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나는 뇌다.‘ 이것은 사실을 기술한 과학의 문장이 아니라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이다. - P47
뇌는 물질이지만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내가 뇌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말한 것은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 P48
소유욕부터 경쟁심, 구애 행동,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예술적 창조, 낯선 것에 대한 경계, 자존감, 불안, 공포, 외로움, 복수심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 - P48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모르고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이해할 수가 없고,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을 모르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뇌다‘ - P48
MRI(자기공명영상) · PET(양전자단층촬영) · CT(전산화단층촬영) - P48
주름진 뇌의 안쪽은 밝고 바깥쪽은 어두워서 각각 ‘백색질‘과 ‘회색질‘(또는 대뇌피질)이라고 한다. 회색질에는 신경세포(뉴런neuron)의 중심인 세포체가 밀집했고 백색질에는 축삭돌기가 퍼져 있다. - P49
뇌는 부위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예컨대 귀 안쪽의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고 이마 쪽 전전두엽은 의사 결정에 관여한다. 뒤통수 쪽 후두엽은 시각정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측두엽 안쪽에 있는 편도체는 공포 반응과 주의 집중에 관련된 여러 부위에 신호를 보낸다. - P51
이것(경제학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은 법칙‘이 아니라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과 특성을 드러내는 ‘현상‘일 뿐이다. - P53
헬름홀츠는 열역학·전기역학·열화학·유체역학 등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 물리학을 본격 연구하기 전에 시각과 청각을 연구하는 신경생리학 분야를 개척했다. - P54
같은 종류 같은 강도의 자극을 계속 가하면 신경세포가 점점 둔감하게 반응한다 - P54
신경세포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생존에 유리해서다. 이 현상은 우리의 뇌가 생존을 위해 조합한 기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해 준다. - P54
생물은 외부 환경의 변화를 신속·정확하게 인지해 최적대응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도 그렇다. - P54
우리의 감각기관은 외부 환경 변화를 담은 정보를 매순간 뇌에 전송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혀로 느끼고 피부로 접촉하는 모든 것에 관한 데이터는 엄청나게 양이 많다. 데이터를 최대한 신속하게 접수하고 분류하고 평가해 신체기관이 적절한 행동을 하게 하려면 효율적으로 일해야 한다. 대응이 느리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뇌는 선택하고 집중한다. 이미 아는 정보가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중시한다. - P54
뇌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 적절한 결정을 내린다. - P55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한계효용 균등의 법칙‘을 낳았다. - P56
화폐한 단위로 구입할 수 있는 가지 재화의 한계효용이 모두 같도록 소비량을 조합하면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 효용을 얻을 수 있다. - P56
소비자행동이론을 이해하면 생산자행동이론도 쉽게 알 수 있다. 소비자를 생산자로 바꾸고, 두 재화를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생산요소로 대체하며, 한계효용 자리에 한계생산력을 넣고, 효용 극대화를 이윤 극대화로 바꾸면 된다. - P57
소비자는 효용 극대화 자동기계, 생산자는 이윤 극대화 자동기계다. 소비자는 두 재화의 소비량을 최적화해 효용을 극대화하고, 생산자는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을 최적화해 이윤을 극대화한다. - P57
생산자가 노동 투입량을 고정하고 자본투입량을 계속 늘리면 마지막으로 투입한 자본 한 단위로 인해 증가한 생산물은 점차 감소한다. 자본 투입량을 고정하고 노동 투입량을 늘려 나가는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투입한 노동 한 단위로 인해 증가한 생산물이 점차 감소한다. 이것이 ‘한계생산력 체감의 법칙‘이다. - P57
경제학자들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서 상품의 수요곡선을 도출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한계생산력 체감의 법칙‘ 에서 상품의 공급곡선을 유도했다. - P57
소비자행동이론의 중심 개념인 무차별곡선 · 예산제약선 · 한계대체율은 생산자행동이론의 중심 개념인 등량선 · 등비용선 · 한계기술대체율과 수학적으로 완전히 같다. - P58
사회의 생산물은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 그 누군가는 생산요소를 제공한 사람이다. 자본가는 자본을,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한다. - P58
그 이론(한계생산력분배이론)에 따르면 노동의 가격인 임금과 자본의 가격인 이자율은 생산에 들어간 노동과 자본의 한계생산력과 일치한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노동과 자본이 생산에 기여한 만큼 생산물을 나누어 받는다. - P58
스라파 논쟁의 경위와 결과를 상세히 알고 싶으면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E. K. 헌트·마크 라우첸하이저 지음, 홍기빈 옮김, 시대의 창, 2015) 11장과 16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 P59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담고 있다. 재화와 서비스의 ‘한 단위‘를 물리량으로 확정할 수 있고 신경세포의 반응 강도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생산력체감의 법칙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 P60
생산은 물질과 노동력을 결합하는 과정이다. 거기에는 신경세포 같은 것이 없다. 생산량은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이다. 투입 노동력도 굳이 하자면 물리량으로 측정할 수는 있다. 일정한 열량을 소모하면서 일정 시간 동안 투여하는 노동을 ‘한 단위‘로 설정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어렵지만 이론으로는 가능하다. - P60
자본은 물리량이 아니다. 실제로든 이론으로든 ‘자본 한 단위‘를 특정할 방법이 없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력과 결합하는 자본은 화폐가 아니라 물질이다. 조그만 나사부터 원료와 중간재와 거대한 기계장치까지 물질은 성질과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 P60
자본의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화폐 액수로는 ‘자본 한 단위‘를 규정하지 못한다. 이것이 소비자이론과 다른 점이다. ‘화폐 한 단위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 A‘는 물리량으로 확정할 수 있지만 ‘화폐 한 단위로 구입할 수 있는 자본‘은 확정할 수 있는 물리량이 아니라는 말이다. - P60
생산 과정에 투입하는 자본의 단위를 확정하지 못하면 한계생산력을 측정할 수 없다. 자본의 한계생산력이 이자율을 결정한다는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 P60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을 계승했다.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 중에서 임금으로 지급한 것을 뺀 ‘잉여가치‘를, 생산수단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근거로 자본가 계급이 착취한다고 규탄했다. - P61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도서관 직원이자 경제학 강사였던 이탈리아 사람 스라파Piero Sraffa(1898~1983)는 1960년 발표한 소책자《상품에 의한 상품생산》Production of Commodities by Means of Commodities에서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이 수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경제학자와 수학자가 참전했던 그 논쟁은 스라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 P59
‘기술재전환‘을 두고 벌였던 수학 논쟁 - P59
‘스라파 논쟁‘ 전에도 경제학자들은 자본 한 단위를 확정하는 방법을 두고 기나긴 논쟁을 벌였다. 자본 한 단위를 물리량으로 확정하지 못하면 이윤과 이자의 원천을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그런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P62
소득분배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개인과 집단의 세력 관계,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제도, 갈등을 대하는 태도, 협상과타협을 받아들이는 문화 같은 여러 요소에 달려 있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일을 자연법칙의 몫으로 돌린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 P62
어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원 평균 연봉의 1,000배를 가져가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연봉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지 생산에 1,000배 더 기여해서가 아니다. - P62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똑같은 작업을 하는 원청 소속 노동자의 절반 수준 시급을 받는 것은 중간착취와 불평등을 허용하는 제도 때문이지 생산 기여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 P62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의 오류는 신경세포의 작동 원리를 물리법칙 형식으로 만들어 신경세포와는 무관한 경제현상에 적용한 데서 생겼다. - P62
아름다운 수학을 썼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을 강단에서 가르치고 대중에게 전파한다. 부자가 좋아하는 우화를 퍼뜨리면 보상이 따라온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 P63
따뜻한 심성과 훌륭한 인격을 가진 학자도 있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앨프리드 마셜 교수가 그런 사람이었다. 걸출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온화한 휴머니스트였던 그는 제자들한테 "찬 이성 더운 가슴"cool head warm heart을 주문하곤 했다. 냉철한 이성으로 합리적 경제정책을 추진하되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연민을 가지라는 말이었다. - P63
두뇌는 계산하고 심장이 느낀다는 관념 - P63
심장은 그저 뛰기만 하는 근육 덩어리임을, 냉철한 손익계산도 따뜻한 연민도 모두 뇌가 하는 일임을 - P63
칸트 철학의 핵심 개념 몇 가지 (중략) 정언명령定言命令(Kategorischer Imperativ), 아 프리오리a priori(先驗的), 아 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經驗的), 사물 자체事物自體(Ding an sich) 같은 것 - P64
난해함을 기준으로 철학의 최고봉을 정한다면 칸트는 헤겔, 니체와 함께 단연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 P64
칸트의 책은 어느 하나도 수월하지 않다. 어휘는 독특하고 내용은 추상적이다. 뜻이 한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거의 없다. - P64
정언명령이라는 것을 다들 들어 보았으리라.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게 하라‘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라.‘ 실천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말 자체야 어려울 게 없다. - P65
그(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 이렇게 썼다. "순수이성은 그 자체만으로 실천적이고, 우리가 도덕법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법칙을 (인간에게) 준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람은 배우지 않아도 도덕법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정말일까? 칸트는 그렇게 주장했을 뿐 증명하지 않았다.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 P65
칸트의 철학에는 과학이 깔려 있다.『순수이성비판』에는 서론부터 물리학 · 기하학 · 대수학 · 생물학 용어가 출몰한다. - P66
공간은 외적 감각기관이 가지고 있는 모든 현상들을 수용할 수 있는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바꾸어 말하면 감성의 주관적 조건인데, 우리는 이 조건 하에서만 외적 직관이 가능하다. - P67
시간은 내적 감각기관의 형식, 즉 우리 직관과 내적 상태를 감각하는 형식이다. - P67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과 시간은 우리의 외적 · 내적 감각기관이 현상을 수용하는 형식이지 사물 자체는 아니라는 말은, 표현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공간과 시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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