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과 결혼하다 -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행복한 나라
린다 리밍 지음, 송영화 옮김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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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탄'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듣고 처음 생각난 것이 영화 <방가방가>였다. 평소 좋아하던 배우인 김인권씨의 연기가 참 감칠맛 나는 그런 영화였다. 취직을 못해서 갖가지 고생을 하던 주인공 방태식은 남다른 외모를 이용해 외국인 노동자로 취업을 한다. 참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태식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하는 사장과 싸우고, 불법 체류 외국인을 색출하려는 경찰에게서 동료들을 구해내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연기와 기상천외한 상황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짠했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가 참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덜 잘산다는 것이 그들을 무시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저 히말라야 인근의 작은 나라라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이글을 쓴 린다 역시 처음엔 그러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의 '방태식씨'도 그렇지 않았을까? '부탄'은 일년에 2만여명 정도의 외국인만 입국을 허용한다고 한다. 또한 가이드와의 동행이라는 조건도 필요하다. 그만큼 자기 나라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쩌면 평생 '부탄'에 갈 일이 없을 지도 모를 만큼 조용한 곳이다. 수도인 팀부는 인구가 10여만 명이나 되지만, 교통신호등 하나 없는 곳이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강아지와 뛰어놀고 여인들은 집 앞에서 옆집 아낙네와 수다를 떤다. 그들은 부처님을 모시고, 까마득한 절벽에 사원을 짓는다. 집집마다 불단을 모시는 독실한 그들은 삶이란 또는 세상이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니 이 생에서 무어 그리 욕심 낼 일도 없을 것이다.

 

 "부탄에서 시간이란 일직선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다. 부탄 사람들은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돌고, 도는 계절 안에서 살아 간다. 그들은 환생을 믿는다.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고, 끝없이 순환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이 많은 일들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부탄 사람들에게 시간은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다. 그들은 찰나를 사는 방법을 터득한 시간의 달인들이다."

 본문 30쪽

 

  미국인인 린다 리밍은 부탄 친구들의 부추김에 여행 일정에 2주일 간의부탄 일정을 추가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부탄과 사랑에 빠져버렸고,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부탄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았다. 기어이 그는 부탄으로 가서 살기로 한다. 부탄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오히려 그는 부탄 사람들에게 더 큰 가르침을 얻는다. 바로 느리게 살기, 많은 것들이 없어도 풍성하게 살기들이 그를 행복하게 한다. 그는 부탄 사람들의 언어인 종카어를 배우려 노력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운다. 그리고 부탄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불화인 탕카(탱화)를 그리는 화가인 남게이는 그녀에게 섬세하게 다가온다. 그에 대한 사랑이 부탄을 더욱 사랑하게 했는지 모른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지만, 린다는 부탄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부탄식으로 음식을 먹고 부탄의 옷을 입고 부탄 사람들처럼 걸어다닌다.

  다른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이 린다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미국보다 모든 물건들이 부족한 부탄이지만, 린다에게 그것은 오히려 숨퉁이 트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물건처럼 소비 사회의 하나의 부품으로 살아가야 했을 자신이 이곳 부탄에 와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정신의 고양을 더 큰 목표로 삼는 삶을 살게 된 린다는 행복하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갖 물건들이 가득한 집이다. 이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나도 그녀처럼 살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다만 그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그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이다. ...... 부탄 사람들은 돈을 버는 데 능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인들보다 행복하다."

본문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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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조각 창비청소년문학 37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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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과 브라운이 뒤섞인, 아니 검은색이 뒤섞인 눈에 사로잡힌 나에게 사자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리창에 뿌옇게 서리곤 하는 콧김이 마치 내 몸에 닿은 것만 같았고 살갗이 죄다 일어나 따끔거렸다. 꿰뚫어 버릴 듯한 눈빛과 깊은 데서부터 울려나오는 소리로 인해 가슴에 붙인 손조차 내릴 수가 없었다. "

본문 18-19쪽

 

  어젯밤 집어든 이 소설을다 읽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께부터 쉬게 되어서 이미 어제만 해도 두 권의 책을 뗀 지라 잠들기 전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침실로 들고 들어갔는데, 다 읽고 나니 이미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요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서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유명한 황선미 선생님의 새 소설이라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관심이 가던 책이었다. 한창 예민한 아이들과 늘 함께 생활하는 직업과 환경인지라 내게 있어서 성장소설은 꼭 읽어야할 교과서이면서 자습서이고 선생님이다. 조숙한 아이들의 비밀스런 속 이야기도 재미나고 반항투성이 문제아의 깊은 속마음을 훔쳐보는 것도 참 눈물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조각'이라, 그 조각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니 왜 원래의 덩어리에서 떨어져 조각이 되어 있었지? 처음 이 제목을 들었을 때 옛 노래가 생각났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라는 송골매(활주로)의 노래인데 그 노래에서 주체는 동그라미이다. 이가 빠져버려 슬픈 동그라미는 사라진 조각을 찾아  "어떤 날은 햇살 아래 어떤 날은 소나기로 어떤 날은 꽁꽁 얼다 길 옆에서 잠깐 쉬고, 벌판 지나 바다 건너 갈대 무성한 늪에 치고 비탈진 산길 낑낑 올라" 온 세상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가 기어이 조각을 만나지만, 다시 만난 조각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없어 "냇물가에 쭈그리고 슬퍼하던 동그라미 애써 찾은 한 조각을 살그머니 내려놓고 데굴데굴 길 떠나네" 로 끝나는 이 슬픈 노랫말이 문득 떠올랐다.

  소설 속의 조각은 그 처지가 다르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는 그 이가 맞지 않는 조각 신유라이다.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아빠, 교양있고 우아한 엄마, 그리고 훤칠한 외모에 성적도 훌륭해서 민사고 진학을 앞둔 오빠까지 완벽한 이 가족에서 유라만 이가 맞지 않아 덜그럭거린다. 오빠보다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안 예쁜 유라는 오빠와 자신을 다르게 대하는 엄마에게서 늘 낯선 거리감을 느낀다. 엄마에게 있어 자식은 오빠 하나고, 유라는 늘 밖으로 내돌려진다고 느낀다. 드디어 엄마는 유라에게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라고 한다. 유라에게 상의를 한다거나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된 일이라서 유라는 속이 상하지만, 언제나처럼 싫다는 말을 차마 못한다. 하필 오빠는 그날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고 엄마는 이성을 잃고 안절부절한다. 차갑기만한 엄마와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는 가족들에게 지친 유라는 가출을 감행한다. 동네에게 작별 인사를 하던 중 우연히 오빠가 날나리 패거리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당황한 유라는 어제 오후 학원을 빼먹고 사자를 보러간 동물원에서 목격한 데이트 장면이 오빠라는 확신을 한다. 그 상대는 다름아닌, 같은 반 친구 윤재희. 유라의 가출은 결국 아무도 몰랐던 유라만의 슬픈 외톨이 확인으로 끝났지만, 오빠의 외박은 큰 파장을 불러오고 다음날부터 재희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흉흉한 소문만 돈다.

  언제나 짝이 맞지 않아 덜걱거리는 조각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유라는 마음을 나눌 친구도 위로를 해 주는 부모도 없이 슬프기만 한데, 제 정신이 아닌 채로 우연히 곁을 한 번씩 내 주는 오빠를 의지한다. 오빠를 들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의 중심에 서게 된 유라는 노래 '이가 빠진 동그라미'의 비극적인 결말과 다르게,  맞지 않는 조각인 자신의 아픈 상처를 보듬으며 다 같은 상처투성이인 가족들을 이어준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상처이자 기억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혼자는 아니라는 시인의 말도 있지 않던가. 때로는 그 상처가 나를 후벼파고 타인을 괴롭힐지언정 그것을 감춘 채로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은 빚을 갚지 않고 숨어사는 것처럼 불안하고 파국이 예정된 길일 것이다. 그 상처마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의 아픔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듬어져서 동그라미에 맞는 조각이 될 것이다. 삶이란 참으로 오묘해서 아주 작은 아이에게 큰 가르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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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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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는 내내 미소짓게 만드는 이 책은 한국 여자를 아내로 둔 보스턴 청교도 집안 출신의 백인 남성 벤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가장 재미없는 대학인 시카고 대학에서 만나 두 사람은 오랜 만남 끝에 결혼을 하고, 아내인 개브는 내로라하는 회사의 근사한 변호사가 되어 높은 임금을 받지만, 쉴 틈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벤 자신은 겨우 최저임금 수준을 넘는 아마추어적인 프로패셔널 문예지 <파리 리뷰>에서 놀면서 일을 한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돈을 좀 더 모아볼 요량으로 - 또 한국인 아내의 효성때문에 - 뉴욕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스테튼아일랜드의 처가 지하실로 들어간다. 개인의 독립적인 생활을 가장 중시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인 벤은 아무 때나 그들의 침실 문을 벌컥 열어대는 처가 식구들 때문에 놀랐지만 어느 새 그들과 동화되어 심지어 장인과 속옷을 나눠 입기도 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들은 어느 날부터 장모 케이의 사업을 함께 하기로 한다. 그 사업은 미국의 한인들이 가장 많이 한다는 델리 사업이다.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잡화점 정도일까? 샌드위치도 팔고, 커피도 있고 담배와 복권도 있고 맥주도 있는 작은 가게가 델리란다.

  가게의 입지를 고르고 계약을 하고 장사를 시작한다. 그 모든 것이 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장모는 휴식이라는 것은 아예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금은 더 깔끔하고 우아한 가게를 만들고 싶은 벤의 바람은 장모와 가게 종업원인지 상전인지 하는 드웨인과 동네 주민들 때문에 항상 외면당한다. 그러나 처음엔 금전등록기 앞에서 쩔쩔 매던 벤은 밤근무를 하면 할 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원더우먼인 장모와 도매점으로 물건을 사러 가기도 하고, 뉴욕 전체가 정전이 된 날은 가게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어퍼이스트에서 브루클린까지 걸어간다.

  온 식구 - 장인을 뺀 장모와 벤과 그의 아내-가 장사에 매달리지만, 벌리는 돈보다 벌금이나 세금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날마다 강도를 두려워하고, 막무가내 단골 손님들과도 다투면서 일을 하는데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 남자인 벤이 한국 여성에 대해서 느끼는 판단들과 생각들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에게 한국 여자들은 천하 장사다. 일을 하고, 교회의 성경교사도 하고, 꽃꽂이도 배우고, 요리도 하고, 한국에서 친척들이 오면 다 같이 지내는 것이 당연하고 저녁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식사를 한다. 마국에서는 결혼한 부부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참 모양 빠지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듯 하다. 게다가 개브는 그래도 부모님께 무엇인가를 더 해드려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벤에게는 큰 문화적 충격이다.

  무겁고 심각한 내용조차도 벤 라이더 하우의 글에서는 가벼운 웃음을 준다.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그 대상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절묘하게 엮는 표현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시니컬한 유머들은 어딘지 모르게 빌 브라이슨을 떠오르게 한다.

 

 " 그저 미친 듯 가속 페달을 밟으며 몸을 최대한 앞으로 내밀 뿐이다. 그렇게라도 하면 자동차가 더 빨리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조그마한 코네티컷 주를 지나갈 땐, 평소에는 언제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더니, 오늘은 캔자스 주만큼이나 넓게 느껴진다. "

본문 374쪽 -375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정말 깔깔 웃었다. 이 모습은 아침에 지각한 내가 출근할 때의 모습이 아니던가 말이다. 차 안에서 몸이라도 조금 더 앞으로 내밀고 싶은 심정은 겪어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평범한 미국 사람의 생각을 엿보고, 개인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그가 공동체의 삶이 더 당연한 한국 사람과 동거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흥미진진하다. 한편으론 우습고 또 한편으론 마음 한 구석이 짠한 이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벤 역시 반은 한국 사람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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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 나는 정말 한국 사람일까?
조월호 지음 / 매직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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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사무실에서 누군가가 "미국으로 여행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언젠가는 가겠지."라는 대답을 했다. 그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친숙하게 생각한다. 미국에 사는 친지도 있고, 미국산 물건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미국 드라마를 보고 미국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 중 몇 명이나 죽기 전에 미국에 가볼까? 정말 미국엘 언젠가는 가 볼까? 아니 미국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각종 책에서 만난 다양한 나라들을 정말 가 보기는 할까? 프랑스, 일본 더 나아가 마다가스카르와 벨로루시, 혹은 쿠바나 이스터섬을 언젠가는 볼까?

  이런 생각을 하게된 것은 얼마전 읽은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도 한 몫을 했다. 이글을 쓴 조월호라는 분은 여성이다. 그는 젊은 시절 깊은 병을 앓았고, 또한 희귀한 혈액형을 갖고 있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그녀는 영어를 좀 했던지 통역을 도와주다가 한 미군과 결혼을 하고, 그를 따라 미국에 갔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서 좀 한다고 생각했던 영어는 현지에서는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 여기에서부터 조월호라는 여성 특유의 근성이 나온다. 그녀는 이왕지사 미국에서 살기로 결심했으니 영어만큼은 능통하리라 다짐하고 매달린다. 매일매일 공부를 하고, 라디오를 듣고 학교에 다니며 영어를 연습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알고보니 따뜻하고 자상하던 그는 의처증과 폭력으로 마음의 병이 깊은 사람이었다. 입양한 딸 진주와 함께 달랑 몸만 가지고 그와 헤어진 그녀는 먹고 살기 위해서 낯선 일을 시작한다. 바로 바느질이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전혀 조신한 타입의 여성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한번 매달리면 끝을 보는 성격이 이번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작은 바느질 가게를 열고, 옷을 수선하고, 일요일이면 아침부터 큰 통으로 카레를 만들어 교회 사람들을 다 초대한다. 거실을 자기방 삼아 살면서 돈을 모아 마당이 있는 집을 마련하고 그 마당에서 소녀들의 날을 정하고 즐긴다. 그녀의 딸 진주는 그런 그녀의 삶의 이유이고 생명이다. 멀리에서 공부하는 딸을 찾아가 음식을 한가득해서 딸의 친구들을 먹이고, 아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달려가서 팔을 걷어부치고 도와준다.

  얼마전 잠시 미국 생활을 한 지인과의 자리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 분이 사시던 곳은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인데, 한국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살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아예 새로 살러 온 한국사람을 노리는 전문 사기단까지 있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되고, 한국 사람만 만나도 왈칵 반가운 마음이 든다던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싶어서 참 씁쓸했다. 이 책의 저자 조월호씨가 그 곳에 있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목소리 크고 남 참견 잘하는 한국 아줌마, 딸이 보고 싶어서 아무데서나 눈물을 한바가지 쏟지만, 예의없는 아이를 큰 소리로 야단치고, 어이없이 잘난 척하는 미국 아줌마에게 다시는 내 가게에 나타나지 말라고 쏘아 붙일 수 있는 용기있는 이 아줌마가 가서 혼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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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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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읽었던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는 비틀즈의 노래를 주 선율로 한 아름다운 환상같은 느낌이었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사건들은 모두 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음모의 일부였다. 결국 한낮의 졸음과도 같았던 그 환상은 내게 “헤어진 비틀즈의 멤버들이 모여 만든 노래 <골든 슬럼버>가 이 소설의 제목인 것은 떠나 온 시간 속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앞에만 있음을, 때로는 돌아보고 싶더라도 그저 멀리서 일 뿐임을 말한다. 비록 가야할 그 길이 달아나는 길일지라도.”(골든슬럼버 리뷰 http://blog.naver.com/echojaj1/55971776)라는 생각을 남겼다.

  “데뷔 15주년 결산, 혼신의 작품! <골든슬럼버> 이후 3년 만의 대형 신작 장편!” 이라는 띠지를 달고 나온 소설 <마리아비틀>은 이사카 코타로의 묘한 매력을 알고 있던 내게 충분히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다. 치밀한 사건 전개, 섬세한 묘사, 매력있는 인물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대형 소설을 만날 생각에 읽기도 전에 기대로 설렜다.

  소설은 됴쿄역에서 시작된다. 허점과 실수투성이의 알콜 중독자 기무라 유이치가 소음기와 권총을 휴대한 채 신칸센에 오른다. 그는 오랜 세월 어둠의 일을 했지만,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경비일을 보면서 한가롭게 지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알콜 의존증이지만, 기무라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했다. 어리기만한 와타루에게 몹쓸 짓을 한 그 악마같은 놈을 처리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목표가 오늘 도쿄에서 출발해 모리오카로 가는 신칸센 7호차에 타고 있었다. 그 악마가 바로 왕자이다. 오똑한 콧날의 귀한집 도련님처럼 생긴 왕자는 지금 중학생이다. 머릿결은 부드럽고 체구도 가냘픈 그의 외모는 어른들에게 동정심과 보호 본능을 불러 일으킨다. 왕자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최후의 인간성까지 상실하는 모습을 즐긴다. 태어날 때부터 악의 냄새를 풍기는 그야말로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악마 그 자체이다. 기무라는 그 왕자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뒤에서 본 왕자는 그저 어린 중학생처럼 보여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공교롭게도 그 신칸센에는 콤비 살인 청부업자 레몬과 밀감이 타고 있다. 어린이처럼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관차의 유형대로 분류하기 좋아하는 낙천적이고 가벼운 레몬과 심도 깊은 소설을 좋아하고 차분하고 진지한 밀감은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한 파트너이다. 그들은 업계에서도 일 잘 처리하고 인정사정 안 보는 강한 사람들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이 맡은 일은 유력한 검은 손인 미네기시의 납치당한 아들을 구하고, 그들에게 몸값으로 주었던 돈가방까지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런데, 레몽의 불찰로 돈가방은 사라지고, 트렁크를 찾으러 다니던 사이 미네기시 도련님마자도 시체로 발견된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도련님과 나란히 앉아서 여행을 한다. 범인도 찾고 트렁크도 찾아야하는 그들은 마음이 초조하다. 전형적인 불운의 대명사 무당벌레 나나오도 그 기차에 동승했다. 나나오의 임무는 간단하다. 신칸센에서 트렁크를 찾아 다음역에서 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가장 나쁜 쪽으로 진행되었으므로 당연히 나나오는 다음 역에서 내리지 못했다.

  소설 속의 이들은 시속 200킬로미터의 고속 열차 안에서 서로를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이 같은 것임을 알게 된 나나오는 레몬과 밀감에게 동맹을 제안하지만, 그들은 쉽게 남을 믿지 않는 성격이다. 게다가 기무라를 맘대로 조종하게 된 왕자마저 그들이 찾아다니는 트렁크에 관심을 보인다.

  무려 588쪽이나 되는 소설의 거의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도 도대체 누가 왜 미네기시의 아들을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아서 더욱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또 같은 트렁크를 가져오라는 일을 양쪽의 업자들이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는다.

  복잡하게 꼬이는 사건과 곳곳에 깔아 놓은 복선들은 소설의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살인 청부업을 하는 인물들이 보이는 귀여운 매력과 단정한 언행, 실수투성이의 모습들도 유쾌했다. 그저 시골 노인네이기에 왕자가 깔보고 괴롭힌 기무라의 부모가 펼치는 반전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는 것을 소설의 후반부에서야 깨달았다. 그러나 한없이 악하기만한 왕자의 캐릭터는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감정이 결여된 이기적이고 차가운 인물,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한 그 캐릭터는 타인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사람이란 그저 다루기 쉬운 어리석은 동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근원적인 ‘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다만 <골든슬럼버>의 느낌을 기대한다면 조금은 서운할 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마리아비틀>은 어딘지 좀 더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다양하지만 내용은 좀 더 단순한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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