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 보고서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작년 여름 홍콩에 갔을 때의 일이다. 토스트와 우유 푸딩으로 유명한 디저트 카페에 갔는데, 사람이 워낙 많았던 터라 겨우 현지인들과의 합석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직원이 가져온 메뉴 판을 보니, 사진도 없을 뿐더러 죄다 한자 투성이였다. 대부분의 다른 식당에선 사진이 있거나, 영어로 표기가 되어 있어서 주문하기가 수월했었는데,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일행과 한동안 주문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가지고 있던 아이패드를 꺼내 들었다. 아이패드 속에 있는 메뉴를 가리키며, "디스 원..."이라고 겨우 주문을 했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직원,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자 우리에게 "와이 샘성??"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직원의 영어 발음도 서툴었거니와 갑자기 무슨 소리지 싶었는데, 직원이 가고 나서야 의미를 깨닫고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왜 한국인인데 삼성 제품을 쓰지 않고 애플 제품을 쓰냐고 묻는 거였다. 그들에게 '코리안 = 삼성' 이라는 수식이 무의식적으로 박혀 있었나 보다. 이런 게 바로 기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삼성보다는 애플을 사랑해서, 아이팟부터, 아이폰, 맥북 에어까지 사용 중이지만, 가끔 해외에서 만나는 삼성 대리점이나 제품들을 보면 반가운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기에, 바로 삼성과 애플이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부터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평점 별 세 개를 받았다. 두 기업간의 치열한 특허 전쟁은 매우 복잡했고, 지리멸렬하게 길게 이어졌었다. 저자는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전자 산업과 자동차 분야에서 기새를 더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기존에는 소니가 세계를 매혹시키는 브랜드였다면, 지금은 삼성전자가 선두로 올라섰다고 말이다. 물론 사업 방식과 관련해서 삼성에게 가해지는 몇 가지 비난은 있지만, 저자는 긍정적인 면을 더 보고 있다. 삼성은 제품의 90퍼센트 이상을 자체에서 생산하면서, 하청 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낮은 편이다. 이것은 애플보다 노동 조건에 대한 감독이 더 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애플은 중국에 생산 공장이 있고, 따라서 기업이 성장할수록 중국 직원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 애플은 하청 업체들을 상대로 무척 자주 교육과 감독을 실시하고, 감독 결과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자세히 보고 한다. 예를 들어 중국 내 하청 업체에서 법적 최소 연령인 16세 이하 어린이를 고용한 곳과는 결국 관계를 끊었다. 기업은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문제점들에 대한 보도는 끊이지 않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저자는 팀 쿡이 하청 업체 명단을 전부 공개함으로써, 민간단체들이 더욱 강력하게 조사를 할 수도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으므로 별 점 세 개를 받아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유일하게 저자에게 평점 별 점 다섯 개를 받은 기업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이다. 그리고 이 평가는 기업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빌과 멀린다 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재단에 대한 평가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재단은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이자 대주주로 일하면서 벌어들인 개인 재산으로 운영이 되는데, 일단 규모 면에서 다른 모든 재단을 압도한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 질병과 빈곤 퇴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각종 연구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새로운 백신 개발에 투자, 농업 분야의 발전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때로는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 재단이 하고 있는 훌륭한 사업에 더 주목한다.

 

이러한 경쟁 체제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고객의 습관의 힘과 그로 인한 결과다. 다시 말해 다수의 고객을 차지한 기업이 시장의 표준이 되고(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 프로그램_, 표준이 된 기업이 다수의 고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게이츠 재단의 재산이 결국 게이츠가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거둔 천문학적인 수익에서 비롯되었다는 비난은 맞다. 그러나 독점적 지위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다. 게다가 다른 기업은 그렇게 번 돈을 재단에 기부하지도 않는다.

 

그 외에 또 좋은 평가를 받은 기업으로 별 점 네 개를 받은 구글과 레고가 있다. 구글 만큼 세상을 변화시킨 회사는 별로 없다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지식을 제공하고, 그런 지식 제공을 구글 만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기업은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구글의 자회사인 유튜브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레고는 세상 어느 기업보다 지속 가능성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레고 제품은 굉장히 오래 사용할 수 있는데, 회사 측에서는 50년 넘게 그런 제작 원칙을 고수해 오고 있다고 한다. 많은 가정에서 오래된 레고 블록들은 거의 파손되지 않은 채 세대를 거쳐 전해진다. 이런 생산 방식은 새 제품과 시스템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구제품은 최대한 빨리 <낡은 것>으로 인식되게 하려는 전자오락의 발전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바람직한 대척 점을 보여 준다.

 

기업이 얼마나 윤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은 결국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인 소비자인가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기업의 윤리성'을 논할 때에는 누구나 딜레마에 빠지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는 옳지만, 그렇게 실험을 하지 않은 채로 중병을 고치는 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그래도 과연 실험을 반대만 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아동 노동에 대해서도 어린 아이를 그런 환경에 내던지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지만, 그 아이에게서 노동을 하지 못하게 했을 때, 그 가족 자체의 생계가 막혀버린다면 과연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이다. 물론 이 책에서 보여지는 기업에 대한 모든 평가는 저자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에 절대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별 점 개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다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기업이란 없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회피하거나 숨기려 하지 말고, 그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할 수록 완벽한 기업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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