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봇 다이어리 : 로그 프로토콜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9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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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모두를 죽여야만 했다. 미키도 포함해서. 아베네도 포함해서. 아직 붙어 있는 아베네의 머리는 내 쇄골에 기대 있었고 내 인간 피부에 닿은 머리카락은 다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래, 그러니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단 한가지 똑똑한 방법은 전부 다 죽이는 것이었다. 나는 멍청한 방법으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나는 내 표정과 목소리를 보안유닛답게 무감각하게 확실히 바꾸고 말했다.     p.104~105

 

총 4부작인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시리즈의 주인공은 보안용 안드로이드인 머더봇murderbot이다. 스스로를 '살인봇'이라 칭하는 머더봇은 과거에 회사가 가장 싼 부품만 사용해서 만든 덕분에 지배모듈이 오작동을 일으켜 시스템의 통제권을 잃고 보호해야 했던 채굴 작업자 쉰일곱 명을 죽인 적이 있다. 회사는 그를 회수해서 새 지배모듈을 설치했고, 그 뒤로 3만 5천 시간이 훌쩍 넘을 동안 살인을 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머더봇은 그 긴 시간 동안 영화와 드라마, 책, 연극, 음악을 즐기며 지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을 무자비한 살인기계로서는 실패작이라고 칭하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머더봇은 인간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일을 해왔다. 먼 우주로의 여행이 일상이 된 미래, 사람들이 외계 행성을 탐사하려면 기업의 승인을 받고 보안 유닛과 함께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에서는 외계 행성에서 자원의 독점 소유권을 입찰할 만한지 따져보려 조사를 하기 위해 과학자로 구성된 탐사대의 보급품 가운데 하나로 머더봇이 등장했다. 행성의 위험 보고서에 등재되지 않은 괴생물체가 과학자들과 머더봇의 목숨을 위협해 그들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그려졌었다. 두 번째 작품인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에서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학살이 있었던 비극의 장소로 돌아가려고 신분을 위조해 증강인간인 척하며 우주선을 얻어 타고 고통스러운 기억의 중심으로 향했었다. 세 번째 작품인 이번 신작 <머더봇 다이어리:로그 프로토콜>에서 머더봇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거대 기업 그레이크리스의 음모가 숨겨진 행성 밀루로 향한다. 과연 소심하고, 사회성 없고, 냉소적인 머더봇이 이번에는 또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음, 젠장. 나도 실수를 한다(특별한 파일에 장부를 만들어 기록하고 있다). 보아하니 내가 큰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윌켄의 행동이 나 때문이라고, 고객이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다른 보안 자문관의 존재와 그자가 보냈다며 뜬금없이 튀어나온 보안유닛과 관련된 편집증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래, 그래. "전부 나와 관련된 일이야"라는 건 으레 인간이나 할 법한 소리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여자는 완전히 다른 이유로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p.164

 

기본적으로 보안유닛의 임무는 고객이 죽거나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서로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점잖게 만류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어느 거지 같은 행성의 노동 시설로 가는 중이었고, 이 수송선 안에는 인간 관리자 없이 오로지 머더봇 뿐이었다. 인간들은 자주 싸웠고, 그들을 말리느라 지친 머더봇은 다들 머저리같고, 성가시고, 근본적으로 모자란 인간들이라고 투덜댄다. 그렇게 인간이라는 존재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그렇다고 죽여버리고 싶은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는 머더봇은 사실 별 것 아닌 일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매사에 시니컬하고 냉소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여야 할 인공지능이 마치 진짜 인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시리즈만의 진짜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거대 기업 그레이크리스는 행성 밀루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 조건을 만드는 테라포밍 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외계 문명이 남긴 유물을 독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머더봇은 증거를 잡아서 그레이크리스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멘사 박사와 일행들이 자신의 행성으로 편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테라포밍 구조물에 잠입한 머더봇은 그곳을 지키는 전투봇과 무기로 돌변한 그곳 시설의 기계들에 맞서 긴박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스펙터클한 전투가 펼쳐지는 이번 시리즈에서도 머더봇 특유의 유머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웜홀 여행이 가능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보이는 안드로이드와 함께하는 우주 모험의 그 마지막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시리즈 마지막 편인 <머더봇 다이어리: 탈출 전략>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스페이스 오페라의 정수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시리즈를 놓치지 말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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