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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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적어도 한 편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정세랑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은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서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는 50인의 이야기를 엮은 독특한 작품이다. 각 장의 제목은 송수정, 이기윤, 권혜정, 조양선, 김성진 등 인물의 이름으로 되어 있고,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 장에 나온 의사가 다음 장의 주인공의 소개팅 상대로, 앞 장에 나온 간호사가 다음 장의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식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떼놓고 보면 인간이란 참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최악의 남자를 만나게 될 줄 모르고 자신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내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곧 있으면 자식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줄 모르고 자식에게 막말을 퍼붓는 부모도 있다. 이들은 과거는 알지만 미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은 알지만 타인은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 이들을 오만하게 만들고, 알지 못하는 것이 이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들은 완전한 삶을 꿈꾸지만 하나같이 불완전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 세계 전체를 보면, 고백조차 못해보고 떠나보낸 사랑을 아쉬워하는 젊은이의 뒤에는 느지막이 찾아온 사랑에 기뻐하는 노인이 있고, 방금 전 목숨을 거둔 사람의 곁에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퇴원해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불완전한 사람과 불완전한 사람이 만나고, 기쁨과 슬픔,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고, 생과 사가 엇갈리고, 그렇게 넘치고 모자란 것이 더해져 평평하고 완전한 상태가 바로 이 세상. 소설 안에 있는 인물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소설 밖에 있는 나(독자)만이 알 수 있는 아이러니가 절묘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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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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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소년 윤재는 '아몬드'라고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 누가 친절을 베풀어도 고마운 줄 모르고, 길 위에 여자애가 넘어져 있어도 괜찮냐는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지만, 겉보기엔 멀쩡하고 엄마와 할머니가 살뜰하게 돌봐서 한동안 별문제 없이 지냈다. 그런데 윤재의 생일이기도 한 크리스마스이브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할머니는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윤재는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을 꾸리며 근근이 먹고산다. 


그런 윤재 앞에 곤이라는 녀석이 나타난다. 세 살 때 괴한에게 납치되어 갖은 고생을 하다가 기적적으로 친부모를 만났으나 어머니는 이미 죽고 아버지는 냉담해 괴로워하는 녀석이다. 분노로 가득 찬 곤이는 분노는커녕 사소한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는 윤재를 이상하게 여기고 급기야 대놓고 괴롭히기 시작한다. 윤재는 그런 곤이 때문에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진심으로 부딪치는 곤이의 노력이 가상하고 곤이의 존재가 소중하게까지 여겨진다. 과연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인가. 


이야기가 길지 않고 문장이 쉬워서 금방 읽을 수 있다. <위저드 베이커리>, <완득이>를 잇는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답게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매끄럽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상당한 울림을 느낄 듯. 감정이 없는 소년과 감정이 있다 못해 넘치는 소년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과정도 흥미롭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에게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을 나눠가지는 모습도 흐뭇하다(도라가 왜 나왔는지 의문이라는 독자 리뷰를 읽었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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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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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려면 반드시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나와야 할까? 신춘문예를 통과하지 못하면 소설가가 될 수 없을까? 이런 질문들에 과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김동식의 소설집 <회색 인간> (전 3권)이다. 


작가는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2006년 서울로 상경해 그 후로 10여 년을 액세서리 공장의 노동자로 일했다. 작가는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이야기들을 글로 써서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올렸다. 거의 매일 새벽 시간을 그렇게 보냈더니 자그마치 300편의 짧은 소설이 모였고 그중에 66편을 추렸더니 소설집 세 권이 완성되었다(잘은 모르지만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전공자 중에도 소설을 300편이나 써본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책을 한 번에 세 권 낸 사람도). 


공포 게시판에 올린 글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괴이하고 섬뜩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프란츠 카프카나 아베 코보를 연상시키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가 많다. 표제작 <회색 인간>은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갑자기 지저(地低) 세계로 끌려간 인간들은 강제 노동에 투입되고,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실컷 잠도 못 잔 채 여기저기서 쓰러지고 죽어간다. 천저(天低) 세계, 즉 여기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에둘러 표현한 듯하다. 


이 밖에도 <무인도의 부자 노인>, <낮인간, 밤인간>, <아웃팅>, <신의 소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디지털 고려장,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등 제목만 보아도 호기심이 샘솟는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다. 한 편 한 편의 길이가 짧아서 읽기가 부담스럽지도 않다.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상상 곳곳에 슬그머니 숨어 있는 유머와 희망도 책장을 계속 넘기게 만드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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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하극상 제1부 책이 없으면 만들면 돼! 1
카즈키 미야 원작, 시이나 유우 외 그림, 강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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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술 마실 수 없는 공간이 지옥인 것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책 읽을 수 없는 공간이 곧 지옥이다. 2018년 '이 라이트 노벨이 대단하다' 1위 수상작의 코믹스 버전 <책벌레의 하극상>은 책이 좋아 책에 깔려죽는 것이 소원인 여대생 모토스 우라노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뒤 책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대에 환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렇게 '책'을 읽고 싶은데, 그저 그거 하나면 충분한데 '책'이 없단 말이야." 체력이 약한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 마인으로 환생한 것도, 가난한 군인의 집에서 태어난 것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집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책은커녕 책 비슷한 종이 한 장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생에 지독한 활자 중독이었던 마인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답답함을 못 이긴 나머지 부모님 앞에서 울기도 하고 떼도 써 보지만, 책은커녕 글자도 읽지 못하는 부모님은 마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좌절할 마인이 아니다. 마인은 비록 다섯 살 여자아이의 몸을 지녔지만, 대학생 수준의 지혜와 정신력을 겸비했다. 그동안 배운 역사 지식을 총동원해 옛날 사람들의 생활에 적응하는 한편, 책을 구할 수 없으면 직접 만들겠다는 각오로 본격적인 책 만들기에 돌입한다. "책에 대한 내 열정은 이 정도가 아니야.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자." 그리하여 마인은 언니 투리와 동네 남자아이들이 주워온 나뭇잎을 이용해 파피루스 비슷한 종이 만들기를 시도하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 





인기 라이트노벨이 원작인 만큼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고 전개가 흥미롭다. 성이나 폭력에 대한 묘사가 (적어도 1권에는) 없어서 라이트노벨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이 있는 독자들도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 좋아하는 사람이 책 없는 세상에 떨어진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환생하자마자 일단 집 안에 무슨 책이 있나 뒤져보던 마인의 모습이, 남의 집에 가면 일단 무슨 책이 있는지부터 살펴보는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책벌레라면 누구나 알 만한 애환을 라이트노벨의 세계로 구현한 원작자가 대단하다. 


원작인 라이트노벨은 2017년에 본편 연재가 종료되었으며, 라이트노벨 단행본은 현재 제3부 2권까지 총 9권(제1부 3권, 제2부 4권, 제3부 2권)이 출간된 상태다. 코믹스 버전은 시이나 유우와 스즈카가 작화를 맡았는데, 마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귀엽게 잘 표현했다. 조만간 라이트노벨을 구입해 다 읽고, 코믹스 버전도 출간되는 족족 구입해 읽을 예정이다. 오랜만에, 오래오래 푹 빠져 읽을 만한 만화를 만나서 반갑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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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끝은 사랑의 시작 2
타아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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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기로 소문난 쌍둥이 여동생과 비교 당하며 자란 탓에 자신감이 없는 수퍼 네거티브 걸 야나세 마히루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지구의 끝은 사랑의 시작 2권>이 나왔다. 지난 1권에서 마히루는 고등학교 입학 직후 같은 학교의 꽃미남 아오이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받지만 '왜 나 같은 애를...'이란 생각 때문에 피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오이는 마히루의 예상보다 훨씬 근성이 있는 소년이었고, 아오이를 피해 다니던 마히루는 결국 아오이를 맞닥뜨리고 다시 한 번 아오이에게 고백을 받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너랑 사귀고 싶어." 좋아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난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마히루에게, 아오이는 오래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히루 자신도 모르게 아오이의 인생을 바꾼 그때의 이야기를...! 


아오이의 이야기도 확실히 들었고 첫 키스까지 허락했지만, 마히루는 여전히 자신이 아오이에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아오이가 자신을 진지하게 좋아한다는 건 믿지만, 좋은 일이 생기면 곧바로 나쁜 일이 생기는 마히루의 징크스가 이번에도 발휘되어 결국 아오이를 영영 놓치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한다. 





마히루의 부정적인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히루가 어쩌다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고 있고 이해하기에 그저 답답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나 같아도 아오이처럼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도 스위트한 꽃미남이 내가 좋다고 들이대면 일단 당황할 것 같다(너 같은 꽃미남이 날 좋아할 리 없어!). 그런 서로를 알아가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마히루와 아오이의 모습이 너무 귀엽다. 어서 3권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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