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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미소짓게 만드는 이 책은 한국 여자를 아내로 둔 보스턴 청교도 집안 출신의 백인 남성 벤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가장 재미없는 대학인 시카고 대학에서 만나 두 사람은 오랜 만남 끝에 결혼을 하고, 아내인 개브는 내로라하는 회사의 근사한 변호사가 되어 높은 임금을 받지만, 쉴 틈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벤 자신은 겨우 최저임금 수준을 넘는 아마추어적인 프로패셔널 문예지 <파리 리뷰>에서 놀면서 일을 한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돈을 좀 더 모아볼 요량으로 - 또 한국인 아내의 효성때문에 - 뉴욕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스테튼아일랜드의 처가 지하실로 들어간다. 개인의 독립적인 생활을 가장 중시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인 벤은 아무 때나 그들의 침실 문을 벌컥 열어대는 처가 식구들 때문에 놀랐지만 어느 새 그들과 동화되어 심지어 장인과 속옷을 나눠 입기도 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들은 어느 날부터 장모 케이의 사업을 함께 하기로 한다. 그 사업은 미국의 한인들이 가장 많이 한다는 델리 사업이다.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잡화점 정도일까? 샌드위치도 팔고, 커피도 있고 담배와 복권도 있고 맥주도 있는 작은 가게가 델리란다.
가게의 입지를 고르고 계약을 하고 장사를 시작한다. 그 모든 것이 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장모는 휴식이라는 것은 아예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금은 더 깔끔하고 우아한 가게를 만들고 싶은 벤의 바람은 장모와 가게 종업원인지 상전인지 하는 드웨인과 동네 주민들 때문에 항상 외면당한다. 그러나 처음엔 금전등록기 앞에서 쩔쩔 매던 벤은 밤근무를 하면 할 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원더우먼인 장모와 도매점으로 물건을 사러 가기도 하고, 뉴욕 전체가 정전이 된 날은 가게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어퍼이스트에서 브루클린까지 걸어간다.
온 식구 - 장인을 뺀 장모와 벤과 그의 아내-가 장사에 매달리지만, 벌리는 돈보다 벌금이나 세금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날마다 강도를 두려워하고, 막무가내 단골 손님들과도 다투면서 일을 하는데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 남자인 벤이 한국 여성에 대해서 느끼는 판단들과 생각들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에게 한국 여자들은 천하 장사다. 일을 하고, 교회의 성경교사도 하고, 꽃꽂이도 배우고, 요리도 하고, 한국에서 친척들이 오면 다 같이 지내는 것이 당연하고 저녁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식사를 한다. 마국에서는 결혼한 부부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참 모양 빠지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듯 하다. 게다가 개브는 그래도 부모님께 무엇인가를 더 해드려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벤에게는 큰 문화적 충격이다.
무겁고 심각한 내용조차도 벤 라이더 하우의 글에서는 가벼운 웃음을 준다.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그 대상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절묘하게 엮는 표현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시니컬한 유머들은 어딘지 모르게 빌 브라이슨을 떠오르게 한다.
" 그저 미친 듯 가속 페달을 밟으며 몸을 최대한 앞으로 내밀 뿐이다. 그렇게라도 하면 자동차가 더 빨리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조그마한 코네티컷 주를 지나갈 땐, 평소에는 언제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더니, 오늘은 캔자스 주만큼이나 넓게 느껴진다. "
본문 374쪽 -375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정말 깔깔 웃었다. 이 모습은 아침에 지각한 내가 출근할 때의 모습이 아니던가 말이다. 차 안에서 몸이라도 조금 더 앞으로 내밀고 싶은 심정은 겪어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평범한 미국 사람의 생각을 엿보고, 개인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그가 공동체의 삶이 더 당연한 한국 사람과 동거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흥미진진하다. 한편으론 우습고 또 한편으론 마음 한 구석이 짠한 이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벤 역시 반은 한국 사람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