 계층은 점차 양반과 동일한 특권을 누리고자 향안에 본인들 이름을 올리게 되고 이런 현상은 누적되어 19세기에는 양반의 인구수가 양인을 압도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개론서라 한 사건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없고 그저 에피소드만 소개한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입니다.

하지만 조선의 족보와 문중/향안을 통해 양반 계층을 고찰한 점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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