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봇 다이어리 : 로그 프로토콜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9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모두를 죽여야만 했다. 미키도 포함해서. 아베네도 포함해서. 아직 붙어 있는 아베네의 머리는 내 쇄골에 기대 있었고 내 인간 피부에 닿은 머리카락은 다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래, 그러니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단 한가지 똑똑한 방법은 전부 다 죽이는 것이었다. 나는 멍청한 방법으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나는 내 표정과 목소리를 보안유닛답게 무감각하게 확실히 바꾸고 말했다.     p.104~105

 

총 4부작인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시리즈의 주인공은 보안용 안드로이드인 머더봇murderbot이다. 스스로를 '살인봇'이라 칭하는 머더봇은 과거에 회사가 가장 싼 부품만 사용해서 만든 덕분에 지배모듈이 오작동을 일으켜 시스템의 통제권을 잃고 보호해야 했던 채굴 작업자 쉰일곱 명을 죽인 적이 있다. 회사는 그를 회수해서 새 지배모듈을 설치했고, 그 뒤로 3만 5천 시간이 훌쩍 넘을 동안 살인을 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머더봇은 그 긴 시간 동안 영화와 드라마, 책, 연극, 음악을 즐기며 지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을 무자비한 살인기계로서는 실패작이라고 칭하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머더봇은 인간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일을 해왔다. 먼 우주로의 여행이 일상이 된 미래, 사람들이 외계 행성을 탐사하려면 기업의 승인을 받고 보안 유닛과 함께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에서는 외계 행성에서 자원의 독점 소유권을 입찰할 만한지 따져보려 조사를 하기 위해 과학자로 구성된 탐사대의 보급품 가운데 하나로 머더봇이 등장했다. 행성의 위험 보고서에 등재되지 않은 괴생물체가 과학자들과 머더봇의 목숨을 위협해 그들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그려졌었다. 두 번째 작품인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에서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학살이 있었던 비극의 장소로 돌아가려고 신분을 위조해 증강인간인 척하며 우주선을 얻어 타고 고통스러운 기억의 중심으로 향했었다. 세 번째 작품인 이번 신작 <머더봇 다이어리:로그 프로토콜>에서 머더봇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거대 기업 그레이크리스의 음모가 숨겨진 행성 밀루로 향한다. 과연 소심하고, 사회성 없고, 냉소적인 머더봇이 이번에는 또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음, 젠장. 나도 실수를 한다(특별한 파일에 장부를 만들어 기록하고 있다). 보아하니 내가 큰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윌켄의 행동이 나 때문이라고, 고객이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다른 보안 자문관의 존재와 그자가 보냈다며 뜬금없이 튀어나온 보안유닛과 관련된 편집증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래, 그래. "전부 나와 관련된 일이야"라는 건 으레 인간이나 할 법한 소리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여자는 완전히 다른 이유로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p.164

 

기본적으로 보안유닛의 임무는 고객이 죽거나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서로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점잖게 만류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어느 거지 같은 행성의 노동 시설로 가는 중이었고, 이 수송선 안에는 인간 관리자 없이 오로지 머더봇 뿐이었다. 인간들은 자주 싸웠고, 그들을 말리느라 지친 머더봇은 다들 머저리같고, 성가시고, 근본적으로 모자란 인간들이라고 투덜댄다. 그렇게 인간이라는 존재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그렇다고 죽여버리고 싶은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는 머더봇은 사실 별 것 아닌 일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매사에 시니컬하고 냉소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여야 할 인공지능이 마치 진짜 인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시리즈만의 진짜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거대 기업 그레이크리스는 행성 밀루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 조건을 만드는 테라포밍 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외계 문명이 남긴 유물을 독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머더봇은 증거를 잡아서 그레이크리스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멘사 박사와 일행들이 자신의 행성으로 편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테라포밍 구조물에 잠입한 머더봇은 그곳을 지키는 전투봇과 무기로 돌변한 그곳 시설의 기계들에 맞서 긴박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스펙터클한 전투가 펼쳐지는 이번 시리즈에서도 머더봇 특유의 유머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웜홀 여행이 가능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보이는 안드로이드와 함께하는 우주 모험의 그 마지막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시리즈 마지막 편인 <머더봇 다이어리: 탈출 전략>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스페이스 오페라의 정수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시리즈를 놓치지 말길 적극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매끄러운 세계의 인간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어요. 고통이나 슬픔을 느껴도 그것들이 없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언제든 그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죠.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받는 현실로 가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 그것을 이룬 현실로 옮겨가면 되고요.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가능성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저차원 생물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이에요. 무엇보다 이 세계의 적들이에요.”    

-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중에서, p.43

 

여기, 차갑게 빛나는 검은색 총이 있다. 총의 이름은 '웨딩나이프', 전 세계에서 몇백만 자루나 만들어진 총이다. 이것은 결혼식을 막 끝낸 신랑과 신부를 위한 것이다. 피로연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상대의 이마에 총을 겨누는 행동이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팡 하고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총알이 아니라 극소장치를 주입하는 바늘이다. 두 사람은 쓰러지거나 잠들지 않고, 총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주고 받는다. 이로써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얻게 되었다. 물론 서로에게 총을 쏘기 전부터 그들의 사랑은 진실했지만, 언젠가는 사랑이 식어갈 것에 대한 완벽한 보장을 얻게 된 것이다.

 

상대를 평생 사랑할 마음이 진정이라면, 말에서 그칠 게 아니라 화학적인 보증을 덧붙이는 게 무슨 문제냐고 사람들은 생각했고, '웨딩나이프'는 연금이나 보험을 뛰어넘는 인생의 보증처럼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뇌과학 기술을 이용해 인격을 개조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애정의 방향을 고정시킴으로써 생겨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인격들을 죽이는 것이 과연 인간적인가, 하는 질문들이 남는다. 과학 기술이 감정마저 통제해 영원한 사랑을 보장해주는 세계에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감정이 맞는 것일까.

 

 

신랑신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상대의 이마에 총을 겨눴다. 조금 전까지 술렁거렸던 홀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이 총에 '웨딩나이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케이크에 나이프를 찔러 넣듯이 뇌수에 메스를 댐으로써,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로 시작되는 혼인 서약은 말로 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것이 됩니다. 그들의 사랑은 오늘부터 흔들림 없는 과학으로 보증됩니다. 영원한 인연에 축복이 함께하기를."      

 -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 중에서, p.112

 

이 책은 ‘2019 베스트 SF 1위’에 오른 일본 SF 최고의 화제작으로 정식 출간 이전에 이미 중쇄가 결정되고 출간 2주 만에 5쇄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한나 렌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이 작품으로 SF 팬이라면 반드시 챙겨봐야 할 작가가 될 것 같다. 인격이식, 평행세계, 싱귤래리티, 대체 역사, 신칸센 저속화 현상 등 다양한 SF만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감성 SF'라는 호칭에 걸맞게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평행세계를 매끄럽게 넘나들 수 있다면 어떨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할아버지가 살아계신 현실로 가면 되고, 사고로 손을 다쳐서 게임을 하지 못한다면, 사고 따윈 없었던 현실로 가는 것이다.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모든 가능성 속에 살고 있는 자신으로 옮겨 다니며 살아 갈 수 있다면 말이다. 또 이런 세상도 있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을 태운 신칸센에서 시간지연 현상이 발생한다. 수학여행에 가지 않아 신칸센에 탑승하지 않게 된 주인공은 저속화된 신칸센에 갇힌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낼 수 있을까. 수록된 여섯 편의 작품들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축한, 그럼에도 지극히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오직 SF를 읽어왔더니, 이런 인간으로 성장하여 이런 책이 탄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수많은 SF 작품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놀라운 작가의 탄생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 우리는 어른들에게 '만약에'라는 질문을 끝도 없이 던졌다. 만약에 우리가 매일매일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면 어땠을까. 이 작품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숨어 있던,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어린 천재가 '만약에'라는 질문을 던지며 상상을 펼치던 그 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동영상 스토리콜렉터 90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이에겐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살인범의 머릿속으로 침투해 살인범의 시각을 통해 사고하고, 때론 범인이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재주는 공짜가 아니었다. 때로는 살인범이 아니라 피해자의 머릿속에 갇히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보고, 마치 자신이 피해자가 된 양 그들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니콜의 경우에는 굳이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었다. 이번에는 피해자의 고통을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 그 악몽의 순간 니콜 메디나의 머릿속으로 침투하는 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p.93

 

흑백 화면 속에 젊은 여자는 공포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비좁고 어두운 장소에 누워 있다. 이윽고 화면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아래쪽 화면은 어두운 공간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위쪽 화면은 무덤처럼 보이는 직사각형 구덩이 안에 모래를 퍼붓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화면 속 남자의 냉정하고 침착한 움직임과 여자의 히스테리 사이의 불협화음은 보는 이들을 몸서리 쳐지게 만든다. 누군가 살아 있는 여자를 생매장하고 있는 것이다. 영상 아래쪽에는 '실험 1호'라는 자막이 떠 있었고, 게시자는 '슈뢰딩거'였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밀폐된 상자 속에 독극물과 함께 있는 고양이의 생존 여부를 이용해 양자역학의 원리를 설명한 사고실험이다. 실험 속에서 고양이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이 영상 속에서 상자에 갇혀 있는 여자 역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여자는 정말 생매장을 당한 걸까? 이 영상은 라이브로 촬영되었을까? '실험 1호'라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더 벌어진다는 걸까? 이는 연쇄 살인의 시작인 걸까?

 

FBI 요원 테이텀 그레이와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가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는 '조이 벤틀리'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대책 안 서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소시오 패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역시나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상사들과 부딪쳐 온 FBI 요원과 살인범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알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은 전혀 헤아리지 못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돌직구만 날려대는 범죄심리학자라는 조합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사건건 서로를 공격하고 무시하고 부딪히는 두 남녀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특별한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하고, 상반된 성격으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의 재미도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이가 코웃음 쳤다. "난 놈의 소명의식 따위엔 털끝만치도 관심없어요. 놈은 그냥 그런 말로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떠들다 보면 실수로 우리한테 진짜 실마리를 주게 될지도 모르죠. 우리가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걸요."
"무슨 뜻이에요? 놈이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라니."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요, 해리.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신은 아주 잘 알 텐데요. 그리고 이 남자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크고 정교한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p.317

 

전작인 <살인자의 사랑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언론에서 '목 조르는 장의사'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 사건을 함께 해결했다. 이번에는 '실험 1호', '실험 2호'라는 제목으로 여자가 생매장당하는 영상을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연쇄살인범을 뒤쫓는다. 게다가 조이는 전작에 이어 유년 시절부터 트라우마로 남은 또 다른 연쇄살인마 로드 글로버로부터 동생인 안드레아를 지켜야 한다. 그녀는 10대 시절 이웃에 살던 연쇄살인마 로드 글로버에 의해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FBI의 수사를 돕는 범죄심리학자가 되었다. 여전히 잊지 않고 연락을 해오던 로드 글로버는 전작에서 조이를 기습 살해하려다 실패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이의 여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 이후로 완전히 종적을 감춘 상태이지만, 조이는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안드레아를 설득해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게 했다. 하지만 조이가 매순간 안드레아를 지켜보며 곁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녀는 사건 수사를 하는 틈틈이 언제 위협을 실행에 옮길지 알 수 없는 로드 글로버로부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또 다른 살인마를 잡는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조이에게 최악의 위기가 닥쳐 온다.

 

마이크 오머는 기자와 게임 개발자였던 이력 덕분인지 매우 현실적인 공포를 그리면서도, 오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지루할 틈없이 탄탄한 서사로 꽉 채우고 있다. 독특한 성격의 두 남녀 주인공 캐릭터가 전작에 이어 더 생생하게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진 미드 한 편 본 것 같은 기분도 드는 작품이었다. '조이 벤틀리' 시리즈 다음 작품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왜 도와달라는 말을 못할까 - 부담은 줄이고 성과는 높이는 부탁의 기술
웨인 베이커 지음, 박설영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지레 짐작한다. 또한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아니면 기꺼이 돕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그에게 시간이 없거나 도울 능력이 부족할 거라고 속단한다. 나는 수년에 걸쳐 직접 행사를 진행하며 선입견 때문에 자신을 제약하는 사람들을 거듭 목격했다... "사람들이 무얼 알고 누굴 아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물어보기 전까지는요. 여기 모인 사람들을 미리 재단하지 마세요. 진짜 필요하면 그냥 도와달라고 부탁하세요." 선입견을 버리고 도움을 요청하면 실망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p.29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타인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일에 치여 쩔쩔매거나,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왜 우리는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걸까. 무능력해 보일까봐,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봐 두려운 탓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탁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웨인 베이커 교수는 '때로는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단순한 행동이 우리를 성공으로 인도하는 열쇠가 된다'고 말한다. 직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새로운 구직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부탁하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내가 뭘 원하는지,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거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연구 결과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조차 부탁을 받으면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선입견을 버리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실망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마다 도움을 구할 수는 없고, 그것에 의존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것도 좌절과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부탁의 힘'이 가진 효과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고 부탁할 내용도 다듬었다면, 다음 단계는 부탁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적임자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바로 부탁할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약간의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핵심은 '누가 무엇을 아는지'(지식 네트워크)와 '누가 누구를 아는지'(사회적 네트워크)를 파악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전문지식이나 자원을 가진 사람, 또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거나 연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p.99

 

이 책에서 알려주는 것은 '부담은 줄이고 성과는 높이는 부탁의 기술'이다. 부탁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성에서 시작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부탁의 전략, 도움을 주고받는 팀워크의 비결 등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저자는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Inc)를 설립하고 조직심리학과 네트워크 연구를 바탕으로 기브앤테이크 실천 프로그램의 학문적 기초를 만들었다. 그는 이 책에서 관대하게 도움을 베푸는 ‘기버(giver)’ 모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베풀 줄 알며 도움을 받을 줄도 아는 사람, ‘기버-리퀘스터(giver-requesters)’가 되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개인적, 직업적, 사업적 인맥을 통해 자원을 순환하게 만드는 것은 도움을 베푸는 것만큼이나 ‘도움을 청하는 데’ 달려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대부분 도움을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 도움을 부탁하는 것 또한 그것만큼 중요한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도움을 주는 것과 받는 것, 그 주고받음의 순환이 가져오는 사회적인 효과 또한 매우 중요하다.

 

'부탁'이라는 것은 소심하거나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립심이 높은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과제이다. 특히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직장에서, 업무적으로 부탁을 할 수 있는 스킬과 그 효과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직장인들에게 아주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려는 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고, 팀원이나 리더로서 두려움 없는 조직을 일구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훌륭한 부탁이 조건은 구체적이고, 유의미하고, 행동 지향적이고, 현실적이고, 시간 제한적이어야 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스마트한 부탁의 법칙 다섯 가지는 센스 있게 부탁하고, 누구에게라도 긍정적인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만든다.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지, 거절로부터 다음 기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부탁의 실전 기술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무덤도 화재 때문에 움푹 팬, 바닥이 고르지 않은 경사진 구덩이였다. 우리가 거기 버려지기 오래전부터 블랙 아이드 수잔이 피어나서 화려하게 들판을 단장하고 있었다. 블랙 아이드 수잔은 버려져서 누렇게 뜬 땅에서 종종 제일 먼저 번성하는 탐욕스러운 식물이다. 치어리더처럼 아름답지만 경쟁심이 강하다. 빠르게 번식해서 다른 종을 몰아낸다. 끄지 않고 아무렇게나 던진 한 개비 성냥, 그 때문에 연쇄살인범 이야기에 영원히 새겨질 우리의 별명이 탄생했다.     p.31

 

테사는 타브로이드 신문 일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던 스타이자 캠프 파이어 때 등장하는 공포 괴담의 주인공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블랙 아이드 수잔 네 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운이 좋았던 단 한 명, 유골이 흩어져 있던 곳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채로 발견된 유일한 피해자였다. 열여섯의 테사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들의 유골과 함께 살아 있는 채로 묻힌 채 발견되었다. 그녀가 발견된 공동묘지에 곳곳에 피어 있던 블랙 아이드 수잔 꽃 때문에 사람들은 희생자들을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18년 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고 있는 테사에게 그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자신이 18년 전에 했던 증언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범인에 대한 집행이 한 달 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고, 테사는 혹시 무고한 사람이 사형수 감옥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야기는 십대 딸을 둔 엄마 테사의 현재 시점과 18년 전 블랙 아이드 수잔 사건의 생존자로 무사히 구출되고 난 뒤의 열여섯 소녀 테사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과거 시점의 대부분은 테사와 정신과 의사의 상담으로 진행된다.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다가 회복하고,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어 버린 테사가 뭐든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아 주기를 바라는 어른들과 이상하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소녀의 구도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긴장감 보다는 다소 모호하게 흘러간다. 이백여 페이지가 지날 때까지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제대로 드러나는 게 없으니 말이다. 현재 시점의 이야기에서는 유명한 법과학자와 사형수 전문 변호사와 함께 혹시 다른 범인이 있지는 않을까, 무고한 사람이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좋아요. 당신의 괴물이 바로 지금 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그가 자리에 앉았어요. 모든 것을 자백했어요. 당신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이름도 알고, 어디서 자랐는지, 어머니가 그를 사랑했는지, 아버지에게서 얻어맞았는지, 고등학교 때 인기가 많았는지, 개를 사랑했는지, 개를 죽였는지... 다 알고 있어요. 그가 바로 저기, 1미터 떨어진 의자에 앉아서 당신의 모든 질문에 대답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달라질까요? 당신을 만족시킬 대답이 있을까요? 기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나는 의자를 응시했다.... 나는 내 괴물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가 죽기를 원했다.      p.268~269

 

수십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서, 자신이 진범을 잡은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범인의 변호사와 협력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피해자의 심리는 복잡 미묘하다. 누군가 그녀의 집 창밖에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어 놓았고, 사실 그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사건 당시 테사의 단짝이었던 친구 리디아는 테사가 재판에서 증언한 이후 사라져버렸다. 테사가 입을 열면 리디아도 수잔으로 만들겠다는 협박의 편지가 있었다. 리디아도 블랙 아이드 수잔 중 한 명이 되어 희생당한 걸까. 아니면 스스로 자취를 감춰버린 걸까. 수잔들 중 두 명은 아직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고, 그들은 테사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 준다.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서, 그녀에게 말을 건다. 과연 감옥 안에 있는 범인은 무고한 걸까, 그렇다면 진짜 연쇄살인범은 누구일까.

 

피해자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사람이 주인공이고, 그녀의 기억을 쫓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 내는 구도라면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가 진행될텐데, 사실 이 작품은 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독자들이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게 되는 것은 전체 사백 삼십여 페이지 중에서 사백 여 페이지가 가까워졌을 때 즈음이다. 그 뒤로 반전과 의외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그 전까지 이어지는 전개는 다소의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우선 테사라는 인물 자체가 뚜렷하지가 않아 다소 흐릿한 색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것 같기도 하다가 정말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덕분에 서사는 굉장히 느릿하게 흘러 간다. 물론 후반부의 속도감과 예상치 못한 결말을 위해 이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영화 <컨텐더> 감독으로 영화화 제작 예정이라고 하는데,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는 또 어떤 분위기일지 기대를 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