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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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구름

 

언제쯤 나는 나를 다 지나갈 수 있을까 *

어디까지 가야 나는 끝나는 것일까

하루가 한세기처럼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저녁이 있었다

내가 지나가는 풍경의 배경음악은

대체로 무거웠으므로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버거운 시간들로

너무 진지한 의상을 차려입어야 하는 날이 많았으므로

슬픔도 그중의 하나였으므로

내가 있는 장면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밤이 많았다

네가 떠난 뒤에는 더 그랬다

언제쯤 나는 나를 다 지나갈 수 있을까

장마를 끌고 온 구름의 거대한 행렬이

찬찬히 너 없는 공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 안현미의 시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

사였다 」중 * 삐아졸라를 들으며 나는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 이라는 구절을 빌려 썼다 .

 

ㅡ본문 38 쪽에서 ㅡ

사월바다 ㅡ도종환시인의 시집 에서

 


 

 

겨우 하루 약속을 잡고 그것을 지키는 일에 이토록 몸살이 다 나다니 ,

기다림의 시간으로 온통을 사는 이들은 어찌 삶이라 할까 ,

그게 고통이라 견딜 수 있는 것일까 ? 내내 다디단 것이었음 차마 

떨치고 일어날 수 없을테니 , 기다림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 열이 들떠 힘든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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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6-11-23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좋아하는 시인... 도종환 시인.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6-11-23 12:25   좋아요 0 | URL
저도 무척 오랫만에 이 시인의 시집을 보는데
이번 시집은 말이 입에 착 달라 붙는 면이 있어서 더 좋네요 .^^
덕분에 다른 시집까지 더 찾아보고 싶게해요 .
 
[eBook]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시집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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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울고 들어온 너에게ㅡ김용택 시집

< 새들의 밤 >

사흘 째다.
마을은 눈보라 속에 갇혔다.
밤바람 소리가 무섭다.
언 강 위로 눈가루들이 몰려다니다가 휘몰아친다.
나무와 바위들이 돌아서서 등으로 눈을 막으며 고함을 지른다.
새들이 눈보라를 뚫고 마을로 내려온다.
볏이 노란 멧새 날개가 눈보라에 밀린다.
딱새 한마리가 빈집 마루 끝에 앉아 운다.
먼저 다녀간 새 발자국들이 희미하게 덮인다.
하루 종일 마을회관 문은 열리지 않는다.
조청 달인 큰집 헛간 한뎃솥에 김이 솟고
하얀 연기가 낮은 굴뚝 끝에서 흩어진다.
아궁이 속까지 눈이 들이친다.
새들이 한마리 두마리 가마솥 주위로 날아든다.
배고픈 새들의 하루, 눈보라 치는 날은 어둠이 빨리 온다.
부뚜막에 올라 몸서리를 치며 젖은 날개를 털고
솥이 흘린 눈물 속 엿기름 삭은 단물에 언 부리를 적신다.
뼈에 닿은 추위, 꽝꽝 언 강물이 금 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휘몰아친 눈으로 아궁이 앞 땅이 젖고
젖은 땅이 먼 데서부터 다시 사각사각 얼어온다.
왼발을 들고 있다가 내려놓고 오른발을 다시 든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박새는 헛간 볏짚에 달린 덜 여문 벼 알 하나면 되고,
딱새와 멧새는 처마 밑에 매달려
마른 무시래기 한두입이면 되는데, 헛간이나 처마 밑에
시래기나 볏집이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다.
까맣게 그을린 들고양이가 아궁이를 찾아온다.
고양이가 다가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들은
눈보라 속을 헤매는 명주실같이 가는 멧새 울음소리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가마솥 가까이 다가간다.
솥뚜껑도 부뚜막도 식어간다.
눈보라에 불티가 날린다.
눈이 맵다.
불이 사그라지고 솥이 식으면
우리 모두 어디로 날 것인가.
아궁이는 고양이게 내주고
솥을 가려놓은 비닐 천장 쇠막대기로
날아가 나란히 앉는다.
비닐 천막이 펄럭이고 눈이 들이친다.
쇠를 디딘 발이 시리다.
좌우로 한발씩 밀착하여
몸을 기대고 무릎을 굽혀
가슴에 발을 묻는다.
허기진 모래 주머니 속으로
으스스 한기가 스며든다.
쌀을 들었다 놨다.
또다시 좌우로 한발씩 밀착하여
서로의 온기를 확인한다.
새들의 머리에 눈이 쌓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82 /83 /84 ㅡ97

 


 

바람 탓인지 , 추워진 날씨 탓인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

낮에 고양이 두마리가 성난 듯 주고받듯 울어댔고

그 울음 끝에 어떤 이웃의 차인지 모르겠는데 , 자동차의

경보기가 계속 반복해서 울려댔다 . 단지 날씨의 변화가

불러온 이상 현상이라기엔 너무 기이한데 더 이상한 건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

이 세계에 마치 나만 남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사무치게

쓸쓸해 소리치고 싶었다 . 거기 누가 좀 있다면 , 저것 들

소리, 소리 , 저 소리 좀 어떻게든 해 달라고 ...

모두들 나만 두고 화성 어디 쯤으로 이주들을 한걸까 ?

모든 소음이 그렇듯이 규칙적이다 . 그래서인지 괜시리

고요를 먹고 클 것 같은 눈 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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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1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날씨가 좋아요.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 좋은 날에 황사가 찾아와요. 그리고 주말에는 비가 내리고요. 날씨가 많이 변덕스러워졌어요. ^^;;

[그장소] 2016-11-11 14:45   좋아요 0 | URL
어느새 맑아도 황사 없는 날은 거의 없다시피 한게 평균 같아진듯 해요. 이러다 갠 하늘 한번 보는게 소원되는 날이 올까 겁나요..( 뭐..그때까지 살려고?)^^;;
 
[eBook]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시집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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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아픈  ㅡ 김용택

 

가을은 부산하다 .

모든 것이 바스락거린다 .

소식이 뜸할지 모른다 .

내가 보고 싶고 궁금하거든

바람이는 풀잎을 보라 .

노을 붉은 서쪽으로

날아가는 새떼들 중에서

제일 끝에 나는 새가 나다 .

 

소식은

그렇게 살아 있는 문자로 전한다 .

새들이 물가에 내려 서성이다가 .

날아올라 네 눈썹 끝으로

걸어 가며 올 것이다 .

 

애타는 것들은 그렇게

가을 이슬처럼 끝으로 몰리고

무게를 버리며

온 몸을 물들인다 .

 

보아라!

새들이 바삐 걸어간 모래톱 ,

조금은 아픈

깊게 파인 발톱 자국

모래들이 허물어진다 .

 

그게 네 맨살에 박힌

나의 문자다 .

 

120 / 158

 

 

서 쪽

 

속이 환한 구름을 보았다 .

하루의 서편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냐

버려진 새들이 날아가 울 노을이 있다는 것이다 .

 

124 / 158

 

#김용택#울고들어온너에게#창비시선401#10월선정도서

#10월4주차미션

#조금은아픈#서쪽#창비책읽는당

#책읽는당10월김용택울고들어온너에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철이 되면 알아서 , 제 갈 길 가는 새들을 철새

그 작은 몸에 , 오죽하면 뼈조차 비운 채로 날면서

철은 드는가 , 들기를 ......

사람도 들지 않는 철딱서니를 ,

 

너무 깊이 오래 잠기지 말라고 , 밤이 오는가

고개 묻어 덮은 날개죽지 위로 밤새 이슬이 ,

 

(yuelb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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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1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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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0-25 21:47   좋아요 1 | URL
마음이 번다하면 책이 들어올 틈도 없어요. ^^
그럴 짬이 나야죠..정신도 좀 들고, 식히고 싶을때요..^^

AgalmA 2016-10-31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문 내용 변용 댓글 서문: 소식은 이렇게 살아 있는 문자로 전한다...너무 깊이 오래 잠기지 말라고...
그장소는 언제 오는가! 빼앗긴 내 맘에도 장날 말고 그장소 오는가!
못본 지 한 달은 된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러다 나타나시면 리뷰 10개 투척?
아프신 걸까, 뭔 일 있으신 건가....
🎃할로윈데이 기념 까불다 감.

2016-10-31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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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6 17: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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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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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8: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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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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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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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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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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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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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2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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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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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시집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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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착 ㅡ 김 용택

도착했다 .
몇해를 걸었어도
도로 여기다 .
아버지는 지게 밑에 앉아
담뱃진 밴 손가락 끝까지
담뱃불을 빨아들이며
내가 죽으면 여기 묻어라 , 하셨다 .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기다 .
일어나 문을 열면 물이고
누우면 산이다 .
무슨 일이 있었는가 .
해가 떴다가 졌다 .
아버지와 아버지 그 아버지들 , 실은
오래된 것이 없다 .
하루에도 몇번씩 물을 건넜다 .
모든 것이 어제였고
오늘이었으며
어느 순간이 되었다 .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빈손을 보았다 .
흘러가는 물에서는
달빛 말고 건져올 것이 없구나 .
아버지가 창살에 비친 새벽빛을 맞으러
물가에 이르렀듯
또다른 생인 것처럼 나는
오늘 아버지의 물가에 도착하였다 .

82 / 158

가지 않은 봄

나는 두려웠다 .
네 눈이 , 사랑하게 될까봐
사랑하게 되어서
나는 두려웠다 .
네 눈이 , 이별하게 될까봐
이별하게 되어서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눈 ,
나는 두려웠다 .
내게 남기고 간
가장 슬픈 눈
나를 찾아 헤매던
슬픈
그 눈

84 / 158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두 시를 오가는 마음엔 물끄럼이라는 시선하나

한 글자로 잡아 매자면 봄,

들여다 봄

가만히 봄

오는가 봄

기다려 봄

온통 안절부절 할 적도 있고 , 체념이 섞인 포기도

기대의 마음도 , 안타까움의 간절함도 전부 뒤에

세워두고서 기다리는 심정을 물끄럼 그저 물끄럼 ,

(yuelb17@naver.com)

 

                        #김용택시집 #울고들어온너에게 #창비시선

#책읽는당#10월선정도서#10월3주차미션책읽는당

#도착#가지않은봄#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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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7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두편이 콱 물었어요 ^^..장바구니로 ^^

[그장소] 2016-10-17 23:19   좋아요 2 | URL
음 , 계절이 그런지 , 시가 절절 끓어요..
넘 애절하게 ,

yureka01 2016-10-18 09:09   좋아요 2 | URL
김용택시인의 신작 시집 출근하자 마자..주문 ㅎㅎㅎ
시가 절절한 바다에 풍덩~

[그장소] 2016-10-18 17:10   좋아요 1 | URL
헉 ~ 신작 나왔어요? 맛보기 보여주시면 , 저도 보고 살게요!^^

yureka01 2016-10-20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집이 신작시집 아니었던가요 ㅋㅋㅋ^^..

[그장소] 2016-10-20 14:43   좋아요 0 | URL
어..날짜를보니 출간일이 2016.9월 신작 맞네요.^^ 시집 번호도 401번이던가.. 이 시집부터 디자인이 좀 달라져서..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이해인 제3시집
이해인 지음 / 분도출판사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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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序   詩

 

 

당신을 위한 나의 기도가

 

그대로

 

한 편의  詩 가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 숨쉬는 나의 매일이

 

읽을수록 맛드는

 

한 편의  詩 가 되게 하소서

 

때로는 아까운 말도

 

용기있게 버려서 더욱 빛나는

 

한 편의  詩 처럼 살게 하소서

 

이해인 시집 ㅡ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ㅡ중에서

 


서시 ㅡ차례 서 , 시 시 자를 쓰는 서시 " 이다 .

시작에 들어가기 전 흔히 시인의 말 쯤 에

자리하는 기도 .

참 오래된 시집인데 오늘은 유독 이 시집의 시가

생각나서 꺼내 보았다 . 찾으려한 시는 이 서문이 아니지만

가을 편지의 전문을 옮기자니 길고 어디 하나만 냉큼 불러 오자니

맥아리 끊기는 것 , 어쩐지 심심해져서 가을까지 두기로 한다.

마음은 가을의 서늘한 날씨를 그리는 탓에 한번 불러보는 거였다고,

 

때가 되면 , [ 말은 없어지고 눈빛만 노을로 타는 우리들의 가을 ]을

불러 오겠다고...가을편지를 쓰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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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0-17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ttps://youtu.be/dVw6RhJtp6I
가을이니까.

[그장소] 2016-10-17 22:17   좋아요 1 | URL
음 ,음, 가을이 깊어가니까~^^
음악일까요? 폰으로 봐야겠어요! 고마워요!

[그장소] 2016-10-17 23:00   좋아요 1 | URL
추억속의 그대 ,
슬픈고독 뿐,,,^^ 추억속의 노래 와~^^

yureka01 2016-10-17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도가 한 편의 시가 되는 게 시편이었네요^^..

[그장소] 2016-10-17 23:18   좋아요 0 | URL
서문 ㅡ서시가 이런데 , 막상 기도 아닌 편지 , 고백 등에 해당되는 본문은 더 아찔해서 ... 휘이청~~~

양철나무꾼 2016-10-18 15: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이상하게 전 님의 서재에만 들어오면 agalma님과의 대화만 돌출되어 들어온다나 어쨌다나~(,.)

오해 없으시길, 부럽고 보기 좋다는 얘깁니다~^^

저 소싯적에 이해인 수녀의 이 시집 정서에 푹 빠져 손에 지문이 닳도록 어루만지고, 시들을 외웠다죠.
오래간만에 보니, 반갑네요~^^

[그장소] 2016-10-18 17:18   좋아요 1 | URL
아하핫~ 제 방에 워낙 댓글이 귀하다보니 , 그나마 자주 와주시는 Agalma 님이 잘 보이는 건 당연한 걸지도, ㅎㅎㅎ
오해는요~~^^ 히잇~~

저도 어릴때 무척 아껴보던 시집들예요 . 오래되서 개정판도 나온모양인데 , 제건 다
구판 초판 이렇네요!
기도하듯 입에 마음에 달라붙죠 ..시들이 ..젖은 옷처럼 ..

AgalmA 2016-10-22 02:42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서재에도 댓글 자주 다는데...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