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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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나 이슈가 되었던 책이다. 대체로 성경을 비비꼰 이야기들은 세간에 화제가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작가가 "눈먼 자들의 도시"의 주제 사라마구이니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랴. 게다가 출판사에서 전략적으로 12월 25일을 출간일로 잡았으니 더 이슈가 되리라. 원래 책에 대한 편식이 심한 편이라 소설을 잘 안 읽는(소설만 잘 안읽는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나이기에 카인이라는 제목과, 작가, 그리고 막 희생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묶여 있는 어린 양이 그려진 표지를 보면서 성경을 비비꼰 책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넘어갔다. 며칠 지나서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대학 동기가 읽고 감상을 기록한 글이 올라왔다.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알라딘 베스트셀러 중에 이 책이 문학 분야에서 꽤 오랫동안 랭크되는 것을 보면서 약간의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책을 주문하면서 5만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집어 넣었다. 지금은 5만원을 채운다고 특별한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도서정가제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5만원을 채우는 것은 알라디너들의 즐거움이자 목표이자 의무였다.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서 책 주문시 항상 5만원을 채우게 된다.

 

  이렇게 사놓고 책꽂이에 박아두었다가 연휴 기간에 꺼내서 읽게 되었다. 역시 소설책은 쭉쭉 넘어간다. 만약 내가 스물에 이 책을 접했다면 엄청난 고민을 하면서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고민이 되지 않는다. 읽어가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 비하면 가볍다는 정도? 스물에 교회 선배가 던져주었던 사람의 아들을 읽는데에는 몇달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읽다가 던지고 또 읽다가 던지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교회를 다녔던 내게 사람의 아들은 그정도의 충격이었다. 잠시 곁길로 가지만 지금의 이문열씨의 행보를 보면 안타깝지만 사람의 아들이 내게 주었던 충격은 부인하지 못한다.

 

  읽는 내내 도대체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왜 이걸 가지고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내가 기독교인이라서 그런지 소설에 나오는 성경의 이야기들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 책이 내게 더 흥미를 유발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많이 다르다. 기독교의 신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나 로마의 신과 비슷하다. 편을 나누어서 사람들의 전쟁에 끼어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판을 깨는 그런 신의 모습 말이다. 카인은 그런 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고, 대적하고, 저주하고, 신의 계획을 깨버리기 위해 노아의 방주 사건을 이용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적인 고뇌를 가지고 신과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소갈머리 없는 신이라 이름붙여진 인간과 애정결핍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가득차 있는 카인의 입씨름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인간적인 고뇌도 없고, 신에 대한 반발도 없다.

 

  책을 덮으면서 요한복음 1장 1절을 약간 비틀어서 한마디로 평을 내려본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태초에 책임전가가 있었느니라 책임전가는 카인과 함께 있었으니 이는 곧 사람의 본성이니라

 

  소설 속의 신과 카인은 끊임없이 책임을 전가한다. 신은 자신의 계획을 흔드는 카인에게, 카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아벨을 편애한 신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내가 아벨을 죽인 것도 신이 알면서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 소설은 시종일과 신과 카인이 책임이라는 공을 가지고 탁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아마 작가는 카인이 가여웠나 보다. 마지막에는 카인이 강력한 책임전가 스매싱을 날리고, 신은 이에 짜증을 내는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보니 말이다. 물론 소설은 끝나지만 그들의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세상에 카인이 존재하는한, 사람이 존재하는한 책임이라는 공을 가지고 하는 탁구시합은 끝나지 않으리라.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다. 옥시 사태가 그렇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중범죄가 그렇고, 온갖 스캔들이 그렇다. 잘못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는 책임전가 신공, 그리고 그 신공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함께 훈련한 철면피 아우라는 흡사 카인의 한 대목을 현실로 옮겨 놓은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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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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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 카인을 읽은 이후로 갑자기 소설에 꽂혔다. 난 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이다. 소설보다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예전에 사놓고 아직도 읽지 않았던 흑산이 눈에 들어왔다. 김훈의 소설 중에서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에 대한 기억이 꽤 좋았기 때문에 흑산에 대한 기대도 어느 정도 있었다. 게다가 천주교의 박해를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 종교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나 궁금하기도 했다.

 

  한장한장 넘겨가면서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산이라는 제목이 붙었기 때문에 나는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정약전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평소 순교하면서 신앙을 지킨 정약종보다는 다산 정약용에 대한 PR을 더 많이 하는 천주교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던 차에 도대체 김훈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천주교의 박해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가 궁금했는데 이 책은 정약용은 물론 정약전에 대해서도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다. 정약용은 소설에서 잠시 스쳐가는 사람으로 등장하며, 순교로 자신의 신앙을 지켰던 정약종도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물론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정약전의 삶도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까지 정약전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곁다리일 뿐이다. 오히려 김훈은 천주교의 이름모를 신자들, 천주교를 고발하기 위해 잠입했고,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 여동생마저도 죽이는 선택을 한 박차돌의 삶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길갈녀, 아리, 강사녀와 같은 민초에 대해서 비중있게 다룬다.

 

  김훈이 비중있게 다루는 것은 민초만이 아니다. 대비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어찌보면 빼버려도 이야기의 흐름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대비의 교서와 언행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룬다. 또한 흑산도의 별장이라는 쥐꼬리만한 권력을 가지고 마음껏 휘두르고 있는 오구칠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룬다. 책의 절반이 넘어갈 무렵, 나는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그 어느 책보다도 더 묵직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칼의 노래가 그랬고, 남한산성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 책의 묵직한 메시지는 206페이지의 아래의 대목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비전의 조회는 대체로 그렇게 끝났다. 대비는 자신의 말의 간절함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고 백성을 먹일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신료들은 그렇게 느꼈다. 대비의 말은 곡진하고 다급했다. 대비는 자신의 그 다급한 말과 간절한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는 듯했다. 신료들은 대비가 내린 자교를 읽으면서 눈물겨웠다.

 

  왜 그럴까? 이 책을 읽으면서, 대비를 보면서 누군가 생각이 나는 것은? 같은 여자라서가 아니다. 사고의 틀과 주장하는 형태가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간곡한 말과 생각으로 간절히 원한다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것이라는 사고 방식을 대비를 통하여 보게 된다. 자신은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려고 하는데 왜 현실이 바뀌지 않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지도 못하고, 밑에 있는 신하들이 아뢰지도 못한다. 혼자 끙끙 싸매다가 머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짱아지와 굴비만 들이라는 대목에서는 속에서 불이 올라온다. 신하들은 "대비마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지껄이겠지. 무엇을  통촉해야 한다는 말인가?

 

  문득 정약현이 사위 황사영에게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잊지 말거라. 육손이는 그의 아비와 어미가 낳은 아들이다." 곤장을 맞고, 주리를 틀리면서도, 목이 베어지면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리라. 언제 한번 사람 대접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람 대접해준다는 것! 한번 이런 대접을 받으면 평생 떠나지 못하겠지? 김개동이와 육손이가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가 잠시 곁으로 샜지만, 갑갑하다. 정약전의 마음을 내리 누르는 흑산이 여기에 있는 것 같고, 박차돌을 이용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는 포도대장이 여기있는 것 같다.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고 동떨어진 간곡한 말만 해대는 대비가 여기 있는 것 같고, 대비의 전교를 전하는 세 방울의 딸랑 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더 암울한 것은 흑산을 자산으로 바꿀만한 조짐이 지금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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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9 - 원교근공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9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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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버스터 정국 때문에 묻히긴 했지만 테러방지법과 함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문제이고, 문제일 것인 아이텐이 하나 있다.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사드)이다. 눈치가 빠른 모 작가는 과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남북의 핵개발에 대한 소설을 썼던 것처럼 이번에는 사드에 대해서 썼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가인지라 소설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소설가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아이템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는 것은 그것이 꽤나 민감하여서 팔릴만한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인공위성을 발사했다고 주장하지만, 탄도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있어서 북한의 발사 실험은 대목임에 분명하다. 물론 인공위성의 발사체 기술이 탄도 미사일의 발사체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데에는 십본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핵무기 위협 운운하는 것은 잘못 짚어도 한참은 잘못 짚은 것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이를 위한 대비책으로 사드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은 조건반사처럼 "이뭐병"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사드가 왜 문제인가? 왜 중국에서는 그렇게 강경한 어조로 사드 문제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가? 초고단파 레이저가 어떻구 저떻구하는 문제는 내가 군사 전문가가 아니니 뒤로 미루어 두자. 물론 국방부 대변인 브리핑에서 밀덕인 모 기자분께서 국방부 대변인을 와그작 씹어 드셨던 사건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좀더 전문적인 수준의 이야기이고, 상식 수준에서 파단을 해보다.

 

  사드(THAAD)라는 말은 위에서 이야기한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의 약자이다. 유식한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밀덕들이 좋아하는 말은 뒤로 미뤄두고 이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이다. 이 또한 이해하기 쉬운 말은 아니기에 좀 더 쉽게 말해보자면,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미사일 방어체계라고 알면 된다. 이라크전 근처에 우리 나라에 배치된 패트리어트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상대방이 미사일을 쏘면 우리도 미사일을 발사하여 그 미사일을 맞춘다는 의미인데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가성비를 따져본다면 패트리어트는 그다지 경제적이지 않다. 패트리어드 미사일 4개와 발사대가 1개의 유닛으로 대략 8억(대충 8천억 정도? 여튼 무지 비싸다), 게다가 요격 시간은 2분 13초(pac-2의 경우, 개량형인 pac-3로 비슷하거나 약간 짧음), 요격율은 부시가 100%라고 사기를 쳤지만 대략 20%정도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어마 무시한 가격을 자랑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효율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그 수많은 장사정포를 어떻게 다 격추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사드는 어떤가? 한개 포대당 2조원이 들며 미사일 한발당 120-150억 정도라고 한다. 1기당 8발이 장착되고 1개 포대당 6기이니 미사일이 48발, 미사일만 5760(120억으로 잡을 때)이다. 게다가 한국에 필요한 사드 포대가 2개라고 하니 대략 4조쯤 된다. 2015년 한국 국방비 예산이 37조 4560억이라고 하니 국방비의 1/10이 넘는 금액을 사드 포대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이 그냥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 국방비는 육해공 모두 포함하는 금액이고, 인건비와 FX 사업 같은 굵직한 사업도 모두 포함하는 금액이다. 가성비 꽝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게다가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점에서는 패트이어트와 같지만 다른 점은 미사일을 고고도에서 요격한다는 말이다. 낮은 위치에서는 요격을 해도 후폭풍에 휘말리기에 아군도 타격을 입는다. 그렇기 때문에 타격을 주지 않는 높은 곳에서 미사일을 격추한다는 개념인데 배드맨 vs 슈퍼맨을 본 사람이라면 핵무기를 슈퍼맨이 잡고 있는 둠스데이에게 폭격한 이유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지상에 영향이 없기 때문에 핵무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명령을 내렸는데 사드가 이 개념이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은 인공위성처럼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폭격 지점 근처에 이르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서 폭격하게 된다. 내려오게 되는 시점을 계산하여 요격하겠다는 개념이다. 개념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닌데 여기서부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북한에서 미사일을 발사한다. 그렇다면 그 미사일이 성층권을 뚫고 올라갔다가 타격 지점에 수직으로 떨어지겠는가? 가끔 스포를 하고 자기가 특등 사수인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마치 포트리스를 하면서 자신이 훌륭한 포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포트리스는 게임이라 그렇게 고각으로 쏘지만 미사일을 굳이 고각으로 쏠 필요가 있는가? 게다가 노동 미사일을 쏠 필요도 없이 장사정포면 서울이 박살나는데 굳이 비싼 미사일을 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북한은 장사정포로 공격하는데 우리는 태생부터 장사정포를 요격할 수 없는 사드를 그것도 한발에 수백만원도 안되는 포탄을 맞추기 위하여 100억이 넘는 미사일을 쏜다는 말인가. 8발이 한세트면 어림잡아도 800-900억이나 되는 돈을 쏜다는 것인가?

 

  바로 여기에 중국이 발끈하는 이유가 있다. 중국은 사드를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것이다. 사드 2기면 최대한 중국의 많은 부분을 감시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 레이더를 바꾸는 것은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 다고 하는데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교근공을 이야기하면 왜 사드 이야기를 하는가? 말 그대로 미국과 친하고 중국을 견제하자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중국을 견제하기에 앞서서 우리에게는 북한이라는 당면한 과제가 있고 이렇게 본다면 북한을 견제하기 위하여 중국과 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진나라가 원교근공이라는 외교정책으로 정책의 방향을 선회한 것은 천하통일이라는 큰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진은 자기의 강력함만 믿고 좌충우돌했다. 물론 그 막강한 힘 때문에 조금씩 국경을 확장시켜가기는 하지만 효율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진이 원교근공으로 정책을 선회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큰 그림에 맞추어서 외교정책과 전쟁을 수행한다. 사람은 바뀌어 정책은 꾸준하게 유지한다. 그리고 이때문에 진이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국가가 된 것이다. 내가 원교근공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면서 사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의 외교 정책에는 과연 큰 그림이 있는가? 국민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외교적인 큰 틀과 계획이 있는가라는 점을 묻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없다. 오히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원교근공 정책 이전의 진나라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사방에 적을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북한이 우리 나라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을 견제하기 위하여 북한의 배후에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가져가야 할 것인 아닌가? 중국과의 긴밀한 협조없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자금을 동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중국이 압록강 너머로 물자를 대주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외교라인들이 최소한의 상식과 지혜를 가지고 외교 정책을 이끌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판국에 중국을 자극하는 사드를 들여오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더군다가 그것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무리 한류에 역풍을 맞을 것이 두려워서 쯔이를 질타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쯔이는 한류에 역풍을 주지만 사드는 대중국 관계에 역풍을 불러오는데 말이다. 사드는 좌충우돌하는 우리 나라 외교 정책의 실책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제발 외교라인들이 영어 공부, 중국어 공부만 하지 말고 역사 공부도 좀 했으면 좋겠다.

 

*테러 방지법 이후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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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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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 분야를 직업으로 삼고 있지 않지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교회에서 만나는 청년들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똑똑하다. 비록 SKY를 나오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고, 인생의 비전도 분명하다. 그런데 취업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때론 내가 대기업, 혹은 견실한 중소 기업의 사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만약 내가 그런 위치에 있다면 혹시 이들 중에 최소한 몇명이라도 구제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계산 때문이다.

 

  얼마 전에 6개월 단기 인턴을 시작한 녀석이 있다. 나름대로 괜찮은 학교를 나왔고, 성품도 좋다. 교회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책임감도 있고, 동생들도 잘 챙긴다. 외모도 빠지지 않는다. 요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외국어도 괜찮은 수준이다. 작년에 토익시험을 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걸로 봐서는, 그리고 교회 일을 하면서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으로 봐서는 실력도 괜찮다. 그런데 취업이 안된다. 이력서를 넣으면 죄다 떨어진다. 면접까지 가지도 못하고 서류 전형에서 거의 떨어진다. "제가 너무 착실하게 교회만 다녔나봐요. 이력서에 적을 인턴 경력이 하나도 없어요." 씁쓸하게 이야기하는 그 녀석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스타벅스가서 커피 한 잔 사주고, 이야기 들어 주고, "기도할께!" 딱 한마디 했다. 재작년에는 아픈 구석을 찔렀더니 갑자기 펑펑울던 녀석이 이젠 울 힘도 없는지 "괜찮아요!" 한 마디 한다. 부모님들도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서류 전형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묻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6개월 단기 인턴십을 시작했다. 고디바와 바디 앤 배스 상품을 수입하는 회사란다. 처음 3개월은 매장에서, 나중 3개월은 본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를 한단다. 한번 놀러가겠다는 말을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주에 다녀왔다. 내가 생각에는 그 일을 하기에는 그 녀석이 가진 스펙이 차고 넘치기에 안쓰러웠다. 고작 이런 일을 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나 생각했는데, 그 녀석 표정이 많이 좋아보인다. "정사원은 생각도 안해요. 6개월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말을 하는데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냥 씁쓸했다. 그 녀석이 내려준 커피 한잔 마시는데 그 커피가 그 날다라 더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해맑은 표정으로 했던 그 녀석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단 이 녀석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청년들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많기 때문에 비슷한 녀석들을 많이 봤다. 그 녀석들의 반응도 동일하다. 도대체 저 녀석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힘든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왠지 미안해 진다. 그들보다 채 스무살도 더 살지 않은 나이지만 내가 그 녀석들을 그렇게 만든 것 같아서 그런다.

 

  작년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을 봤다. 그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미래에는 나아질 희망이 없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행복하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는 젊은이들의 현실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의 내용은 더 씁쓸하다. 누구나 무업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 지금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히키코모리 시절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눈을 뜨고 갈 곳이 생겼다는 것 이런 말들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와서 박혔다.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청년 실업이 문제라고 외치는데, 도대체 정치권들은 기성 세대들은 이 청년들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은수미 의원이 필리버스터의 마지막에 했던 청년의 연관 검색어가 글자수 세기라는 말이 현실인데 도대체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있는가? "보이스 비 앰비셔스!" 젠장이다.

 

  무업 상태를 맞아, 절망으로, 자기 비하로 치닫고 있는 청년들에게 도대체 이 사회에서 해 주는 일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네가 실력이 없으니 무시당하는 것이라고 실력을 갖추라고 한다. 누가 말했냐고? 이지성이다. 그 날 이후 청년들에게 쓰레기라고 이지성 책 읽지 말라고 기회가 오면 말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해봐서 아는데 눈이 높으니 눈을 낮추라고 한다. 누가 말했는지 아는가? 위대하신 MB각하시다. 어떤 사람들은 아프니까 청춘이고, 흔들려야 성장한다고 한다. 누군지 충분히 감이 올 것이다. 이 시대 청년들의 멘토라고 일컬어지는 김난도이다. 왜 아파야만 청춘이고, 흔들려야만 성장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108배를 하고 나면 괜찮아진다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한다. 누구냐고? 법륜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말하는 혜민도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청년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청년을 국회의원으로 만들려고 한다. 누구냐고? 박근혜 대통령이시다. 그런데 한번 쓰고 버리는 사석으로 취급한다. "이준석, 손수조" 이미 쓰고 버린 돌이다. "조은비?" 이번에 쓰고 버릴 돌이다. 청년 문제에 대해 대변한다는 사람이 청년 실업 문제도, 노동 문제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얼짱이라는 말만 한다. 셀카로 도배한다.

 

  청년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 청년 문제를 청년들에게 돌린다. 그리고 요즘 것들은 배가 불렀다, 문제다, 싸가지가 없다, 근성이 없다라는 말로 그들을 싸잡아 비난한다. 자신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생각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취업하지 못하고 빌빌대는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것 이것들이 그들의 죄는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책임을 추궁하려면 이 문제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청년팔이를 하면서 이익을 얻는 자신들에게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에서 무업 사회가 문제란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하지만 아직 큰 효과를 얻지 못하고, 사회의 흐름을 만들어 가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 한다. 그런데 난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일본이 부럽다. 그나마도 어디인가? 양복을 마련해 주고, 컴퓨터를 가르쳐 주고,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정직원까지 채용되도록 끊임없이 도움을 주는 그런 시스템이 마냥 부럽다. 한국이라면 어떻겠는가? 양복이 없어서 면접을 못본다? 그럼 아르바이트 해서 양복을 사라고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라고 하겠지. 그러면서 양복은 고가의 양복을 사는 것이 좋고, 코디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말하겠지?

 

  제발 그들의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처진 그들의 어깨에 무책임한 놈, 배부른 놈이라는 편견과 무거운 짐을 더 짊어지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커피 한잔 사주고 같이 울어 줄 눈꼽만큼의 동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그런 것이 그들의 죄가 아니지 않은가?

비전: 모든 청년이 사회에 소속되어 `일하기` 및 `일을 계속하기`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
미션: 청년과 사회의 연결(299p)

매일 갈 곳이 생긴 것,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편했습니다.(274p)

`일`을 하는 고생은 히키코모리 시절의 고생에 비하면 정말 별 게 아니죠.(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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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4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4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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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황우여 의원을 포함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 선진화법이 위헌이라면서 헌재에 소를 제기했다는 기사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내가 느낀 심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뜨악"이다. 내가 알기로 당시 국회 선진화법은 여야가 합의한 것이며, 그 안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이 당시 원내대표였던 황우여 의원을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국회에서 찬성표를 던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궁금한 사람들은 조금만 키보드를 만지작 거리는 수고를 하면 당시 어떤 맥락에서 누가 참여하였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처럼 종이 신문을 다 뒤져야 하는 수고를 인터넷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과거에 자신들의 행동을 잡아 뗄 수 없어서 곤혹스러워 하는 정치인들이 꽤 많이 있다. 비단 이뿐이랴. 경남 새누리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무상급식을 공략으로 들고 나오고 있는데 그들이 과거에 무상급식에 줄기차게 반대해왔던 것 또한 약간의 수고를 통하여 자세하게 알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욕을 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가 말을 해 놓고 아닌척 뒤집어 엎어 버리는 태도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즈음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카 선생의 말을 주절대면서 어려운 말을 떠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직관적으로 역사란 무엇이며,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주절거리고 싶을 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기록이고 기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역사e 4권은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 잊혀져간 역사, 기록되어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과거 모습 가운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들, 잊혀져 갔지만 다시 기억해 내야할 것들,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 투철한 기록 정신으로 임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들도 많이 있고, 지식e처럼 이 책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만족감을 얻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유체이탈 화법의 달인인 두 통치자의 시대를 지나가면서 기억과 기록으로서의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 나왔다는 점이다. EBS가 은근히 안티요 종북좌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장 일어나서 이 책을 불온도서로 지목해야한다고 시위를 해야하지만 전혀 그런 움직임은 없다. 그들은 이 책도 자신들의 기억처럼 엄청난 휘발성을 자랑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꽤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라들이 이 책을 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문학책치고는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고등학생들에게 권장 도서로 많이 읽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보같은 정치인들은 우리가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기억과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각하게 되고, 키보드를 만지는 약간의 수고를 할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상상력마저도 없는 것 같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하여 기억과 기록의로서의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자각했으며 좋겠다는 지극히 불온한 생각을 해본다.

 

  이 책에 대한 한마디 평을 하자면...

 

  "돈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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