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괴담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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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어린 시절에는 텔레비전보다는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다정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하루를 정돈하게 하는 한밤의 라디오는 우리반 아이들이 거의 모두 들었다. 전날 밤 라디오에서 나온 재미난 사연은 다음 날 우리반 아이들의 중심 화제가 되었고, 서로 자기의 사연이 라디오에서 나오게 하려고 예쁘게 엽서를 꾸며서 보내느라 경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방송국에서는 ‘예쁜 엽서 전시회’를 열어 청취자들의 정성에 보답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 세대에게 매일 오후 2시에서 4시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두 시 탈출 컬투쇼’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하도 시끄러워서 일부러 듣지 않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그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에 점점 매료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에 어찌나 웃기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들은 다들 어디 그렇게 숨어 있다가 이제사 나와서 세상을 즐겁게 해주는 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소설을 냈다고 하자 괜시리 거부감이 느껴졌다. 이름 좀 알려지면 너도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책을 내는 행태와 그 책의 허술함에 실망을 한 기억에 유명 인사의 책에 시큰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점점 고정적인 독자층을 형성해 나갔고, 인터넷 서점에 연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우연히 읽게 된 소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흥미롭게 읽혔다. 또 다른 그의 책은 어떨까 궁금하던 차에 이 책 <심야버스 괴담>을 만나게 되었다.
  한밤의 버스에서 일어나는 괴기한 사건은 어떤 것일까? 그들은 왜 그 깊은 밤에 버스를 탔는지, 그 버스는 왜 괴기한 사건에 말려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건을 작가는 어떻게 풀어가는 지 궁금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에 대해서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 또한 있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때는 1999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의 일이다. 시간은 자정을 향하고 있고 공간은 분당에서 서울 양재동으로 가는 2002번 심야시외버스였다. 여자 친구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던 준호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한참 속도를 올려서 달리고 있는 버스가 이상하게 흔들렸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가 버스 운전사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한 듯 보이는 그는 세상을 향한 불만을 버스운전사에게 퍼 붓고 있었고, 승객들은 그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버스의 승객은 준호와 술에 만취해서 잠이 든 중년 사내, 아주머니와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성, 그리고 긴 생머리의 아가씨 미나 뿐이었다. 서로 실랑이 끝에 버스는 급정거를 하고 난동을 부리던 아저씨는 밑에 깔리면서 숨을 거두었다. 승객과 버스 기사는 두려움에 떨면서 앞일을 논의하지만, 결국 그들은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오고 만다. 만취한 중년남자와 다투던 버스 기사가 뒤로 넘어지면서 뾰족한 돌에 뒤통수를 찧고 말았던 것이다. 더욱 혼란에 빠진 그들은 이 일을 비밀로 하기로 하고 뿔뿔이 흩어진다. 각자 두려움과 죄책감에 떨던 그들은 하나하나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사고가 난 그날 밤을 미나와 함께한 준호는 미나와 함께 그 불안을 헤쳐 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준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소설의 말미에서 준호는 현실의 사람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걸음을 옮긴다. 준호가 가는 곳은 어디일까? 우리가 산다고 생각하는 여기는 또 어디일까? 현실과 환상, 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순간이었다.
  이 작가의 책에 대한 나름의 판단은 아무래도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지난 번 읽은 소설과는 다른 장르와 문체, 그리고 전개 방법이 많이 낯설고 불편했다. 어딘지 조금 서툴고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사건의 필연성이라든가, 인물의 성격 묘사 등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습작해 놓은 작품이 많은 지 요즘 이재익 작가의 작품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다른 책들도 더 읽어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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