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들어온 너에게ㅡ김용택 시집
< 새들의 밤
>
사흘 째다.
마을은 눈보라 속에 갇혔다.
밤바람 소리가 무섭다.
언 강 위로 눈가루들이 몰려다니다가 휘몰아친다.
나무와 바위들이 돌아서서 등으로 눈을 막으며 고함을 지른다.
새들이 눈보라를 뚫고 마을로 내려온다.
볏이 노란 멧새 날개가 눈보라에 밀린다.
딱새 한마리가 빈집 마루 끝에 앉아 운다.
먼저 다녀간 새 발자국들이 희미하게 덮인다.
하루 종일 마을회관 문은 열리지 않는다.
조청 달인 큰집 헛간 한뎃솥에 김이
솟고
하얀 연기가 낮은 굴뚝 끝에서 흩어진다.
아궁이 속까지 눈이 들이친다.
새들이 한마리 두마리 가마솥 주위로 날아든다.
배고픈 새들의 하루, 눈보라 치는 날은 어둠이 빨리 온다.
부뚜막에 올라 몸서리를 치며 젖은 날개를 털고
솥이 흘린 눈물 속 엿기름 삭은 단물에 언 부리를 적신다.
뼈에 닿은 추위, 꽝꽝 언 강물이 금 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휘몰아친 눈으로 아궁이 앞 땅이 젖고
젖은 땅이 먼 데서부터 다시 사각사각 얼어온다.
왼발을 들고 있다가 내려놓고 오른발을 다시 든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박새는 헛간 볏짚에 달린 덜 여문 벼 알 하나면 되고,
딱새와 멧새는 처마 밑에 매달려
마른 무시래기 한두입이면 되는데, 헛간이나 처마 밑에
시래기나 볏집이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다.
까맣게 그을린 들고양이가 아궁이를 찾아온다.
고양이가 다가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들은
눈보라 속을 헤매는 명주실같이 가는 멧새 울음소리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가마솥 가까이 다가간다.
솥뚜껑도 부뚜막도 식어간다.
눈보라에 불티가 날린다.
눈이 맵다.
불이 사그라지고 솥이 식으면
우리 모두 어디로 날 것인가.
아궁이는 고양이게 내주고
솥을 가려놓은 비닐 천장 쇠막대기로
날아가 나란히 앉는다.
비닐 천막이 펄럭이고 눈이 들이친다.
쇠를 디딘 발이 시리다.
좌우로 한발씩 밀착하여
몸을 기대고 무릎을 굽혀
가슴에 발을 묻는다.
허기진 모래 주머니 속으로
으스스 한기가 스며든다.
쌀을 들었다 놨다.
또다시 좌우로 한발씩 밀착하여
서로의 온기를 확인한다.
새들의 머리에 눈이 쌓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82 /83 /84 ㅡ97
바람 탓인지 , 추워진 날씨 탓인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
낮에 고양이 두마리가 성난 듯 주고받듯 울어댔고
그 울음 끝에 어떤 이웃의 차인지 모르겠는데 , 자동차의
경보기가 계속 반복해서 울려댔다 . 단지 날씨의 변화가
불러온 이상 현상이라기엔 너무 기이한데 더 이상한 건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
이 세계에 마치 나만 남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사무치게
쓸쓸해 소리치고 싶었다 . 거기 누가 좀 있다면 , 저것 들
소리, 소리 , 저 소리 좀 어떻게든 해 달라고 ...
모두들 나만 두고 화성 어디 쯤으로 이주들을 한걸까 ?
모든 소음이 그렇듯이 규칙적이다 . 그래서인지 괜시리
고요를 먹고 클 것 같은 눈 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