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사물들 문학동네 시인선 23
이현승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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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원료

이현승


우리는 언제나 두 번 놀란다
한 번은 갑작스런 부고 때문에
또 한 번은 너무나 완강한 영정 때문에
다 탄 향의 재처럼 가뭇가뭇한 눈을 씻고
우리는 산적과 편육과 장국으로 차려진 상을 받으며
사나운 곡소리와 눈물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의 얼굴이란 웃는 표정과 우는 표정이 비슷하고
가리는 울음과 드러내는 웃음이 반반 섞이고 나면
알 수 없다 알 수 없이 망연하게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호흡은 들숨일까 날숨일까
마지막 날숨을 탄식이라고 볼 수 있을까
들숨을 결심할 때의 그것으로 볼 수 있을까
남의 밥그릇에 밥을 퍼줄 때만
우리는 잠시 초연해질 수 있다
밥통을 열어젖힐 때의 훈김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이현승 시집 ㅡ친애하는 사물들 ㅡ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알 수 없어 망연하게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것들
눈물의 원료 중에
남의 밥그릇도 있구나 ..
밥통이 열렸다 닫히는 그 짧은 순간 날라가는 김처럼
서리다 흐려지는 감정들이 눈물의 원료들 ...

명치부터 차곡차곡 쌓이다가
초월했다 여겨 무시하다
어느 새엔가 넘치는 줄 모르고
둑을 타 넘는 그 것이
눈물이란 것이구나 ...
제 서러움에만 울줄 알았지 ,
남의 서럼에는 척만 하였던 순간들
고장이난 눈물의 개수대는 이젠 가릴 것도 없이
내 일 남의 일 없이 한 번 터지면 몇 시간도 몇 날도
하염없다시피 줄줄 ,
일생을 이 날을 위해 이 악물고
울지 않고 참아 온 것처럼 ,
영글은 봉숭아처럼 건들이기만 하면 톡 터지는
눈물 강 상류엔 침식처럼 쌓이는 한 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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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 창비시선 389
고형렬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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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순간 장난감

 

나를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요

나를 당신의 이름 속에 묶으려 하지 말아요

당신의 길이 있으면 당신 길을 가도록 하세요

나를 끌어들이려고 하지 말아요

우리는 너무 오래 서로의 이름을 불렀어요

나의 이름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고 싶어요

그리고 아직 분명한 건 아니지만

당신에게도 어떤 망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는 필요를 버리고 싶은가봐요

내가 어떤 미명의 약속 외에 구름과 바람같은

또다른 아침의 꽃으로 왔다 할지라도

이제 우리는 만나기 전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봐야 해요 이 말도 잊어야 하지만 

현재가 아득한 과거의 현재이길 바라요

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 애쓰지 말아요

이제 당신은 나에게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나를 스스로 혼자 있게 놓아줘요

조용히 담 밑에서 햇살을 받게 해줘요

해가 지는 도시 , 서향의 한 정류장에서 나는

당신에게 너무 오래된 말을 하고 있어요

 

p. 52  /  53

고형렬 시집 <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 중에서

 


 

 

새벽 마실 탓였을까... 잠을 취하려 먹은 수면제는 실패였고

두번째 알약마저 먹고선 몽유병자처럼 온 몸이 아프다고

방과 거실을 서성거린 새벽의 시간과 오전 ,

차라리 확실한 고통였더라면 뭐라고 표현할 수있는 고통였다면

좋았을 텐데 , 아주 미열처럼 기분 나쁜 그것 .

그것은 힘이 남아 돌아 내 머리 속에 방을 만들어 차지하곤

그 방에서 탕탕 못질을 하고 있었다 . 

걸음 하나에 못을 두번 , 팔 하나 휘저음에 못질 세번

이런식으로 ... 잠따위 자라는 어린애만 영양분처럼 필요한

것이라고 치부하려 애를 썼는데 시간은 웃기지마 ! 하고 웃네

나의 순간 장난감. 분명한 고통은 없다 .

모든게 함꼐 오고 함께 서서히 간다 .

단 하나의 증상이 아닌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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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04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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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저녁

 

보고 싶어도 참는 것

손 내밀고 싶어도

그저 손으로 손가락들을 만지작이고 있는 것

그런게 바위도 되고

바위 밑의 꽃도 되고 蘭 도 되고 하는 걸까?

아니면 웅덩이가 되어서

지나는 구름 같은 걸 둘둘 말아

가슴에 넣어두는 걸까?

 

빠져나갈 자리 마땅찮은 구름떼 바쁜

새로 생긴 저녁

 

p.15

장석남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중에서


난초가 바위밑에서 하늘하늘하는 장면이 보이는 듯해서

혼자 웃음을 깨물어 먹으며, 아니 얼음인가

위에선 찬 것 좀 그만 내려보내 하는데, 입안서

돌돌 굴려먹다 와자작 씹어 먹는 그 날카로운 찬기가

재미도 있고 시원함이 섬짓해서 자꾸만 한 알만 한알만 더

그러고 ......시원한 물이 침보다 먼저 목구멍을 통과할때

저 난초를 발견한 기쁨 같은 것

작게 꺠무는 희열 ...

물 웅덩이 멀거니 하늘을 마주하고 난은 흔들리며 저녁

오는 참을 바라보고 , 이쁜 시구나...

기다림도 있고 ...난 손가락을 놀려 시를 옮길 적에

누군 그저 만지작이고 ! 그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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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물고기 2016-08-22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의 정거장을 읽고 흠뻑 빠져 시집도 접했는데 좋아라 하는 문인이네요

[그장소] 2016-08-22 23:34   좋아요 0 | URL
이렇게 뵈니 또 신선해요 . 인스타계정에서만 뵙다가요!^^
표현도 참 고상하시지 ..문인 ~!
물의 정거장 좋으셨군요!^^
저도 들여다 봐야겠네요 . 그 책!

구름물고기 2016-08-22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인스타를 탈퇴를 해버렸는데
저는 음..단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로는 감이 안잡히네요..ㅎ 어떻게 되었든 좋은 서평을 많이 접하네요

[그장소] 2016-08-22 23:56   좋아요 0 | URL
아 . 그러셨구나 ..프로필이 낯익어서 기억해요! ^^
여기서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
좋은글들이 대화에 매개가되고 책을 알게되는건 넘 넘 좋고요! 반갑습니다! 여러모로~^^

구름물고기 2016-08-23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좋아요~저도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북플에 완전 선배인데요 ㅋ

[그장소] 2016-08-23 00:10   좋아요 0 | URL
아~ 이거 이거 ..전 새내기로 계속 남고픈데 ...ㅎㅎㅎㅎ
세월이~~야속해~!^^
저도 책으로 인연하는 분들은 참 좋더라고요!^^
네엣~ 서로 잘 잘 ! 부탁합시다!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04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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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길 >ㅡ 장석남

밤길을 걷는다 
걸음은 어둠이나 다 가져라
걸음 없이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
어둠 속 풀잎이나
바람결이나 다 가져라
걸어서 닿을 수 없는 데에 가고 싶으니
유실수들 풋열매 떨어뜨리는 소리
이승의 끝자락을 적신다
그러하다가
새벽달이 뜨면 올올이
풀리는 빛에 걸음은 걸려라 
걸려 넘어져라
넘어져 무릎에 철철 피가 넘치고
핏속에 파란 별빛들과 여러 날 시각을 달리해서 뜨
던 달
셋방과 가난한 식탁
옹색한 여관 잠과 마주치는 눈길들의
망초꽃 같은 세미나
꼬부라져 사라졌던 또다른 길들 피어날 것이다
환하고 축축하게 웃으면서 이곳이군
내가 닿은 곳은 이곳이군
조금은 쓰라리겠지
내가 밤길을 걸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새 날이 와서 침침하게 앉아
밤길응 걸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나는 벙어리가 되어야 하겠지
그것이 다 우리들의 연애였으니

p .30 /31

장석남 시집 ㅡ《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범수 ㅡ노래 "서툰시"

https://youtu.be/ja4D8uddpDc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새벽 무렵 산책 

밤의 길은 낮의 환한 길보다 더 익숙하다 
논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며 밤 사이 부지런한 거미의
울타리를 예고치 못하게 망가뜨릴때 
내 살갗에도 거미의 아픈 마음 만큼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들 처럼 피가 맺힌다 
도르르 맺힌 밤의 피들을 스윽 닦아 내면서 
깜깜한 밤길을 걷는다
어차피 아침이면 사라졌을 것들 아니냐
찰박찰박 논을 넘쳐 흐른 포장 길을 적시는 물길을
길이 낸 상처같다고 여기며
나는 길의 피조차 밟으며 거침이 없이 걷는다
멀리 돌아 오는 길엔 동녘의 산등성이가
비스듬하게 창백한 미소로 배웅을 한다 
이 밤 길도 오늘은 안녕 하다
잘 들어가라고 논밭 사이 개구리들 
와글와글 노래해준다 
매일 새벽 4시 50분 성경 말씀을 들으며 운동하는 이는
내가 돌아 오기전에 운동을 마치고 가버렸다 . 
발 걸음도 씩씩하게 돌아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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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한

​ 임경섭

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
잠도 안 자고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
이만큼이 내 어제야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

발톱이 버려질 때마다
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
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
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이
오늘을 잉태한다고도 믿었지만

한 번도 말하지는 않았다

고백하자면 애인은
발톱 깎는 시늉에 바쁜 날이 잦긴 했었다

창밖으로

시늉을 던지면

그 하얗던 어제가 밤보다 까맣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던

                                     임경섭 시집 《죄책감》중에서
                                     p . ​38 , 39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는 하루가 
있기나 하면 좋겠어
있는 척 하는 것에도 지쳐
등돌리는 하루가 
톡톡 톡  깍아내서 버릴 수라도 있음
그럼 좋겠어
버려질 수나 있음 좋겠어
지난 날도 앞으로 쌓일 오늘도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창 밖으로 스스로나 내 던질까..
그래도 뭘 버릴 수 있는 게 좋지
척, 한 시간이라도 버리니
버릴게 남은 사람은 좋지
하는 동안은 뭔가 있는 거니까
아직 남은 거니까
기가쿠의 하이쿠에선
ㅡ 내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산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ㅡ
라던데...
붙어 있는 숨조차가 무거워 
한 숨 만 내쉬는 이쪽은
등돌리며 덜그럭 무거운 몸은
손톱만큼도 발톱만큼도
살아낼 어떤게 없는 
어떤 텅 빈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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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8-05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는 행위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그장소] 2016-08-0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주술보단 미신에 가까운데 뭐, 시늉이라니 이 부분은 주술적으로도 (스스로 암시를거는)효과가 없진 않을 것도 같아요.^^ 이전부터 어떤 금기는 행위보단 그 금기 자체를 떠올리는 것만도 불경한 일 였으니까...말이죠 .( 불온?)그냥 하면 안된다 ㅡ를 넘어서는 차원으로 바뀌니까요..^^

cyrus 2016-08-05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발톱도 은근히 빨리 자라는 것 같아요. 발톱이 손톱과 다른 점은 길어 보이는 티가 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제 발톱이 길다고 하는데, 저는 짧다고 느껴져요.

[그장소] 2016-08-05 15:02   좋아요 0 | URL
네 ..발톱은 손톱 만큼 자주 보는곳이 아니어서 더 그렇게 느끼지 싶어요 . 자주 쓰는 손도 손톱이 빨리 자라는것처럼 느끼듯 ...상반된 생각으로 발톱은 빨리.자라기도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