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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ㅣ 한국 자본주의 2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서평] 왜 청년에게만 요구하는 것인지.. <왜 분노해야 하는가 : 한국자본주의 II > 장하성, 2015. 12., 헤이북스
<한국 자본주의>(2014)에서 장하성은 한국에서의 자본주의가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맥락에서 형성되었다고 분석했고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희망했다. 그는 이번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 : 한국자본주의 II >에서는 극심화된 불평등을 한국 자본주의의 틀에서 바라보고 그에 맞는 해답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총 3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한국 불평등의 원인, 구조와 인과관계를 규명한다. 2부에서는 누가 불평등을 만들었고, 해소 방안은 있는지 고찰해본다. 그리고 3부에서는 그러한 불평등을 누가 고칠 것인가 묻는다.
논지는 크게 세 가지다. 한국의 불평등은 재산 불평등보다 소득 불평등 탓이 크고, 그 원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고용 불평등과 대기업, 중소기업 사이의 불균형이라는 것이다. 불평등 해결의 방법으로 꾸준히 시도된 재분배는, 성장의 성과를 대기업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서 제기한 소득 불평등의 원인에 기업 구조 개혁을 더해, 재분배 이전에 원천적 분배의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서, 애써 나서야 할 이들은 다름 아닌 청년 세대다. 그들의 탓은 아니지만, 그들만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경제가 그동안 재산 불평등이 빠른 시간 내에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한국 불평등의 주원인은 아직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축적의 역사가 짧고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천적 분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소득 불평등이 모든 불평등의 발원지이며,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즉 재분배 정책으로는 불평등이 해결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소득 불평등은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 때문이며 이는 기업의 원천적 분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진국과 달리 가계에 노동소득으로 분배되어야 할 몫을 재벌 대기업이 분배하지 않고, 중소기업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재벌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고용구조와 기업 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 분배 구조, 고용구조 그리고 기업 구조를 개혁하는 정책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복지 예산을 늘리는 재분배의 확대만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논증하고자 하는 핵심 중 하나다.
누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기성세대는 한국을 빈곤에서 탈출시키고 오늘의 풍요를 일구어낸 산업화 세대로서 그리고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민주화 세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외면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의 중심에 서서 자신이 만들어낸 ‘과거’의 한국에 계속 갇혀 있다. 그들은 청년세대를 위해서 세상을 바꿀 생각이 없고, 자식 세대에게 세상의 중심에 설 기회를 줄 생각도 없다.
저자는 기성세대들이 청년세대였을 때 한국 사회의 주역으로 세상을 바꾼 것처럼 미래 세대의 주역인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함께 분노해야 한다. 청년세대만이 의로운 사회라는 또 한 번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절반 밖에 동의할 수 없다.
먼저, 임금 분배 구조, 고용구조 그리고 기업 구조를 개혁하는 등 재분배가 아닌 ‘분배(특히 임금과 소득)의 확대’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저자의 일관성 없는 분석과 대안제시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는 자신의 전작인 <한국자본주의>에서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정책, 그리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정책(소유구조 개선)을 가장 중요하게 제시했다. 세부적으로는 ‘초과 내부유보세’와 ‘비정규직법 개정’ 그리고 재벌대기업에 대한 증여세와 상속세를 강화, 비업무용, 무수익 자산의 순환 출자 금지와 지주회사나 내부회사 제도 또는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무 매수 제도를 도입 등을 주장했다. 즉, 소유 문제와 분배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1년 만에 새로 출간한 책에서는 불평등 구조와 체계의 핵심 중의 한 가지인 소유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재분배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라는 식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이유나 논리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또한 실제 지난 70년간 정경유착과 권언유착, 법조계와 재벌의 유착 등은 한국경제에서 일부 계층의 불법편법 자산 증식과 탈세 등을 통해 ‘소유의 집중’이 가속화되어 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제대로 통계를 제시하고 연구하지 않아서 공개되지 않았을 뿐...
그리고 저자가 소득과 임금의 분배 문제가 한국경제의 불평등 문제에서 핵심이라고 분석한 근거와 결과에 대해서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저자는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주의>의 저자, 자산의 불평등 문제를 강조하며 ‘자본세 도입’을 주장한 경제학자)의 ‘자산 불평등 이론’이 한국에는 적용할 수 없다면서 여러 가지 정부기관의 자료를 제시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여러 가지 자료와 통계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는 통계’만을 제시한가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자산 소득보다 임금 소득이 소득불평등에서 차지하는 규모와 비중이 훨씬 크다고 주장하면서 근로소득자의 자산 소득과 임금 소득을 비교했고 근로소득자의 자산 소득을 비교할 때도 주택 자산과 금융자산을 비교했다. 즉, 근로소득자가 아닌 자본가 내지 자산소득가의 사업소득의 통계를 준비하지 않았고 자산 소득에서 비주택(비주거)자산 규모와 그에 따른 자산 소득에 대해서는 통계자료를 조사하지(제시하지) 않았다.
아래의 통계와 관련 기사를 보면 저자의 분석 자료와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비거주용 건물 시가총액 2,669조원으로 주거용의 86% http://m.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37433
상위 10%가 소득 절반 차지…드러난 소득양극화의 민낯 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11/0200000000AKR20141211089100002.HTML?input=1195m
상위 10%가 전국 토지 '땅값기준' 72% 소유. 토지 편중, 땅값 올리고 분양값도 올려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243757.html
마지막으로, “청년세대만이 의로운 사회라는 또 한 번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마지막 주장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다.
21세기 한국의 청년세대는 ‘엔포세대’, ‘헬조선’, ‘흙수저’라는 표현이 있듯이 하루하루 버티기에도 벅찬 세대다. 기득권 세대와 기성세대에 의해 가장 많이 차별과 착취를 당하고 있고,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커녕 다음 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인 것이다. 탐욕스럽과 삐뚤어진 언론에 포위되어 있고 사회 각 분야의 권력과 의사결정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그런 청년세대에게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묻고 “분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저자 자신도 과도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혁명은 안 된다”고 하면서 생각할 시간, 고민할 여유, 연대한 조건도 무엇 하나 제공하지 않은 채 청년세대에게 분노하고 정치에 참여하고 투표를 잘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기성세대로서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말이다.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갖는 것을, 변화와 행동을 요구하려면 그들이 그렇게 변하고 나설 수 있도록 여건과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기성세대 지식인, 학자, 전문가들 집단에서라도 사적인 욕심을 줄이고 서로 양보하고 연대하여 청년세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가?
자신들은 서로 잘났다면서 삼삼오오, 학벌이니 연구소니 집단이니 정파니 하는 패거리를 만들어 이 정당 저 정당 기웃거리면서 정치건달처럼 시간보내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그게 돈이든, 학벌권력이든, 지위든, 명예든, 경력이든, 권위든 간에 청년세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려는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청년세대에게 내놓고 양보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 2016년 6월 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