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동영상 스토리콜렉터 90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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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에겐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살인범의 머릿속으로 침투해 살인범의 시각을 통해 사고하고, 때론 범인이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재주는 공짜가 아니었다. 때로는 살인범이 아니라 피해자의 머릿속에 갇히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보고, 마치 자신이 피해자가 된 양 그들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니콜의 경우에는 굳이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었다. 이번에는 피해자의 고통을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 그 악몽의 순간 니콜 메디나의 머릿속으로 침투하는 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p.93

 

흑백 화면 속에 젊은 여자는 공포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비좁고 어두운 장소에 누워 있다. 이윽고 화면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아래쪽 화면은 어두운 공간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위쪽 화면은 무덤처럼 보이는 직사각형 구덩이 안에 모래를 퍼붓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화면 속 남자의 냉정하고 침착한 움직임과 여자의 히스테리 사이의 불협화음은 보는 이들을 몸서리 쳐지게 만든다. 누군가 살아 있는 여자를 생매장하고 있는 것이다. 영상 아래쪽에는 '실험 1호'라는 자막이 떠 있었고, 게시자는 '슈뢰딩거'였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밀폐된 상자 속에 독극물과 함께 있는 고양이의 생존 여부를 이용해 양자역학의 원리를 설명한 사고실험이다. 실험 속에서 고양이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이 영상 속에서 상자에 갇혀 있는 여자 역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여자는 정말 생매장을 당한 걸까? 이 영상은 라이브로 촬영되었을까? '실험 1호'라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더 벌어진다는 걸까? 이는 연쇄 살인의 시작인 걸까?

 

FBI 요원 테이텀 그레이와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가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는 '조이 벤틀리'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대책 안 서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소시오 패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역시나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상사들과 부딪쳐 온 FBI 요원과 살인범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알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은 전혀 헤아리지 못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돌직구만 날려대는 범죄심리학자라는 조합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사건건 서로를 공격하고 무시하고 부딪히는 두 남녀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특별한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하고, 상반된 성격으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의 재미도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이가 코웃음 쳤다. "난 놈의 소명의식 따위엔 털끝만치도 관심없어요. 놈은 그냥 그런 말로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떠들다 보면 실수로 우리한테 진짜 실마리를 주게 될지도 모르죠. 우리가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걸요."
"무슨 뜻이에요? 놈이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라니."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요, 해리.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신은 아주 잘 알 텐데요. 그리고 이 남자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크고 정교한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p.317

 

전작인 <살인자의 사랑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언론에서 '목 조르는 장의사'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 사건을 함께 해결했다. 이번에는 '실험 1호', '실험 2호'라는 제목으로 여자가 생매장당하는 영상을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연쇄살인범을 뒤쫓는다. 게다가 조이는 전작에 이어 유년 시절부터 트라우마로 남은 또 다른 연쇄살인마 로드 글로버로부터 동생인 안드레아를 지켜야 한다. 그녀는 10대 시절 이웃에 살던 연쇄살인마 로드 글로버에 의해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FBI의 수사를 돕는 범죄심리학자가 되었다. 여전히 잊지 않고 연락을 해오던 로드 글로버는 전작에서 조이를 기습 살해하려다 실패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이의 여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 이후로 완전히 종적을 감춘 상태이지만, 조이는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안드레아를 설득해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게 했다. 하지만 조이가 매순간 안드레아를 지켜보며 곁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녀는 사건 수사를 하는 틈틈이 언제 위협을 실행에 옮길지 알 수 없는 로드 글로버로부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또 다른 살인마를 잡는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조이에게 최악의 위기가 닥쳐 온다.

 

마이크 오머는 기자와 게임 개발자였던 이력 덕분인지 매우 현실적인 공포를 그리면서도, 오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지루할 틈없이 탄탄한 서사로 꽉 채우고 있다. 독특한 성격의 두 남녀 주인공 캐릭터가 전작에 이어 더 생생하게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진 미드 한 편 본 것 같은 기분도 드는 작품이었다. '조이 벤틀리' 시리즈 다음 작품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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