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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읽었던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는 비틀즈의 노래를 주 선율로 한 아름다운 환상같은 느낌이었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사건들은 모두 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음모의 일부였다. 결국 한낮의 졸음과도 같았던 그 환상은 내게 “헤어진 비틀즈의 멤버들이 모여 만든 노래 <골든 슬럼버>가 이 소설의 제목인 것은 떠나 온 시간 속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앞에만 있음을, 때로는 돌아보고 싶더라도 그저 멀리서 일 뿐임을 말한다. 비록 가야할 그 길이 달아나는 길일지라도.”(골든슬럼버 리뷰 http://blog.naver.com/echojaj1/55971776)라는 생각을 남겼다.
“데뷔 15주년 결산, 혼신의 작품! <골든슬럼버> 이후 3년 만의 대형 신작 장편!” 이라는 띠지를 달고 나온 소설 <마리아비틀>은 이사카 코타로의 묘한 매력을 알고 있던 내게 충분히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다. 치밀한 사건 전개, 섬세한 묘사, 매력있는 인물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대형 소설을 만날 생각에 읽기도 전에 기대로 설렜다.
소설은 됴쿄역에서 시작된다. 허점과 실수투성이의 알콜 중독자 기무라 유이치가 소음기와 권총을 휴대한 채 신칸센에 오른다. 그는 오랜 세월 어둠의 일을 했지만,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경비일을 보면서 한가롭게 지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알콜 의존증이지만, 기무라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했다. 어리기만한 와타루에게 몹쓸 짓을 한 그 악마같은 놈을 처리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목표가 오늘 도쿄에서 출발해 모리오카로 가는 신칸센 7호차에 타고 있었다. 그 악마가 바로 왕자이다. 오똑한 콧날의 귀한집 도련님처럼 생긴 왕자는 지금 중학생이다. 머릿결은 부드럽고 체구도 가냘픈 그의 외모는 어른들에게 동정심과 보호 본능을 불러 일으킨다. 왕자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최후의 인간성까지 상실하는 모습을 즐긴다. 태어날 때부터 악의 냄새를 풍기는 그야말로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악마 그 자체이다. 기무라는 그 왕자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뒤에서 본 왕자는 그저 어린 중학생처럼 보여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공교롭게도 그 신칸센에는 콤비 살인 청부업자 레몬과 밀감이 타고 있다. 어린이처럼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관차의 유형대로 분류하기 좋아하는 낙천적이고 가벼운 레몬과 심도 깊은 소설을 좋아하고 차분하고 진지한 밀감은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한 파트너이다. 그들은 업계에서도 일 잘 처리하고 인정사정 안 보는 강한 사람들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이 맡은 일은 유력한 검은 손인 미네기시의 납치당한 아들을 구하고, 그들에게 몸값으로 주었던 돈가방까지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런데, 레몽의 불찰로 돈가방은 사라지고, 트렁크를 찾으러 다니던 사이 미네기시 도련님마자도 시체로 발견된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도련님과 나란히 앉아서 여행을 한다. 범인도 찾고 트렁크도 찾아야하는 그들은 마음이 초조하다. 전형적인 불운의 대명사 무당벌레 나나오도 그 기차에 동승했다. 나나오의 임무는 간단하다. 신칸센에서 트렁크를 찾아 다음역에서 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가장 나쁜 쪽으로 진행되었으므로 당연히 나나오는 다음 역에서 내리지 못했다.
소설 속의 이들은 시속 200킬로미터의 고속 열차 안에서 서로를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이 같은 것임을 알게 된 나나오는 레몬과 밀감에게 동맹을 제안하지만, 그들은 쉽게 남을 믿지 않는 성격이다. 게다가 기무라를 맘대로 조종하게 된 왕자마저 그들이 찾아다니는 트렁크에 관심을 보인다.
무려 588쪽이나 되는 소설의 거의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도 도대체 누가 왜 미네기시의 아들을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아서 더욱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또 같은 트렁크를 가져오라는 일을 양쪽의 업자들이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는다.
복잡하게 꼬이는 사건과 곳곳에 깔아 놓은 복선들은 소설의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살인 청부업을 하는 인물들이 보이는 귀여운 매력과 단정한 언행, 실수투성이의 모습들도 유쾌했다. 그저 시골 노인네이기에 왕자가 깔보고 괴롭힌 기무라의 부모가 펼치는 반전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는 것을 소설의 후반부에서야 깨달았다. 그러나 한없이 악하기만한 왕자의 캐릭터는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감정이 결여된 이기적이고 차가운 인물,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한 그 캐릭터는 타인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사람이란 그저 다루기 쉬운 어리석은 동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근원적인 ‘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다만 <골든슬럼버>의 느낌을 기대한다면 조금은 서운할 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마리아비틀>은 어딘지 좀 더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다양하지만 내용은 좀 더 단순한 그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