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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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넬슨 만델라의 말로 시작한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렇다.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학대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이 말만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아동학대로 죽어갔던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영혼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아동학대에 대해서 쓴 책이다. 제목이 이상한 정상가족이라고 해서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 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읽어보면 아동 인권을 주제로 삼았는데, 아동 인권이 가장 심하게 침해당하는 장소가 바로 가족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흔히 가족하면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곳, 아이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을 읽어보면 아동 학대의 출발점이 바로 가족이다. 그러니 이상한 정상가족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보통 아동 학대하면 정상가족이 아닌 곳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실 정상가족이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정상가족이 아닌 가족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상가족이다 아니다는 가족의 형태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나누는 기준은 가족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느냐의 여부로 따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말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아이 목숨을 부모가 끊어버리는 일, 그것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살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자녀 살해 후 부모 자살'이란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만 생각하는 부모가 있는 가정은 정상가족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체벌로부터 시작한다. 우리 사회는 부모의 체벌에 대해서는 참으로 관대하다.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일은 그럴 수도 있지, 우리도 그렇게 자랐어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기하듯이 체벌과 학대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을 나눌 수 없다. 스웨덴에서 린드그렌이 한 연설에서 아이가 회초리 대신 돌을 가지고 왔다는 엄마의 말, 그 엄마는 어떤 형태의 체벌도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돌을 주방에 두고 늘 살폈다는 것.

 

법적으로 부모의 체벌을 완전히 금지한 스웨덴,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체벌 금지를 택한 많은 나라들, 우리도 형식상으로는 체벌금지지만, 여전히 체벌은 일어나고 있다. 아직도 아동 인권에서는 많이 못 미치는 나라인 것이다.

 

아동인권에 중요한 요소가 바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이 비정상가족이라는 이상한 말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미혼모, 입양아, 다문화가정, 한부모 가정 등을 비정상가족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가정을 삐딱한 눈으로 보게 되면 그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사회가 집단적으로 차별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는 것.

 

그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 사회도 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아이가 제대로 대우받아야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체벌은 학교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데 - 완전히는 아니다. 여전히 학교에서 체벌은 일어나고 있고, 학교가 아닌 사교육 현장에서는 체벌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소위 돈 내면서 맞으려 다니는 아이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 아동학대에 왜 화장이나 염색 규제 또는 교복은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규제하는 것, 이것 자체가 이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누구나 똑같아야 한다는 폭력 아닌가, 그런 폭력이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교육이라는 가면을 쓰고 행해지니, 이것 역시 아동 학대라는 생각이 든다.

 

체벌이 법적으로 교육현장에서 금지되었지만, 상벌점이라는 이름으로 화장 등 각종 규제가 아이들을 옥죄고 있는데, 이것으로 인해 아이들이 두려움을 지니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아이들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 교칙이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이 곧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일을 내면화하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 결국 폴란드 교육학자인 코르차크의 말로 대변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세상에는 많은 끔찍한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아빠, 엄마,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일" (217쪽)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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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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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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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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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4: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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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07-02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넘 좋죠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중에 최고 였습니다 ^^

kinye91 2018-07-02 19:55   좋아요 1 | URL
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2018-07-02 2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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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0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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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대화 -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새로 읽는 관계사 시리즈
김연철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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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이 쓴 "선을 넘어 생각한다"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박한식은 북한을 바라보는 12가지 편견에 대해서 사실에 기반해서 반박하고 있다면, 이 책은 남북간에 이루어진 대화를 역사적 순서대로 서술하고 있다.

 

분단이 된 직후부터 이야기하지 않고 전쟁이 끝난 다음부터 남북간에 어떤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세계적인 정세와 함께 분석하고 있다. 이렇듯 과거를 분석하는 이유는 과거에 매달리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앞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가자는 것, 그것은 대결 국면에서 평화 국면으로 전환하자는 것, 적대자에서 동반자 관계를 만들자는 것, 실질적인 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반도가 되자는 것, 그래서 우리가 평화를 배달하는 배달의 민족이 되자는 것이다.

 

이 책은 남북관계를 7개의 장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후(1950년대와 제네바 회담) -> 대결의 시대(1960년대 제한전쟁과 푸에블로호 사건) -> 대화가 있는 대결의 시대(1970년대와 7·4남북공동성명) -> 합의의 시대(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 공백의 5년(김영삼 정부의 남북관계) -> 접촉의 시대(두번의 남북 정상회담) -> 제재의 시대(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이 책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이루어진 일은 다루지 않고 있다. 책이 지닌 한계이리라. 이 책이 출판된 것이 2018년 1월이니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화가 막 이루어지기 시작한 때다. 그 뒤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결성이 되어 감동을 주었고,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며(그것도 두 번이나),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루어졌다. 아마 증보판이 나온다면 '평화의 시대'라는 장이 하나 추가되지 않을까 한다.

 

남북 관계, 북미 관계가 급속도로 평화 분위기로 전환되었기에, 이 책에서 짚어온 남북 대화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우리가 안정적으로 생활을 하던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상태를 추구해야 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남북이 긴장관계, 대결관계에 있을 때 과연 우리 삶이 편안했던가. 안보를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이용한 집단들 때문에 우리는 불안에 휩싸인 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반면에 남북이 서로 대화를 하는 국면에서는 갈등이 있더라도 곧 해결될 것이라는 안정감을 지니지 않았던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대화를 하고 있는 국면이기에 혹 북한과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잘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고. 이런 사라짐은 다른 분야에서 우리를 더 힘내게 한다.

 

따라서 지금 청년들은 안보 불안에 떨지 않는다. 이들은 적어도 남북관계에서만은 밝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이들 청년, 청소년들은 통일에 대해서도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통일은 정치적 의미보다는 자신 생활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기차 타고 유럽 가자!"

 

얼마나 발랄한가. 이게 바로 통일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미래 세대에게는 우리나라가 섬나라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안보를 핑계 삼아 정권 유지를 할 집단들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때, 그런 때가 바로 통일을 바라보게 되는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으로 무거웠던, 통일 하면 무언가 어려운 난제라고 생각했던 과거가 있었음을, 지금 이렇게 밝은 분위기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화들이 오고가고, 멈추었다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책이 시중에 나와 대중들이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북한 잘못으로 몰아가던 책들에서, 이제는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책들이 나왔으니 말이다.

 

이제 시작이다. 남북 평화 시대는. 제재의 시대를 넘어 다시 접촉, 상생의 시대, 평화의 시대로 가고 있다. 그렇다. 제재의 시대, 보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해서, 그 때 이룬 남북관계 성과들을 묻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은 상호불신밖에 없었다.

 

이 유산을 청산하고 다시 대화, 평화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제재의 시대에 멈추었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철도 연결 사업, 각종 문화 교류, 이산가족 상봉 등 다양한 활동들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군사적 긴장도 다시 확성기가 철거되고 장성급 회담이 진행되는 등 완화되고 있으니 앞으로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보수-진보-보수-진보 정권을 거치면서 충분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운 점도 많다. 그러니 상생, 평화, 동반자 시대로 남북이 접어들 때도 되었다. 그 열쇠를 주변 강대국들에게 맡기지 말아야 한다.

 

열쇠는 바로 우리가 쥐어야 한다. 그 열쇠로 전쟁으로 인해 막힌 자물쇠를 열어야 한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한번에 열 수는 없다. 자물쇠가 많이 녹슬어 있을 테니. 천천히 계속 열쇠로 열려는 노력을 하면 자물쇠는 열린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한번에 자물쇠가 안 열린다고 포기하지 않는 자세다.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게 꼭 쥐고 계속 여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자물쇠는 열린다. 우리에게 평화의 시대가 펼쳐진다.

 

이렇게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꾸준히 노력할 때 우리 미래세대들은 기차 타고 유럽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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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0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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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1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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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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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이 신문이나 다른 매체에 연재한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에세이집이라고 해도 좋고, 수필집이라고 해도 좋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수필의 종류, 중수필과 경수필을 떠올려 어느 쪽에 해당하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어려운 사회 문제까지 다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글이 어렵지는 않다. 사실 소소한 일상이 사회 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 삶 자체가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글들이 읽기 편하다. 읽기 편하다는 얘기는 이해하기 쉽게 자기 주장을 잘 펼쳤다는 얘기다. 글들이 또 길지도 않고. 2부에 실린 사진에 대한 글이 다른 부분에 비해서는 길지만, 긴 글들 또한 사진을 보면서 삶을 생각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일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든다. '밤이 선생이다' 그렇다. 밤은 모든 것을 가려준다. 가려준다는 얘기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낮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나를 드러냈다면 밤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가려야 한다. 그리고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에게 침잠하는 시간, 한없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그것이 바로 밤이다. 이런 밤은 '선생'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제목과 어울리는 글이 3부에 있는 '은밀한 시간'이란 글이다. 이 글에서 두 부분을 발췌한다. 제목과 너무도 잘 어울리며, 우리 사회에서 밤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글이다.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81쪽)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물건들은 삶을 투명하게 만든다. 내가 어느 구석에 들어가 있어도 그것들은 나를 추적한다. 아니, 그것들이 나를 추적하기 전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표적을 내 스스로 남겨놓도록 유도한다.' (282쪽)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고 살 수는 없다. 하다못해 이웃집 수저가 얼마나 있는지까지도 파악하고 있다는 시골 생활에서도 자신만의 은밀한 시간은 있다. 밤이 있다.

 

이런 밤이 없고서야 어떻게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 모두 낮만 있다고 생각하고, 낮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모두 낮을 추구한다. 그러나 낮에는 필연적으로 밤이 따른다. 밤이라는 대칭성이 없다면 낮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런 밤,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을, 사회를 더 잘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더잘 살 수 있게 된다.

 

황현산이 쓴 이 글들, 그가 성찰한 내용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짤막한 글모음이기에 언제든, 어디서든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런 다음 이제 밤을 우리의 선생으로 모셔와야 한다.

 

그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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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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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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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눈물 -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메도루마 슌이 전하는 오키나와 '전후'제로년
메도루마 슌 지음, 안행순 옮김 / 논형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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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저자인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 사람으로,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을 소설로 쓰고, 오키나와의 평화를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오키나와가 피해를 당한 것은 맞지만, 전쟁이 끝난 뒤 미군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기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오키나와 전쟁을 겪었다. 오키나와 전쟁은 일본이 패망하기 전, 미군이 일본 본토에 진공하지 못하도록 오키나와가 전면전을 치른 전쟁이다. 어쩌면 오키나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일본 본토를 무사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내국인이라는 일본 본토인들과 오키나와인들은 차별을 했는데, 전쟁 막바지에도 이러한 차별이 오키나와에 대한 학살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그 비극을 잊지 말자고 한다. 미군에 의해서 죽은 사람도 있지만, 일본군에 의해서 죽은 사람, 전쟁의 후유증으로 죽은 사람 등등, 이렇게 일본 본토를 대신해서 오키나와는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난 다음에는 미국에 속하게 된다. 다시 일본에 속하게 되는 1972년까지... 그렇다고 오키나와가 독립국이 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유사성을 지닌다. 제주도 역시 탐라였다가 고려에 복속이 된 이후에는 우리나라 일부로 지내오게 되었으니까.

 

오키나와 역시 일본 본토에 합병이 된 이후에는 독립하지 못한다. 그냥 하나의 현으로 존재하게 된다.

 

여기에 미국으로부터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군기지는 여전히 존재하고, 이런 미군기지로 인해 오키나와는 미군의 최첨병 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군기지에 대해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저자는 미군기지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오키나와 평화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미군 기지가 있음으로 해서 오키나와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다. 아니, 피해와 가해를 동시에 겪는 곳이 된다. 아무리 좋은 말로 오키나와를 홍보한다고 해도,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이 책 곳곳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피해자가 세계 여러 나라에 파병되는 군인들의 기지가 되어 가해자가 되는 현실, 그것이 오키나와가 처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단순히 피해자로서만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으려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된 것이 한국 현대사 아니던가. 그러므로 우리 역시 피해자로서만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세계 도처에 있는 미군기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고, 우리와 비슷한 비극을 겪었던 오키나와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그냥 여행하기 좋은 섬으로만 오키나와를 생각하지 말고,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을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하고, 그들이 벌이는 평화운동이 우리가 벌이는 평화운동과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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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8-06-04 0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해 전 오키나와에 다녀왔는데, 역사적으로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엔 제주에 다녀오면서 평화박물관을 다녀왔는데, 오키나와도 전쟁, 평화를 주제로 한번 다녀오고 싶은 생각입니다. 그 때는 이명원이 제주도와 오키나와를 쓴 <두 섬>이라는 책을 읽을까 하고 있습니다.

kinye91 2018-06-04 09:10   좋아요 1 | URL
오키나와가 풍광이 좋다고 들었는데,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어요. 나중에 풍광도 풍광이지만 평화라는 주제로 오키나와 여행을 하고 싶어요.

2018-06-04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4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구 평화론 범우문고 275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박환덕.박열 옮김 / 범우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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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읽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책이다. 칸트란 철학자가 워낙 어려운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시대가 너무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전쟁을 하는 것은 여전하다. 이 책에 나온 이 말이 지금도 통용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슬프긴 하지만, 어김없이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함께 생활하는 인간 사이의 평화 상태는 자연 상태는 아니다. 자연 상태는 오히려 전쟁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예를 들어 적대 행위가 언제나 발생한 상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대 행위에 의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 때문에 평화 상태는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적대 행위가 없다 해도 그것 자체가 아직 평화 상태에 대한 보장은 아니며, 또한 이웃하고 있는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하여 평화 상태의 보장을 요구했는데 다른 쪽에서 보장해주지 않을 경우(이와 같은 보장은 법적 상태하에서만 가능한 것인데)에 평화 상태를 보장해주지 않는 다른 쪽 이웃을 적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34쪽)

 

그렇다. 평화 상태는 만들어져야 한다.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이 작은 책에서 칸트는 평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비 조항, 확정된 조항, 보충 조항, 그리고 부록'으로 나눠서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 각 조항들이 너무도 옳은 말이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말이고, 또 외우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예비 조항 5를 보면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나 통치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여 간섭해서는 안 된다.'라고 되어 있다.

 

이보다 명쾌한 평화에 대한 예비 조항이 어디 있는가? 세계 경찰을 자처하면서 각 나라 체제에 간섭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어떤 나라가 존재하는 지금 현실에서, 이 말은 예비 조항이다. 평화로 가기 위한 확정된 조항도 아닌데도 강한 나라에 의해 무너진 원칙이 되고 있다.

 

이토록 좋은 말, 당연한 말, 그러나 실천하기 힘든 말, 이 책에 나와 있는 각 조항들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온 말들은 설명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 원칙, 바로 우리 인간이 지녀야 할 원칙(도덕)을 잊지 않고, 또 잃지 않고 실행해야만 한다.

 

상대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상대 국가 역시 우리와 같은 국가라는 것, 상대 민족 역시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로 자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는 것.

 

개인, 국가, 민족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라는 공통 존재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꼭 인류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지닌 보편성을 찾아 그 보편성에 따라 행위를 한다면 세상은 전쟁 상태가 아니라 평화 상태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평화 상태는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도 꾸지 않으면 더 비참하지 않은가. 한창 무르익었던 북미 평화에 대한 기대가 조금 멀어지기는 했지만, 가능성을 열어둔 한 걸을 내디뎠으니...

 

이때쯤 칸트의 짧은 글인 '영구평화론'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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