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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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윤동주 시인을 참 좋아한다. 자기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며 갈등하는 그의 치열한 시가 좋고, 소년처럼 수줍게 세상을 바라보고 노래하는 그의 동심이 좋다. 그런 그의 시 가운데 내가 유달리 좋아하는 시가 있다.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라는 그 한 구절에 내 마음이 콱 박힌 것이다. 별을 노래 하는 마음이라...어떤 이는 별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어떤 이는 우주를 향한 꿈을 키워가고, 어떤 이는 사랑을 속삭인다. 별을 동경과 신비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윤동주가 말했던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세이건의 책을 보면서 윤동주의 서시를 얼마나 읊조렸는지 모른다. 세이건이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책 읽는 자세를 고쳤던 것이 몇번인지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라면서 수도 별을 봤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인류의 이야기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 밤 하늘의 별을 안 본 사람은 없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저 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별의 역할은 무엇이지, 누가 저 별을 저 곳에다 가져다 놓았을까 등등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문학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신화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는 신화적인 설명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고, 오늘날에는 과학적인 설명이 주를 이룬다는 차이는 있지만 최대한 성실하게 진심을 담아서 설명했다는 것에는 동일하다.

 

  칼세이건은 이 책을 통하여 과거의 비과학적인 점성술들을 비판한다. 별들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비과학적인 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별은 어떤 과정을 밟아가면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학이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모토를 신봉하던 그 시대이니만큼 그는 자기의 신념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폄하하던, 그리고 깎아 내리던 별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들 또한 진심으로 별의 신비에 대하여 경의와 경건함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다루자면 세이건의 방법과 그가 비판했던 방법들이 방향만 다르지 자세에서는 동일하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철저하게 과학자의 시각으로 우주를 분석하는 세이건의 모습을 보면서 이정도면 또 다른 종교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원래 텔레비전 다큐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던 것을 책으로 풀어 놓은 것이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양서적으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중 앞 머리에 위치한 책이다. 어떤 이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읽지만 재미 없다고 덮어버리고, 어떤 이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덮어버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이 우주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여러 잡지를 통하여 접했을 것들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가 첫 방영된지 벌서 30년이 흘렀으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우주 과학 분야에서 이 시간은 거의 기원전과 같이 먼 시간이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이건의 이 말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너와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수십 억, 수백 년의 우주 시간 속에 바로 지금,  그리고 무한한 우주 속에 같은 은하계, 같은 태양계, 같은 행성, 같은 나라,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당신을 만난 것은 1조에 1조배를 곱하고 다시 10억을 곱한 확률보다도 작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시선이 흔히 생각하듯이 날카롭고 차갑지 않고 이렇게 뜻할 수도 있다니!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를 탐색하는 그의 눈은 우주 이외의 것들을 하찮다고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들을 우주처럼 무겁게 여긴다. 우주가, 더 나아가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의 선물인 우리의 이웃에 대하여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세이건의 모습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우주 산업이란 이름 하에, 나로호를 쏴올리기 위하여 그렇게 애를 쓰지만, 그것이 순수해 보이지도 않고, 경이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신비해 보이지도 않는 이유 또한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세이건의 책을 덮었지만 난 여전히 오늘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런데 별이 보이지 않는다. 시대가 별을 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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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3-08-1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제가 좋아하는 스탈은 아닌데, 읽을 때 큰 감동을 얻었던건 기억이 나네요.

'너와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위에 인용하신 글, 너무 좋아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한테, 오늘 내일 모레 이 이야기 써 먹어야겠어요.

너와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saint236 2013-08-17 12:14   좋아요 0 | URL
칼 세이건이 우주를 대하는 태도는 경건하다 못해 종교적이라고 할 수도 있더군요. 한용운이 말했던 것처럼 칼 세이건에게는 우주가 님인가 봅니다.
 
오키나와의 눈물 -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메도루마 슌이 전하는 오키나와 '전후'제로년
메도루마 슌 지음, 안행순 옮김 / 논형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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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시절에 구리바야시 데루오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차별받는 그리스도"라는 책인데, 이 책을 통해서 일본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구리바야시 데루오는 부라쿠민 출신이다.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부라쿠민이 뭐야?"라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부라쿠민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부라쿠민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말하는 수드라와 달리트의 중간 정도라고 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수드라보다는 달리트 쪽에 더 가깝겠지만 말이다. 우리 역사에 조금 밝은 사람은 과거 우리 나라에서 천민이라고 부르면서 인간 이하로 취급했던 무당, 백정, 노비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근대화를 거치면서 사라졌던 이 천민이라는 신분이 일본에서는 아직까지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평등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일본이지만 암암리에 신분제가 존재하고 있다. 2009년 구글 어스에서 현대 지도와 옛지도 겹쳐보기 서비스를 진행했었는데 이 때 과거 부라쿠민들이 살던 주소를 더러운 주소라면서 인터넷에 뿌려댔던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그런거 없다."라는 말로 일관하지만 포털사이트에 부라쿠민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그 증거가 수도 없이 발견된다.

 

  그런데 일본에는 차별받는 대상이 부라쿠민만은 아니다. 부라쿠민은 일본 민족 내에서 일어나는 신분 상의 차별이다. 그렇지만 다른 차별의 대상들은 일본의 제국주의 때문에 발생한 민족적인 차별이다. 그 차별의 대상은 북쪽으로는 아이누, 남쪽으로는 오키나와, 서쪽으로는 조선이다. 이 세 민족은 여전히 차별을 받고는 있지만 그 처지와 형편은 다르다. 조선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북한과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재일 조선인들이나 그들의 지인이라면 이의를 표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는 견지에서 세 민족 중에 가장 형편이 낫다. 비록 정치적으로 애매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소통하고 비빌 언덕이라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봐야 일본 사람들에게 거기서 거기이지만 말이다. 일본의 가장 북쪽인 북해도와 사할린에 거주하는 아이누는 솔직하게 존재를 잘 모르겠다. 자기가 아이누이기를 밝히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누의 인구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도 잘 모른다고 한다. 반대로 남쪽으로 내려오면 이 책의 주인공 오키나와가 있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쿠국으로 불리던 독립국가였다. 류쿠국이라는 이름이 조선의 실록에도 분명하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임이 분명하다. 오키나와는 19세기 초에 일본에 합병된 아이누보다 조금 늦게 19세기 후반에 일본에 합병되었고 일본이 되기를 강제당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 철저하게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그들은 일본 내에서 이등시민이다. 전시에는 강제로 동원되어 총알받이가 되었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주일 미군 기지에게 땅을 내어 주어야 했다. 어찌보면 일본의 평화 헌법과 번영은 저자의 주장대로 오키나와의 눈물을 전제로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오키나와를 통하여 제주를 만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제주도는 처음부터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간간히 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하기도 했지만 꽤 오랜 시간 탐라라는 이름의 독립국가로 존재하다가 세종 대에 이르러 탐라의 귀족을 평민화하면서 완전하게 합병되었다. 이런 역사의 배경을 가져서일까 제주도는 한국의 오랜 역사 동안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말을 생산하는 기지로,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 이용되었으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는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핍박을 받았다. 제주도 인구 9명 중 1가 죽을 정도로 대량 학살이 일어났던 4.3 사건 말이다. 이것 때문에 오늘날에도 제주도에서는 한 마을에 제삿날이 같은 집들이 꽤 여러집이라고 한다. 이런 제주의 아픔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 없이 어느새 제주도는 오키나와처럼 환상의 섬, 남국의 섬으로 불리면서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관광 외에 다른 사업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그 결과 청년 실업이 가장 높은 곳의 하나가 되었다. 제주도의 시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철저하게 오키나와가 걸었던 길을 따라간다. 제주도에 해군 기지 건설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 원주민의 목소리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공권력으로 밀어 붙이고, 폭탄으로 제주도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구럼비를 깨버리면 될 뿐이다. 일등 국민과 이등 국민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논리가 철저하게 강요된다. 물론 대한민국 본토인들의 관심은 희박하다. "멀리 제주도인데, 지금 나와 상관이 없는데, 나라를 위한다는데 저런 것쯤 못해주나?"라면서 그들에게 침묵으로 희생을 강조한다.

 

  어쩌면 그렇게 오키나와와 제주도가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던 까닭이 이것이다. 오키나와와 제주, 제주와 오키나와! 그 둘은 어쩜 그렇게도 슬픈 운명을 닮았는지...오키나와가 아직 전시이듯이 제주도 아직 전시이다. 그들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지금도 흘리고 잇는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은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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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8-17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으로 횡으로, 사람의 역사에는 종종 닮은 꼴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어이없게 침략에 성공한 피사로나 아메리카 인디언을 악랄하게 눌러버린 유럽인들을 생각나게 하는 글. 사람들은 차별받아 고슴도치를 잡아먹는 집시나 소를 먹는 인도인, 쓸개나 못먹다 버린 내장을 먹는 부라쿠민으로 드러나곤 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많이들 잊고 살기도 하지요. 4.3 사건은 영화 지슬에서도 다루었다고 하던데 어쩐지 saint236님은 그 영화도 보셨을 듯한 느낌! (혹시나 안보셨으면 앞으로 보시면 좋아하실 듯한 느낌!-을, 복숭아 나무 있지?-없는데요-있었으면 큰일날 뻔 했어! 버전으로 덧붙입니다.)

saint236 2013-08-17 16:50   좋아요 0 | URL
소개만 받고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꼭 한번 봐야겠네요. 구리바야시 데루오라는 신학자를 통해서 부라쿠민에 대해 처음 접하고 얼마나 놀랍던지요. 전혀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고장 난 거대 기업 - 우리 시대 기업에 따뜻한 심장 달기
이영면 외 지음, 좋은기업센터 기획 / 양철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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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4월 프로메테우스 출판사에서 한스 바이스와 클라우스 베르너가 쓴 나쁜 기업이라는 책이 나왔다. 까만 표지에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기업들의 로고를 잔뜩 장식한 책으로 세계의 내노라하는 거대 기업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부를 쌓았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는지, 그 과정에서 그 기업들이 어떻게 불법을 저질렀으면, 어떻게 인간을 도구화했는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이 내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의 일등 기업이라고 하는 삼성이 당당하게 그 책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역시 삼성! 외국 사람이 기록한 책에도 그 이름으로 올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고장난 거대 기업은 말하자면 나쁜기업이라는 책의 청소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이 씌여지던 시기나 혹은 그 이후의 일들을 제외하고는 나쁜 기업이라는 책과 이 책에 동일하게 등장한다. 네슬레와 나이키가 대표적인데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고장난 거대기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지면의 차이도 나고 타겟 독자층이 청소년이다 보니까 좀더 쉽게 기록하기 위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디테일들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중요하지 않은 디테일을 생략했다고 해서 주된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집고 넘어간다.) 여러가지 내용들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어떠한 횡포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꽤나 객관적으로, 그리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평점으로 별 세개, 즉 보통이라고 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과연 목적에 맞게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읽히게 될까라는 점이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많이 바쁘다. 시험 성적 1점이 자기 인생을 결정한다고 굳게 믿고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에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간단하게 스킵하는 스킵신공이 대단하다. 국사도 스킵하고, 교양도 스킵하고, 인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들어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 붐이 분다는 말을 많이하는데 착각하지 마시라. 입시에 도움이 되니까, 면접에 도움이 되니까 읽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을 쓰면서 목적을 좀더 분명하게 두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의 잘못된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할 것인지, 아니면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살펴 볼 것인지 조금만더 목적을 세밀하게 선정했다면 더 큰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삼성과 BP의 태도를 비교한 것이다. 모두 똑같이 대규모의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켰지만 이에 대한 대응방법은 정반대였다. 한쪽은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면서 꼬리자르기와 모르쇠로 일관하고, 다른 쪽은 자신들의 실책을 분명히 인정하면서 최대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지는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비극적인 사실은 한국에서 만큼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꼬리 자르기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삼성 중공업의 실책을 온 국민들이 나서서 수습해 주었지만, 삼성 중공업은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고 있으면, 여전히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아리 눈꼽만큼의 보험금을 받아서 배상하면서 자신들은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삼성이야말로 책의 제목처럼 고장난 거대 기업이 아니겠는가? 그들에게 어떻게 따뜻한 심장을 달아 줄 것인가? 달아 줄 수는 있는 것일까? 책을 덮은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도 횡설수설하면서 끄적거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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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7-18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무엇이 합리적인가가 문제인데, 한국법/정부/사회풍토에서는 삼성의 방법이 효율적이겠고, 외국에서는 BP의 방식이 효율적이라서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외국의 기업이라고 삼성보다 더 착하다기 보다는, 실제 피해액수보다 천문학적인 액수로 부과되는 징벌적 피해보상이나 집단소송제도가 무섭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거죠. 한국에서는 권력과 부가 있는 피의자는 피해자보다도 더 보호되고, 99%가 1%를 상대할 법적인 제도와 절차가 부족한 것이죠.
그나저나 1점을 소중하게 아껴서 학생때부터 경쟁해서 가고자하는 곳은 대기업/공기업 등등이죠. 이게 진짜 한심한거에요 사실...-_-: 우리들 모두 포함해서요.

saint236 2013-07-18 10:45   좋아요 0 | URL
그 사실이 가장 씁쓸하죠. 한국에서 모르쇠와 떠넘기기로 일관하게 기업들의 온갖 편의를 다 봐주는 이런 풍토를 아무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말하기에 앞서서 경제 정의를 먼저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 경제 민주화와 경제 정의는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처음 읽는 인도사 - 다양함이 공존하는 매혹의 아대륙, 인도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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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하면 떠오르는 대로 10가지만 대답해 보자.

 

   1. 마힌드라 - 쌍용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나 친숙한 이름이다. 나도 쌍용에 관심이

                      꽤나 있기 때문에 인도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랐다.

 

  2. 카스트제도 -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분류되는 카스트 제도는

                        인도할 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항목이다.

 

  3. 신도버린 사람들 - 아웃 오브 카스트! 달리트에 관한 책으로 저자 또한 달리트이다.

 

  4. 발리우드 - 할리우드에 비견되어 성장한 인도의 영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5. 힌두교 - 인도의 대표적인 종교이다.

 

  6. 소 - 인도사람들이 소를 숭배하고,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꽤 유명한 이야기이다.

 

  7. 마하트마 간디 - 인도에 관해서 이 사람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8. 갠지스강 -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강!

 

  9. 굽타 왕조 - 인도의 고대 왕국 중에 가장 유명한 왕조이다. 마우리아 왕조로 불리우며,

                      왕조의 창건자 찬드라 굽타의 이름을 따서 굽타 왕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10. 깊은강  - 일본 작가 엔토 슈사쿠의 책! 이 책을 통해서 인도를 처음 저밯게 되었는데

                    결론은 깜깜하다는 것이다.

 

  인도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들을 10가지 뽑아 보았다. 간단하게 설명을 달았는데 어느 것은 알면서 간단한 설명을 단 것도 있지만 어느 것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을 할 수 없어서 저 정도만 기록해 놓은 것도 있다. 한번 종이를 펴 놓고 시도해 보길 바란다. 당신은 도대체 인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신이 기록한 인도에 관한 10가지는 무엇인가? 아마도 저기에 BRICS가 들어가지 않겠는가? "깊은 강"을 떠 올리는 사람은 거의 드물 것이며, 세계사를 착실하게 배운 사람은 아마도 세포이 항쟁이나, 영국의 식민지 정도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현재의 인도에 대해서 많은 부분들이 생각이 날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2위의 인구 대국, 세계에서 수위로 꼽는 IT 강국, 파키스탄과의 신경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보라면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 일본에 대해서는 청산유수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인도에 대해서만큼은 이렇다고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분명 아시아에 속해 있는 나라이고, 한국의 쌍용차를 인수할 정도로 가까이 들어와 있는 나라인데 정작 우리는 그 가까이 들어와 있는 인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도를 흔히 신화의 나라, 신비한 나라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록 잘 알지 못하니 여전히 신화로, 신비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저 세계사 시간에 한번 배우고 지나가는 세계의 국가 가운데 하나 정도로만 알고 있지 않은가? 아마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라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보다는 인도가 훨씬 더 멀지 않겠는가?

 

  이 책은 이러한 인도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인도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있다. 처음 읽는 역사 시리즈의 특성상 자세하게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수준과 양의 한계 때문에) 간략하게 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인도에 관한 책 중에 이만한 책을 찾아볼 수 없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인도를 막 여행하고 온 다음에 이 책을 기록했다고 하니, 책의 내용이 의외로 디테일한 면이 있는 것도, 생생한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다. 게다가 이 책은 흔히 지나가기 쉬운 근현대사를 꽤나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어떤 운동들이 있었으며, 마하트마 간디 외에 어떤 지도자들이 있었고, 어떤 당들이 어떤 정치적인 이해를 통하여 결합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적고 있으니 오늘날의 인도를 이해하는데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중고등학생들, 혹은 인도를 여행해야 하는데 시간상 자세하게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읽어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혹은 나처럼 자신의 잉력(인력이 아니라 잉력이다. 잉여의 힘!)을 역사에 쏟아붓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처음 읽는 일본사를 타겟으로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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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7-17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과 10을 제외하면, 저도 비슷하네요. 다만 발리우드를 생각하면 성장보다는 가끔 예전의 international 체널에서 나오던 인도 뮤비가 생각나는 것이죠..ㅎㅎㅎ 개인적으로 더운 날씨를 좋아하지 않아서, 관심이 가는 나라는 아닙니다.

saint236 2013-07-17 07:33   좋아요 0 | URL
음...3번은 의외인데요. 3번과 10번은 상당한 사견이 포함된 것인데요...한국도 덥네요. 습하고...인도 영화의 특징은 뜬금없는 노래와 춤이죠...제가 인도 영화와 친해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transient-guest 2013-07-17 13:02   좋아요 0 | URL
인도영어 액센트는 종종 joke의 소재가 되고, 실제로 인도계 미국인 코미디언들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인도 영화보다는 헐리우드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도 봅니다.ㅎ

saint236 2013-07-17 22:31   좋아요 0 | URL
힝글리쉬라는 것인가요?

transient-guest 2013-07-18 01:47   좋아요 0 | URL


이거 한번 보세요. 인디안 영어로 먹고사는 코미디언입니다.ㅎ

saint236 2013-07-18 10:47   좋아요 0 | URL
이거 무지무지 보고 싶은데 지금 사무실이라....조금 있다가 점심시간에 큰 소리로 털어 놓고 봐야겠네요...감사합니다.

oren 2013-07-1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에 대해 막연히 떠오르는 낱말들은 있지만, 직접 가보지 않고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신비한 매력들은 도저히 감을 잡기가 어려울 듯싶어요.

저는 인도엔 여태 가보지 못했지만 올해 봄에 인도와는 무척 가까운 네팔을 다녀온 덕분에 그나마 어렴풋이 인도의 분위기를 조금은 알 것도 같더군요.

인도 영화 중에 인상깊었던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세 얼간이'도 떠오르고,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오래된 영화도 떠오르네요.

saint236 2013-07-18 12:03   좋아요 0 | URL
인도나 네팔, 티벳같은 나라들이 우리에게 신비하게 느껴지는 것은 막상 가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네팔을 다녀오셨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만약 당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많이 들어 본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중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여탕에 들어가 보겠다." "김태희(연예인의 이름만 바뀔뿐) 집 주소를 알아서 무조건 들어가겠다."라는 것이다. 할로우 맨이라는 영화에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투명인간이 된 남자 배우가 맞은편에 사는 여자(물론 외모와 몸매가 남다른)의 집에 들어가 화학적 거세가 필요한 행동을 한다. 흔히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는 윤리라는 시스템으로부터 해방되는 초인처럼 취급된다. 폴 베호번 감독의 할로우맨에서는 다만 악역으로 나올 뿐이지 원래 투명인간도 슈퍼 히어로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원해서, 혹은 인간 이상의 존재로 투명인간이 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반대의 경우로 투명인간이 되는 경우에는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 그 존재감이 공기보다 더 가벼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초등학생이 지은 시가 있다.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시이다.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버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내용이 씁쓸한 것은 둘째 치고 이 아이에게 아빠는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는 존재이냐를 따져보자. 엄마와 경쟁하는 것은 둘째치고, 강아지나 냉장고보다 못한 존재가 아빠인 것이다. 이 아이의 일상에서 아빠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빠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왕따라는 현상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한 아이를 다수의 사람들이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의 몸이 실제로 투명해 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임 속에서 무시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인정맏지 못하는 존재! 이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인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탄인에 대한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투명인간 만들기"라고 하겠다. 분명히 오랜 세월 동안 그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땅이 없는 민족에게 땅을, 민족이 없는 땅에게 민족을"이라는 슬로건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생각을 대변한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라도 집을 허물어 뜨리고, 올리브 나무를 스스로 베어 버리게 만들고, 팔레스탄인의 역사를 전혀 가르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팔레스타인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물론 그들이 완전히 지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다만 그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우리와 같이) 팔레스타인의 존재감을 아주 희박하게 만드는데에는 성공했다.

 

  이스라엘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외에,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왜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지, 유엔은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등등 자세한 내용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면서도 교회에서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으며, 미국이 편드는 이스라엘을 편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조갑제나 지만원 같은 이들에게 이스라엘은 한국이 닮고 싶고 닮아야 하는 국가로 예찬받지 않았는가? 작지만 주변 아랍국들을 앞도하는 전투력, 잘 정비된 예비군 제도, 국가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애국심 등 이스라엘에 대한 예찬은 그렇게 낯선 것들이 아니다. 거기다 더하여 탈무드가 자녀교육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보니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절대 선이요, 닮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면서 프리메이슨의 음모론을 외치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낯선 존재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어디에도 팔레스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은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존 사코는 이렇게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의 존재감을 소환한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제목만 보고 존 사코가 팔레스타인을 일방적으로 편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팔레스타인 소년들에게 삥 뜯기는 장면이라든지, 내가 봐도 한심스러운 팔레스타인 남자라든지, 무시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여성 인권의 현주소가 있는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그가 걷어다닌 팔레스타인 땅은 지저분하고, 초라하며 도로 한복판에 물 웅덩이가 생기기 일쑤이다. 가는 곳마다 대접하는 설탕 범벅 차는 보는 내 속도 니글거리게 만든다. 감옥 다녀온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다른 이들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의 오만과 편견, 떠벌림은 그저 웃음만 나오게 만든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상당 부분 신뢰하게 되었다. 왜? 존 사코는 이스라엘에 의하여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팔레스탄의 일상을 담담하게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분쟁지역,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마겟돈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분쟁과 갈등, 민족주의, 폭력,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무시 등등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악한 것들이 뒤범벅되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의 성이라를 이름을 가진 예루살렘!

  과연 우리는 이곳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어느 한편을 편들기 전에 먼저 이곳을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특히 이스라엘을 편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혹은 지금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스라엘의 논리에 빠져서 팔레스타인을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한번 살펴보자.그리고 난 후에 조심스럽게 판단해 보자. 이것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지역에 대해 가져야할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겠는가?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울지마 팔레스타인(시대의창/홍미정,서정환)"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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