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조각 창비청소년문학 37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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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과 브라운이 뒤섞인, 아니 검은색이 뒤섞인 눈에 사로잡힌 나에게 사자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리창에 뿌옇게 서리곤 하는 콧김이 마치 내 몸에 닿은 것만 같았고 살갗이 죄다 일어나 따끔거렸다. 꿰뚫어 버릴 듯한 눈빛과 깊은 데서부터 울려나오는 소리로 인해 가슴에 붙인 손조차 내릴 수가 없었다. "

본문 18-19쪽

 

  어젯밤 집어든 이 소설을다 읽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께부터 쉬게 되어서 이미 어제만 해도 두 권의 책을 뗀 지라 잠들기 전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침실로 들고 들어갔는데, 다 읽고 나니 이미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요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서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유명한 황선미 선생님의 새 소설이라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관심이 가던 책이었다. 한창 예민한 아이들과 늘 함께 생활하는 직업과 환경인지라 내게 있어서 성장소설은 꼭 읽어야할 교과서이면서 자습서이고 선생님이다. 조숙한 아이들의 비밀스런 속 이야기도 재미나고 반항투성이 문제아의 깊은 속마음을 훔쳐보는 것도 참 눈물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조각'이라, 그 조각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니 왜 원래의 덩어리에서 떨어져 조각이 되어 있었지? 처음 이 제목을 들었을 때 옛 노래가 생각났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라는 송골매(활주로)의 노래인데 그 노래에서 주체는 동그라미이다. 이가 빠져버려 슬픈 동그라미는 사라진 조각을 찾아  "어떤 날은 햇살 아래 어떤 날은 소나기로 어떤 날은 꽁꽁 얼다 길 옆에서 잠깐 쉬고, 벌판 지나 바다 건너 갈대 무성한 늪에 치고 비탈진 산길 낑낑 올라" 온 세상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가 기어이 조각을 만나지만, 다시 만난 조각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없어 "냇물가에 쭈그리고 슬퍼하던 동그라미 애써 찾은 한 조각을 살그머니 내려놓고 데굴데굴 길 떠나네" 로 끝나는 이 슬픈 노랫말이 문득 떠올랐다.

  소설 속의 조각은 그 처지가 다르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는 그 이가 맞지 않는 조각 신유라이다.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아빠, 교양있고 우아한 엄마, 그리고 훤칠한 외모에 성적도 훌륭해서 민사고 진학을 앞둔 오빠까지 완벽한 이 가족에서 유라만 이가 맞지 않아 덜그럭거린다. 오빠보다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안 예쁜 유라는 오빠와 자신을 다르게 대하는 엄마에게서 늘 낯선 거리감을 느낀다. 엄마에게 있어 자식은 오빠 하나고, 유라는 늘 밖으로 내돌려진다고 느낀다. 드디어 엄마는 유라에게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라고 한다. 유라에게 상의를 한다거나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된 일이라서 유라는 속이 상하지만, 언제나처럼 싫다는 말을 차마 못한다. 하필 오빠는 그날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고 엄마는 이성을 잃고 안절부절한다. 차갑기만한 엄마와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는 가족들에게 지친 유라는 가출을 감행한다. 동네에게 작별 인사를 하던 중 우연히 오빠가 날나리 패거리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당황한 유라는 어제 오후 학원을 빼먹고 사자를 보러간 동물원에서 목격한 데이트 장면이 오빠라는 확신을 한다. 그 상대는 다름아닌, 같은 반 친구 윤재희. 유라의 가출은 결국 아무도 몰랐던 유라만의 슬픈 외톨이 확인으로 끝났지만, 오빠의 외박은 큰 파장을 불러오고 다음날부터 재희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흉흉한 소문만 돈다.

  언제나 짝이 맞지 않아 덜걱거리는 조각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유라는 마음을 나눌 친구도 위로를 해 주는 부모도 없이 슬프기만 한데, 제 정신이 아닌 채로 우연히 곁을 한 번씩 내 주는 오빠를 의지한다. 오빠를 들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의 중심에 서게 된 유라는 노래 '이가 빠진 동그라미'의 비극적인 결말과 다르게,  맞지 않는 조각인 자신의 아픈 상처를 보듬으며 다 같은 상처투성이인 가족들을 이어준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상처이자 기억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혼자는 아니라는 시인의 말도 있지 않던가. 때로는 그 상처가 나를 후벼파고 타인을 괴롭힐지언정 그것을 감춘 채로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은 빚을 갚지 않고 숨어사는 것처럼 불안하고 파국이 예정된 길일 것이다. 그 상처마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의 아픔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듬어져서 동그라미에 맞는 조각이 될 것이다. 삶이란 참으로 오묘해서 아주 작은 아이에게 큰 가르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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