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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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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별로 친하지 않는 딸아이(물론 나도 약하다.)에게 원하는 전공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그나마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을 하는 편이 낫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좋아하는 분야를 지원하는 것이 당연한데, 문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게 상당히 어렵다.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면 더더욱 금상첨화인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이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는 평생을 헤매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모르고 죽는 경우도 부지기 수이고 혹은 알았다 한들, 너무 늦어 버린 나머지 제대로 해볼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구체적으로 내가 정확하게 어떠하길래 좋아한다고 자신감에 차도록 표현하기도 어렵다. 자신이 하는 일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삶에 있어서 이루어 내는 완성의 기쁨이 행복하다는 이론에는 모두 이견이 없는데, 우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먹고사는 일에는 상당히 괴리가 있고, 이 괴리감에 따른 갈등과 고민은 늘 상존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이라도 스스로 잘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이며 뉘앙스도 다르다. 이게 좀 고민스러운 것이 있다면, 잘하는 것이 항상 좋아하는 것과는 같다고는 할 수 없다. 때로는 다르다. 좋아한다고 해서 잘 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가장 괜찮은 조합이라면 물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라면 최고겠다. 여기서 좋아하는 것을 아직 모를 때, 느낄 때까지 유보할 시간이 없을 때, 선택지는 결국 잘하는 분야로 정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하기야 좋아하는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더 난감하다. 사람에게 있어서 취향이란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간단하게 발현되는 화학반응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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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딸아이가 영어를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진로를 영문학으로 결정짓도록 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좋아하니 잘하는 것이라 믿었다. 초등입학 전에도 학원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고 그렇게 시키면 곧잘 하며 좋은 영어 성적에 대해 학원 원장 선생님의 칭찬과 부상으로 주는 문화상품권 모으는 재미가 남달랐다. 초등학교 졸업 전에는 캐나다 매니토바주에 있는 도시의 초등학교로 어학연수까지 보냈다. 연수 경비로 나의 퇴직금까지 정산해가면서 보냈다. 그래서일까 잘 하는 줄은 알았으니 진정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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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먼저 진로를 탐색하고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 나는 딸아이에게 폭탄을 맞았던 것처럼 충격을 받았었다.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며 (싫어하는 것은 또 아니란다.) 영어를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아니 그럼 이때까지 좋아서 한 것이 아니었나? 좋아했으니까 잘 할 수 있었고 그동안 즐거워했잖아. 이제 와서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는 고백을 듣고 정색 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좋아해 주고 칭찬 듣고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을 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랑 차이가 있다는 딸아이의 고백. 얼마나 황당하던지. 그럼 싫다고 말을 했어야지. 왜 이걸 좋아하지도 않는데 좋아하는 것처럼 했는지? 싫으면 잘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한 건데 모두 잘하는 것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실망할까 봐서 미리 이야기를 할 기회를 못 잡았다는 토로였다. 아 결국 선생님과 부모의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는 결론이었다. 내가 딸아이에게 자신의 의견을 단 한번이라도 거절하거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들어 주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스스로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고 하니 기막힐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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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아이에게 나의 환상을 만들어서 본 것이지 아이가 가진 마음의 실체를 전혀 몰랐다는 결과였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줄 알았고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했다.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했다. 진정으로 네가 좋아할 것을 찾는 일이 중요하고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빠는 네가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로 착각했던 탓이 있었고, 진즉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거나 혹은 싫어한다고 했더라면 억지로 시키고 않았다고 했다. 싫어한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다라고도 했다.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동의하겠다고 했다. 어느 아빠가 자식이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는 것에 반대할 리가 없다고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영어 공부가 좋아해서 하는 걸로 스스로 너도 그렇게 믿었던 것은 아니었나 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학원이다 외국이다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아빠는 지원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빠가 원하는 아이로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라고 반성한다고도 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하도록 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어떤 좋아할 만한 것을 찾는 기회를 주지 못 했던 거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스스로가 파악할 기회를 찾는다는 것도 가능했을 것인지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책이라도 많이 읽고 자신과 많은 생각을 하며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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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장래의 희망에 대한 학부모 참관 수업시간이었다. 아이들이 각자 장차 앞으로 하고 싶은  직업이나 일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누구는 뭐를 하고 싶고 누구는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 시간에 딸아이는 의외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나는 돌맹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돌멩이가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는 그게 단지 엉뚱한 생각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하기 싫다 것과 어떤 것을 꼭 해보고 싶다는 것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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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해진이 나오는 CF에서 인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카피가 떠올랐다. 이게 얼마나 정확한 인생의 방편인 것인가. 우리는 하루라도 뭔가 하지 않고 있을 수가 없다. 뭐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이란 부단히 먹고 싸고 일 하고 놀고 뭐든 시간에 따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삶이란 동작이라는 행동이다. 유체, 유물론적 생체라는 물질은 뭔가 끊임없이 움직임이다. 심장은 한 순간도 살아있는 동안은 정지되지 않고 뛴다. 피는 계속 돌아다닌다. 이처럼 단 한순간도 위치이동과 화학적 변화는 멈추지 않음이 바로 생존이라는 것일텐데, 죽음은 정지을 의미한다. 움직임은 에너지가 들어야 하고 힘을 소비시켜야만 하는 에너지와 운동역학의 법칙이란 물리학적인 법칙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움직임이란 효과에 따른 힘겨움을 부산물로 생겨난다. 예를 들면, 운동이라도 오래 동안하면 근육에 젖산이 생기고 이를 피로함을 느끼는 원리. 또는 정신적인 노동으로 피곤함이 쌓인다든지 다 움직임에서 나온다. 힘겹다는 것은 고통의 통증도 수반된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난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인간에게 살아 있는 다음에는 전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곳이 필시 유토피아인지도 모르며 그것이 피안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죽음뿐이다. 그래 죽음. 초등학생의 어린 딸아이의 희망사항에 비록 돌멩이가 되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유기체가 무기체로 될 수 없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희망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돌멩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라는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바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했다. 난 왜 그때 이것을 간파하지 못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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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모는 뭔가를 하도록 원했기에 태어나게 했고 살아가게 하는 것일 테니까. 아이를 가지고 태어나게 만들어야 할 근본적인 원인이야 다양하게 있겠지만 일단은 태어난 이상 무언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왕 태어난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면, 차라리 뭐라도 하면서, 하는 것의 재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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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심은 모조리 다 하기 싫었다. 진심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단다. 진정 다 하기 싫단다. 학교도 가기도 싫었고, 군대 가서 너무 힘들어서 싫었고, 근무에 시달리고 고참에게 매일 구타로 폭행당하는 것도 너무 싫었어. 이십 년 직장 생활에서 단 하루라도 즐겁게 출근해본 적이 없는 아빠도, 소처럼 나가서 일하는 것도 싫었어.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너무 싫었어. 돈 없어서 하루라도 못 사는 환경도 너무 싫었어. 그것만 싫은 줄 알아? 다른 것도 너무 하기 싫어. 저녁마다 쓰레기 버리는 것도 싫고 우리 딸내미 밥 매번 차려 주는 것도 귀찮은 적도 많았어. 정말 정말 싫었어. 때론 숨쉬기도 싫을 때가 있어.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성경 구절처럼 안 먹을 테니까 일 안 하고 싶었어. 하는 것이 다 싫어. 거실 천정에 달린 거실 등이 고장 나도 고치기가 싫었어. 매일 저녁마다 운동가는 것도 싫고 다 싫어. 지금 같아서는 산다는 것 이거 자체도 싫어. 먹는 것도 싫을 때도 많아. 배고프면 억지로 마지못해 한 끼를 때우듯 먹어야 하는 운명인 것도 싫었어. 허기져야 먹어야 할 이 존재가 비굴하리 만큼, 증오하리만치 싫은 적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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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싫어한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러면 좋아한다고 해서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을까? 시골 가면 마당에 목줄이 걸린 강아지는 자기가 좋아서 그렇게 하루 종일 묶여 있는 채로 주는 밥이나 먹고 똥만 하고 숨만 쉬는 걸까? 강아지는 자신을 그렇게 매여 있도록 선택한 것일까? 또는 시골에 외양간에 갇혀 있는 소들은 왜 또 그렇게 하루 종일 여물을 먹고 물을 마시고 똥을 싸고 똥싼 자리에 벗어나지도 못하고 똥 자리가 잠자리가 된 것일까? 대체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싫어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을 해야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할까. 그럼 좋은 것은 무엇이고 싫은 것은 무엇인가? 싫은 것을 해야만 하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 어쩔 수 없이 하고 사는 것이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차라리 돌멩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무감각의 무기체가 된다고 해서 정말 좋은 걸까? 싫은 것일까? 돌멩이는 좋은 게 없단다. 그런데 반대로 싫은 것도 없단다. 좋고 싫고 가 아예 없어. 못 느끼니까. 개도 구체적으로도 소도 그게 삶이라서 싫다고 말도 못하니까. 개나 소는 싫음에 대한 저항도 못해. 그게 운명이란 것이지. 개나 소나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어. 아프리카에 태어나는 아이가 굶어 죽어간다 한들 그 아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어. 우리 모두는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선택 당한 것이지. 그래서 싫은 것이란 살아있고 움직인다는 감정의 증거물이야. 살아 있다는 것. 살아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다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무선택적 현상일 뿐이야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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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예 공부도 학교도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도 했다. 단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부여받을 수 없는 형벌과도 같다고도 했다. 아빠가 싫어도 다 살아오면서 했듯이. 누구나 다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이왕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자신의 앞에 주어진 거라면, 차라리 뭐라도 해서 즐거움과 재미와 흥미를 가지고 행복한 것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긍정적이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이왕에 말이다. 지금 당장 하기 싫어서 죽고 싶어도 만약에 아빠가 지금 죽는다면 우리 딸은 또 얼마나 아빠 때문에 슬퍼야 할 것인가? 또는 엄마는 아빠 때문에 얼마나 어려워져야 할 것인가? 이런 관계로 인해서 우리는 생을 함부로 포기해서도 안되고 자신의 삶을 저주해서도 안되는 것이고, 채임은 무한하게 피치 못하게 죽어가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벗어날 방법은 없고 다만 삶의 무게가 지워진 거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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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게  사랑이란 이렇게 미워하지 않아서 누군가를 위해서 살았던 위대한 사람들도 분명 있었길래 오늘날에 우리가 또 이렇게 싫어하지만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해 주었다. 당장에 마음 같아선 다 함께 죽음만이 답이 될 수는 없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니까. 죽는다고 끝날 문제였더라면 아마 세상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몰라. 싫은 것을 안 하는 것보다는 즐거움을 찾아서 재미삼아 하는 것이 유익하다면 하지 않기보다는 하는 것이 낫겠고 배고파도 비굴하게 먹기 싫어도 먹어 고통을 면하기보다는 차라리 더 맛난 것을 찾아서 먹는 행복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의 희열과 재미도 반드시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이지. 히말라야를 너무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이 정상에서 올랐던 그 쾌감은 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거야. 그래서 인간은 위대함과 추악함을 동시에 가졌거든. 숭고한 사람과 멸시의 사람의 차이는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삶은 자신의 주체로써 자아로써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싫은 것을 하라는 내키지 않는 수동성보다는 좋아할 만한 것을 하라는 즐거움의 행복한 삶이 그래서 고통스럽더라도 감내하는 능동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까. 출근 너무 하기 싫은 날의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괴로워도, 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빠처럼 사진 찍으러 나갈 때, 일어남이 어떻게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 출근하는 아침은 싫은 것을 하러 가야 하니 괴로운 것이지만 아침 일찍 사진 찍으러 나가는 일이니 같은 아침이라도 일어나는 힘겨움은 같더라도 의미는 각기 다르지. 기꺼이 감수할, 감내할 즐거움인가 짜증인가의 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사람은 하고 싶다고 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어한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숙명이 주어진 존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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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좋아하는 것, 아니 지금 당장은 좋아하지 않아도 앞으로 좋아할 만한 가능성이 많이 있는 것을 찾아보기를 권했다. 또는 좋아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제일 잘하는 것. 잘하지 못 해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해서 기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자신에게 뿌듯한 즐거움과 성취감을 주는 것을 찾아내서 하는 것이 어떨까라고 주문했다. 이게 1년이 걸렸다. 공부 하나도 하지 않고 사달라는 책 전부 다 사주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았으나 딸아이는 실패했다. 학교 한해 늦게 가도 되고 아니라면 아예 안 가도 된다고 했지만 또 그러기는 싫다고 했다. 이런 우여곡절에 따라 결정한 것이 그나마 현재에 가장 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잘 할 수 있는가능성이있는 것으로 다시 영문학이었다. 마침 이 책도 영문학에 더 재미를 가미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어서 사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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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바 아니다. 지금 영어를 배워서, 영어란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영문학)을 배워서 어디다 쓸 것인지, 아니면 영어에 관련된 일에 무슨 큰 돈벌이가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접어야 할 것이다. 어학 하나 배우는 투자에 비해 보상이나 대가는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고 취급도 못 받는다는 걸 잘 안다. 하기야 어디 영문학 뿐만이 아니라 문사철도 같은 처지이고 심지어는 "죄송합니다. 문과입니다"라는 걸로 표현되는 직장 절벽에 서 있다. 걱정하시 마시라. 머리가 아주 비상하게 잘 돌아가서 공부만 아주 특출난 권력자의 주구 노릇이나 해서 불명애스러운 은팔찌나 차는 놈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된거 아니겠나? 밥 먹고 사는 거야 다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다. ​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영광으로 점철되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추악하게 시궁창에 처막히는 것은 반대로 너무 쉽다. 한순간 실수나 오류로 삐끗하면 나락으로 빠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부단하게 세속적인 행복 따위보다는 자신의 열정이 때로는 괴로움과 외로움으로 점철될지라도 인간의 심연에서 나오는 그 울림으로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릴 줄만 안다면 비록 돈 벌어먹기 너무 어려운 시대이다 해도 그곳에서 행복감은 깃들여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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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나에게  결핍을 가르쳤다. 아비에게 느낀 결핍을 딸아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고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연습 한번 하지 못한 어설픔과 처음이었으니 생각만큼 가뿐하기도 어려웠다. 어쩌면 무자식이 상팔자는 명언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마누라는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딸아이 낳은 거라고 했지만 난 여기에 동의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낳아서 무슨 영광 보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죄의 책임감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죄 지은 것. 즉 인간으로 타고난 그 욕망의 죄가 원죄인지도 모른다. 자식은 부모의 욕망 덩어리이자 결과물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갚아야 하거든. 이른바 무한 책임이라는 의미이다. 자식에게 대를 이어 효도 받겠다거나, 조상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그 허울의 명분도 사실 욕망으로 합리화이자 욕망의 변명으로 낳았을 뿐이고, 유전자의 보장성 보험용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는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모든 존재의 시작은 선택권이 없으니까. 흔히 낳아 줘서 고마울 것도 없다. 욕망의 투영이겠으나 그렇다고 원망할 것도 아니다. 따진다한들 돌이킬 수 없으니 받아 들여야 할 뿐이다. 유전자를 가진 생명의 유기체가 유전자에 깃들어 있는 프로그램 거부하지도 못하고 설계되어졌으니 고마움과 원망 따위야 다 부질없는 것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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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영어에 관한 언어의 역사 이야기로 더 재미와 흥미를 돋아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책을 선물로 줬습니다.

좀 짧게 쓰지 못해서 양해 바랍니다. 쓰다보니 구질구질하게 길어졌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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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12-23 18: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렸을 때 역사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역시 취업을 생각하다보니 경제학을 선택하게 되었네요^^:

yureka01 2016-12-23 18:46   좋아요 4 | URL
네 ㅎㅎㅎ공감되고도 남죠..
취업이란 지상 과제의 업과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의 차이....
이 간극을 줄일 수 있는 과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거 같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ㅎㅎㅎㅎ
어디로 보나 문과인데 이과로 갔으니.. ..
그 차이에서 오는 답답함이란 평생을 괴롭히죠...
그러나 언젠가 하고 싶은 것을 꼭 발견하고 할 수 있어서
그간에 못해본 것을 해보는 것...필요하거든요.^^.

북프리쿠키 2016-12-23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16 서재의달인 촉하드려요^^;

yureka01 2016-12-23 21:0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블로그 개근했나 봐요..ㅎㅎㅎ

cyrus 2016-12-23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재미를 모르는 결핍 상태는 절대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책의 지식으로 결핍을 채워주지 못하면 인터넷, 스마트폰에 의지할 겁니다.

yureka01 2016-12-23 21:06   좋아요 1 | URL
책이야 스스로가 그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읽지 말라 해도 보게 되겠지요...
아마 그렇게 스스로가 동기부여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6-12-23 2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yureka01 2016-12-23 21:07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북다이제스터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구요..

2016-12-23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12-23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yureka01 2016-12-24 00:45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도 해피해피 크리스마스 만나시길 바랍니다.감사감사.

2016-12-23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4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6-12-23 2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햐!!!
올해도 서재의 달인이 되셨네요.
연짱 몇해를?
영혼을 팔아 책을 읽고 포스팅하시는 건 아닌지?
무언가에 변함없는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 어찌 보면 축복입니다
유레카님을 블친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yureka01 2016-12-24 00:46   좋아요 1 | URL
사진블로그서 몇해나 블로그로 해봤으니 무덤덤하죠.그래도 개근했구나 라는 열정 가지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책하고 친하게 지내야죠....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유를 멈추면 안될 운명이니까요..감사합니다.

마르케스 찾기 2016-12-23 23: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한해 감사드릴 목록에 유레카님도 빠뜨릴 수 없는, 많이 감사하신 분이십니다,,
좋은 책 주신 것, 좋은 글 읽게해 주신 것, 좋은 책들 만나게 소개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그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드릴께요 ^0^
감사합니다.

yureka01 2016-12-24 00:47   좋아요 2 | URL
한해도 감사 드리고 좋은 서재 이웃이셨어요...항상 고맙고.....즐거운 성탄 되시구요..

줄리엣지 2016-12-24 0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16년 서재의 달인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yureka01 2016-12-24 00:48   좋아요 2 | URL
좋은 책과 불로그글 만나게 되어서 무척 감사와 고마움...드리구요...즐거운 성탄 되시구요..

오거서 2016-12-24 0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 드립니다. 유레카 님을 알게 되었고 글을 통해 공감하면서 크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yureka01 2016-12-24 11:1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오거서님 덕분에 서재에서 좋아 하는 음악에 대해 더 관심 기울일 수 있는 기회....만나서 아주 좋았습니다..

사실 어디에서 음악을 다루는 집단 불로그는 없으니까요..ㅎㅎㅎ

즐거운 연말연시 만나시길 바랍니다.

2016-12-24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4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12-24 09: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기 전공과 진로를 찾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저보고 다시 정하라고 해도 여전히 고민고민 할걸요.
제 아이도 고등학교에서 들어야할 과목을 정하려니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를 정해야하는데, 물어보니 하고 싶은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듣는 저는 절망했어요 ㅠㅠ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 얘기했죠. 그거 찾는게 쉬운게 아니라고요.
하고 싶은게 없다고 표현하는 제 아들녀석보다, 돌멩이가 되고 싶다는 따님의 표현에 저는 눈이 번쩍 뜨이는데요 (yureka!). 누가 저런 표현을 할 수 있겠어요.


yureka01 2016-12-24 11:18   좋아요 2 | URL
네 그렇더군요.어릴때부터 다양한 경험과 취향을 파악하는 게..정말 어렵더군요..
한번뿐이니 두번 재현 못하니..시행착오 없을 수가 없는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행연습하고 사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죠..
언젠가 살다보면 진정 좋아하는 발견.꼭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ㅎㅎㅎ

즐거운 성탄절 되시구요..감사합니다~

후애(厚愛) 2016-12-24 1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yureka01 2016-12-24 14:52   좋아요 1 | URL
후애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만드시길 바랍니다...지금 이순간.^^

꿈꾸는섬 2016-12-24 16: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로선택을 너무 빨리 결정해야한다는 부담감이 큰거 같아요. 대부분 아이들이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등의 얘기를 많이 하더라구요. 그래도 따님은 좋은 아빠의 믿음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고 행복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yureka01 2016-12-24 17:09   좋아요 1 | URL
진로가 평생을 좌우하는데..진학만 급급한 현재의 교육의 전체적 시스템은 참 해묵은 오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학령에 따른 진로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은 사실 평생을 좌우하는 관건인데...
자본주의 시대의 교육은 그저 기능과 효율만 강조되는 듯한 인상이더군요..

꿈꾸는 섬님도 즐거운 시간 되시구요..고맙습니다!~

AgalmA 2016-12-24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 웹 바탕색이 회색이라 yureka01님 엠블렘이 왠지 더 고급스럽게 보입니다ㅎㅎ!
서재의 달인 되신 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축하드립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딸에게 보내는 인문학 편지 같았습니다. 이 글 따님 보여주셨나요? 존경 하트 뿅뿅 될 거 같아요^^

yureka01 2016-12-25 07:1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글 딸아이에게 안보여 줄 거같습니다...언젠가 나중에 커서 보여 줄 예정입니다.흐...크리스마스 날에는 모든 이에게 축복을.^^.

2016-12-24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5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6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6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6-12-28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교때 역사를 전공하고 로스쿨을 간 케이스인데, 도저히 역사로 먹고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어요. 언제나 맘은 아마추어 역사학도이고, 언젠가 은퇴하면 다시 역사를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데, 가끔은 모두 던져버리고 싶기는 합니다. 어렵네요...생각할수록..그저 조화를 찾길 바라는 맘입니다..

yureka01 2016-12-28 13:2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쉽지가 않죠..

자신이 원하는 것과 괴리..평생을 괴롭히죠...

아 역사학..앞으로 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6-12-28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yureka01님 서재의 달인에 선정되어 축하합니다.
방대한 게시글을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좋은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yureka01 2016-12-28 15:53   좋아요 1 | URL
한해 열심히 소통했다는 개근상쯤 되죠^^..ㅎㅎㅎ
블로그에 글은 참 많이 쓰긴 했더라구요..리뷰는 글이 좀 길어서,
이웃분들이 좀 버겁지나 않았을까 살짝 염려가 되긴 합니다..

내년에는 좀 짧은 글을 써야 겠어요 ㅋㅋㅋ

알파벳님도 연말 마무리 화이팅입니다!~

samadhi(眞我) 2016-12-28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인기짱이네요. ㅋㅋㅋ
알라딘 소모임 한번 만들어도 좋을 듯한데 다들 바쁘시겠죠?

yureka01 2016-12-28 16:23   좋아요 1 | URL
아고..모임하면 정말 좋긴 하죠..
문제는 알라디너분들이 전국구라서...거리 시간 때문에 어렵긴해요..ㅎㅎㅎ

올한해도 며칠 남지 않았네요..잘 마무리되시구요..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6-12-29 16: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실 대학 학과를 선택하는 것과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별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꼭 대학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고요.
저는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대학에서는 공부를 좀 해보고 싶어서,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해서 갔는데,
막상 들어가서는 운동하느라고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는 못했네요.
그래도 세부 분야 중에 관심있는 쪽으로는 혼자 파고 들어가긴 했어요.

얼마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한때 환경단체를 그만두고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한 서너달을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낸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나니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다른 단체를 찾아가서 일을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다시 시작하니 새로운 의욕이 생기더라구요.

yureka01 2016-12-29 17:27   좋아요 1 | URL
물론입니다. 학과의 선택이 꼭 직업으로 연결되지도 않으니까요..
문제는 이걸 일찍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해서
살면서 생기는 오류의 후유증이 생기니까요.
가급적이면 미리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빨리 잠재된 것 깨우면,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나마 감은빛님이나 저나 대학은 시험만 쳐서 들어갔으니.
요즘 아이들은 과정이 너무 복잡하더군요.
사교육들만 노났더군요..ㅎㅎㅎ

주니 2017-01-01 2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yureka01 2017-01-01 23: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글이 다소 길었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