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 보고서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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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홍콩에 갔을 때의 일이다. 토스트와 우유 푸딩으로 유명한 디저트 카페에 갔는데, 사람이 워낙 많았던 터라 겨우 현지인들과의 합석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직원이 가져온 메뉴 판을 보니, 사진도 없을 뿐더러 죄다 한자 투성이였다. 대부분의 다른 식당에선 사진이 있거나, 영어로 표기가 되어 있어서 주문하기가 수월했었는데,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일행과 한동안 주문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가지고 있던 아이패드를 꺼내 들었다. 아이패드 속에 있는 메뉴를 가리키며, "디스 원..."이라고 겨우 주문을 했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직원,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자 우리에게 "와이 샘성??"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직원의 영어 발음도 서툴었거니와 갑자기 무슨 소리지 싶었는데, 직원이 가고 나서야 의미를 깨닫고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왜 한국인인데 삼성 제품을 쓰지 않고 애플 제품을 쓰냐고 묻는 거였다. 그들에게 '코리안 = 삼성' 이라는 수식이 무의식적으로 박혀 있었나 보다. 이런 게 바로 기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삼성보다는 애플을 사랑해서, 아이팟부터, 아이폰, 맥북 에어까지 사용 중이지만, 가끔 해외에서 만나는 삼성 대리점이나 제품들을 보면 반가운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기에, 바로 삼성과 애플이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부터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평점 별 세 개를 받았다. 두 기업간의 치열한 특허 전쟁은 매우 복잡했고, 지리멸렬하게 길게 이어졌었다. 저자는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전자 산업과 자동차 분야에서 기새를 더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기존에는 소니가 세계를 매혹시키는 브랜드였다면, 지금은 삼성전자가 선두로 올라섰다고 말이다. 물론 사업 방식과 관련해서 삼성에게 가해지는 몇 가지 비난은 있지만, 저자는 긍정적인 면을 더 보고 있다. 삼성은 제품의 90퍼센트 이상을 자체에서 생산하면서, 하청 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낮은 편이다. 이것은 애플보다 노동 조건에 대한 감독이 더 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애플은 중국에 생산 공장이 있고, 따라서 기업이 성장할수록 중국 직원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 애플은 하청 업체들을 상대로 무척 자주 교육과 감독을 실시하고, 감독 결과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자세히 보고 한다. 예를 들어 중국 내 하청 업체에서 법적 최소 연령인 16세 이하 어린이를 고용한 곳과는 결국 관계를 끊었다. 기업은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문제점들에 대한 보도는 끊이지 않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저자는 팀 쿡이 하청 업체 명단을 전부 공개함으로써, 민간단체들이 더욱 강력하게 조사를 할 수도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으므로 별 점 세 개를 받아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유일하게 저자에게 평점 별 점 다섯 개를 받은 기업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이다. 그리고 이 평가는 기업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빌과 멀린다 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재단에 대한 평가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재단은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이자 대주주로 일하면서 벌어들인 개인 재산으로 운영이 되는데, 일단 규모 면에서 다른 모든 재단을 압도한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 질병과 빈곤 퇴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각종 연구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새로운 백신 개발에 투자, 농업 분야의 발전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때로는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 재단이 하고 있는 훌륭한 사업에 더 주목한다.

 

이러한 경쟁 체제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고객의 습관의 힘과 그로 인한 결과다. 다시 말해 다수의 고객을 차지한 기업이 시장의 표준이 되고(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 프로그램_, 표준이 된 기업이 다수의 고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게이츠 재단의 재산이 결국 게이츠가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거둔 천문학적인 수익에서 비롯되었다는 비난은 맞다. 그러나 독점적 지위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다. 게다가 다른 기업은 그렇게 번 돈을 재단에 기부하지도 않는다.

 

그 외에 또 좋은 평가를 받은 기업으로 별 점 네 개를 받은 구글과 레고가 있다. 구글 만큼 세상을 변화시킨 회사는 별로 없다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지식을 제공하고, 그런 지식 제공을 구글 만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기업은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구글의 자회사인 유튜브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레고는 세상 어느 기업보다 지속 가능성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레고 제품은 굉장히 오래 사용할 수 있는데, 회사 측에서는 50년 넘게 그런 제작 원칙을 고수해 오고 있다고 한다. 많은 가정에서 오래된 레고 블록들은 거의 파손되지 않은 채 세대를 거쳐 전해진다. 이런 생산 방식은 새 제품과 시스템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구제품은 최대한 빨리 <낡은 것>으로 인식되게 하려는 전자오락의 발전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바람직한 대척 점을 보여 준다.

 

기업이 얼마나 윤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은 결국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인 소비자인가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기업의 윤리성'을 논할 때에는 누구나 딜레마에 빠지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는 옳지만, 그렇게 실험을 하지 않은 채로 중병을 고치는 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그래도 과연 실험을 반대만 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아동 노동에 대해서도 어린 아이를 그런 환경에 내던지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지만, 그 아이에게서 노동을 하지 못하게 했을 때, 그 가족 자체의 생계가 막혀버린다면 과연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이다. 물론 이 책에서 보여지는 기업에 대한 모든 평가는 저자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에 절대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별 점 개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다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기업이란 없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회피하거나 숨기려 하지 말고, 그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할 수록 완벽한 기업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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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보다 sex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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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란 어디서나 가능하다'라는 환상을 제공하는 것은 기업의 제품 광고를 포함한 매스미디어와 교육뿐이다. 전 국민의 30퍼센트는 그 환상을 무비판적으로 믿으며 산다. 10퍼센트 정도는 그런 것은 환상이라고 자각하여 따르지 않고 산다. 나머지는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선 지금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살아간다. '반드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같은 카피는 많은 사람을 기만하기 때문에 악질적이다. '좋은 사람'의 모델 자체가 이제는 소멸되었다.

 

무라카미 류가 2002년에 쓴 이 에세이는, 2014년이 된 지금 읽어도 여..히 유효하다. 종종 언제 보느냐가 결정적인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당신에게 제 시간에 도착했을 때는 그 감흥이 거의 죽고 싶을 정도로 당신의 마음을 흔들지만, 같은 작품을 전혀 다른 시간에 읽게 되면 그냥 시간의 재에 묻혀 흘러버리거나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자살보다 SEX>의 한국어 초판이 나왔던 2003년 말경에 나는 이 책을 만났다.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선정적인 붉은 색 표지가 인상적이었는데, 당시에 나는 그의 꽤 많은 책과 에세이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어쩐지 숨겨놓고 읽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너무도 거침없는 성에 대한 담론과 연애와 여성 론에 대한 그의 열린 이야기는 매우 당혹스러웠고, 이 책을 읽은 뒤로 한동안 무라카미 류의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후 무려 11년이 지났고, 이번에 새로운 편집과 디자인으로 재 출간되었다. 산뜻하고 담백한 표지만큼이나,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이를 먹은 내게 이 책은 초판으로 읽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유년기에 근친상간이 남긴 트라우마, 여성의 스톡홀름 증후군, SM클럽 마니아, 미성년자의 매춘, 주부의 불륜, 신혼여행지에서의 파국 등을 소재로 한 과격한 성 담론은 물론 지금 읽기에도 부담스러운 소재이지만, 11년 전만큼 뜨악 하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파트로 넘어가면 류가 영화감독으로서 여행한 일과 겪은 사건들, 동료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 등도 있어 가볍게 읽기에 무난한 에세이 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너무도 거리낌 없는 그의 문장들은 여전히 도발적이다. , 이런 식이다. 

 

술집에서 울고 있는 여자를 보면 꽤 흥미로워진다. 우는 여자가 못생긴 여자라면 이보다 더 보기 흉한 일은 없다. 거기에 뚱뚱하기까지 하면 당장 총살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난다. 예쁜 여자들은 왜 이렇게 덮어놓고 덕을 보는 걸까. 울어도 화를 내도 뭘 해도 다 예쁘게 봐준다.

화를 내는 경우라면 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못생긴 여자가 화를 내면 다들 별 관심이 없다. 그냥 웃을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화를 내다가는 미움 받기 십상이다. 반대로 예쁜 여자가 화를 내면 정말 무섭다. 이렇듯 세상 모든 것이 차별투성이다.

 

못생긴 여자에 대한 아마 대부분의 남성들의 시선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평범한 남자들은 그 못생긴 여자를 배려해서 직설적이지 않은 표현을 하거나 모른 척 하겠지만, 무라카미 류는 속마음을 여실히 까발려서 얼굴이 붉어지게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게다가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는,  <남성 동지 여러분, 여자는 감금당하길 원한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그러나 감금시키는 일에 성공하여 사랑을 잘 키웠다 해도, 금방 도망치고 싶어 하는 여자도 많다는 것도 알아 두시 길>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 남자, 참 밉상이다. 전반부 대부분의 글들이 남성 우월주의적으로 쓰여있어 나처럼 여성독자들은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이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라는 챕터가 그렇다. 도대체 왜 다들 연애를 하고 싶어할까.에 대한 저의를 그는 외롭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모두 외로운 존재니까 말이다. 10개월 동안 어머니의 태내에서 완전한 보호를 받다가, 유아가 되어 어머니의 팔에서 내려오면서부터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 시련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이 외로움이란 것과 함께 한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니 전화 방에서 낯선 이에게 위로를 받는 것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쓸모 없는 여자는 거짓말을 잘한다'는 챕터도 역시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갖고 싶으면 낳으면 되고, 싫으면 아이를 갖지 않으면 된다. 무리해서 결혼을 안 해도 되고, 명품을 좋아하면 죽어라 사들이면 된다>는 무라카미 류 식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발상을 바꾸어보라는 말은 어쩐지 내일부터라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무라마키 류가 2002년에 쓴 이 에세이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어쩌면 감추지 않는 것에 대한 솔직한 미덕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흔히들 나쁜 것에 대해서 숨기거나, 감추거나 포장하려고 든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하지만 성이란, 섹스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류의 말처럼 끔찍한 외로움때문에 자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타인의 체온에 기대어 이 생을 버티어 보는 게 더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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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짜툰 1 - 고양이 체온을 닮은 고양이 만화 뽀짜툰 1
채유리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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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군기 반장 뽀또, 새침하고 도도한 아가씨 짜구, 까칠하고 고독한 쪼꼬, 천방지축 막내 포비, 개성 넘치는 네 마리 고양이와 어수룩하고 무심하지만 책임감 있는 그들의 주인의 유쾌한 동거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저 동물을 좋아할 줄만 알던 나는..

좋아하는 마음보다 책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책임지기 위해선 준비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찐이를 통해 배웠다.

 

강아지나 고양이, 그 외의 동물들을 키워본 이들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것'에는 항상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순히 예뻐하고, 귀여워하는 것만으로 동물을 키울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마다 늘어나는 유기견, 유기동물들에 대한 문제 또한 어리고 작을 때 단순히 예뻐할 생각만 했지, 그들이 아프고, 늙으면 귀찮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나도 강아지를 이 십여 년 키우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주변에 워낙 동물을 아끼는 이들이 많아 공감할 부분이 참 많은 따뜻한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채유리가 가 아기 길 고양이 뽀또와 짜구를 처음 만나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과정부터 세 번째 고양이 쪼꼬, 그리고 막둥이 포비까지 결국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을 그린 웹툰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곁눈질로 대충 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오랜 기간 고양이와 함께 애정으로 살아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소소한 디테일들이 마음이 짠해지게도 하고, 빙그레 미소 짓게도 만들어준다.

 

특히나 단순히 재미있는 에피소드 나열이 아니라 고양이의 생활 습성이나 질병, 함께 살아가는 요령 등 유용한 정보들이 녹아있어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사람이나 이미 기르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녀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현실의 장벽들 모두,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집에 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 혼자 나와 살면서 취직을 하게 되자 어린 고양이 혼자 빈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걱정이 되고, 결국 부모님이 다른 집에 분양을 줘버려 생이별을 하게 되고, 이후 또 우연히 고양이를 친구에게 분양 받게 되지만, 동물을 키울 수 없으니 빠른 시일 내에 내보내라는 집주인의 압박부터 산 넘어 산처럼 고양이를 키우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통장잔고는 늘 아슬아슬했고, 생활비도 모자란 판에 고양이를 둘씩이나 끼고 살고 있는 그녀를 부모님을 포함해서 주변 누구도 이해해줄 리 만무하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웠던 그녀는,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정신이 번쩍 든다.

 

 

 

단순히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라는 소유물이 아니라, 가족인 것이다. 사랑한다면 말로만 떠들게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한쪽에선 길 고양이가 너무 많다며 불평과 불쾌감을 호소하고, 한쪽에선 유기되거나 이 집 저 집 내맡겨지며 천덕꾸러기가 되는 고양이들이 있고, 한쪽에선 인위적인 수술 따위를 해서까지 동물을 소유하려 드는 이기적 인간이라며 돌을 던지고...굳이 이해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경험하고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일에 대안도 없이 돌부터 던지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 말은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모든 애견 인들의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동물을 돕는 뉴스나 글에는 동물한테 쓸 돈 있으면 우선 가난한 사람부터 돕지?라는 반응을 보게 되곤 한다.

그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구제한 뒤에야 동물을 도우란 얘긴가?

그건 영영 불가능하잖아?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마다... 가슴이 뛰는 곳은 참 다양하다.

배고프고 약한 이들에게, 멀리 있는 가난한 나라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떤 이는 길 위의 작은 생명들에게 가슴이 뛰기도 한다. 그 모든 것에 우선순위를 매겨, 줄 세울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가슴 뛰는 곳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제발 버려지는 유기 동물들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는 어디에서 그런 유기 동물들을 위해 마음 쓰고, 조그만 거라도 돕고, 응원을 보낸다는 사실이 든든할 때가 많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 그 분은 현재 코카스패니얼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계신다. 강아지는 어느 새 열살이 훌쩍 넘은 노견이고, 고양이 두 마리는 모두 길 가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셔서 돌보고 계신다. 처음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는 앙숙이 아니던가? 신기해했었는데, 지금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가 아주 어릴 때 데려온 터라, 강아지의 분비물을 묻혀서 자신의 새끼처럼 느끼도록 배려해주셔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그들의 북적거리는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매달 유기견 협회에 후원금을 보내실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선생님을 뵐 때마다, 나도 이십여년 넘게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내 마음이 진실한지, 나만 위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곤 한다. 가벼운 만화이지만 채유리 작가의 이 웹툰에도 그런 애정의 깊이와 따스한 온기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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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17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컥했어요.. 음.. 책임..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니가 사랑하잖아..
그럼 지켜라..


감사해요.. 피오나님.. 여전히 참 좋습니다.. ^^

피오나 2014-03-26 23:51   좋아요 0 | URL
제가 댓글이 너무 늦었죠? ^^;; 지난주부터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죄송해요. ;;;;
새벽숲길님도 애완동물을 키우시는지 궁금하네요. 고야이든, 강아지든... 키워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책임감과 사랑의 의미를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만화였거든요. 사랑한다면, 지켜야죠. ^^
 
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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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2년 봄부터 1986 2월까지 약 사 년에 걸쳐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이다. 한 달에 한두 번 <넘버>에서 미국 잡지며 신문, 그러니까 에스콰이어 ,뉴요커, 라이프, 피플, 뉴욕, 롤링스톤 등의 잡지와 뉴욕타임스 일요판을 왕창 보내준다. 그럼 하루키는 뒹굴 거리며 잡지 페이지를 넘기다, 재미있을 법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그걸 정리하여 원고를 썼다고 한다. 스크랩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신문, 잡지 따위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오린 것을 보관하기 위하여 책처럼 만든 것이라는 걸 기억해본다면, 이 책은 말 그대로 하루키의 스크랩북이 된다. 그는 이 책을 이런 식으로 읽으라고 말한다.

이 스크랩북은 문자 그대로 잡탕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맞아,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 라든가 "오오, 이런 일이" 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가까운 과거 여행'을 즐겨주신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기쁠 것이다.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내가 스크랩한 글은 대부분이 어찌 되든 아무 상관없는 사소한 화제뿐이다. 다 읽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거나 인간성이 좋아진다거나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책을 읽기에 가장 나쁜 자세와 시간대에 읽더라도 부담없이 아무 페이지나 들춰서 킥킥거리며 웃거나, 과거를 추억하는 향수에 젖을 수 있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키의 작품은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장편 소설의 경우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에세이는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준다. 그냥 가볍게, 별 생각 없이 흘려 읽더라도, 혹은 진지하게 읽어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도록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1980년대 겪지 않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색다른 사실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을 겪은 세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 될 테고 말이다. 그리고 에세이라는 것의 특성상 저자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하루키가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을 세 번이나 본 스타워즈 예찬론자라는 것도 알게 되고, 스티븐 킹의 팬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 '쿠조'는 좀 지루했다는 것도 알게 되니 말이다. 그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펼쳐지는 다소 민망한 기사거리들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한참 스크랩 북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주로 배우나 가수들의 스티커나 화보, 기사들을 모아서 만드는 거였는데, 누가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지에 따라 아이들 사이에선 일종의 권력(?) 가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문구점 곳곳에 브로마이드며, 각종 스티커 북이며 사진들이 즐비했고, 잡지의 종류도 천차만별 참 많던 시절이었다. 나중에는 국내 잡지만으로는 모자라서, 수입 잡지까지 구해가며 열심히 스크랩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연예인에게 열을 올리던 시절이 지나고 나서는 주로 좋아하는 글을 쓰는 기자의 기사를 스크랩하곤 했었다. 지금은 모 잡지사의 편집장이 되신 분이 여기 저기 쓰셨던 글도 있고, 지금은 영화 감독이 되신 분이 평론가로, 에디터로 쓰셨던 기사들도 있다. 그렇게 모았던 글들은 지금도 꽤 많은 분량으로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데, 가끔 들춰서 읽어보면 그 시간들이 떠올라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스크랩북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시간을 붙들어 놓는다는 것.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모두들 한 번쯤은 과거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반짝반짝 빛나던 시기가 있었는데.라며 과거를 추억 해야 하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 이만한 선물이 또 어디이겠는가.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처럼 과거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하루키의 <더 스크랩>도 같은 명목에서 독자들에게 비슷한 여파를 미치지 않을까 싶다. 책을 구매하면 주는 스크랩북으로 예전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을 것 같고 말이다. 시간을 멈추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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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비경 - 신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전국 22개 로스팅 하우스
양선희 지음, 원종경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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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있는 ''이라는 카페에 가면 이렇게 선반에 잘 볶인 갈색의 원두가 들어 있는 유리병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병들을 자세히 보면 숫자가 적혀 있다.. 4.3, 4.6, 3.29, 4.6, 3.28, 4.3.. 이 숫자들은 뭘까?

 

"손님들이 여기 와서 '맛있는 커피 주세요!' 했을 때 최소한 볶은 지 일주일 이상 지난 것을 주기 위해 적어 둔 로스팅 날짜예요. 로스팅 한 지 20일까지도 맛은 나와요. 물론 약하게 볶은 건 하루 이틀 더 가지만요. 그런데 18~19일 지나면 향기가 미세하게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볶은지 15일 이상 지난 건 뺍니다."

"그럼 그건 방향제로 쓰나요?"

"운 좋은 손님들이 향기를 얻어가지요."

 

와우. 나는 이 대사를 읽는 순간 강원도의 그곳에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갓 로스팅 된 원두로 내린 커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향기가 있다. 그런데 눈만 돌려도 숱하게 마주치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원두들은 모두 로스팅한 지 한참은 된 게 분명한 향과 맛을 내니까. 하지만 도심지에서 어디 그리 쉽게 이런 집을 만날 수 있냐는 말이다. 서울을 벗어나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커피 명소를 발굴한 이 책에는 정말 '명품'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커피 하우스 스물 두 곳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인 양선희 작가가 온라인 매거진커피 타임즈를 운영하며 2년여의 기간 동안 100여 곳이 넘는 커피 하우스를 발로 뛰며 직접 취재해 그 중에 스물 두 곳을 골랐다고 하니 뭐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부산에 있는 '까사오로의 주인인 정승기 씨는 마인드가 독특하다. 커피는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음료이기 때문에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일도 행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향기로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 '까사오로'의 커피라고 하니, 꼭 한번은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마음이 있는 커피랑 마음이 없는 커피랑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저는 기분이 우울할 때나 몸이 아플 때는 드립을 안 해요. 제 몸과 마음 상태가 안 좋으면 은수가 드립을 하고, 은수 몸이나 마음 상태가 안 좋으면 제가 드립을 해요."

 

세상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 내려주는 커피라니. 얼마나 황홀하고 깊은 향과 맛을 낼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사실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원두, 로스팅 등 커피 그 자체의 맛이 전부는 아니다. <모든 것이 동일한 조건일 때 그 집의 커피 맛을 결정짓는 건 그 커피 집 주인의 품성이라고 봐. 특히 그 집에서 커피를 볶고, 핸드 드립을 하는 경우에는 그 점이 커피 맛의 99% 결정한다고 봐. 나머지 1%는 그 집의 분위기겠지>라는 대목처럼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좋은 마음과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과연 커피의 맛까지 다르게 할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커피의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 커피라는 음료를 마시면 안 되는 그 나이에,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쓴 걸 왜 먹냐고. 엄마가 그때 농담처럼 말했었다.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라고. 인생의 여러 면을 겪어본 다음에 어른이 되어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거라고. 어릴 때는 하면 안 된다.는 금기에 대해 다소의 반항 심같은 것도 있었으므로, 그냥 둘러대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커피가 점점 더 맛있게 느껴지면 질수록, 어쩐지 어린 시절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 내가 인생의 쓴맛, 단맛을 어느 정도는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쓴 커피가 달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다. 뭐 이런 생각 말이다. 지금도 친구들 중에는 아메리카노는 써서 못 먹겠다고, 그 쓴 걸 무슨 맛으로 먹냐며 카페라떼나 마끼아또 등 단 커피만 먹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메리카노에 쓴 맛만 있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깊은 풍미와 향과 그윽한 맛이 숨어져 있다.

 

나는 하루에 아메리카노 두세 잔은 꼭 마셔야 하는 소위 커피 중독자이다. 커피 드리퍼도 종류 별로 서너 가지 가지고 있고, 집에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을 만큼 커피를 즐겨 마시는데, 덕분에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두통이 생길 정도이다. 워낙 오랜 시간, 다양한 원두를, 다양한 방법으로 마셔보았기 때문에 어떤 집의 커피가 신맛이 강하고, 향이 좋고, 끝 맛이 텁텁하고, 단맛이 나는지 안다. 하지만 집과 회사를 오가는, 그러니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도심지에는 이런 커피 맛 집이 사실 없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프랜차이즈 전문점 밖에 없어서, 이렇게 책으로나마 멋진 커피 전문점들을 소개받게 되어서 참 행복했다. 아마도 이번 여름 휴가 때는 이 책에 소개된 집 중에 한 곳을 가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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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곳은 부암동 고개에 에소프레소 라는 집이거든요.. 그 집 커피도 2층에서 직접 볶아서 신선하더라구요.. 아시고 계실 것 같긴 한데, 혹 또 몰라서.. ~~

저도 커피 중독이라서요. 하루에 아메리카노 7잔.. ~~ 중독이죠.. ㅠㅠ

피오나 2014-03-07 17:16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부암동 고개에 가봐야겠습니다. ㅎㅎ 동선이 정해져있다보니.. 강남권을 벗어날 일이 별로 없어서요.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사실 맛집에 자주 가보진 못했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근데 새벽숲길님은 저보다 훨씬 마니아시네요. 하루에 7잔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