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처럼 한 방향을 바라보는 공간에서는 사람들끼리의 다채로운 교제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하지만 정방형의 공간은 다양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 간의 교류가 다양해진다. 이처럼 정방형의 마당이 담을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관계성은 다양하다. - P195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양하게 기억되는 공간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이벤트 별로 각기 다른 공간으로 각기 다른 기억의 서랍들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서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인식된다. - P195
주택은 천장의 높이와 모양이 다양하다.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경사가 지기도 한다. 물리적 공간의 체험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 P195
아파트는 보통 2.25미터, 주상복합은 2.4미터의 천장 높이가 고작이다. 천장 높이가 조금만 높아져도 25층 이상의 건물이 되면 한 층이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천장 높이는 최소한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아파트의 경우에는 어느 방에 가든지 똑같은 천장 높이를 가지고 있어서 공간 경험이 단조롭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 P196
주택의 경우는 천장 높이가 다채로운데다가 마당으로 나가면 천장 높이가 무한대가 된다. 이렇듯 다양한 공간 체험, 이벤트, 날씨 등이 반영된 공간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다른 책처럼 저장된다. 이런 기억이 모이면서 10평짜리 마당은 100평이 넘는 기억의 서랍에 저장되기 때문에 더 넓은 집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 P196
하나는 녹지 주변 상황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땅의 기울기 문제이다. - P196
공원 주변에 접해 있는 주거와 상업 시설은 공원 공간의 성격을 바꾸어 놓는다. - P198
주거와 공원이 접하는 면이 길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서 많은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이다. - P198
센트럴 파크는 대부분 평지로 되어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반면 남산과 북한산 같은 산들은 모두 경사져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도 모두 한 방향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P198
산에 간 사람들은 둘로 나누어진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 두 가지 경우 다 앞 사람의 등만 처다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경우라야, 잠깐씩 휴식을 취할 때 삼삼오오 불편하게 앉아 있거나 마주 걸어오는 모르는 사람을 쳐다볼 때뿐이다. 이 말은 경사지인 산은 평평한 땅과 비교해서 사람이 서로 마주보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경사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 P198
외국인들은 한 나라를 생각할 때 그나라의 대표적인 도시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도시의 이미지가 그 나라의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의 이미지 형성은 국가 브랜드 형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 P199
지금 서울 시민들에게 한강은 마치 비어 있는 마당이나 도가 사상으로 만들어진 선정원같이 정신없는 서울의 일상에서 벗어난 비움의 공간으로 잘 이용되고 있다. - P201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상상의 전기》라는 시를 살펴보자.
처음에 아이는 한계도 모르고, 포기도 모르고, 목표도 없이. 그토록 생각 없이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돌연 교실이라는 경계와 감금과 공포에 맞닥트리고 유혹과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 P205
기술력과 경제적 조건, 사회적 요구 등이 합쳐져서 나오는 것이 새로운 건축 양식이다. - P206
우리 민족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활을 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손에는 다른 민족보다 근육의 종류가 몇 가지 더있다고 한다. 반면에 뛰어다니지 않고 대부분 말을 타고 다녀서 서양인종과 비교해서 다리에는 몇 가지 종류의 근육이 없다고 한다. - P207
농사라는 것은 계절에 따라서 파종과 수확, 휴지기가 나누어진다. 일 년에 4분의 3을 일하고 겨울철 4분의 1은 노는 것이 농업 사회이다. - P208
《뇌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 앤드류 스마트는 빈둥거리면서 노는 시간에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 P208
지역마다 주식으로 삼는 농작물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유럽은 밀을 주로 먹고, 동아시아는 벼를 주식으로 삼는다. 이는 그 지역의 강수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강수량은 그 지역의 건축 양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연 발생적으로 다른 기후대마다 다른 건축 양식이 발생하고 수천 년을 이어져 왔다. - P208
상업에 근거를 둔 경제 구조이니 땅이 필요 없고, 당연히 고밀화된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밀화가 되면 사람들의 짝짓기 본능이 자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가 탄생한 것이다. - P210
인구 밀도가 낮은 시골에서 태어나 거기서만 계속 산다면 새로운 이성을 만날 기회도 적다. 따라서 성적인 자극이 덜하기 때문에 도시보다는 성범죄율이 낮다. 하지만 상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게 형성되었던 소돔성과 고모라성은 성범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P210
현대인은 당시의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고밀화된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의 서울이 성적 욕망이라는 면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자극적인 도시일 것이다. 다만 지금은 여러 가지 법과 치안으로 일정한 규칙 안에서 그러한 욕망을 분출하고 있을 뿐이다. 적절한 분출구와 제약 장치들이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을 막아 주고 있는 것이다. - P210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이 흩어져서 살아야 하지만, 공업 사회에서는 사람이 가깝게 모여 살수록 이익이 많이 창출된다. 이러한 필요조건에 의해서 사람들은 고밀화된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 P211
회중시계는 부유한 귀족들의 상징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청이나 학교에 있는 시계탑의 시계를 보면서 그 시간에 맞추어서 살아야 했다. 시계탑이 있는 런던의 빅 벤 같은 건축물이 이러한 세태를 잘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 P213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자유를 갖는 것이고, 자유는 곧 권력 - P213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과 권력을 키워 나가려고 노력하는 법 - P214
간단한 가구 배치만을 통해서도 권력을 표현하거나 집행할 수 있다. - P216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인간들은 자존감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동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 P216
인간은 동물이다. 그중에서도 주광성 동물이다. 인간은 빛이 필요한 동물인데, 산업화가 되면서 인간의 본능과 상충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된다. - P216
과거에는 사람들이 햇볕을 받기 위해서 창을 내어 창가에 살았고, 건축가들은 자연 채광을 들여오기 위해서 재미난 단면을 고안해 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값싸게 인공의 빛을 만들 수 있는 형광등이 건축에 도입되면서부더 건축물은 더 이상 햇볕이 들어오는 디자인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형광등이 건축 공간을 단조롭게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216
과거 농경 시대에는 우리가 항상 하늘을 보면서 햇빛 아래에서 일했다면 지금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일을 한다. 여기서 현대인의 비애가 발생한다. - P217
현대인은 자연과 분리되어 사는 ‘자연스럽지‘ 못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P217
현대인들은 고밀화된 도시 공간 구조 속에서 공간을 통해 권력의 조종을 받게 된다. 그 스케일은 도시 스케일에서 미세한 자리 배치에까지 이른다. - P217
인간이 삶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실내로 햇빛을 들여오기 위해서 창문을 만들었다. 더 넓은 실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큰 창문이 필요했다. - P217
인방보: 창문 등 개구부 바로 위의 벽을 받치기 위해 걸쳐진 콘크리트 돌, 나무 혹은 스틸의 수평 부재 - P386
서양 건축은 주로 벽이 구조체이다. - P217
동양에서는 나무 기둥으로 된 네모진 모듈러(기본 단위)로 건축물을 만들었다. - P218
동양 건축은 건물의 폭이 좁고 가로로 길어서 자연과 접하는 표면적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 P219
20세기에 들어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발달하면서 공간을 가로세로 수평으로 무한정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 P219
형광등의 보급으로 햇빛을 위해서 천장 높이를 높이거나 정원을 끼고 긴 선형을 만들 필요가 없게 되었다. - P219
제한된 높이에 더 많은 층을 넣기 위해서 천장 높이는 머리만 안 닿을 정도로 최소화되었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높이 2.4미터의 천장 높이에 가로세로 폭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 P219
만약에 형광등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천장 높은 사무실 또는 어느 자리에서나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사무실에서 일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형광등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킨 공공의 적인 것이다. - P219
이상과 현실은 항상 다른 법이다. - P220
우리는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 - P220
혼란의 세상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원하는 것은 선사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안전을 추구하는 본능이다. - P221
프라이버시는 다른 말로 일정 공간의 완전한 소유를 뜻한다. 우리는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서만 사생활을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유를 뜻한다.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은 자기 집이나 방이다. - P221
요즘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세상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큰돈을 들여서 큰 집을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시간당으로 작은 공간을 렌트한다. 노래방, 비디오방, 모텔 방 같은 곳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산다. - P221
자동차는 차의 내부가 방음이 되는 완벽히 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 가서 주차만 하면 주변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 P222
요즘 젊은이들은 집보다도 자동차를 먼저 산다. 자동차는 이 사회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완벽히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도 바꿔 줄 수가 있어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 P222
프라이빗한 공간을 얻는 다른 방식은 익명성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대도시화되면서 공간의 부족으로 없어지는 사생활의 자유는 대도시의 익명성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회복된다. 나를 모르는 여러 사람들속에 섞여 있게 되면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더 자유로워질수록 그 공간에서 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적으로 행동한 만큼 그 공간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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