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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이슬람에 대하여 한 2주 정도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을 통하여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고, 그들이 믿는 신과 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교리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에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가질 수 있는 여러 즐거움 가운데 오랜 만에 '앎의 즐거움'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이슬람, 중동, 아랍이라는 용어가 혼용되고 있지만, 그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었고, 이슬람이란 종교에서 중요시하는 게 어려운 사람에 대한 자선이라는 점과 우리가 흔히 이슬람의 문화로 알고 있는 명예 살인은 중동 지역의 오래 된 풍습일 뿐 이슬람 교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도 배웠다. 어떤 사람들은 이슬람이라 하면 알 카에다, 빈 라덴과 그리고 테러를 연상한다. 그러나 그간 공부한 바에 의하면 우리 나라와의 오랜 관계도 그렇고, 고도로 발달했던 그들의 문화와 그 문화가 인류 발전에 끼친 영향 등을 알게 되면서 참 매력있는 문화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들 중 폭력 테러로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이슬람 신자들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배웠다.
청명한 9월의 한낮 12시,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은 시간 월스트리트의 J.P.모건 은행 앞에는 짐을 잔뜩 실은 수레가 있다. 마부도 없이 짐만 가득 실은 그 수레는 트리니티 교회의 종이 열두번을 다 울리자 터지고 만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그들 중 거의 모두가 자신들의 죽음의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이 사건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고 아직까지도 그 배후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만약 이 사건이 지금 일어났다면 그 배후로 이슬람을 지목했을 것이다. 얼마 전 노르웨이의 테러 사건이 그랬듯이.
법학과 교수이자 작가인 러벤펠트는바로 여기서 소설을 시작한다. 마침 그 때 그 자리에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세 축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했던 부유한 가문의 스트래섬 영거, 딸린 식구들 때문에 비록 전쟁에는 참전하지 못했던 뉴욕 경찰 제임스 리틀모어, 그리고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 콜레트로 그녀는 마리 퀴리 부인의 연구실에서 라듐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폭발 당시 그 자리에서 죽은 빨간 머리의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테러 현장을 수숩하던 콜레트는 어디론가 납치되어 사라졌다. 호텔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말 못하는 동생 뤽까지도.
687쪽에 달하는 두꺼운 소설은 사건이 대단히 복잡하고 등장인물 역시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리틀모어 형사는 폭발 사건을 조사하던 중 너무 많은 의문점을 발견한다. 연방 경찰국장인 플린은 그 사건을 멕시코 소행으로 보고 사건과 증거를 몰아가지만, 리틀모어에게는 그 사건이 모건 은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의 추적은 점점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재무장관인 휴스턴은 그를 특별 요원으로 삼아 사건의 수사를 지시한다. 그의 수사 방향이 맞았던 모양이다. 한편 영거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유럽의 전쟁터에서부터 함께 했던 총명한 콜레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녀는 전쟁 중 약혼한 오스트리아 남자 한스 그루버를 찾으려는 생각에 빠져있다. 또한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 콜레트를 죽이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또한 콜레트에게 다가오는 그 빨간 머리의 여인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의 목에 난 또 다른 머리는?
작가가 창조한 가공의 인물 못지 않게 인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인 퀴리부인과 프로이트가 등장하는 것이 이채로웠다. 콜레트의 위험에는 그 저변에 퀴리부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라듐이 있었고, 프로이트는 콜레트의 말 못하는 동생 뤽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진다. 역사적 사건과 절묘하게 연결되는 방법이 특이했다. 그 때 프로이트는 '죽음 본능'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그것은 온 우주에도 존재하여 행성과 행성이 서로 끌어당기듯, 그 반대의 힘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살고자 하는 본능과 죽고자 하는 본능이 함께 있어, 마치 나방이 불꽃으로 날아가듯이 우리를 이루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기 파괴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죽을 의지를 상실하여 고통받는 세포를 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거대한 테러 사건과 '죽음 본능'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단지 어린 뤽이 실어증에 걸린 원인을 찾기 위해서 사용된 용어라면 제목으로 하기에는 좀 포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혹은 거대한 테러의 원인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무 목적 없이 단지 파괴만을 원하는 누군가의 '죽음 본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