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태종 홍타이지(皇太極)는 후금을 건국한 여진족 지도자 누르하치(努爾哈赤)의 8번째 아들로 명나라이후 중원을 통치하게된 대청제국(大淸帝國)을 세운 2대황제로 한국인들에게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에게 항복을 받은 ‘오랑캐’의 우두머리로 알려져 있고 아버지 누르하치보다 그다지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닙니다.

아직도 한국사회에는 만주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해 잘알지 못하면서도 이곳 지역출신들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이래 이어져온 소중화(小中華)사상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그런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책을 읽게 된 계기도 병자호란 당시 조선을 유린했던 청국 지도자 홍타이지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였습니다. ‘심전도의 굴욕’이라고 알려진 치욕적인 역사를 만든 주인공이라면 욕만 할께 아니라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이 앞으로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는 방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르하치’의 치세에 대한 책을 읽어서 그 이후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여태 읽어왔던 책 내용으로 비교해보건데 객관적으로 홍타이지는 청의 황제에 오를만한 인물이고 지략과 무공 그리고 통치술에 있어 조선의 인조보다 인물됨이 훨씬 큰 사람이었습니다.

정권을 장악했던 서인정권은 원리주의적 중화사상에 빠져 조선의국익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친명배금정책(親明排金政策)을 외교정책의 전면에 내세운 조선은 필연적으로 청에 무릅을 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광해군의 현실적인 명나라와 후금사이의 등거리 외교를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으며 명나라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보낸 제조지은 (再造之恩: 나라를 다시 세우게 해준 은혜)을 망각한 처지라고 주장한 몰지각한 인사들이었습니다.

이미 임진왜란 당시 분조를 이끌며 통치능력을 검증받은 바 있는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반정을 도모해 정권을 잡은 서인(西人)들은 결국 일어나지 않을수도 있었던 병자호란을 아무대책없이 일으키는 역사의 죄를 범합니다. 이들은 말로만 청나라와 전쟁을 치루어서라도 부모의 나라인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군사를 키우는데 소홀하거나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기득권층에 불과했습니다.

선조대부터 시작된 당파싸움과 당위론적 명분에 집착한 지주계층인 양반사대부 서인들은 본인들의 무능과 아집으로 나라를 두번이나 전쟁에 이르게 하고 결국 병자호란이후 300여년 뒤 일본에 나라를 병탄하는 지경으로 몰고 갑니다.

이제 중국으로 눈을 돌려 홍타이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중원을 장악하게 되는지 정리해 봣습니다.

1. 홍타이지의 아버지 누르하치는 뷱경을 장악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산해관 (山海關)을 치기위해 명나라 장수 원숭환(袁崇煥)이 지키고 있던 영원성(寧遠城)을 깨뜨리지 못하고 전장에서 유언없이 사망합니다.

2. 홍타이지는 명의 수출금수로 피폐해진 후금을 계승하는데 누르하치의 많은 아들들과 정치투쟁를 통해 왕위에 오릅니다.

3. 홍타이지는 명과의 화친을 요청하고 후금의 내부정비를 시작합니다. 왕권강화를 위해 팔기조직에 분산되어 있던 통치권을 왕으로 집중시키고 한족(漢族) 책사인 범문정(范文程)을 기용해 만주족의 정치체제에 중국의 제도를 접목시켜 청 특유의 정치체계의 기틀을 잡습니다.

4. 누르하치는 대부분의 여진부족을 통합하였으나 연해주에 위치한 야인여진(野人女眞)을 복속시키지 못했는데 홍타이지는 마지막으로 야인여진을 복속해 여진족 전체를 통합합니다.

5. 이후 같은 기마민족으로 한때 여진을 지배한 적이 있었던 몽골을 복속시킵니다. 원이 멸망한후 이를 계승한 북원 (北元)을 멸망시키고 홍타이지는 여진족과 몽골족의 칸으로의 위상을 다지고 중원을 칠 수 있는 서북루트를 개척합니다.

6. 이후 동아시아의 대명사대주의 체제의 종식을 선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또 중원공략의 뒷문을 단속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을 공략합니다. 홍타이지 입장에서는 병자동정(丙子東征), 조선의 입장에서는 병자호란( 丙子胡亂)이 이 전쟁으로 청은 사실상 ‘전쟁없이 ‘ 조선을 공략했고 인조와 서인정권은 남한산성에서 농성전을 벌이다 45일만에 삼전도 벌판에서 홍타이지에게 항복의 예를 표하고 이후 청과의 사대관계를 수립합니다.

7. 이후 청은 서북루트를 통해 명의 중원을 공략하고 반간계를 통해 영원성의 원숭환을 제거합니다. 5차에 걸친 청의 중원공략을 통해 명나라를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만듭니다. 명은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져 이자성으로 대표되는 농민 반란군은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는 등 혼란에 빠져버립니다.

8. 청은 산해관(山海關)을 격파해 북경으로 진격해 중원을 장악합니다. 이로써 14세기말이후 동아시아를 장악하던 대명사대주의체제는 종말을 고했습니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지요.

P.S.
조선에서 오랑캐라는 말은 조선은 오랑캐가 아니라는 뜻으로 아시아의 여러 유목민족들을 지칭하는데 쓰였지만 조선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조선을 어떻게 보는지 괸심이 없었습니다. 조선이 자신을 소중화(小中華)로 여기고 중국과 동일시하고 있었음에도 중국 (명)은 조선을 동쪽의 오랑캐(東夷)로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로 보고 있었고 청(여진)은 같은 오랑캐인 조선이 왜 자신을 무시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병자호란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성리학 원리주의 (Neo-Confucian Fundamentalism)에 입각한 중화주의적 사대관 (中華主義的 事大觀)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고 무능했습니다.
여진족은 중국대륙을 300여년간 통치한 민족입니다. 유목기마민족이 농경민족보다 열등하다는믿음은 주입된 믿음일수도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있는 그대로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P.S.2

두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주제는 명나라 말기 은본위제(Silver Standard)에 대한 부분입니다. 17세기 초 포르투갈 및스페인 상인들을 통해 남미의 은이 명으로 유입되고 일본의 은이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또 일본 왜구를 통해 명으로 유입되었고 이렇게 명나라에 축적된 풍부한 은(銀)은 결국 명나라가 가치의 저장 및 교환수단을 은으로 정하게 되는 은본위제(銀本位制)로 발전하게 되어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및 교역확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누르하치 집권시부터 청나라는 국부의 척도가 된 은을 축적하기 위해 명과 조선을 통해 교역을 발전시키기 원했습니다. 원숭환과의 영원성 전투가 있기 전까지 청은 명과의 교역을 통해 국부도 축적할 수 있었고 생필품도 구할 수 있었지만 이후 명과의 교역이 끊긴 후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런 경제적 곤궁때문에 청은 장기인 전쟁과 약탈을 통한 경제발전 정책으로 선회하게 됩니다. 화폐경제론적 입장에서 명의 경제사정을 설명해 준 이 부분은 이책에서 꼭 보아야 할 백미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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