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비가 오는 날이면 그녀가 나를 찾아옵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려지고 또 기다림에 지쳐갑니다.

남자는 변변찮은 실력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독신남에다가 안정적인 주거지도 마련하지 못한 예측불가능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이웃과의 사소한 마찰로 인해, 자신이 말한 바에 따르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결정하게 된다. 새 보금자리는 외국으로 출장을 떠나게 된 이모의 맨션이다. 이모는 길에서 주워온 고양이 두 마리를 보살펴주는 대가로 집세를 저렴하게 받겠다고 한다. 남자는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도,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음에도 따분한 일상이 조금 나아지겠다는 생각에 이사를 결정한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면 고양이 두 마리의 행동이 이상하기만 하다. 허공을 응시하는 눈동자의 초점이 어떤 존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에… 남자는 고양이를 더욱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들었어요?", "역시 들리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보이진 않죠? 그냥 들리는 거죠?"

남자의 임시거처가 된 맨션은 다소 어두운 과거를 숨기고 있다. 불과 3년 전, 맨션에는 한 여자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곳이기도 했다. 여자는 발견 당시, 후두부에 상처가 나고 청산가리를 탄 샴페인을 마신 채로 숨져있었다. 식탁 위에는 유서가 남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의 죽음은 누가 뭐래도 자살이었다. 그러나 이 자살로 위장된 죽음에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어쩌면 해석하기 너무 쉬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이제 그 자살 혹 죽음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전적으로 남자와 그 죽은 여자의 몫으로 남았다.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는 비가 내리면 찾아오는,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을 사랑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이다. 남자를 찾아온,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영혼은 3년 전 자살한 여자,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비가 오면 자신이 살던 집으로 오게 된다는 여자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이 자살을 결심했던 것, 샴페인에 청산가리를 넣은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은 결코 샴페인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소연한다. 즉 자신은 자살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의혹이 풀릴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여자의 하반신… 그리고 상반신…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풀릴수록 몸의 형상이 하반신부터 드러나는 영혼의 변화가 남자와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여자의 진술에 따라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남자, 그는 조금씩, 그러나 거꾸로 형상을 드러내는 여자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과 호기심 그리고 애틋함을 느끼게 되는데…….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자의 모습은 독신남으로 살아온 그에게나, 이 사건이 어떻게 풀릴 것인지에 대하여 궁금한 우리 독자에게 오묘한 정서적 공감을 끌어낸다. 여자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사건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 심한 애증을 느끼기도 하고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만질 수 없는 영혼을 위해서 자신이 그토록 힘겨운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에…

 

"소파 앞. 조금 전에 하얀 고양이가 몸을 기댔던 그 부근에 여자의 다리가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과 발목, 그것들로 이어지는 정강이. 무릎 바로 밑 부근에 안개처럼 희미하게 드러나 있는 다리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무릎 부근에서 다리를 꼰 듯 한 쪽은 똑바로고, 다른 한 쪽은 기울어져 있는 다리. 가늘지만 구부러짐없이 똑바로 뻗어 있는 스타킹을 신은 여자의 다리. 그것이, 그것만이 소파 앞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p.127)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우리는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합니다.

이 책은 연애를 가장한 추리소설, 혹 추리를 가장한 영적인 교감을 그려낸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여자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우리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되겠노라 생각된다. 어쩌면 남자와 여자에게 중요했던 사건이자 진실은 서로를 향한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는 남자의 지독한 망상이 꾸며냈을지도……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랑, 때로는 떠난 후에야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사람도 있다. 나는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그와 그녀에게 다가갔으나, 그들은 우리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처럼 구슬픈 빗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그리움에 발버둥치고 가슴을 짓누른다. 남자에게 발끝부터 자신을 보여준 영혼… 그토록 궁금했던 얼굴은 떠나기 직전에 잠시나마 흐릿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이야말로, 사랑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굴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여자의 모습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거늘……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의 의미를 묻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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