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짝사랑

 

무더위에 지친 몸을

씻어주는,

대기를 청정하게 하는,

마음을 맺어주는,

너무도 아름다운

열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순 · 간 

이젠

내 곁에 있지 않는

내 맘 속에만 남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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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문학 도덕교육 - 이론과 실제
도홍찬 지음 / 인간사랑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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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지금, 따로 인성교육을 왜 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우리나라 학교 교과과정에 도덕이라는 교과목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도덕 교과목이 있는데,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실시하라고 하니, 그럼 기존에 존재하는 도덕 교과는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도덕은 윤리고, 삶의 자세이고, 철학인데... 그렇다면 도덕이라는 교과목 자체가 인성 교과목일텐데... 왜  있는데 없는 것처럼 말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그러지.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 하도 오래 돼서 학교 교육과정을 모두 잊었나 보다. 역시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까지만 의미가 있고, 대학에 들어가면 다 잊어버린다더니, 국회의원이나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도 여기서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인성을 학교에서 가르치라 마라 하지 않아도 이미 교육이라는 말에는 인성이 포함되어 있다.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데 인성을 제외하고 누가 지식만을 가르친단 말인가?

 

예전 교사들이 흔히 하던 말이 지식만을 배울 생각이면 왜 학교에 오냐고, 그냥 학원(결코 학원 강사들을 무시해서가 아님. 예전엔 분명 이렇게 말하는 교사들이많았음)이나 학교 바깥에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된다였다.

 

그만큼 학교에서는 인성을 기본으로 깔고 있었다는 얘기다.(사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제대로 된 인성을 배운 학생이 얼마나 될까? 여기에 대한 통렬한 반론은 유하의 시 '학교에서 배운 것'에 나와 있다.) 인성을 다른 말로 하면 도덕이고, 이 도덕이라는 말에는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는 것들이 모두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도덕교육은 어떻게 할까? 아니, 어떻게 해왔을까? 궁금증이 인다. 이 책은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해주고 있다.

 

도덕교육을 직설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학생들의 마음에 스며들게 한다. 도덕은 스며들어 배어나와야 한다.

 

이야기는 도덕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 담고 있다.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면서 자연스레 도덕을 마음 속에 받아들인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익히게 된다.

 

이런 이야기가 하나의 갈래로 굳어지면 그것은 문학이 된다. 하여 도덕 교육에 문학이 들어오게 된다.

 

앞 부분은 전문적인 내용이다. 그러니 도덕교육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읽지 않아도 된다. 김정운의 말처럼 굳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뒷부분, 문학으로 직접 도덕교육을 한 사례는 읽을 만하다. 재미도 있고, 이렇게 도덕 교육을 했구나 할 수도 있고, 문학과 도덕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알 수도 있고, 또 학생들이 직접 문학 작품을 읽고 도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쓴 글을 읽을 수도 있으니... 여러가지로 괜찮다.

 

작품들도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고등학교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었을짐한 '감자, 광장, 어린왕자, 동백꽃, 나무를 심은 사람, 치숙, 자전거 도둑, 모래톱 이야기 등등'

 

그래서 아이를 둔 부모라면 이 작품들을 아이에게 읽히고 이 책에 나와 있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책을 좀더 깊이 있게 읽게 하는 방법으로, 또 인성을 지니게 하는 방법으로. 일석이조다.

 

하여 이 책을 읽다보면 '인성교육' 운운하면서 마치 새로운 교육을 한다는 듯이 호들갑 떠는 교육관료들과 정치권들이 한심하게 보인다. 

 

이미 이렇게 하고 있는데, 충분히 하고 있는데, 여기에 뭘 더 더하려는지...

 

이 책은 도덕교사들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교육하는 모든 교사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요즘은 통섭, 융합 이런 말들이 유행하고 있다. 교과도 자신의 교과만으로 수업하는 것이 아닌, 여러 교과들이 함께 수업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유학기제 또한 이런 방향 아니던가. 그렇다면 문학을 가운데 두고 많은 교과들이 모여 공통된 수업을 할 수 있다.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

 

가령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놓고 보면 국어, 도덕, 사회, 역사, 과학, 기술 교과목이 함께 수업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이해는 국어에서, 작품에 나오는 도덕 관련 쟁점은 도덕에서, 당시 사회의 모습은 사회와 역사에서, 홍수 방지 또는 보 등에 대해서는 과학과 기술에서 다룰 수 있다.

 

그러니 문학을 두고 자연스레 통합교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문학을 도덕 교육의 도구로 삼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단지 도덕교과를 공부하는 사람만이 아닌, 여러 교과의 교사들도 참조할 만한 책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책을 깊이 있게 또는 도덕적인 품성을 기르기 위할 목적으로 책을 읽히는 부모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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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슬람과 중동 문제의 모든 것
서정민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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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라고 한 말이 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종교가 이슬람일텐데, 좋은 쪽이 아닌 안 좋은 쪽으로 언급이 되고 있으니,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쓴 책이라는 생각이 제목을 보면 우선 들게 된다.

 

IS라는 이슬람국가라는 테러단체(우리는 테러단체라고 하지만 그들은 이슬람 국가라고 국가로 선포했다)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들이 단순한 테러단체였으면 벌써 세력이 약화되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최근에 IS에 관한 책이 여러 권 나온다. 그 책들을 읽어도 IS의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라니, "그렇게"에 궁금중이 확 인다. 책을 읽다보면 "그렇게"라는 말에 대한 답은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적어도 이슬람이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종교는 아니라는 생각은 하게 된다.

 

다만, 여러 정파들이 이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이슬람 국가들 역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었음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그렇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진다. 읽다보니 여러 번 강조되는 말이 있다. 바로 "지하드"에 대한 의미 풀이다.

 

'지하드'를 나는 '성전'이라는 싸움의 의미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지하드를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누고 있고, 큰지하드는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종교가 자신을 철저하게 성찰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이 '지하드'란 말은 좋은 말이다.

 

작은 지하드는 바로 자신을 위협하는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다. 즉, 지하드는 공격의 개념이 아니라 방어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언급하는 지하는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도 "저들이 먼저 너희와 싸움을 걸어온다면 살해하라. 이것이 신앙을 억압하는 저들의 대가"라는 구절이 있다. 외부의 침입과 점령으로부터 이슬람의 땅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라는 것이다. 더불어 성전에 있어서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민간인을 살상하거나 그들의 재산을 유린하는 것은 금지된다. 자살 폭탄 테러도 이슬람의 교리에 어긋난다. 이슬람 종교는 자살을 금한다. 창조물 인간의 목숨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창조주 알라일 뿐이다.  276-277쪽

 

이런 말에 따르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무함마드 시대에도 초기 칼리파들의 시대에도 그들은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들을 포용하려는 정책을 폈다고 한다.

 

그런 이슬람이 과격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세계 대전 이후 준비되지 않은 근대국가로의 진입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불안, 그리고 이것을 이용하는 집단에 의해 이슬람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이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군사적 개입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이 여유로울 때 군사적 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IS가 세력을 확장하는 곳을 보면 다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생활의 불안정이 심각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강한 주장이 살아남는다. 지지를 받는다. 그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들의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여 IS의 세력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중동의 정치를 안정시키고, 또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중동 사람들의 생활이 향상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몇 권 읽지 않았지만, 이슬람에 대해 간결하게 잘 정리해 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의 역사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테러단체로 분류했던 조직들을 개관할 수 있는 책이다. 여기에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시각도 바로잡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

 

막연히 언론에 비친 이슬람만으로는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에서 적어도 '지하드'에 대한 개념만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해도 이슬람에 대한 오해의 대부분은 가시지 않을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슬람 이해에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이다. 이슬람에 대해 개관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고마운 일이다. 책을 받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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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헌책방에 갔다.

 

헌책방에서 만난 책들은 새책을 만날 때보다 더 반갑다.

 

이미 누군가의 손에서 부드럽게 만져지고, 읽히고 읽혀 누군가의 마음에 자리잡은 내용들을 간직한 채, 또 다른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또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책들도 만나는 재미가 헌책방에는 있고.

 

시집이 전시되어 있는 책장에 가서 처음부터 주욱 훑어보는데... 柳致環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시집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한글이 없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느냐 마느냐로 많은 논쟁이 있는데... 이 책은 제목이 아예 한자다. 분명 우리나라 책인데... 시집인데...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읽을 수조차 없다.

 

"유치환"이다. 시인이다. 우리나라 교과서에 한 작품 이상씩은 꼭 실렸던 시인.

 

그 시인의 이름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이제는 한자를 아는 사람도 줄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당당하게 한자만으로 책을 낸 것도 참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옛날에...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겨우 33년 전인데... 한글전용이 법적으로 이루어진 지가 한참이 되었음에도 이렇게 한자들이 자기 자리를 주장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 책은 1982년에 재판이 발행되었고, 가격은 2,000원이었다. 내가 헌책방에서 산 가격도 2,000원이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에도 한자가 나온다. 한글 다음에 (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자만 있다. 내 나이에도 한자를 제법 안다고 하지만... 긴가민가 하는 한자가 있다.

 

읽기에 어렵다. 그러나... 이미 지난 시대, 이미 나온 책을 뭐라 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냥 헌책은 헌책일 뿐이다.

 

유치환 하면 '생명파' 또는 '인생파'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고,(국어교육의 폐해다. 시험에 나오는 이런 유파들을 얼마나 달달 외웠으면 아직도 유치환, 서정주 하면 생명파가 먼저 떠올를까?) '깃발', '생명의 서', '바위'가 떠오른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시들. 무언가 강하고, 인간을 절벽 끝까지 밀어붙인 다음, 이 다음에 너 어떡할래 하고 묻는 듯한 그런 시들. 인간 실존의 문제를 느끼도록 하는 시들. 그래서 생명파.

 

그러나 오래 된 그의 시집을 읽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서는, 이것이 먼 과거의 일만은 아닌, 바로 내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기가 예전 표기고, 한자도 있지만, 예전 표기만 지키고, 한자는 한글로 바꾼다.

 

눈추리를 찢고 보리라

 

내 나기를 인욕의 태반에서 태여났고

내 살기를 오직 굴종의 채찍 밑에 지냈기에

그  치욕을 간에 새겨

만대도록 잊지 않기를 맹서하여

짐승같이 먹이던 나의 부모가 처자가 형제가

오늘 이 자리에 고삐 끌려 나왔기로

그 기쁨을 나는 치희하여 작약치 않으리라

 

나의 겨레여 들으라

나라를 찾아 하늘 우러러 머리 풀고 탄식하던 우리네가

오늘이야말로 뜨거운 손과 손 가슴과 가슴으로

말없이 서로 묵약하여야 할 우리네가

밖으로 대해선 오히려 장선보다 떳떳치 못하고

내 형제끼린 원귀모양 질투하고 모함하고

나라보다는 당파를 앞세우고

도리어 남 나라를 조상같이 위하고 아부함이 없는가

 

자당의 권세를 거미줄 치기에

민중의 복지를 일컬어 팔고

그릇된 주장을 부회하기에

어진 백성을 우롱함이 없는가

아아 진실로 백사(百思)하여 그러함이 없는가

 

나는 보리라

지낸 굴욕의 죄과를 다시 범하지 않기로

눈추리를 찢고 나의 똥창까지 들여다보리라

아아 그러나 사색의 그 금수와도 못한 할퀴고 띁음이

나의 민족의 다시 씻을 수 없는 악혈의 근성이라면

그는 천형이어늘 어찌 뉘를 원망하료

아아 나의 겨레여 우리는 마땅히 망멸(亡滅)할진저

 

한국시문학대계 15, 유치환, 지식산업사, 1982년 재판. 94-95쪽.

 

이 시가 1948년에 출간된 "울릉도"라는 시집에 실려 있다니, 해방 직후에 우리나라 현실을 개탄하면서 쓴 시다.

 

무려 70여년 전의 상황에서 시인이 한탄한 내용의 시다. 그런데...지금은... 지금 우리는 어떤가? 이 시의 내용에서 벗어나 있는가. 오히려 시인의 한탄이 지금도 울려퍼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시인이 절규하듯 내뱉은 '나의 겨레여 우리는 마땅히 망멸할진저'라는 말을 실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 자당의 권세를 거미줄 치기에 / 민중의 복지를 일컬어 팔고 / 그릇된 주장을 부회하기에 / 어진 백성을 우롱함이 없는가'라고 한탄했던 시인의 말을, 우리는 단지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여기에 정말로 이건 과거다. 우린 이것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아직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시인들이 계속 시를 쓴다.

 

시인들은 이 시대를 지키는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인들, 계속 만나고 싶다.

 

헌책방에서 만난 유치환을 통해 시인의 자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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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아직도 이미지로 보이니? - 우리가 몰랐던 이미지의 모든 비밀
주형일 지음 / 우리학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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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이 책에서도 지은이가 말하고 있지만 지금은 이미지의 폭주 속에서 눈이 가장 피곤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눈이 피로한 시대, 이미지 과잉 시대 속에서 우리는 고정된 이미지를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규정하는, 자신의 사회를 규정하는 이미지를 은연중에 몸에 지니고, 그것을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미지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데, 이미지가 과연 무엇일까? 이미지를 어떻게 관계맺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가령, 이 책만 하더라도 주요 독자가 아마도 언론학, 광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도 그렇고, 글을 전개하는 어투를 보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중고등학생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시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놓고 시험 하나만을 위해 달려가는 경주마와 같은 아이들... 그런 모습과 더불어 손에는 늘 스마트폰이 들려 있어서 그것에 온 눈을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이런 이미지 아닐까?

 

지금 학생들을 이미지로 그려본다면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아니라 손에 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리라.

 

그만큼 중고등학생들은 엉덩이로 공부한다기보다는 손가락으로 공부하는 습관이 더 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손가락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엉덩이가 필요한 이 책이 얼마나 읽힐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우선 읽는 사람의 눈에 들어야 하는데... 손이 가게 해야 하는데... 그래서 책에서도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마 그래서 이 책도 표지에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마릴린 먼로가 누군지 몰라도 앤디 워홀의 작품을 몰라도 이 그림은 눈에 확 들어와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런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기게 했다면 우선 성공이다. 이미지에 관한 책으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표지에 실어 책을 읽히게 한다는 면에서는 성공인데... 내용은 이미지학이라고 해도 좋을 책이다.

 

이미지에 관한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미지의 정의부터 이미지의 역사, 이미지의 역할, 이미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등 이미지를 깊이 있게 공부하기 전 개관할 수 있는 책으로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들을 중고등학생들이 읽고 생각하고 생활에 접목한다면 우리나라가 문화국가가 되기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학생들에게 이런 시간이 있을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책을 읽는 이미지의 학생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지금 홍수처럼 넘쳐나는 이미지들의 이면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학생들은 지금 시험에 쫓겨 다른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나만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서겠지.

 

이런 이미지를 깨는 일...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미지는 우리가 그렇게 이해한 세상을 가장 근접한 형태로 재구성해 보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이미지와 관련해 말하자면 우리는 어딘가에 있는 진리를 발견해 간다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을 만들어 갑니다.  237-238쪽

 

우리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이미지에 대해 탐구하기보다는 현실과 이미지를 앞에 둔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만들어 가는 것도 나이고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보는 것도 나이기 때문입니다. 238쪽.

 

그렇다. 내가 살아온 경험에 의해서 학생들의 이미지를 시험에 쫓기는 모습으로 고정시켜 놓았을지도 모른다. 요즘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들, 자신들의 꿈을 찾아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나는 청소년들의 이미지를 고정시키지 말고,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지닌 편견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청소년들도... 눈 앞에 보이는 이미지에 휩쓸리지 않고 이미지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언가 기초를 쌓아야 한다.

 

가끔은 엉덩이가 무거워져도 된다. 고맙게도 이 책은 너무 엉덩이를 무겁게 하지 않아도 된다. 편하고 재미있게, 그러나 여러가지를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다.

 

이미지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한 번 이 책을 보도록 하자.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서. 

 

덧글

 

이 책은 출간기념 서평 이벤트에 응모해서 받은 책이다. 이런 행운이 가끔씩 내게 찾아온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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