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역
지난 달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있을 때였다 . 방명록 앞에 서서 뜨거운 핀 조명에 삼일을 감지 못한 머리카락에서 윤기가 빠닥빠닥 나고 있었고 , 장례식장 가족 대기실 안쪽에는 분명 샤워기며 욕실이 있었는데 왔다갔다 하는 나(이) 어린가족들로 쉽게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내내 샴푸 티슈가 나오긴 했던데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 ( 샴푸는 있는데 , 수건이 없었다는!! 더 웃긴 건 내가 책은 사면서 수건 한 장은 안샀다는!! )
걍 , 오늘만 , 오늘만 참자 ... 이러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두피를 삼일이나 (? 실제론 이틀을 밤새고 스타팅한 거였기에 5일에 가까움 , 그래 , 난 매일 머리 안 감는다 . ) 견디고 있었다 . (이건 진짜 남친이 생겨도 쉽게 공개하기 싫은 모습였다 . 번들거리는 떡진 머리는 .... 신선한 관계의 끝 같았달까 ? 날마다 오는 계란도 아니면서 신선도는... 쯧!! ㅡ 아 , 이건 내 고집이라 우기고 싶네)
조문객이란 늘 문 밖에서 음울을 바로 묻히고 오는 사람들 같을 때가 있지 않나 ? 아버진 청하지 않은 조문객들의 화환 릴레이에 어리둥절하고 계셨고 , 침통한 (?) 객들이 자꾸 드나들었다 .
그런데 , 나는 어이없게도 .... 그런 분들을 보면 이상하게 웃기고 싶었다 . 여러 차례 정독한 죽음학 스케치 ( 김달수 지음 , 인간사랑) 에선 절대 호상이란 없다며 , 진지하라 주문했지만 나란한 향을 꽂고 , 국화 가지를 이리? 저리 ! 돌려 놓을까 , 절이 몇번인가를 묻는 객들이 오면 나는 슬며시 웃음부터 났다 . 어색하게 양말 끝을 수줍게 저들끼리 꼬는 절 뒤에서 , 그리고 다시 상주 앞에 서서 이런 저런 애통을 나누고 돌아서는 , 먼 길을 온 객들의 얼굴이 지나치게 무게 있으면 ... 나는 그분들께 조용히 벽을 가르켰다 .
거긴 누가 , 언제 썼는지 모를 메모가 한 줄 있었는데 몇 개의 숫잔 결국 ~4444 이고 그 앞의 이름은 동 , 역 , 이름 였는데 너무나 멋들어지게 ! 일필휘지로 쓴 듯한 펜심이 느껴지는 탓에 쿡 ~! 하고 쑤셔오는 재치가 있었다 .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 길음역 근처였는데 , 누군가 길을 알려 주며 , 거기 급히 ( 본래의 필치를 숨기지 못하고 멋지게!!) 메모를 한 듯 보였다 . 언제의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
기 .름 .역
이걸 가르키면 , 모두 허탈하게 무릎을 꿇고 웃었다 . 나는 진지하게 (?) 가르켰는데 ... 나중에 엉엉 운 엄마도 그걸 보고 웃었고 , 고모님도 , 허허허 웃었다 . 냉철하단 고모부는 말할 것도 없고 ... 단지 기름역 ... 그거 뿐였는데 ... 시간이 갈 수록 가족들끼린 ' 기름역' 앞에 모여 ㅡ 소박한 덕담의 미소까지... 그랬다 . 장례가 , 상주가 이미 초탈한 상태에선 너무 무거울 필요가 있나 , 나는 그랬었다 .
물론 아버지는 여러 감정들로 혼란스러우셨을 거겠지만 , 나는 천진한 할아버지만을 뵈서 , 맑은 , 밝은 그 기운을 잊고 싶지 않았다 . 할머니 때도 나는 애통보단 할머니의 그 밝음을 더 기억하고 싶었었다 . 누군가의 인생을 다 알기란 어렵지 ... 다만 나는 그 분들이 생전에 서로를 놓지 않고 , 놓지 못했었단 것은 너무 잘 안다 . 그게 넘 이쁘고 고와서 정신이 넘 맑은 그분들 옆에 있음 , 늘 엄마에게 철딱서니 없이 할머니 , 할아버지 내가 모실래 그랬었다 . 누구하난 그렇게 그 분들을 기억해도 좋지 않나 했고 ...
가까웠던 이들은 , 결코 갖지 못할 말 못할 애틋함을 이 분들은 내게 따로 선물해 주시려 오신게 아닌가 ,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 결국 오랜 병에 , 생활을 접을 수 없는 결단을 우리 모두 내리고 가장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셨었다 . 남 , 녀 병동이 얇은 유리창 하나 뿐이던 요양원 , 거기에 나란히 고개 돌리면 서로를 볼 수있는 곳에 두 분이 계셨다 . 엄마 ,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 우린 그보단 띠엄띠엄 뵈러 갔지만 , 늘 그분들 생각을 했다 .
주말마다 아버지와 엄마는 할아버지 동영상을 , 그전엔 두 분의 영상을 우리에게 보내 오셨었다 . 나는 ... 아버지 엄마가 , 정말 넘 !넘 ! 고맙고 감사했다 .
12월 1일은 할머니 기일 2주년에 접어든(날이었) 다 . 할아버진 어쩜 그리 날짜를 (?) 맞추셨는지 , 보름 정도의 날짜를 두고 이번에 할머니 곁으로 가셨다 . 두 분 다 날씨가 찬란하게 좋았던 건 말할 것도 없고 , 놀러 간 것도 아닌데 자꾸만 거기 주저 앉아 머물고 싶어져 엄마가 , 아버지가 , 작은 아버님들 , 작은 어머님들의 애정어리고 따듯한 손길에 겨우 빠져 나왔던 길이었다 .
처음 화천의 구비구비 산골 ,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 . 지금은 지역 문화 땜에 좀 더 좋아진 (스마트한)화면이 됐지만 , 바로 곁에 화천의 구비진 계곡물이 시리게 흘러 한 여름에도 발이 시리고 , 정신이 아찔해졌던 화천이란 계곡의 첫 경험 , 할머니의 계산 없는 사랑 . 아 ... 이걸 뭐라고 표현해!! 그 때 우리 윤은 일곱살이었다 . 나는 이혼의 상처로 넝마가 되다시피했었는데 , 할머니 , 할아버지의 그 맑은 웃음이 아녔다면 ,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 ㅎㅎㅎ
#과탄소소다
내 욕실의 , 빨래감을 정리하는 바구니 앞엔 아직도 과탄소 소다 라고쓴 , 엉터리 글자가 있다 . 둥글고 반듯한 통이어서 재활용을 하다보니 , 필요할 때 이름을 매직펜으로 써 넣었는데 , 어느날 보니 , 밑에는 봉지 채 든 과탄산' 소다 ... 위엔 동그란 통 이름이 과탄소 " 소다 . 아무 생각 없이 쓴 ...
이전엔 아 , 실수인데 윤이 보기전에 바꿔야지 ... 그랬다가 요즘은 내가 그걸 보고 웃는 통에 그냥 두기로 했다 . 윤이 발견하면 나처럼 웃을까 ? 뭐 , 그런 생각도 하면서 ...
기름역 , 과탄소소다 ... 별 거 아녔다 . 삶을 무겁지 않게 하는 장치(?) 뭐... 그런 걸론 ... 윤은 아직 세탁물엔 관심이 없어선지 , 부러 잘 보이게 돌려 놓은 세제통을 아직 모른다 . 그래도 . 그래도 기름역처럼 , 기름역처럼 .
언젠가는 그 앨 웃게 하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을 했다 . 언젠가는 ...언젠가는 .
엊그제도 아버지께 , ( 애쓴 엄마가 아니라 ) 전활했다 . 부러 밝은 목소리로 ... 장례기간 내내 사라져 홀쭉해진 아버지 뺨이 생각나 입 맛은 좀 돌아 오셨나 여쭈고 , 힘 주어 사랑한단 말을 꼭꼭 씹어 전했다 . 아버진 , 허허헛! 고마워 하고 웃으셨다 . 우리 아버진 정말 정말 다정한 사람이다 . 이 달이 가기 전에 ... 아버지의 볼에 오른 살을 다시 봐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 . 애쓸 것이다 . 엄마가 소중한 만큼 , 아버지도 그렇다 . 우리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 덕에 두 동생이 , 그리고 많은 작은 아버지 , 어머니가 잔뜩 생겼다 .
다 같이 가족이 되는 데는 조금 걸렸지만 , 우린 상당히 순탄했다 . 늘 아버지께 그런다 ...
" 전 , 아버지 같은 사람 만나면 , 저 , 두말 않고 , 결혼 또 해요! 하고 말고요!! 제가 울 아버지 넘 사랑하는 거 아시죠?? "
애정이 , 넘 ... 기름진가 ? 흣 !!
#인간사랑 #죽음학스케치 #김달수 #가족인연 #과탄산소다 #길음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