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왕강 지음, 김양수 옮김 / 푸른숲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일찍이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내 꿈을 왕야쥔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해.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본문 502쪽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이처럼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문화 혁명이 일어나 모든 지식인들이 축출되고 현장에서 일을 할 때,  주인공 류아이의 아버지는 텐산 자락의 우루무치라는 시골에서 건물을 지었다. 소련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게챠인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류아이의 어머니 역시 같은 건축가였다. 그러나 그들은 낡은 집의 4층에 살면서 작은 소리로 음악을 들어야 했다.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한참 무식한 농군 출신의 당간부에게 아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맞아도 아버지는 그저 정신 빠진 사람처럼 웃기만 한다.

  외모가 서양인처럼 생긴 위구르족들과 한 고장에 살면서 아름다운 위구르인인 아지타이에게 위구르어를 배우던 아이들의 학교에 영어 선생이 온다. 양복을 입고 행커치프를 한 그의 이름은 왕야쥔이다. 향수를 뿌리고 고상한 단어를 사용하는 왕야쥔에게 류아이는 홀딱 반한다. 영어 공부를 더 잘하고 싶어서 같은 반의 예쁜 여자아이 황쉬성을 질투하기도 하지만, 황쉬성은 불행하기만 하다. 마을 사람들이나 당에서는 왕야쥔의 사고 방식을 못 마땅해 하고, 엄마와 아빠는 그들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도 힘들어 한다.

  아름다운 여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으로 아픈 가슴을 간직한 류아이의 섬세한 정서를 부모나 친구들은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처럼 무감각하게 혹은 원초적인 욕망의 충족만으로 만족하며 살기엔 류아이는 너무도 가녀 정린 영혼이었던 것이다.

 정치적 격랑 속에서 힘없이 흔들리는 당시 중국 인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이 작품에서 가족 간의 뜨거운 사랑도, 사춘기 소년의 설레는 첫사랑도 좋았다. 아이에게 영원한 롤모델이었던 잉글리시 보이의 가여운 말년의 `모습이 가슴 아프지만, 평생을 가는 이런 우정이 부럽다.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듯, 사람에게 이상이 있어야한다는 그의 말이 오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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