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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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의 존재는 윤리학자들에게 처음부터 골칫거리였다. 만약 인간의 행위가 호의적이거나 악의적인 정령 때문에 유발된 것이라면, 선과 악이 인간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윤리적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옳은 행동과 그른 행동은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몹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부 윤리학자들은 그 시대에 실제로 벌어진 윤리적 혼란을 반영하므로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부수적 결과로 윤리학도에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과제를 남겼으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 아닌가.     p.95~96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넘은 옛날, 한 도시에 폭풍우가 포탄처럼 들이닥친다. 모든 것들이 물에 잠기고, 전기가 끊어져 어둠이 엄습해오고, 폭풍우가 귓속까지 파고들어 울부짖는 것이 사흘 밤낮이나 계속되었다. 마침내 폭풍우가 그쳤을 때, 사람들에게 괴이한 일이 잇따라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무려 2년 8개월 28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정원사 제로니모는 자신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지면에서 몸이 떠 있는 공중 부양상태는 침대에 누워도 엉덩이가 닿지 않았고, 땅을 딛을 수도 없었다.  만화가를 꿈꾸는 청년 지미에게는 자신이 창조한 허구적 인물이 실체가 되어 나타나는 일이 벌어진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물이 아니라 마치 데생이나 삽화처럼 보이는 괴물은 머지않아 자신 같은 존재가 이 세계를 차지할 거라고 말한다. 상상 기술자들이 상상하던 세계와 상상의 산물이 갈망하던 세계 사이의 경계선이 뚫려 마치 웜홀을 통과하는 것처럼 이쪽 세상으로 건너올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그렇게 모든 게 달라진다. 인류가 알던 세상은 폭풍우 이후 점점 사라져버리고, 온갖 괴사와 새로운 현상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사실 갑자기 기이한 능력이 생긴 사람들은 모두 마족의 후손의 후손들이었다. 정작 본인들은 몰랐지만 말이다.

 

 

진정한 현실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안다. 세상은 평범한 시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사납고 기이하다. 평범한 시민은 진실을 외면하고 베일로 눈을 가린 채 무지한 상태로 살아간다. 베일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면 두려워지고, 확신이 무너지고, 기가 꺾이고, 결국 술이나 종교로 도피하게 된다. 이 세상은 원래 그대로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놓은 세상이다. 그는 스스로 구상한 세상에 살고, 이 세상을 잘 다루고, 이 세상을 움직이는 조종간이나 엔진, 끄나풀이나 열쇠가 무엇인지, 어떤 단추는 눌러야 하고 또 어떤 단추는 누르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 그가 창조하고 조종하는 진짜 세상이니까.      p.196~197

 

1195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수백년 전 12세기에 마계의 공주 두니아가 위대한 철학자 이븐루시드와 사랑에 빠진다. 이성을 중시하는 이븐루시드는 그녀가 초자연적 존재라는 사실을 짐작하지 못한 채 그녀를 집안에 들여 가정부 겸 연인으로 삼았다. 그녀는 2년 8개월 28일 사이에 세 번이나 수태했고, 그때마다 여러 아이를 한꺼번에 낳았다. 그 아이들은 어머니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물려받아, 한결같이 귓불이 없었다. '두니아'라는 뜻은 그리스어로 '세계'를 뜻하는데, 그녀는 이븐루시드를 처음 만난 날 이렇게 말했었다. "내 몸에서 세계가 태어날 테니까,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들이 세계로 퍼져나갈 테니까." 그녀의 예언대로 두니아의 후손들은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모른 채 대대로 인간세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800년이 흐른 21세기의 어느 날, 인간계와 마계 사이의 봉인이 깨지고 두 세계 사이에 통로가 생겨 혼란스러운 세상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이를 틈타 흑마신들이 인류를 노예로 삼기 위해 침입하고, 두니아의 후손들은 그에 맞서 흑마족과 전쟁을 벌인다. 그렇게 2년 8개월 28일 밤, 천 날 밤 하고도 하룻밤에 걸쳐 이어졌던 위기와 혼란의 시대에 대한 기록이 이 책의 이야기이다.

 

<한밤의 아이들>로 오래 전에 만났던 살만 루슈디의 신작이다. '구전과 역사, 전통과 신화 등 옛날이야기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천부적인 입담으로 풀어내는 우리 시대의 셰에라자드'라는 호칭이 전혀 과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이 흐른 후 우리의 후손이 21세기를 되돌아보며 서술한 연대기 형식이라 31세기에 바라본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보도록 만들어준다. 천일 밤 동안 끊이지 않는 이야기, 천일야화처럼 살만 루슈디의 특유의 상상력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종교와 철학, 역사를 넘나드는 이 환상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왜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하고, 허구를 만들어내는 지에 대한 살만 루슈디 식의 대답이기도 하다. '우리는 수업이 되풀이되며 입에서 귀로, 귀에서 입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는 생물이니 말이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알 수 없었지만 결국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위대한 이야기꾼이 생사를 걸고 들려주는 현대판 천일야화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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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패트릭 스벤손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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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울가에서 아버지와 뱀장어 혹은 뱀장어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우리 부자가 대화를 나누기는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아마 우리가 대화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별다른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는 장소, 그저 묵묵히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은 장소에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에 비친 달빛, 바람에 흔들려 쉭쉭 소리를 내는 풀, 나무의 그림자, 늘 변함없이 흐르는 개울, 이 모든 풍경 위를 맴도는 별표 같은 박쥐들. 그 풍경의 일부가 되려면 침묵해야 했다.       p.18

 

이 책은 인류에게 오랫동안 신비로움과 궁금증의 대상이었던 유럽 뱀장어인 앙귈라 앙귈라를 소재로, 스웨덴의 신문기자가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인생 회고록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하며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역사, 생물학, 해양학, 문학, 철학 등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깨달은 것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뱀장어는 한 장소에서 50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하니, 매우 긴 삶을 살아가는 편이다. 각종 신화와 전설에 따르면 백 년 이상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뱀장어는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갑자기 번식하겠다고 결정하고, 그와 동시에 고요한 생활은 끝나고 바다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조용하고 무뚝뚝한 편이었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낚시를 하러 갈 때만큼은 다정하고 자상했는데, 그런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가 바로 앙귈라 앙귈라 낚시라고 한다. 앙귈라 앙귈라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출생지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에 대해, 내가 알거나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느 곳보다 먼 곳으로 돌아가는 지난한 여정에 대해서 처음 알려준 것도 바로 아버지였다. 그들이 어떻게 달이나 태양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길을 찾아가는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해한 이유로 어떻게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뱀장어의 탄식과 번식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어떤 인간도 번식하는 뱀장어를 보지 못했고, 다른 뱀장어의 난자를 수정시키는 뱀장어도 보지 못했다고 하며, 유럽 뱀장어를 잡아둔 상태에서 산란하게 만들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뱀장어가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뱀장어의 일생과 번식에 대해 알고 있는 상당수가 가설에 근거한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시간이 믿을 수 없는 친구이며 1초 1초가 아무리 느리게 지나가도 삶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다는 교훈을 얻는다. 우리는 고향과 유산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 어쩌면 성공할지 모르지만, 곧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그곳에 갈 수 없다면 인생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문득 갑작스런 계시를 받듯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전혀 모른 채 평생 어두운 우물 바닥에서 산 것처럼 느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p.195

 

좀처럼 으스대지 않고, 소란을 피우지 않으며,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먹는 뱀장어는 멀찍이서 방관하며, 어떤 관심과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자아도취적이고 자만심이 강한 물고기처럼 보이는 연어와 비교해서 그 습성을 설명해주는데,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두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둘 다 이동하는 물고기이고, 민물에서도 바닷물에서도 살며 변태를 거치지만, 둘의 생활사는 가장 본질적인 측면에서 달랐던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유난을 떨지 않으며, 자기 형편에 만족하는 물고기라니, 어쩐지 근사하게 느껴졌다. 시종일관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읽다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인간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떻게 하면 사람도 자신이 선택한 길에 그토록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앙귈라 앙귈라의 삶이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줄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낚시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왜 사람들이 낚시를 하러 다니는지, 한 번 그 매력에 빠지면 계속 가게 되는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물고기의 생애를 통해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불현듯 마주하게 되는 깨달음들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유럽 뱀장어인 앙귈라 앙귈라의 경우, 과학과 지식이 진일보한 오늘날조차 그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지그문트 프로이트, 레이첼 카슨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연구하고 분석했던 개체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어떤 관심과 인정도 바라지 않고 환경에 적응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로부터 인생의 태도에 대해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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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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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을 걱정하는 건 태평성대에나 할 짓이다. 전시에는 그날 안 죽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모르면 그걸 아는 자의 짐이 되기 십상이다. 세상이 바뀐 후의 걱정은 그때 하면 되는 것이지 지금 급한 건 이 세상에 어떻게 안 죽고 살아남나였다. 우리는 먹을 것도 달랑달랑한 상태였다. 남은 식량을 늘여 먹기 위해 올케와 나는 이미 굶주리고 있었다. 오빠는 빈말로라도 그런 걱정 한마디 없이 언제 닥칠지 모를 앞날을 예습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p.23~24

 

이야기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오빠의 다리를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총구멍에 심을 갈아 끼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자신도 모르게 오싹한 생각을 하고 만다. 총구멍이 차라리 심장을 관통했더라면.. 그랬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무사히 피난길에 올랐을 텐데..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 오빠, 조카와 올케로 구성된 '나'의 가족들은 인기척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서울에서 살아 남아야 했다. 인민군이며, 중공군, 빨갱이 등 낯선 단어들이 일상이 된 이 시기는 1951년, 전쟁 직후였다. '나'는 자신이 그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분하고 억울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스무 살의 그녀에게 당면한 과제는 그저 살아 남는 것, 고통을 견디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해 남은 식량을 늘여 먹기 위해 굶주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세상이 바뀐 후의 걱정보다는 당장 어떻게 안 죽고 살아남느냐가 문제였을 것이다.

 

전작이 어린 시절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미성년 시절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스무 살부터 결혼 때까지 성년의 삶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아버지의 역할을 할아버지가 대신해 주었고, 사춘기 이후에는 오빠가 그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오빠의 존재는 사뭇 달라졌다. 1.4 후퇴를 배경으로 시작된 서두부터 '나'에게 오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오빠는 인민군에 끌려갔다가 도망쳐 온 뒤, 거의 폐인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며 '표정도 과묵하던 때의 준수한 모습은 간데없이, 소심하고 비루해지고 있었다'며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싶어 한다. 보호를 받고 의지할 존재가 사라졌으니, 이제 자신이 보호자가 되어 엄마와 오빠를 보호해야 하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나'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과 부딪치고, 가족을 보호하며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 마당에서 펌프질하는 소리,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 여자들이 두런거리다가 킬킬대는 소리, 밥이 뜸 드는 냄새, 그리고 우리 집 된장만의 그 구뜰한 냄새, 이런 것들이 서로 어울려 집 안을 자욱하게 채우고 있었다. 아, 이 자욱함. 그건 음향이나 냄새가 아니라 생활이요, 평화였다. 그러나 현실일 리는 없었다. 나는 행여나 그 달디단 자욱함이 샐까 봐, 꿈에서 깰까 봐, 이불을 꼭꼭 여미고 비몽사몽간의 몽롱한 시간을 즐겼다.      p.130

 

박완서 작가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책들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만난 것은 연작 자전소설 두 권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92년에 출간되었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1995년에 출간되었으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연작 자전소설 첫 번째 작품에서는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어린 시절과 1950년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스무 살까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작품에서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의 이야기로 전쟁의 생생한 현장과 스무 살 이후 결혼할 때까지 성년의 삶이 그려져 있다. 화려한 꽃무늬 패턴이 인상적인 이번 개정판에는 기존 작품 해설 외에 정이현 작가, 김금희 작가의 서평과 정세랑 작가, 강화길 작가의 추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소설의 시대 배경인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작가 박완서 사진이 엽서로 포함되어 있어 더 의미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내가 살아 낸 세월은 흔하디흔한 개인사에 속할 터이나, 그 부분은 개인사인 동시에 동시대를 산 누구나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자, 현재의 잘사는 세상의 기초가 묻힌 부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 세상의 변화 속도가 하도 눈부시고 망각의 힘은 막강해, 글을 쓰면서도 문득문득 정말로 그런 모진 세월이 있었을까 자신의 기억력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사라진 것들을 감쪽같이 잊어버리고 산다. 세상은 숨가쁘게 변해가고, 우리는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바빠 가끔은 정말 거기 그런 게 있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기억을 믿을 수 없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세대인 나 같은 독자조차 작가가 들려주는 인간적이고, 진실된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들어 당시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는 우리가 지금 다시 박완서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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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의 기억,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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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이들의 장난감보다 자연의 경이가 훨씬 더 유익한 노리갯감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호들갑일 뿐, 그 또한 정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p.30

 

박완서 작가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책들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만난 것은 연작 자전소설 두 권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92년에 출간되었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1995년에 출간되었으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연작 자전소설 첫 번째 작품에서는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어린 시절과 1950년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스무 살까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작품에서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의 이야기로 전쟁의 생생한 현장과 스무 살 이후 결혼할 때까지 성년의 삶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순전히 기억에 의지한 소설'이라 말하며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만큼 인간적이고, 진실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당시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는 듯한 느낌도 드는 그런 작품들이다. 개성에서 남서쪽으로 이십 리가량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양반집안에서 자라며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버지를 여읜 것이 세 살 때라 할아버지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엄마는 어른들과 상의도 없이 오빠를 서울의 상업학교에 보냈고, 그로 인해 나만 시골에 남겨지게 되었지만 든든한 할아버지 비호덕분에 따뜻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후 시골을 떠나 서울에 와서 도시 아이들과 어울리며, 공부를 많이 해서 신여성이 돼야 한다는 엄마의 바람대로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1930년대의 풍경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는 동안 마치 그림처럼 눈앞에 그려지는 이야기가 실제 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우리가 가진 양식은 너무 적었고 어느 세상에서나 목구멍은 포도청이었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짓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쌀은 없고 잡곡 한 움큼과 밀가루가 반 자루가량 남아 있었다. 저녁은 새로 짓지 않고 남기고 간 찬밥으로 때웠다. 군불도 뜨근뜨끈하게 지폈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날 건덕지가 없을 지경까지 몰렸을 때의 평화로움 안에서 우리는 깊은 숙면에 빠졌다.     p.310

 

화려한 꽃무늬 패턴이 인상적인 이번 개정판에는 기존 작품 해설 외에 정이현 작가, 김금희 작가의 서평과 정세랑 작가, 강화길 작가의 추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소설의 시대 배경인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작가 박완서 사진이 엽서로 포함되어 있어 더 의미가 있다. 작품의 제목에 포함된 '싱아'는 시골에선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것으로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는 풀이라고 한다. 그러니 싱아란 시골에 살았던 '나'에겐 겉껍질을 벗겨 내고 먹었던 새콤달콤한 맛의 기억이자 당시의 풍경을 떠올리면 지천에 존재했던 추억의 상징이기도 하다. 서울에 살면서 느꼈던 향수의 대상이자 순수했던 유년 시절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가 도서관이라는 장소에서 처음으로 빌려 본 책이 <레 미제라블>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물론 아동용으로 쉽게 간추려진 작품이었고, 일본말로 되어 있었지만 삽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 익는 재미에다 황홀감을 더해 주었다고 하니 궁금해지기도 했다. 유년 시절에 읽었던 책들에 대한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꽤 많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 작품은 서사 자체도 재미있지만, 작가의 실제 유년 시절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져서 더 좋은 것 같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아주 어릴 때 처음 만났었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을 때 훨씬 더 글맛이 제대로 느껴진다고 할까. 지금 읽을 때 그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수십 년이 더 지나도 여전히 다시 읽힐, 한국 문학의 진짜 고전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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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파올로 코녜티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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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거품 덩어리가 그녀의 몸을 덮는 것처럼, 어느덧 잠이 쏟아졌다. 소녀는 무척 강력하고 균형 잡힌 팀과 무척 약하지만 뛰어난 챔피언이 속해 있는 팀과의 대결을 관전했다. 아이는 강력한 팀의 선수 역할을 했고 동시에 다른 팀의 챔피언이자 흥분한 해설자, 심지어 골에 열광하는 관중이 되기도 했다. 그 순간 소녀는 달콤하면서도 우울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신으로 살지 않는 매혹적인 삶의 방식이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그러기엔 늦었다. 그건 영원히 가지 않은 길이 되고 그녀는 재능을 썩히고 말 것이다.       p.60

 

임신 7개월인 스물두 살의 산모가 상당한 출혈을 하며 청색증의 자그마한 아기를 출산한다. 산모는 임신 중에 먹지 말아야 할 궤양 약을 몰래 먹었고, 아기는 숨을 쉬지도 울지도 않는 상태였다. 아기의 아버지는 지치고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보러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을 오갔다. 응급 출산을 도왔던 간호사는 인큐베이터 옆에 앉아서 밤마다 아기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피아. 태어나는 게 뭔지 아니? 전쟁터로 떠나는 배와 같은 거야." 그날 아기는 위기를 넘겼고, 마침내 엄마 곁으로 돌아간다.

 

자동차 엔제니어인 아빠와 미술학도 엄마는 성향이 너무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이혼이 아니라 이사를 선택한다. 밀라노를 떠나서 먼 도시 외곽으로 떠나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덟 살의 소피아는 벌써 여러 차례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봤고, 두 분이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며 기도한다. 열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소피아의 탄생부터 어린 시절을 거쳐가며 성장해나가는 서사를 큰 줄기로 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소피아의 주변 사람들 시선으로 전개된다. 소피아가 계속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녀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다. 소피아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주변인으로 스쳐 지나가기도 하며 이야기를 완성시켜 나간다.

 

 

“내 생각에.” 아빠가 말한다. “네가 관계에서 지나치게 많은 기대를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
“뭐가 지나치다는 거예요? 약간의 사랑이 아빠 눈에는 지나쳐 보여요?”
“사랑이 지나치다는 게 아니라 네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쳐 보인다는 거야.”
“제가 뭘 어떻게 표현한다는 말씀이세요?”
아빠는 한숨을 쉰다. “누군가에게 함께 있는 것을 요구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과 네 인생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말이야. 사랑한다고 그런 것을 요구한다면 모두가 너를 실망시킬 거야.”      p.184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족들과 친구들, 직장동료, 첫사랑, 힘들 때 도움을 주었던 이들도 있을 테고, 내가 빛나던 순간에 함께 해준 이들도 있었고, 배신과 상처를 주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만나온 많은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내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들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행복하고,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소피아는 어린 시절 끝을 생각하는 놀이를 자주 하곤 했었다. 모든 관계를 시작할 때 애써 이런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다. 어떤 남자가 키스를 하는 동안 그것이 사과하는 것인지, 그럼 잘 가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걷어 차 버리는 것인지, 친구로 지내자는 것인지 말이다. 읽지도 않은 책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서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피아는 온몸에 피어싱을 하기도 했고 머리를 알록달록 물들이고 장례식장에나 갈 법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결국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배우가 되는데, 이유는 배우라는 직업이 꼭 자기 자신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되었던 소피아의 삶은 로마의 영화학교로, 미국의 뉴욕으로 이어진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로 구성된 보통의 가족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불행들이 꼭 불행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고통과 우울과 불안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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