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앙상블'이란 음악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대일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의 봉사단 이름이다.

아직 두 차례의 연주밖에 하지 않은 따끈한 봉사단이다. 현재 10명의 학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이 대일외고의 기악반 학생들이다. 기악반 연습을 하던 중 이것을 봉사로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추진해 나갔다.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께 음악으로 직접 찾아뵈어 교감과 즐거움을 드리고자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 봉사는 사실상 실패였다. 당시에는 4명의 학생밖에 참여하지 않았고, 갑작스레 봉사날짜를 잡는 바람에 곡과 악보와 연습상태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2대와 첼로 2대 뿐이어서 규모도 빈약했다. 그러나 이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알음알음 모이기 시작하면서 바이올린 5대 첼로 2대 플루트 2대 그리고 클라리넷 1대라는 어느 정도의 규모의 앙상블이 이루어졌다.

2번째 봉사활동은 5월 2일 토요일이었다. 첫번째 봉사할동에서 학생들은 준비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낀 바였기에, 곡도 미리 선정하고 악보도 미리 구하는 등 비교적 꼼꼼하게 준비해 나갔다. 5월 1일 시험이 끝난 직후 아이들은 각자의 친구들과 노는 것을 포기하고 연습실로 모였다.

10명의 학생 모두가 놀고 싶은 욕심과 쉬고 싶은 욕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기를 들고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날이 더워 헉헉거렸지만 누구도 불평없이 앙상블을 준비했다. 기존 연습시간 보다 한 시간이나 더 연습을 진행하기까지 했다. 이런 멋있는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고, 함께 했다는 것이 뿌듯한 순간이었다.

곡은 1차 봉사활동 때 받았던 신청곡들인 '내 나이가 어때서'와 '고향의 봄'을 중심으로 바이올린 이중주의 '유모레스크', '어버이 은혜'까지 총 4곡을 준비했다.

5월 2일 토요일, 모두가 낮잠을 즐기고 싶었을 날이지만 봉사단은 모두 9시 30분까지 고양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모였다. 다시 1시간 동안 연습을 해 맞추어 보았고, 총 4개의 층을 돌아다니며 연주했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학생들이 연주한다고 기특해 하시면서 모두 한 자리에 모여주셨다. 어르신들 모두 봉사단의 악기 연주에 많은 호응을 보내주셨다.

목소리가 순탄히 나오지 않는 어르신들도 고향의 봄이나 내 나이가 어때서에 리듬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려 주셨다(특히 '내 나이가 어때서' 는 반응이 뜨거웠다. 처음보는 곡이었지만 열심히 연습했던 보람이 느껴졌다). 학생들이라고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주시기도 해서 모두 더워 땀을 흘리면서도 즐겁게 연주할 수 있었다. 물론, 학생들이다 보니 실수도 잦았고, 전체적인 음악적 균형이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연습한 것이 다이다보니, 1차 때보다는 훨씬 좋아졌으나, 연습량이 충분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모든 분들이 봉사단의 연주를 즐거워 해주셨고, 학생들의 노력에 박수를 주셨다. 너무 짧다며 아쉬워하시는 어르신과 다음 번에는 본인도 하모니카로 합주에 동참하시겠다는 분도 계셨다. 한 번 더 연주를 보시기 위해 4층에서 1층까지 다시 내려와 한 번 더 관람해 주신 할아버지도 계셨다.

전체적으로 부족한(중간에 바람에 첼로 악보가 다 날아가는 불상사가 있기도 했다), 아직 어린 봉사단들의 연주를 너무 좋아해 주셔서 감사했다.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스스로 연습을 해야겠다는 동기가 부여되었다.

이 봉사활동의 일원인 본인으로서 이번 봉사는 많은 배움과 감동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글을 쓰거나 토의를 하는 봉사활동을 통해서도 많은 봉사 시간을 얻었지만, 그 안에서 그 누구를 기쁘게 하거나 직접적인 도움을 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소박한 재능을 이용해서 사람들께 '기쁨'이란 것을 선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감동적이며 보람차고 뿌듯한 일이었다. 봉사시간을 얻는다는 일차적인 목표보다 더 멋있는 연주로  다음번에 뵙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봉사는 처음이었다.

이런 소중한 추억, 감동과 더불어 봉사단 개인들은 연습을 통한 실력 증진과 소중한 무대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다함께 악기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서로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소리를 조절해 나가는 '협동'이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봉사단의 타 학생들도 자신이 평소에 연주하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고, 뿌듯했고, 감동적이었다고 이야기했다.

D앙상블 학생들은 벌써 다음봉사를 위해 벌써 곡을 논의 중이다. 모두 '봉사의 즐거움'을 느낀 바라 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준비하는 듯하다. 아름다운 음악을 D앙상블은 봉사로 이어가며 더욱 아름다운 '명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jo 2015-08-24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재 4번의 연주를 한 상황입니다.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까지 독일에는 가히 ‘대문호’라 불릴 자들이 여럿 존재했었다. 철학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만큼 소설도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때문에 독일 문학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어렵다.

 

 

  계몽시대의 시민비극으로 정치적 계습간의 갈등과 인간의 도덕성과 쾌락에 대해 다룬 <에밀리아 갈로티>부터 강렬한 사랑이야기인 <젊은 베르터의 고뇌>,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변신>까지 독일 문학의 대부분이 상당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 독일 문학에서 쉽다고 꼽히는 작품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이니,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을 듯하다.

 

독일엔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고 사회의 모습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들과 위대한 작가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독일문학의 가운데에는 <파우스트>가 있었다. 흔히 파우스트라고 칭하면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리지만 독일문학사에서 파우스트는 괴테 이외에 많은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예술적 소재가 되어왔다. <파우스트>들은 민중본인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들이다. 같은 ‘전설 파우스트’를 통해서 나온 이야기들이지만 제각각 이야기는 다르다. 민중본 파우스트는 파우스트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알고 싶다는 욕망에 이기지 못해 악마와 계약을 맺어버리는 파우스트의 마지막은 끔찍하다.

 

  그러나 민중본보다 더 유명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박사는 악마와 계약을 하고, 계약에서 패배를 한다. 그러나 박사는 구원받는다. 파우스트는 무자비한 노동착취와, 폭력에 기초한 개발을 진행했다. 저자도 이런 그의 행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고, 자본축척만이 목표인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어두운 이면을 소설을 통해 드러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가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민중본엔 없는 ‘그레첸과의 사랑’ 때문이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구원은 최고의 지식, 쾌락, 재화에도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스런 근대적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죄를 대신 속죄하던 그레첸의 기도와 간절한 ‘여성적인 것(das Ewig-Weibliche)에 의해 이루어진다.’라는 메시지를 준다. 기존의 전설 파우스트는 각각의 작가들의 손마다 새로운 문학으로 탄생했다. 토마스만도 <파우스트 박사>란 소설을 썼는데, 그는 파우스트대신 레버퀸이라는 새로운 주인공을 내세우고, 그를 음악가로 변신시켰다. 나치정신을 강요하던 20세기 독일의 정치적 모습을 음악적인 레버퀴과 함께 등장시켜 당시 독일의 야만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악마와 지옥의 모습에는 파시즘의 테러 세계를 암시했다. 천재적인 음악가의 이야기가 마침내 독일의 역사가 되는 한 장의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In my family, there is a soccer fan and a couple baseball fans. The soccer fan is me and the baseball fans are my father and brother. I usually get into arguments with them on which is the better sport. I strongly believe that soccer is better than baseball. I find that, Baseball games are too long to completely concentrate on the game. Also the game's results are dependent on the pitcher's ability and when we need a great deal of equipment to play baseball.

   

 First, a baseball game-time is too long to concentrate on the whole game. A game's time often passes 3hours, and sometimes it can go longer than 4 hours. A soccer game time is only 110minutes, including the break time. When I go to a baseball game, I can see many spectators go back home before the game ends. My brother always watches Hanwha's games. He wants to watch the whole game, so he can't study enough. It is too long to enjoy. However, soccer is short enough to enjoy the whole game. Since baseball game is too long, soccer is better than baseball.

 

  Second, a baseball game's result is controled by the pitcher's ability. Because the pitcher can prevent opposing team from scoring. The other player's role is comparatively low. If the pitcher play's poorly, the team will lose the game even if everyone is batting well. Soccer, on the other hands, is a masterpiece made by all eleven players. A good player can change the current, quality and result of the game, but a bad player can't change the result. Since baseball depends too much on a pitcher, Soccer is better than baseball.

   

 Last, we need only a ball to play soccer, but we need bat, glove, small hard ball and hat when we play baseball. Soccer needs just a round ball, so everybody can enjoy this sport anywhere. This is why, soccer is played around the world. However, we have to bring equipment to play baseball. We need at least four things to play baseball. Thus, there are a few countries where baseball is famous. Since we can enjoy soccer without special equipment, soccer is better than baseball.

 

 Many can enjoy soccer without a big burden; either playing or watching. That is why I like soccer and I enjoy soccer. Soccer is the best sport for me, surely it is better than basebal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읽는 신경숙의 책이었다. 그녀의 여러 유명도서들이 있었지만 이제야 그녀의 책, 그녀의 7번째 장편소설이자 성장문학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만났다. 상당히 신기한 구조를 가진 책이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이별했던 두 사연있는 남녀가 다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지만, 본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시계는 옛날로 돌아갔다. 가벼운 연애소설은 아니겠구나란 생각은 프롤로그에서부터 받았다. 프롤로그의 시작은 윤교수의 죽음이었고, 본 이야기의 시작은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며 펼쳐졌다.

 

 

4명의 남녀가 등장하며 이들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아픔들을 서로로 인해 치유받고 함께 이겨나가는 듯 하지만 결국에 그들은 또 다시 서로에게 상실의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미루가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마음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고통이 작품 밖 나에게까지 아픔을 줬다. 미루의 언니의 죽음 미루언니가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그리고, 단이의 죽음 마지막으로 미루의 죽음.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은 원래도 상처가 많던 이들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냈고, 살아있던 사랑했던 윤과 명서 또한 멀어지게 했다.

 

미루의 인생의 전부였고, 그녀가 평생을 미안해하며 살아가게 했던 미래의 죽음과 미래가 자신의 삶을 다해 사랑했던 남자의 죽음 그리고 단이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독재에 대항했던 이들은 어느날 사라졌고, 또 어느날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시체로 발견되었다. 단이는 순수함이란 다름으로 군대에서 이방인이 되었고, 그가 불합리한 제도에 맞서자 그는 군대에서 소외되었고, 총기자살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지워졌다. 이런 죽음들은 날 소름돋게 만들었다. 무섭게 만들었다. 어두웠던 우리의 지난날, 그 시대를 지나왔고 온 몸으로 아픔을 느꼈을 청춘들의 이야기였다. 사무치게 아팠을 이들의 이야기였다.

 

 

새벽에 이 책을 읽는 것을 마쳤다. 피곤해서 잠이 와야 할 시간이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한 쪽이 허하고 씁쓸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의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죽고, 또 내 곁에서 사라져버리고 이로 인해 성장하는 이야기는 내 취향은 아니다. 오랜만에 필독서란 이유로 잡게 된 어둡게 무게있는 장편 소설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기분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며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많이 아팠을 청춘들과 지금 그 아픔을 견디고 있을 청춘들에게 또, 그 아픔을 맞이하게 될 나와 내 친구들에게 사무치게 큰 고통이 찾아오면 함께 나눌 수 있는 고통이라면 나누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서로가 끝까지 최대한 곁에 있어주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혼자서 견디기 힘든 청춘의 고통을 잘 나눠 지고 단이가 윤에게 그런 존재였듯이 우리가 서로의 등불이 되고 지지대가 되어 주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지러운 청춘의 길을 서로가 안내해주는 크리스토프가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단편 소설 3 - 21가지 유형으로 작품 이해의 눈을 활짝 틔워주는
강심호 외 엮음 / 살림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 번째 한국단편소설은 지식인의 비판적의식과 더불어 여러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3권의 단편소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가 모르던 소설도 상당히 많았고, 1930대의 현대소설 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거론되는 여러 문제들이 현대소설 속에 담겨있는 경우도 많았다. 공감되었고,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 아팠다.

 인간내면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고 있으며, 부부간의 이야기도 꽤 있었지만,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맺고 있지 못했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절망과 좌절. 어두움이 팽배하는 시대였던 것 같다. 이러한 여러 갈등의 뿌리로 올라가보면 대부분 하나이다. 계급이다. 물질적인 계급의 차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계급이 갈등의 원인이자 폭력행사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갑’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비교적 ‘을’의 위치의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이 폭력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모두를 획일적으로 하고자하는 권력의 폭력도 다뤄졌다. 눈에 보이지 않고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큰 폭력이 정신적인 곳까지 권력을 휘두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현대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앞에는 물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들도 있었다. 순수한 사랑과 안타까운 사랑 등 여러종류의 사랑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랑 이야기들 속에는 그 시대의 남녀사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관념들이 담겨있었다. 유교적인 성격의 가치관들이 변화하고 있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순박하고 순수한 이들의 사랑은 내가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느낌도 선사해 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술권하는 사회였다. 매우 짧은 이야기였지만 공감되었던 부분도 있었고, 우스웠던 부분도 있던 소설이었다. 소설의 시작 묘사로 아내의 주변을 둘러보았던 것도 인상적인 전개 기법이었다.

 

읽는 중이나 읽고 나서나 아내와 남편 각각에게 느껴진 감정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었다. 답답하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했으며, 우습기도 했다. 남편의 행동이 백만큼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남편의 절망감과 그가 느낄 감정들이 상당히 이해되었다. 아는 것이 없는 아내는 보지 못할, 느끼지 못할 감정을 혼자 느끼면서 괴리에 차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사회를 만나지 않고 책에서 꿈꿔왔던 이상과 현실이 너무나도 달랐고, 진실된 자신의모습과 입으로만 나라를 위한다고 하지 속은 돈에 대한 욕심으로만 가득한 사회의 사람들의 내면 사이의 차이는 그를 괴롭게 만든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편의 행동에 마냥 이해만 해주고 그의 좌절을 공유할수만은 없다. 무지하여 그에게 더 큰 고독을 선사하지만, 남편만 보고 살아온 아내가 있는 가장이 괴리에만 빠져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또 자신이 옳지 못하다 여겼던 물질만 쫓으며 사는 사람들처럼 될 수는 없다. 지독한 딜레마다. 그래서 남편이 술이라는 세계로 도피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가 이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하다. 사회생활 속에서 물질의 안정을 위해 옳지 못한 일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지. 기업들이 회사원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면서 임금만 챙겨 줄 때, 우리는 이런 비인간적인 기업에 대해 뛰쳐나오고 응징해야하지만 현실적인 판단이 힘들어 진다. 정답을 알 때 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사회’인 것 같다. 사회의 현실은 그를 딜레마에 빠트려 더 큰 고통으로 찾아오게 된다. 도망치고 싶게하고 사람을 외롭게 하는 술권하는 사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