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서평]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살해당하고 있다 <게 가공선>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저, 서은혜 역 <게 가공선 蟹工船>을 읽고 / 2012.10, 214쪽, 창비


<게 가공선>은 먼 바다 위를 떠도는 노예선 같은 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29년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돼지우리와 같은 환경과 폭력이 난무하는 비참한 노동현장에서 벌어진 투쟁과 반란을 담았다.

이 작품은 먼 바다를 떠도는 거대한 배를 무대로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드러내고 노동자의 자각과 투쟁을 역동적으로 그려내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대표작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준을 사상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일본 근대문학에도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코다테 항구에 광부, 농민, 빈민굴 소년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배를 타고 넉 달 동안 캄차카 바다에서 게를 잡는다. 그 배의 상황은 끔찍하다. 숙소는 악취가 들끓어서 똥통이라 불렸고 이가 들끓었다. 작업을 게을리하는 자는 “쇠막대기를 시뻘겋게 달구어서 몸에 갖다 대겠다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폭풍이 몰아쳐도 게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야 했다. 

어선은 부정부패에 힘입어 ‘항해선’이 아니라 ‘공장선’이 되어 항해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선장과 선박회사는 공무원과 해군을 극진히 대접한다. 일하다 병들어 죽은 사람은 바다에 던져졌다. 그곳에 모인 거의 모든 이들은 평생 늘 뭔가 해 왔다. 국토 개척, 관개 공사, 철도 부설 등이었다. 그런데도 극도로 가난했다. 홋카이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다코’(문어)라고 불렀다. 정부도 군대도 그들이 편은 아니었다.

어부들은 이런 말을 내뱉는다. “문어는 살기 위해선 자기 팔다리까지 먹어치운다지, 이것이야말로 우리와 닮지 않았나, 어쨌든 죽고 싶지 않아. 캄차카에서 죽고 싶지 않아…아니 이미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게 가공선>을 발표했을 당시, 작가는 일본공산당에 대한 혹독한 탄압이 계속되면서 지하조직으로 옮겨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집필과 헌신적 활동을 계속하다 1933년 2월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사망한다. 경찰 당국은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2차대전 종전 후에도 그의 작품들을 금서 취급하는 등 사후에도 철저하게 박해받았다.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노동 현실이 척박해지면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게 가공선>이 다시 인기를 끌며 새로이 주목받았다.


<게 가공선>은 발표된 지 80여년이 지난 후, 장기불황과 금융위기로 고통을 겪던 일본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30만권이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일본공산당에 1만여명이 새로 입당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공산당 입당이 증가한 것은,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가 군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융합해 내달리던 시대에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며 착취 속에 신음하던 노동자들을 향해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살해당하고 있다”고 외치다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라 한다.


2012년 창비가 처음 작품을 번역해 출판했을 때, 경향신문은 "지금 일본 사회에선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근로자들이 '게 가공선이네'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은 요절한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대표작 <게 가공선>에서 비롯됐다."고 소개했다.


‘게 가공선’의 이미지는 몇 년 전부터 한국사회의 젊은세대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헬조선'과 비슷한 느낌이다. 세월호 참사와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스펙 경쟁에 치이는 젊은이의 처지는 <게 가공선>이 그린 지옥 같은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고공농성장과 시멘트바닥, 광화문 세월호 천막과 병상에 누워계신 백남기 농민이 번갈아가며 떠올랐다.


[ 2016년 8월 28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