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문화 이야기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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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게 강한 한국인의 부끄러운 모습을 들여다보다.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기준은 피부색과 생김새다. 그것은 곧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출신에 의한 시각으로 확대된다. 소위 '잘 사는 나라'에서 오거나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것으로 말이다. 용모가 반듯하고 선진국에서 온 경우, 대부분 호의를 베풀고 관심을 가지고 다가간다. 그러나 후진국에서 온 사람에게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선입견에 좌우된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로 시집을 왔으랴.'라는 안쓰럽다는 이유를 가장한 일종의 텃세와 무시가 표출되는 것이다. 그들이 입는 옷이나 표정만으로도 '나라가 가난해서'라는 이유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한국인의 이중적 면모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러한 차별과 무시가 은연중에 자행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유난스럽게도 이주여성을 비롯한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살벌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일민족의 존엄함을 훼손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을 배척할 수는 없다.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의 단일민족의식에 대하여 재조명한다. 속된 말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으로 인해 나라가 잡종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녕 단일민족이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있을까. 책은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에 이미 한반도에는 서양인과 동남아시아 사람의 생김새를 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밝히고, 이에 우리의 유전자 지도는 한민족이 '혼혈'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라를 위해서 민족이 하나가 되어 단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전쟁을 딛고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국력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일민족사관에 의한 나라의 혈통을 지키기 위한 처세가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벤저민 샤퍼 씨는 자신이 누리는 한국인의 환대와 친절이 모든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내 피부색이 동남아시아인들 같았으면 저는 아마도 다른 대접을 받았을 겁니다." 샤퍼 씨는 자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여자친구 만나는 것도 대단히 유리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흥미롭고 좋은 기억만을 쌓고 있다는 그는 "한국은 백인이 살기에 좋은 곳"이라고 단언했다."(p.121)

 

우리가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저 조금 다를 뿐이잖아요.

이 책은 SBS스페셜 제작팀이 다문화와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을 다룬 다큐멘터리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제작하면서 취재했던 외국인의 삶이 실려있다. 한국인의 단일민족사관을 해석하는 다양한 측면을 제시하면서 이를 토대로 다문화 사회의 실태를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출신국가와 피부색으로 인간의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외국인의 모습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실제로 책에는 백인과 흑인을 대표하는 두 외국인이 한국인의 의식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 참가했던 사례가 등장한다. 백인에게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다가가는 반면에, 흑인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거나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방어자세를 취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꽤나 위선적으로 보이기만 한다. 물론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나, 아무런 이유 없이 차별하고 모욕감을 주는 것은 그 어떤 말로도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을 것이다.

 

다문화는 아름다운 공존의 시작이다.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사람과 사람이 사는 모습으로 바라보자.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며, 한국인의 잘못된 의식을 바로잡기 위한 메시지가 공존하는 책이다. 이 책은 현재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한 고용주, 한국에 정착하기 위한 외국인을 돕는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자, 외국인 친구와 함께 공부하는 청소년, 외국인 배우자를 둔 사람을 비롯한 한국에서 살고 싶어서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이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의 모든 것을 대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은 더이상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라는 점, 그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하여 함께하는 다문화 사회,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 잘못된 의식은 과감히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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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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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네 존재를 사랑했다, 나의 처녀, 너는 나만의 영원한 처녀로서 기억될 것이다.

소신껏 휘두르는 제 필력에 심신이 점차 황무지가 되어버린 시인 이적요, 그는 잔가지 무성한 고목처럼 노년의 애끓는 욕망과 사랑 그리고 삶의 군더더기를 보여준다. 그의 필명이자 이 책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적요寂寥, 그 이름처럼 노시인의 모습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늙어가는 인간의 마지막을 애잔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혈기왕성한 삼십 대 중년남성을 대변하는 서지우, 대학에서 노인을 만나 문학의 길을 자처하여 들어왔다. 그의 잠재된 거친 욕망은 쉽사리 표출되지 못하고 스승 이적요 시인의 그늘 아래서 고목의 수액만 재량껏 빨아먹으면서 기생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등장한다. 시인의 대필원고가 공모전에서 큰 상을 거머쥐게 되었고, 서지우는 시인의 힘에 의지해 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자신의 작가적 기질이 자립하지 못함에 늘상 자책하는 서지우, 그런 제자의 모습을 고요하게 관망하는 시인의 눈빛이 유난히 짙어진다. 그러던 차에 이 두 사람의 애끓는 욕망에 불씨를 던지는 소녀가 등장한다. 이름은 한은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청춘, 고등학생 한은교를 사이에 두고 스승과 제자가 드러내고 혹 감추어야만 했던 욕망이 《은교》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아 마시면 되고 걷고 싶으면 운동화를 찾아 신으면 그뿐인 것이, 자연이다. 자연의 사이클을 따르면 된다고 여겨온 섹스의 욕망이 나를 긴장시킨 것은, 그러므로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은교를 향한 욕망은 확실히 강도와 빛깔에서 전에 경험한 것과 판이했다. 평생 처음 겪는 강도, 빛깔이었다. 포악스럽고 장렬했다."(p.125)

 

지켜주려는 것을 나만의 소유물로 만드는 것, 그것은 억압하고 복종하려는 것을 감추기 위한 욕망의 위선일 뿐이다.

노인의 집에서 청소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한은교, 그 집을 드나들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수발을 들던 서지우는 언제부터인가 은교를 향한 노인의 눈빛이 변질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자신의 착각인지도 모를 상황에서 오로지 스승의 고결함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치우쳐 서지우, 자신이 일종의 훼방꾼이자 중재자로 나선다. 은교의 젊음을 탐닉하면서 밀애를 즐기는 서지우, 그러나 시인은 점차 그 요망한 훼방꾼의 이중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제 스스로 노망에 가까운 수치심에 몸과 마음을 외부로부터 차단시킨 노시인, 그를 할아부지라 부르면서 병아리처럼 따라다니던 은교,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리고 있음에 진정을 되찾은 서지우까지…… 《은교》는 시인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가 죽기 직전까지 적었던 자필 일기장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노년과 중년의 갈림길에서 가시처럼 돋아난 소녀 한은교를 에워싼 욕망과 사랑을 재정립하고 있다.

 

"선생님을 위해서도 그렇다. 적요라는 필명이 그렇듯이 세속적 욕망을 다 접은 것처럼 회자되는 고결한 시인 이적요 선생님이다. 여고생과,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오금을 박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서 나는 화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살차게 오금을 박았다. "얘, 고작해야 고등학생이에요!" 선생님이 내 말에 화난 표정으로 휘익, 돌아보았다. 나는, 찔끔했다. 그 순간의 선생님 표정, 잊을 수 없다. 살기가 번뜩이는 표정이었다. 그 농도가 이제까지의 그것과는 달랐다. 내 심장에 칼침이라도 놓을 것 같았다."(p.317) 서지우의 일기 중에서

 

 

《은교》는 독자의 취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시인과 제자의 사랑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노시인이 자신의 일기장을 맡길 만큼 신임을 얻고 있던 Q변호사의 추측에 신빙성을 더하여 우리로 하여금 노년의 시인과 중년의 제자가 서로 제 빛깔을 보호하기 위해서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음은, 결국 서로를 위한 사랑의 또 다른 묵상, 인내 그리고 관망과 같은 것이었노라며, 그것을 소녀 한은교에 대한 욕망으로서 감추려고 했던 것이었음을 말이다. 대학생이 된 은교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항상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자신이었다면서 끝내 울음을 터트린다. 《은교》는 노시인의 오감으로부터 새롭게 탄생하는 은교의 존재와 정체성이 섬세하고도 격렬하게 묘사되어 있다. 은교의 눈, 코, 입술, 목, 허리, 가슴, 손목, 종아리, 발목에 이르기까지… 노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 애는 손녀 같았고, 어린 여자 친구 같았으며, 아주 가끔은 누나나 엄마 같았다."고 말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욕망의 불씨는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죽음은 사랑을, 사랑은 또 다른 죽음을 부르고…

결국 시인은 제자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껍데기가 숙성되어 점차 발효되는 현상에 대하여, 반감을 품고 그것을 발정 난 노년의 몸부림이라 비웃었을 제자 서지우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지우의 일기를 읽으면서 다시 통곡하게 된다. 스승을 위하는 것이었으나, 그 욕망의 존재 자체마저 인정할 수 없었던 서지우의 혼란스러움이 이 모든 것을 자처했음을…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스승의 마음을 알아챈 서지우의 눈물은 재차 마를 수 없이 흘러내린다. 두 사람 사이에서 공허하게 남겨진 은교의 모습만이, 독자에게 다양한 추측과 해석을 자극한다. 《은교》는 곧 영화화되어 상영을 앞두고 있다. 시인 이적요는 배우 박해일이 실제 70대 노인으로 분장하여 대변하게 되었다는데, 개인적으로 많이 기다려지는 영화다. 과연 원작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그런 것일까. 싹이 자라고 잎이 무성해진들, 곧 뼈만 남겨질 가시 같은 것… 노년의 사랑이 처절한 고독 속에서 어떻게 몸부림치고 체념하여 승화하는가에 대한 숙제를 남겨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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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한방에 날리기
기무라 에이이치 지음, 나지윤 옮김 / 이젠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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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와 부하직원,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살벌한 조직문화에 잔뜩 주눅이 들어서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밖에서 보고 겉으로 볼 때는 뭐 여느 직장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그 실상을 파고들면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관계가 영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상사가, 직원들이 나를 열받게 해서 스트레스받는다고 매일 술병을 입에 달고 산다면, 그래서 숙취 해소도 못한 상태에서 다시 출근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스트레스 한 방에 날리기》를 읽어보자. 아참, 그렇다고 이 책이 뭐 상사나 부하직원을 한 방에 날려주는 비법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주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법과 그 원인에 대하여 재치있게 풀어나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누구나 지속적으로 업무성과를 올리기 원한다. 그렇다면 먼저 성과란 타인의 평가에 의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자신의 평가에 집착하면, 타인이 내린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낮은 평가를 받게 될 위험마저 있다.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되는 건 물론이다."(p.80)

 

문제를 인식하는 사고방식을 바꿔라.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과감히 무시하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하는 법!

독단적인 상사, 융통성없는 부하직원, 일 처리가 굼벵이보다 느린 사람, 인사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도무지 성과를 못 내는 사람, 혼자 잘난척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받아서 힘든 사람이 있다면 주목하자. 각자의 유형에 따라 분류된 사람들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당신이다. 우리는 사고의 함정에 빠진 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이다. 나와 타인의 의견이 어긋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갈등의 시작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는 이기적인 행동에서 출발한다. 나와 당신은 원래부터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수용하고 시작한다면 스트레스가 쌓일 수 없다는 게 책의 입장이다.

 

 

개인의 행복이 조직을 살리고 나아가 기업의 성장을 촉진시킨다. 서로가 맞물려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한 방에 날리기》의 저자는 일본에서 '확신 컨설턴트 · 트레이너'로 활동 중이다. 그는 개인과 조직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사고와 행동을 연구하여 2008년에 '확신 컨설턴트 · 트레이닝'을 실시하는 그로스서포트 회사를 설립하여 대표이사로 활약 중이기도 하다. 뇌 과학과 행동발달학, 심리학 요소를 접목하여 보다 많은 기업과 경영진 및 임직원이 실속있는 업무처리능력을 향상하여 개인과 조직이 융화될 수 있는 직장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실제 담당했던 기업의 사례를 이 책에 제시하면서 스트레스가 개인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업무성과와 조직생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물론 개인의 변화만으로 조직문화를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은 상사로서의 역할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동료직원 간의 우애를 다지는 비법도 전수한다. 세상 모든 일은 나만 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이만큼 노력하면 상대방도 같이 협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방법은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단칼로 잘라낼 수 있는 융통성을 가진 사람만이 원만한 직장생활에 임할 수 있다. 

 

"업무의 효율성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우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정의를 직원들이 서로 공유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사 입장에서 보면, 부하직원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부서의 실적을 올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러한 요령을 아는 상사야말로 부하직원이나 경영자가 보기에 가장 능력 있는 인재일 것이다. 유능한 상사가 되고 싶다면 부하직원과의 '공통인식'을 쌓는 작업을 반드시 실천해보라."(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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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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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면 그녀가 나를 찾아옵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려지고 또 기다림에 지쳐갑니다.

남자는 변변찮은 실력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독신남에다가 안정적인 주거지도 마련하지 못한 예측불가능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이웃과의 사소한 마찰로 인해, 자신이 말한 바에 따르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결정하게 된다. 새 보금자리는 외국으로 출장을 떠나게 된 이모의 맨션이다. 이모는 길에서 주워온 고양이 두 마리를 보살펴주는 대가로 집세를 저렴하게 받겠다고 한다. 남자는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도,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음에도 따분한 일상이 조금 나아지겠다는 생각에 이사를 결정한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면 고양이 두 마리의 행동이 이상하기만 하다. 허공을 응시하는 눈동자의 초점이 어떤 존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에… 남자는 고양이를 더욱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들었어요?", "역시 들리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보이진 않죠? 그냥 들리는 거죠?"

남자의 임시거처가 된 맨션은 다소 어두운 과거를 숨기고 있다. 불과 3년 전, 맨션에는 한 여자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곳이기도 했다. 여자는 발견 당시, 후두부에 상처가 나고 청산가리를 탄 샴페인을 마신 채로 숨져있었다. 식탁 위에는 유서가 남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의 죽음은 누가 뭐래도 자살이었다. 그러나 이 자살로 위장된 죽음에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어쩌면 해석하기 너무 쉬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이제 그 자살 혹 죽음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전적으로 남자와 그 죽은 여자의 몫으로 남았다.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는 비가 내리면 찾아오는,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을 사랑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이다. 남자를 찾아온,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영혼은 3년 전 자살한 여자,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비가 오면 자신이 살던 집으로 오게 된다는 여자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이 자살을 결심했던 것, 샴페인에 청산가리를 넣은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은 결코 샴페인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소연한다. 즉 자신은 자살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의혹이 풀릴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여자의 하반신… 그리고 상반신…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풀릴수록 몸의 형상이 하반신부터 드러나는 영혼의 변화가 남자와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여자의 진술에 따라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남자, 그는 조금씩, 그러나 거꾸로 형상을 드러내는 여자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과 호기심 그리고 애틋함을 느끼게 되는데…….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자의 모습은 독신남으로 살아온 그에게나, 이 사건이 어떻게 풀릴 것인지에 대하여 궁금한 우리 독자에게 오묘한 정서적 공감을 끌어낸다. 여자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사건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 심한 애증을 느끼기도 하고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만질 수 없는 영혼을 위해서 자신이 그토록 힘겨운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에…

 

"소파 앞. 조금 전에 하얀 고양이가 몸을 기댔던 그 부근에 여자의 다리가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과 발목, 그것들로 이어지는 정강이. 무릎 바로 밑 부근에 안개처럼 희미하게 드러나 있는 다리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무릎 부근에서 다리를 꼰 듯 한 쪽은 똑바로고, 다른 한 쪽은 기울어져 있는 다리. 가늘지만 구부러짐없이 똑바로 뻗어 있는 스타킹을 신은 여자의 다리. 그것이, 그것만이 소파 앞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p.127)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우리는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합니다.

이 책은 연애를 가장한 추리소설, 혹 추리를 가장한 영적인 교감을 그려낸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여자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우리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되겠노라 생각된다. 어쩌면 남자와 여자에게 중요했던 사건이자 진실은 서로를 향한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는 남자의 지독한 망상이 꾸며냈을지도……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랑, 때로는 떠난 후에야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사람도 있다. 나는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그와 그녀에게 다가갔으나, 그들은 우리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처럼 구슬픈 빗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그리움에 발버둥치고 가슴을 짓누른다. 남자에게 발끝부터 자신을 보여준 영혼… 그토록 궁금했던 얼굴은 떠나기 직전에 잠시나마 흐릿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이야말로, 사랑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굴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여자의 모습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거늘……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의 의미를 묻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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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초등 부모 학교 - 현직 초등 교사 부부가 전하는 생생한 자녀교육 노하우
김성현.김은혜 지음 / MIREDU(미르에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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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칭송할 우등생이란, 인간으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춘 자가 될 것이다.

티비를 보다가 씁쓸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우선 특정 지역을 거론한다는 점에서 다소 불편한 감이 있음에도, 나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대치동 엄마들의 이야기에 관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다룬 대치동 엄마들의 모습이 독특했다. 엄마의 학벌이 곧 자녀의 서열과 교육의 수준을 결정짓고, 학력과 경제력으로 서열이 비슷한 학부모가 모여서 자녀를 특별하게 교육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이사를 온 학부모의 경우, 대치동의 심상찮은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자녀교육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한 학부모는 이런 말을 했다. 대충 간추려보면 "고입, 대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아이가 어느 자리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건 곧 아이를 사회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자녀를 키우는 친척이나 가족 간에도 교육에 관한 정보는 일체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건대, 그마저도 자녀를 위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보를 공유할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학부모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공부 잘해서 사회에 나와 보니까, 왜 공부가 중요한지 알겠더라구요." 자, 여기까지다. 이에 관한 해석은 나와 당신의 몫인 것이다.

 

《초등 부모학교》는 현직 초등 교사가 생생하게 전하는 자녀교육 노하우가 실려 있다.

인간과 교육의 본질이 흔들리는 시점에서 '자녀교육', '부모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간되는 책이 도리어 우리에게 씁쓸함을 자아내는 것은 왜일까. 앞서 언급한 대치동 엄마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제는 자녀를 위한 맹목적인 헌신과 희생이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이익과 출세를 위해서 지능적으로 자녀교육을 연구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초등 부모학교》는 부모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부모력이 곧 자녀양육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인가? 부모의 힘이 셀수록 자녀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많은 것이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외적인 부분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자녀의 마음도 덩달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자녀교육의 핵심은 바로 부모와 아이 간의 넓고 깊은 사랑이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훈계도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는 점이다. 훈계 없는 사랑은 사람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만든다. 반대로 사랑 없는 훈계는 자녀를 폭력적이고 비관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따라서 자녀에게 부모의 사랑을 자주 알려주되,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는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명확히 이야기해주고 단호히 훈계하는 교육법이 필요하다."(p.27)

 

교육현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직전의 아이와 부모를 위한 《초등 부모학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준비해야 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첫 아이라면 더욱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할 것인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혹은 학부모로서 준비해야 될 것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교과목의 특성에 따른 방과 후 학습은 어떻게 지도를 할 것이며, 학원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챙겨야 할 부분이 많기도 하다. 이 책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부부가 함께 집필했다. 대안학교부터 사립초등학교까지 교육현장에서 직접 터득한 노하우라고 하는데, 책 내용은 치열한 경쟁구조로 얽히고설킨 교육현장에 적응하기 이전의 준비단계를 위한 노하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현명한 부모로부터 충실히 교육을 받고 자란 자녀일지라도 현실에 뛰어들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기초를 닦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으면 될 것 같다.

 

 

자녀교육은 곧 올바른 성품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나, 현실적이고도 살벌한 교육의 세계를 향한 적응력도 길러야 한다.

《초등 부모학교》는 자녀를 둔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인생에 있어 성공과 실패를 향한 가치관은 다양할 것이다. 이것은 곧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가치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성은 있다. 책은 자녀교육의 핵심은 경제력이 아니라 부모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제대로 된 부모 노릇도 가능한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물론 책이 말하고 싶었던 점은 물질적인 것만이 자녀교육의 성패를 쥐고 흔들 수 없다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나도 언젠가는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가 될 터인데, 나는 과연 어떻게 자녀교육에 임할 것인지 의문이다. 막상 내가 엄마가 된다면 마음의 중심을 잡고 현명하게 부모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오로지 부와 명예, 출세를 위한 도구로서 존재하는 교육의 기능은 아이러니할 뿐이다. 자녀교육의 주체는 자녀일지라도 그 주도권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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