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5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5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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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식e 시즌 8이 나온 시점에서, 그리고 리뷰까지 작성한 시점에서 지식e 시즌 5를 꺼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밀린 숙제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무엇인가 끄적거리고 싶은데 요즘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읽고는 있지만 바쁜 일이 많아서 진도가 더디게 나가고 있기 때문에 리뷰를 작성할 책을 고르다가 딱 걸린 것이 이 책이다.

 

  지식e는 나올 때마다 우리의 감성을 많이 자극한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게도 지식e는 우리에게 가슴을 열고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책이 우리에게 주문하는대로 나아가다보면 어느샌가 우리가 다연하게 여기고 지나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부조리들이 사실은 사회 구조적인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 사실은 우리 선배들이 목숨 걸로 싸워서 얻어낸 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즌 5도 10가지의 꼭지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인간에 대한 10가지의 꼭지와 인터뷰들, 인생에 대한 10가지의 꼭지와 인터뷰들은 우리에게 딱 한가지를 묻는다. "인권"이다.

 

  2009년 이 책이 나왔다. 이 책이 나올 때의 기사들을 하나씩 검색해 보면서 굵직한 것들을 몇 가지 추려보면, 쌍용자동차 파업, 미네르바 사건,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미디어 관련 법과 장자연 자살, 유명 방송인들의 하차 내지는 방송활동 위축을 들 수 있다. 요즘들어 역사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 유행하는데 당시를 표현하자면 인권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개인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하고, 자기와 뜻이 맞지 않으면 종북으로 혹은 좌빨로 몰아서 전직 대통령마저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했다고 해서, 혹은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해서 노무현 대통령 관련 행ㅅ를 맡았다고 해서,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했다고 해서 폴리테이너라는 죄명으로 강제 하차했다. 자신의 생각을 썼고, 그 생각이 사회적을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미네르바는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대학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하여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은 빚의 노예가 되거나 알바를 하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국가 인권위 문제도 불거졌고, 오죽하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인권단체들로부터 인권 추락상까지 받는 영예를 안았겠는가?

 

  이런 시기에 지식e 시즌 5는 인권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은 인권이 지켜지는 나라인가? 이 질문은 회색의 책표지로 포장되어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 하필이면 왜 회색일까?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지식e를 보면서 그 표지의 색에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나마 발견하게 된다.

 

  회색과 은색의 차이가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들은 네이버에서 회색과 은색의 차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라. 많은 사람들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차이를 말하는 사람도 회색은 조금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모두 포함하는 색이며, 은색은 밝은 회색 정도로 말한다. 둘의 차이는 광택의 유무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과거에는 은색이 하얀색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 하얀색이 나오게 되었고, 은색은 하얀색이라는 범주에서 밀려나 회색에 포함되었다는 류의 설명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듯 싶다. 얼마전 아이들과 색칠 공부를 하던 중에 회색으로 칠해야 할 부분을 은색으로 칠했다. 내 생각에는 칠하면서도 이상할 것 같았지만 칠해 놓고 나니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후로는 회색을 칠해야할 자리에 아무런 고민없이 은색을 칠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이 책을 바라본다. 그러자 인권에 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책의 표지가 회색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책의 표지가 회색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은색으로 보이고, 다시 어느 순간에는 회색으로 보인다. 은색화 회색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면서 이 책의 표지 색은 무엇이냐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표지 색의 경계가 오락가락하면서 인권에 대한 질문과 생각도 오락가락하게 된다. 이것은 인권인가 차별인가, 이것은 정당한 문제 제기인가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인가? 어떤 사람에게는 정당한 문제제기 이겠고, 어떤 이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역차별일수도 있다.

 

  인권의 문제가 그렇게 복잡하다. 경계가 미묘하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인권이라고 하는데 인간이라는 의미 자체도 모호하고, 당연한 이라는 말의 의미도 모호하다. 과거에 인간은 서구 사회에서는 백인을, 동양 사회에서는 황인종(백인과 황인종이라는 말 자첻 지극히 차별적이고 주관적인 말이다.)을 인간으로 봤고 나머지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 야만인이었다. 당연하다는 말은 또 어떤가? 이성애자에게 동성애는 당연히 비정상이고, 동성애자에는 자신들의 권리이며, 양성애자에게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장할 것이며, 그 의미를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색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도 은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은색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도 회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권이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할 때 인권이라고 말할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에 관해서 말하려고 한다면 세 번 네 번을 생각한 후에 말해야할 것이며, 말하고 난 후에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부분을 기꺼이 고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딱 편을 가르고 이것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문제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가지만 묻자. 빨갱이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 순간에도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을 한다. 지식e 시즌5에는 이런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하는 그 생각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주장하기 전에 정말 그런지, 변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지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계에서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치우칠 것이 아니라 오락가락해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재점검해봤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좌시하지 않겠다. 용납하지 않겠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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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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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한 녀석으로부터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교회에서 가르치던 녀석인데 꾸준하게 책을 사주면서 신경을 썼더니 고맙다고 문화상품권을 준 것이다. 나는 문화상품권이 생기면 거의 책을 구매하는데 사용하는데 아마 이 녀석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받자 마자 책을 샀는데 교회 청년이 준 문화상품권을 가지고 구매한 책이 혜민스님의 책과 법륜스님의 책이다. 내가 불교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작년 중반기에 혜민스님과 법륜스님의 책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구매했을 뿐이다.

 

  특히 스님의 주례사는 꼭 읽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주저없이 구매를 했다. 스님이 주례사를 한다는 것도 웃기지만, 그 주례사에 관한 책을 많은 알라디너 분들이 읽고 리뷰를 작성했기 때문에 호기심 반, 호의 반으로 구매를 했다. 처음 읽어 나가면서 꽤나 공감을 했던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느 부분에 가서 탁 하고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아마도 종교적인 부분이 가장 큰 것 같고, 다음으로는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고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면서 덕을 보려고 하지 마라, 오히려 자신이 상대방에게 덕을 끼치기 위해서 노력해라, 서로 양보하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결혼 생활을 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과 많은 부분이 통하기 때문이었고, 결혼에 대해서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많은 청년들이 나에게 묻는다. "누구와 연애를 해야하고, 결혼을 해야하나요?" 그러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녀석들에게 말한다. "네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마음이 편한 사람이야. 네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사람이 결혼하기에 가장 좋은 사람이야." 내가 아내와 결혼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한참 집안 일로 어렵고 힘들 때 아내를 만났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초등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고, 내 모든 연애사를 다 알고 있었지만 아내도 나와 만나는 것이 편했는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티격태격하기는 했지만 만 6년을 살아오면서 싸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다투었던 적은 없었다.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내가 조심하고, 내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내가 조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결혼이란 서로 양보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이다.

 

  그런데 법륜스님의 책을 읽어가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수행해라, 참선을 하고, 상대를 생각하면서 절을 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미움들이 사라질 것이고 문제가 해결될 방법이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가장 조심스럽고도 아직도 고민하는 부분들이 기도에 관한 부분인데, 바로 이 부분이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기도하면 지금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부분은 단순하게 기도하면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들이 해소된다는 문제는 아닐것인데 108배를 하고, 천배를 하면 된다는 식의 처방은 마치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답답하다.

 

  게다가 법륜스님이 주로 권하는 대상이 남성이 아닌 여성인 것이 문제이다. 어떤 분들은 그분이 남성 우월주의적인 사고를 깔고 그런 답들을 내 놓는다고 비판하지만 나마저 그렇게 미판하고 싶지는 않다. 내 생각에 그분이 그렇게 말한 것은 주로 가정의 문제를 야기하는 사람들이 확율적으로 남성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이 들며, 그분이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제 넘게 법륜스님에게 그건 이상이고, 현실은 다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주저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밖에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도, 좋은 생각이라고 해도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키는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갈등이 있다. 상대방을 사랑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복잡한 사람의 마음인데 칼로 자르듯이 그렇게 해결책을 내 놓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결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이것이다 저것이다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명쾌하게 결혼에 대한 해답을 주는 이 책은 현실을 잘 모르고 이상적인 이야기들만 늘어 놓는 것이라 생각이 들 수밖에...

 

  책의 많은 부분들이 마음 속에 간직할만한 말이고, 삶에서 기억해야할 말이지만(그래서 별점을 세개 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명쾌하게 해결책을 찾는다면 4주후에 봅시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길지 않은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결혼생활을 통하여 내가 얻은 결론은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어렵더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결혼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면, 혹은 주례사를 부탁한다면 가능하면 사양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사준 녀석에게 한 마디 결혼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행복해라. 그러기 위해서 많이 양보해라. 혼자 사는 것과 둘이 사는 것은 다르다."라는 말이다. 비록 가슴 뛰는 연애 감정은 사라져 버릴지 모르지만 결혼은 가슴뛰는 감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유지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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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2 - 영웅의 탄생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2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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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랫만에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끄적거려본다. 어쩌다가 하나를 건너뛰게 되니 이 책의 리뷰는 계속 장성하기 못하게 되어서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마무리짓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거기다가 더하여 영웅이라는 말이 요즘 내게 화두와 같은 단어이기 때문에 더더욱 끄적거릴 필요성을 느낀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슈퍼맨, 엑스맨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렇다 이들은 Hero라고 부르는 물 건너온 영웅들이다. 유비, 관우, 장비, 항우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물 건너오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친숙한 옆 나라에 살고 있던 영웅들이다. 이순신, 권율, 광개토 대왕 등등은 우리나라에 살았던 영웅들이다. 국어 사전에 보면 영웅을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지혜와 재능이라는 부분이 물 건너온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초능력으로, 동양에서는 남다른 무력과 지혜, 혹은 인덕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공이 모두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역사상 많은 영웅들이 등장했었고, 오늘날에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등장할 것이다. 영웅을 모티브로하는 콘텐츠들은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부터 맨 오브 스틸까지(최근에 본 영웅 영화가 맨오브 스틸인지라 이야기한 것이지 여기서 영웅이 끝난다는 말은 아니다.) 꾸준하게 팔리는 것들이며, 앞으로도 팔리게 될 것들이다. 한마디로 영웅이라는 콘텐츠는 꾸준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장 잘 팔리는 콘텐츠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영웅에 열광하는 것일까? 왜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콘텐츠는 영원한 블루오션이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보통 사람이 하기에 어려운 일을 해내는"이라는 말 가운데 들어 있다. 그렇다면 영웅이 해내야 하는 보통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은 무엇일까? 영웅이 등장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배트맨에게는 고담시와 고담시의 악당이 있고, 슈퍼맨에게는 온갖 자질구래한 일에서부터 지구 멸망이라는 틍큰 스케일의 비극이 있다. 스파이더 맨에게는 고블린 맨이 있고, 토르에게는 천방지축 파더 콤플렉스 로키가 있다. 엑스맨에게는 매그니토와 그 일당들, 그리고 돌연변이를 무기화하려는 사악한 집단이 있으며, 유비 관우 장비에게는 난세가 있었고, 이순신과 권율에게는 임진왜란이, 광개토대왕에게는 중국과의 분쟁이 있었다. 무엇인가 필이 오지않는가?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영웅이 등장하는 시기는 전시 내지는 준전시의 상황이 전제가 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춘추전국시대의 두번째 책 제목이 영웅의 탄생이라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관중의 시대에만 해도 아직 낭만이 살아있고, 이상이 숨을 쉬는 시기였다면 진문공의 시기는 바야흐로 전쟁이 중국을 삼키는 춘추전국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는 것이다. 1권에 비하여 2권의 내용이 피비린내가 진하게 나고, 전차전과 병기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직까지는 왕실을 떠받들고 분쟁을 조정하는 패자라는 이상이 존재하긴 하지만 군사력과 권력이라는 현실이 이상을 밀어 젖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비극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요즘들어 우리 사회에는 영웅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것 같다. 멀리는 6.25 전쟁시 육탄 10용사라는 영웅을 만들었고, 가깝게는 서해교전의 영웅을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영웅을 거쳐서 신의 반열에 올라간 존재가 되었다. 아마도 카이사르가 본다면 자신과 똑같은 케이스를 만났다고 반가워할지도 모르겠다. 이뿐인가? 수능 만점자를 영웅 만들기에 급급한 나머지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했다가 제대로 한방 먹기도 했다.

 

  왜 이렇게 영웅 만들기에 열을 올릴까? 이미 우리 사회가 보통사람으로는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서 우리를 구원해줄 영웅을 기다리는 비극의 시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청년 구직자 100명 중에 단 3.5명만이 정규직이 되는 시대, 대학을 졸업했지만 집이 없고, 직장이 없고, 결혼이 없는 삼무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 앞에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강요당하는 30~40대에게 희망이 있을까? 100세 시대를 맞이했지만 빨라진 정년 은퇴를 앞둔 40 중반~50 중반에게 희망이 있을까? 오늘도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그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오히려 비극만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문제는 영웅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외계에서 지구로 보내진 슈퍼맨은 영화에만 존재한다. 현실의 슈퍼맨은 이마트와 홈플러스에 밀려서 멸종 직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배트맨 대신 몸매 좋은 배트걸이 신문에 등장하고, 스파이더맨은 사라지고,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한다. 곳곳에서 영웅을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나지만 그들은 대체로 그네를 타면서 한번도 땅을 밟지 않는 이들이다. 말로만 영웅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영웅 세일즈에 열중하고 있다.

 

  이 비극의 시대에 과연 영웅은 존재할까?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까? 엄석대와 같은 영웅만 등장하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를 끄적거려서인지, 글도 두서없이 흘러가고, 그저 숙제를 마쳐서 홀가분하다는 마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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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02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에서는 일자리 없어서 걱정이지만
시골에서는 일꾼 없어서 근심이에요.

시골 아이들 너무 많이 도시로 갔고,
도시 아이들 하나도 시골에 안 오려 하니
이 틈을 잘 달래는 길을 열어야
서로서로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느껴요..

영웅보다는~

saint236 2013-12-02 07:12   좋아요 0 | URL
보통사람에서 영웅의 시대로 퇴보해 버렸지요. 말로만 농촌을 살릴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현실적인 대책이 서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귀농하는 일은 특별한 케이스일뿐이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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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 전에 종로 알라딘에 갔다가 경험했던 일이다. 난 마음이 답답하면 서점을 찾는다. 교보 문고도 가고, 알라딘 종로점도 가고, 알라딘 대학로점도 간다. 무엇인가 뚜렷하고 사고 싶어서 간다기 보다는 답답하니까, 기분이나 풀어보려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다. 여러 책들을 열어보면서 내가 사고 싶었던 책들이 과연 살만한 것인가 점검을 해보기도 하고, 꽤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답답했던 마음들이 풀어지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서점에 들리려고 노력을 한다.

 

  그날도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알라딘 종로점을 찾았고, 이책 저책 뒤적거리다가 최근 6개월 신간 코너에서 평소 내가 관심이 있었던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대 두명의 젊은 처자들이 들어왔다.(왠지 아가씨라고 하면 오해를 살 것 같은 마음에 처자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대학생, 취업을 앞두고 있는 졸업반인것 같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두 처자가 내 옆에 와서 서더니(결코 나를 보러 온 것도 아니고, 내 가슴이 설렐리도 없는 상황이다.) 인문학 책들을 뒤적거리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재미없고, 취업에도 도움이 안될 것 같은 책들을 뒤적거리는 둘을 보면서 마치 알라디너를 보는 것 같아서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채 3분도 못되어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옆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대화 때문이다.

 

  "OO아 너 그 책 읽어 봤어?"(책 제목이 정확하게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꽤나 재미없는 인문학 책이었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아니. 넌 읽었니?"

  "응 읽었어."

  "그래? 재미있어? 왜 읽었어?"

  "재미는 별로인데 선배들이 읽으라고 하더라고. 취업하는데 도움이 된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인문학이 취업하는데 도움이 된다니...이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이야기만 말인가? 그런데 말이다. 이 이해 안되는 상황이 두 사람만의 특별한케이스가 아니라는 것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요즘들어서 인문학이 사람들 사이에서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꽤 읽히는 편인데 그 이유가 취업을 위해서란다. 영어도, 봉사활동도, 인턴 쉽도 모두 고스펙이다 보니까 이젠 인문학이 변별력을 가지게 되었다나 뭐라나...참으로 대단한 자본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마저도 스펙으로 취급하게 만들어 버리다니 말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복잡한 정의를 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봤다. 네이버 지식 대백과 사전에서 인문학을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복잡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이런 저런 이견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문화를 학문의 주제로 삼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심심해서, 재미있으니까, 좋아서라고 한다. 그렇다. 인문학은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출세를 하려고 한다면, 돈을 벌려고 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웃기는 상황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으로 광고를 하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해본다.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이 사람들에게 성공하려면 인문학을 공부해라는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웅현이라는 걸출한 광고 기획자가 내놓은 광고들(현대인의 생활백서라든지, 박카스 광고라든지)은 광고만으로도 다른 광고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사람들이 광고를 몇번씩이나 들여다 보게 만든다. 나도 박웅현의 광고를 몇번이나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박웅현의 광고의 이런 차별성이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에서 온다. 그가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 본인은 독서, 특히 문학과 인문학 분야의 책을 깊이 읽는데서 온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 생각의 깊이와 폭이 달라질 것이고, 그렇게 생각이 커지니 세상을 달리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문학과 인문학 책을 읽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읽은 것인가? 아니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독서를 열심히 한 이유는 그가 할 일이 없어서였다. 뽑아 놓고 분위기 흐린다고 다른 소리 한다고 일을 주지 않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한권씩 읽다보니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의 독서가 그의 일에 도움이 된 것이다. 열심히 책을 읽어도 업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하는 일과 그의 독서가 궁합이 맞았던 것이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라는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요즘 그런 황당한 결론을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서 책으로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정론이라기 보다는 권도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인문학으로 광고를 한다는 책 제목은 내 마음 속에 껄쩍지근함을 남긴다. 차라리 할 일 없는 자여 인문학책이라도 읽어라가 낫지 않을까? 꽤나 읽어볼 만한 구석들이 있는 책이지만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얇팍한 성공 지상 주의 때문에 오히려 더 손이 안가는 책이다. 나처럼 할 일없이 읽는 사람, 그냥 좋아서 읽는 사람에게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불온 도서로만 보일 뿐이니 말이다. 또한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은 달고 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내용이 전혀 인문학과는 상관이 없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에 인문학이 아닌 사회과학으로 분류한다. 광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읽어볼만 하지만 성공을 꿈꾸는 자에게는 자게서보다 못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웅현의 광고가 남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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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1-2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이 경쟁력인 듯 말하는 책을 보면, 인문학 책을 읽으면 다 그리 되는 것처럼 나오지요. 사실 뭔가 결과와 과정을 이상하게 이해하는 것 같아요. 유MC말마따나 한국의 현 사고로는 '창의'해라! 하면 '창의'가 되는 줄로 오해하는 것처럼 인문학 열풍도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saint236 2013-11-29 15:39   좋아요 0 | URL
스티브 잡스같은 인물도 키워낼 수 있다고 믿는 사회니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oren 2013-11-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웅현 님이 몇 해 전 '책은 도끼다'로 붕~ 뜰 때 우연히 그 분의 '강의'를 한 시간쯤 들은 적이 있었어요. 물론 자발적 참여는 아니었고 등 떠밀리다시피 가봤던 강의였는데, 다른 건 몰라도 '어린아이와 같은' 독특한 감성이 유난히 뛰어난 분이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문학은 우리의 삶을 속세적 성공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깊이있게 가꿔주는 데 가장 큰 보탬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게 곧 인문학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독서의 힘'이겠죠. (매우 길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신문 칼럼 하나 덧붙여 봅니다.

* * *

독서와 항심(恒心)

운세가 좋지 않을 때는 독서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독립불구’(獨立不懼: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음)하고 ‘둔세무민’(遁世無悶:세상과 떨어져도 근심이 없음)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독서의 습관에서 나온다. 독서를 통하여 불운을 견딜 수 있었던 사람 가운데는 중세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이었던 마키아벨리도 포함된다.

마흔셋의 나이에 반체제 사건에 연루되면서 잘 나가던 인생이 곤두박질친다. 직장에서 잘리고, 10년 봉급에 해당하는 액수의 벌금을 물었는가 하면, 감방생활을 거쳤다. 그는 피렌체에서 쫓겨나 시골의 허름한 산장에서 처자식과 함께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였다.

낮에는 주막집에서 시골의 장돌뱅이들과 어울렸지만, 밤이 되면 흙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책이 가득한 서재로 돌아가 독서에 몰입하곤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에서 그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 사람들이 있는 옛 궁전에 입궐하지…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 보곤 하지. 그들도 인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대답해 준다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네.”

만약 마키아벨리가 독서하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이 시절에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양의 식자층들은 어땠는가. 중국 당나라의 관료들은 관청에서 퇴근하면 부인 자식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에 곧바로 서재로 들어가곤 하였다.

가장이 한번 서재로 들어가면 누구도 그 독서를 방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정년 퇴직을 하면, ‘그 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이제야 마음놓고 실컷 읽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더욱 독서에 몰입하였다고 한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조기 퇴직이 대세이다. 항산(恒産)도 없는데, 항직(恒職)도 없으니, 항심(恒心)도 어려운 ‘삼난항’(三難恒)의 시대가 된 것이다. 삼난항의 시대에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책을 붙잡아야 한다.

saint236 2013-11-30 20:32   좋아요 0 | URL
저도 답답하면 서점을 찾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제가 알라딘에 글을 한두편씩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당시 너무 힘들어서 책을 붙잡게 되었지요. 책 읽고 글 쓰고 그러면서 버텼습니다. 물론 글의 퀄러티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요. 다만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끄적거린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요즘도 책을 붙잡게 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처음 읽는 일본사 - 덴노.무사.상인의 삼중주, 일본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 교과서 논란이 거세다. 우편향이니, 좌편향이니 온갖 시비가 난무한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본격적으로 교과서를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는 것이야 무엇이 문제가 있으랴만은 바르게 서술된 내용도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서 왜곡하려하니 그것이 문제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과거에는 더 공공연하게 과거를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서 왜곡했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우리가 배워왔던 것들이 역사적인 사실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질의 일들이다. 가령 과거에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나, 국화 옆에서의 미당 서정주 같은 시인이 친일파 중의 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배신감과 허탈함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니겠는가?

 

  왜 역사 교과서를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수정하려고 하는가? 자기들의 역사적인 주장을 위해서라면 전문 서적을 내는 방법도 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서적을 내는 방법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아이들이 들여다 보기도 지긋지긋해 하는 역사 교과서인가? 그것은 교과서가 가지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는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내용들을 상식적인 선에서 대략적으로 다룬다. 교과서의 목적은 역사적인 사안들을 학생들에게 자세하게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요, 국가와 민족이라는 특정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관을 주입하기 위함이다. 바른 역사관이라는 말도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만약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왜곡되고 수정된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그 교과서의 주장을 일반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미화가 교과서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그 결과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살린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사실이냐 거짓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교과서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비단 우리 나라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과거 가해자였던 일본의 후쇼사 교과서는 너무 유명해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도 교과서 이름과 출판사 이름을 왠만한 한국 사람들이 알 정도이지 않은가? 반대로 한국에서 이번에 문제가 되는 교과서는 교학사 교과서인데 일본에서 나오는 평이 한국판 후쇼사 교과서라고 한다. 아마 일본 사람들에게도 한국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교학사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겠는가?

 

  역사를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왜곡하는 것도 불사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역사도 아닌 타인의 역사, 그것도 과거 가해자였던 일본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한국 사람에게 일본은 증오의 대상이요, 쪽바리인데 그들의 역사에 대해서 경외심을 가지고,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접근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처음 읽는 일본사"가 책을 풀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본에 대한 편견과 피해의식,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왜곡되고 우리에게 학습된 과거의 역사관들을 벗겨내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는가?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이러한 불가능에 도전한 것만큼은 높이 쳐줄 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도전은 헛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꽤 유의미한 작억이라고 하겟다. 이 책은 역사 교과서 논란과 더불어서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왜 역사를 공부하는 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도 역시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나보다.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학습되어져 왔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또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고 하다보니까 오히려 더 그러한 굴레데 같힌 것은 아니겠는가?

 

  이 책은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단편적으로 늘어 놓은 것은 아마도 왜곡된 역사관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이들은 자신들이 탈피하고자 하는 역사관에 갇히는 것이다. 코기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주문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코끼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처럼 자신들이 벗어나고자 의식했던 그 역사관 때문에 그들은 일본사를 서술 함에 있어서 자유가 구속받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는 해석의 문제일텐데 해석을 제외하고 역사적인 내용들을 늘어놓기에 급급한 책의 구성은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역사 서술이 특정한 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한계가 드러난다. 천황과 무사와 상인이 일본사를 만들었는가? 물론 그들이 일본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맞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역사의 모든 사안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덴노와 천황과 상인이 아무리 이런저런 일들을 만들어 간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어가고 반대하고, 때로는 뒤집기까지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백성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책 어디에도 이런 백성들의 모습은 없다.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자칫 역사를 영웅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러한 영웅을 기다리는 역사관에 정당성을 주게 될 뿐이다. 마치 경제 대통령 MB를 기다리고, 반인반신이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따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오해할까봐 분명히 말하지만 이 책이 잘못 씌여졌다는 것은 아니다. 왠만한 책보다 훨씬 더 낫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읽히면 좋을 법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준이 높아서인지 아쉬운 부분을 조금씩 적어본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하자면 "나는 다음에도 이러한 시리즈가 나오면 또 사볼 것이다."라는 말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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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1-28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서부터의 역사이냐 아래로부터의 역사이냐는 오랜 논란꺼리지요. 하지만, 예로부터 자신은 높이고 상대는 낮추는 중국사관이나, 신화부터 전격적으로 날조하는 일본 (근대에 그리 됐다지요)에 비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전통이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런 것을 친일, 독재를 미화하려니 그런 무리수를 두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한 나라의 총리가 '침략'과 '진출'을, '소탕'과 '학살'을 명확히 구분해서 답하지 못하는 정치적인 머저리가 되는 것이겠지요. 역사의 진실 이상, 가르치는 역사의 진실과 방향성 또한 중요합니다.

saint236 2013-11-28 13:44   좋아요 0 | URL
각하께 교시를 받아야만 하고, 상식적인 질문을 질문지에 없던 질문이라 나중에 답을 주겠다는 것은 도대체 어덯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transient-guest 2013-11-29 09:30   좋아요 0 | URL
그저 무뇌충이나 무척추동물만이 가득한 정권입니다 그려..